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Like Water*
"흐르는 물처럼 산다"
이 곳 벤쿠버 한국신문에 소개된 찻집 이름이다. 한국신문을 자주 읽지 않은 내게 눈길을 끈 것은 우리 전통복장으로 가부좌를 한 캐네디언의 사진이 눈에 들어 와서다. 벤쿠버에 전통찻집이 생겼다는 것도 새롭지만 캐네디언이 그 곳을 운영해 간다는 기사는 여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달마상 그림과 시, 때묻은 고무신, 한지로 만든 램프,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씌어져 있는 방패연, 주인이 직접 조각을 했다는 천하대장군, 하늘 지킴이 등, 마치 인사동 찻집에 들어 선듯한 우리 눈에 익숙한 것들로 꾸며 놓은 곳.
"흐르는 물처럼 산다" 는
다운타운 차이나타운 한 모퉁이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곳에 들어선 순간의 느낌은 상업적 공간 보다는 차를 좋아는 이가 꾸며 놓은 듯, 덜 세련되고 매끄럽지 않은 촌스러움, 하여 더 온전한 본연의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제가 나고 자란 땅을 떠나 온 사람들이 한 두 번 체험하게 되는 문화의 혼돈에서
금새 서양과 동양의 감각을 상실한 심연의 의식 본질 속으로 빠져 들고 만다.
동양, 아니 한국 문화를 알기에는 이른, 3년의 한국생활이 어떤 화두를 주어 그는 이 곳에 그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일까.
서양인 특유의 낙천성과 자기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게, 그 근본임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 곳에 머무를 때마다 내 궁금증의 숙제이기도 하다.
마이클 치호인
(Maichael Cichon)
찻집 주인의 한국이름은 "진목"(眞目)이다.
그는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라고, 대학을 마칠 때까지 살았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오랜 기간 동유럽을 여행하였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영어를 가르치러 일본을 택했지만 그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한국 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부산에 있는 중학교에서 영어 선생을 하는 동안 친구들을 사귀면서 우리차를 만나게 되었다. 차와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불교에도 심취해 절을 찾아서 며칠씩 수양을 하며 머물기도 하였다. 차 산지를 찾아 전국을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 것의 아름다움과 참 모습을 보기 시작했고, 돈이 생길 때마다 다구와 전통적인 것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국 차의 매력은
"특별한 의식이 필요치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생을 논하며, 차가 식고 다시 물을 끓이는 기다림의 미학, 자연스러움이 멋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우리차 문화에 익숙해 있다.
한국말도 읽을 줄 알고, 제법 어휘구사를 하는 그는 캐나다로 돌아온 다음 직장을 찾지 않고, 한국차와 평생을 살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 가 한국에서 살았던 부산처럼 바다가 있고, 언제나 한국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궁리한 끝에 99년 션사인코스트 자신이 머물던 집 한 모퉁이에 찻집을 꾸몄다. 많은 이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차를 마주하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차에 대한 향수를 달랠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하기를 1년, 다시 이 곳 벤쿠버로 이사를 오면서 지금의 자리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파란 눈을 가진 서양인이 차를 대하는 자세와 그 깊이가 우리 나라 다인들처럼 참으로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 함은 그 것에 바른 예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그 곳을 발견하고 들리는 한국 학생들이 우리 것을 보고 신기해 하며, 궁금해 해 하는 것을 마이클이 그 것들을 설명해 주고 가르쳐 준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장 본질적인 것을 우리가 모른채 살아왔다 해도 내재 된 분위기를 신기해 하는 건 서양문화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떨쳐 버릴 수 없는 의식적 요소가 아닐까.
우리는 정작 가까이 있는 것, 소중한 것을 뒤로 한 채, - 이 먼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서양인이 찾아 놓은 우리 것을 신기해 하고 새삼스러워 하며...
하여간 내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즐겁다. 삶이 무료해 질 때, 찾아 갈 수 있다는 안식처와 동질성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설레임에 이 곳 생활이 한껏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처럼 산다"
그 곳에 가면 우전, 세작 국화차 등 양질의 우리 전통차를 맛 볼 수 있다. 판매할 정도로 충분치 않지만 다양한 차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많지는 않지만 썩 질이 좋은 우리 도자기와 다구들을 감상 할 수 있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주인장의 높은 식견으로 우리것을 만날 수 있음이 그 곳을 찾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일이나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이같은 우리의 공간이 오래 지속되려면 최소한의 운영은 유지 되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없음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사실, 운영이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않는 다는 게 주인장의 얘기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그 곳 지킴이의 말처럼 그는 흐르는 물처럼 살겠다는 것이다.
단지 차를 사랑하고 그 분위기가 좋아 이 공간을 마련했다는 그는 그 찻집운영으로는 임대료도 절대 감당하기 어려워 저녁시간이면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내가 차를 접한 지가 벌써 15년이 더 넘었다. 우연하게도 마이클이 차를 알게 된 부산에서였다. 시내 사찰에서 시를 쓰시는 스님으로부터 차를 접했고 배웠다. 그러함에도 난 아직도 다도나 그 어떤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차를 마신다. 각 지역, 차 모임에 따라 다도가 다르고, 차 맛 또한 각양각색이다. 아직도 어느 것이 옳은 다도이고, 좋은 차인지 잘 알 지 못한다.
다만,
좋은 차라 함은 그것을 만든 이의 정성이 베어 있고, 차를 통해 상대에 대한 겸허와 배려, 성찰을 통해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 게 좋은 다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내 나름대로 가지고 있을 뿐이다.
차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 대상이 누구이던지 진솔해 지고, 금새 가까워 짐을 느낄 수 있다. 대화 또한 일상의 잡다함에서 잠시 벗어나 편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짧은 시간이면 그런 대로 좋고, 밤을 새워 차를 우려도 지루하거나 취하지 않는다.
술 마신 끝은 더 진한 취흥이 있어야 하고 절제가 필요 하지만, 차를 마시는 그 마지막은 언제나 간결하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흐르는 물처럼 살다"
그 곳 주인장 말처럼 우리 전통찻집을 지키며,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간다고 하지만 흐르는 물이 어디 그렇게 순탄하게만 흐르는가?
발원한 물은 흐르는 동안 필연적으로 많은 물줄기와 만나야 하고, 굽이진 곳에서는 잠시 머무를 줄 알아야 한다. 가파른 계곡에서는 낭 떨어짐을 피할 수 없지 않은가. 침묵보다도 더 무거운 잔잔한 호수에 들어서면 그 허황한 고독은 스스로 감춰 둬야 하리라.
...
"흐르는 물처럼 산다"
그 곳에서 차를 우릴 때마다 생각나는 내 부질없는 단상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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