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단추
이 한겨울, 밖으로 나설 적마다 점퍼를 입고, 솜바지를 입고,빵모자를 쓰는 등 중무장 아닌 중무장을 하곤 한다. 그리고서 밖에서 장작을 패거나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거나 한다. 한참 그렇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그리 추운 줄을 모른다. 그런데 웬 일인지 오늘은 시쳇말로, 아랫도리가 제법 시렸다. 내려다 보니, 남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바지의 지퍼(zipper)가 탈났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바늘구멍에 황소바람이 들어온다.’고 하더니,그 짝이었다.
지금은 다시금 농막 안. 그 바지의 지퍼를 어찌어찌 고쳐볼 요량으로, 마루뻰찌며 드라이버며 온갖 연장을 다 꺼내 와서 주물럭대고 있다. 영 신통치 않다. 지퍼를 올리고, 바지의 양 가랑이를 당겨봄으로써 지퍼의 온전한 동작여부를 확인해보는데, 자꾸 터지기만 한다.마치 열과(裂果)인 완두꼬투리가 터지듯,삭과(蒴果;削科)인 백합이나 붓꽃의 열매가 터지듯. 그렇다면 쉰 일곱에 이른 내 거시기가 아직도 ‘삭과’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지난 날 시험장에서 부정행위를 하다가 들켜 시험지를 압수당한, 그 수모 ‘삭과(削科)’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마음 속으로나마 어떤 범법(犯法)을 저질렀더란 말인가. 기왕지사 꺼낸 이야기. 언젠가 들은 ‘성인 유머’도 하고 넘어가자.
어느 부인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냉장고에다 ‘까불지마’란 네 개의 글귀를 적어 두었다. 남편더러 ‘까스(가스) 조심하세요.’, ‘불조심하세요.’, ‘지퍼 함부로 내리지 마세요.’를 당부한 것이다. 부인이 며칠간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남편은 냉장고에다 이런 답을 적어놓고 어디로 나간 뒤였다. 무어라고 적혀 있었게? 바로 ‘웃기지마’였다. ‘웃음이 늘 생겨났다.’, ‘기분이 좋기만 하였다.’, ‘지퍼를 마음대로 내릴 수 있어서 좋았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이 바지를 시내 옷수선집에다 맡기면 될 일이지만… . 세상만사가 모두 다 ‘암’과 ‘수’로 되어있음을,이 고장 난 지퍼를 통해서도 다시 깨닫는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퍼는 모조리 ‘凹’와 ‘凸’로 되어 있다. 그 사이에 손잡이 달린, 지프차 같은 운행자(運行者)는,이들 암수를 꼭꼭 맺어주고 풀어주는 중신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문득, ‘똑딱단추’로 생각이 이어진다. 똑딱단추는 ‘스냅(snap)’을 일컫는 우리말. 수단추와 암단추가 따로 있고, 이들이 서로 채워질 때나 풀릴 때 ‘똑딱!’소리를 일으키기에 ‘똑딱단추’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였다. 이 똑딱단추의 동작원리도 제법 흥미로웠다. 수단추 끝은 마치 수컷의 거시기의 모양과 같았다. 분명코,귀두(龜頭)였다. 암단추의 속에는 스프링이 있었다. 일단 들어온 수단추의 귀두를 꼭 잡아주는 게 그 스프링의 몫이었다. 이를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까발리고 말아야지! 그 스프링은 암컷 질(膣)속의 그 많은 주름이라고. 사실 ‘지퍼’나 ‘똑딱단추’뿐만 아니라 모든 단추의 동작도 ‘암’과 ‘수’의 결합과 분리로 이루어진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옷 따위에 낸 단추구멍은 대체로 헐렁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구멍 언저리가 너덜너덜해질세라, 재봉질로 촘촘 테두리를 미리 해둔 점도 흥미롭다. 그리고 모로 세우든 쑤셔넣든… 어찌해서라도 그 단추구멍에 넣기만 하면, 둥근 단추가 이쁘게 채워졌다는 사실. 단추 대용품으로는, 고름,대님,찍찍이,리본 따위가 있다. 여기서 잠시. 찍찍이도 암과 수의 결합으로 작동되며, 어느 식물의 잎에서 착안했다는 점을 지나칠 수 없다. 이 찍찍이는 단추를 채우거나 끈을 묶는데 아직 익숙치 않은 어린아이들의 복장 따위에 많이 쓰인다는 것. 운동화며 가방이며… . 그러니, “네 깐 게 뭘 알아? 아직은 단추를 제대로 채울 줄도 모르잖니? 그러니 이 찍찍이로만 만족해 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똑딱단추, 그 여닫음은 언제고 재미 있었다. ‘똑딱!’하는 소리와 함께. 똑딱단추는 아니지만,까만 교복 칼라의 앞 목을 언제든 단단히 채워야 했던 그 호크(haak). 그 호크는 구속이었고 규제였지만… . 후일 또 다른 호크는 똑딱단추와 지퍼와 더불어,남자인 나한테 커다란 떨림을 주곤 하였다. 사실 이 ‘호크’는 네덜란드에서 온 말이라고 하였다. 네덜란드 남정네들은 어떤 낭만(?)을 진작부터 즐기고 있었더란 말인가. 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더 하고자 이렇듯 뜸을 들이느냐고? 바로 여성의 의상에 달린 호크와 지퍼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사실 ‘앞으로 브라’라는 블래이지도 나오긴 하였지만, 아무래도 블래이지어는 등 뒤에 호크가 달려 있어야 제 맛(?)이다. 대개의 여성의류는 호크나 지퍼나 똑딱단추가 뒤에 달려 있다는 거. 나는 그 이유를 성인이 되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디 여성들을 골탕 먹이려고 그렇게 고안했을까? 남정네들에 대한, 눈물겨운 배려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 난 성인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참말로 알게 되었다. 내숭 떠는 애인의 포장을 열 때, 원피스의 지퍼를 나의 손으로 내리고… 블래이지어끈의 호크를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열고… . 혼자서 입어도 될 성싶은 원피스. 그 원피스의 지퍼를 좀 채워달라고 보채던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러고 보면 중,고 시절 생활지도교사의 지시봉이 고맙기만 하다. 우리네 머슴애들한테 교복의 목 호크를 채우고 푸는 걸 늘 단속했으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호크를 채우고 푸는 데 제법 익숙했으니까.
그랬던 것이, 그랬던 것이… 어느새 치송(治送)해야 할 두 딸아이를 둔 애비다. 자연,나는 여성의 똑딱단추나 지퍼나 호크를 떨리는 손길로 열 일이 거의 없어졌다. 대신, 두 딸아이 남자친구의 몫이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지만. 내심 전자(前者)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녀석들은 곧 손수 자신의 의상을 벗거나 입거나 하지 않는 일에 익숙해졌으면 참으로 좋겠다. 그리고 노후를 맞은 우리 내외는 녀석들한테 찍찍이부모 즉, ‘벨크로 부모(velcro부모)가 아니 되길 바랄 따름이다. 물론, 이 속담도 잊어서는 아니 되겠지.
‘촌년이 늦바람 나면 속곳 밑에 단추 단다.’.
창작후기)
어제 1월 1일,‘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갔다. 앞 좌석 젊은 자매님의 의상 등 뒤에 단추가 여러 개 조르르 달려 있었다. 향수 내음도 참으로 향긋했다. 그 것이 이 글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단쵸(‘단추’의 고어)’가 되었다.
* 이 글은 인터넷(한국디지털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