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시애틀의 어느 예술인
김유훈
내가 트럭 일을 하고부터 미국은 나의 주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캐나다와 가까이 있는 오레곤 주와 워싱턴 주는 거의 케나다로 오는 길목에 해당된다. 때문에 나는 미국 국도 5번은 매우 친근한 도로이다. 몇 해 전 어느 날 그날도 포틀랜드에서 물건을 싣고 캐나다 쪽으로 올라오는 중에 생긴 일이다. 올림피아 바로 아래에 있는 휴식처에서 트럭을 세우고 용무도 보고 커피도 한잔하고 있었다.
그때 어는 뚱뚱한 흑인 한 명이 내 트럭 옆으로 걸어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헝겊에 싸인 보석 반지 함을 열어 보여 주면서 “이거 백화점에서 몰래 슬쩍 한 것인데, 너 싼값에 사지 않겠느냐?” 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정가표가 15,000불로 찍혀 있음도 자세히 보라고 내 눈에 가까이 보이도록 하였다. 그 친구 떠들어 대는 말로는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인 데 2,000불만 주면 팔겠다고 하였다. 나는 “No! Thanks!” 하며 관심 없다고 하니 그 친구 다시 값을 내려 “그럼 1,000불은 어떠냐?” 하며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다시 “No!” 하였더니 그 친구 이번에는 “그럼 800불은?” 하며 또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 친구 사람 잘 못 보았다. 나로 말하자면 금은방집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육안으로도 척 보면 진짜와 가짜 정도는 구별할 줄 알며 그리고 광학렌즈만 있다면 흠까지 볼 수 있는 도사급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런 나에게 큐빅으로 내 눈앞에서 생쇼를 다 부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나는 그 흑인 친구의 생쇼를 보며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과거 한국에서 큐빅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소련에서 들어온 큐빅은 정말 다이아몬드와 광채가 거의 비슷하여 나이 많은 사람들은 감쪽같이 당하였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큐빅들은 아예 다이아로 취급해도 될 만큼 광채가 좋았기에 속임도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고 큐빅의 존재도 많이 알려진 후로는 큐빅은 큐빅으로 돌아가고 다이아몬드는 여전히 보석 중의 보석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었던 그 큐빅이 다시 내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리고 "이건 가짜야!" 라고 하려다 결국 나는 그 흑인에게 “I have no money!” 하여 주었더니 그 친구 다시 “How much do you have?” 하며 다시 흥정하자고 하였다. 나는 “ 야, 인마! 페니도 없다!” 하고 나니 겨우 어슬렁거리며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 후 나는 약 1시간을 더 달려서 훼드럴웨이 트럭 휴게소에 또 들렸다. 나는 그곳에서 쉬면서 저녁도 먹고, 시애틀에서 하는 한인 방송도 듣고, 그리고 러시아워를 피할 생각이었다. 나는 그곳에 트럭을 세우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만났던 그 흑인을 다시 만났다. 나는 “Hi!” 하며 먼저 아는 척을 하였다. 그러자 그 친구도 반갑다는 듯이 웃으면서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면서 내가 묻기도 전에 “ 야, 조금 전 저 밑에서 어는 여자한테 그 반지를 600불 캐시로 팔았다.” 하며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그랬냐? 축하한다” 하고 “너 얼마 벌었냐?” 하며 넌지시 떠보았다. 그러자 그 친구 웃으면서 “A Lot’s of money!”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휴게소 앞에 세워둔 자기 소형차로 가서 차를 타는 데 그 차는 베즈 500짜리 고급 차였다. 나는 약간 놀라 그 친구에게 가서 “ 야! 이 사기꾼아!”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 친구 승리의 웃음으로 나에게 손 흔들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그 환한 얼굴로 운전하는 그 친구의 모습 속에서 그가 자신이 사기꾼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외국에서는 이런 사기꾼들에게 쓰는 말이 “Con Artist”라고 하여 무슨 예술가라고 비꼬고 있다. 사실 완전한 사기를 치려면 연극 이상의 정교한 표정과 상황 설정, 그리고 적당한 감정 표현 등등이 필수이다. 그리고 상대를 잘 골라야 그 작품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전 그 흑인 친구는 나를 좀 잘 못 만나 헛고생을 하였지만 그다음, 좀 어리숙하고 현금 가지고 있던 여성을 만나 그의 작품은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 사는 곳 어디에서나 언제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연기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도 머리 쓰고 연습한 후 실습도 하며 성공 혹 실패도 하고 있지만 되도록이면 같은 민족의 가슴 아프게 하지 말고 피눈물이 배인 돈 사기 치지 말고 땀 흘려 일하고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좁은 이민사회는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세대는 점점 늙어간다 하여도 한번 추락한 그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점점 멀리 퍼져 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밖에 없는 일생, 기왕이면 자신의 그 귀한 이름과 명예를 지키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