요한복음 21:15-17절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동등하게 사랑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랑이 동등하다고 인식 되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을 온전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엄청난 은혜가 거기에 달렸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었다(요1서 4:16) 그리고 요한은 요일4:19절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음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성육신하셨다. 예수님 곁에는 가깝게는 12제자,또 수백명의 제자, 멀게는 허다한 무리가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다 동등하게 사랑하셨다. 때론 그들을 위해 애통하시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사랑했던 자라고 특별히 기록된 자가 있다. 바로 사도요한이다. 그는 주님이 모두를 편견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담대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주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알고 마치 농부가 밭에서 찾은 보화를 소유하기 위해 자기 전 재산을 팔았듯이 주님의 사랑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의식하며 소유한 자이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 역시 또 같은 주님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달랐다. 베드로의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들을 깨달을 수 있다. 베드로는 눅5:8절에서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체험하게 된다. 그 때 그는 고백하기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한다. 이 고백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런 자세를 취하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앞에서 참으로 무가치함을 느끼는 자가 된다.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사랑에서 배제하지 않으신다. 문제는 우리의 두려움이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값없는 사랑 안에서 안식하기를 꺼려하게 된다.
마16:12절에서는 베드로는 사탄이라고 꾸짖음을 받는다. 예수님이 고난 받아야 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셨을 때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했기 때문이다.베드로는 항상 어떻게 하면 주님을 감동시키며 그 마음을 움직이고 콘트롤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눅22:33에서도 이런 고백을 한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그 때 주님은 뜬금없는 말씀을 하신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데에 관심이 없으시다. 내가 죽는데까지 봉사하고 헌신하리이다 라고 외쳐도 그것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아니라 내 자신으로부터 오는 입증이면 그 일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는 그 밤에 마귀의 시험에서 비참하게 실패하게 된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만다. 그리고 새벽에 닭이 울 때 그는 깨닫기 시작한다. 눅22:61-62에 써있기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 베드로는 실패에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값없는 사랑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능력과 의지, 확신이 아니라 주님의 먼저 사랑하심이라는 걸 알게 된다.
베드로는 자신의 노력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주님이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신 그 기도가 베드로를 회복으로 이끌었다. 갈5:6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한다. 우리가 사랑을 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주의 사랑으로써만 활동하며 타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부활 후 특별한 시간을 가지신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신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곧 "너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네가 확신하느냐?” 라는 질문이다. 그가 나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깨달은 베드로는 “주를 사랑합니다” 라고 세 번 대답한다. 마귀는 우리가 주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의 사랑을 얻으려고 잘못되고 왜곡된 시도와 노력을 하게 하고 또 실패하게 한다. 주님은 이 오해를 푸시고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승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온전히 인식할 때 주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긴다. 하나님을 위한 나의 노력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산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아는 한 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