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조조영화를 고집하던 나를 놀리곤 했다.
“몇천 원 아끼겠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더 신기해.
바보 같다.”
“몇천 원이 뭐야. 쌓이면 결국 몇만 원인데. 얼마나 좋아.”
넌 내가 조조영화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를 것이다.
돈 아낀다는 명분을 내세워
너와 조금이라도 오래 있으려는
내 마음을 말이다.
매번 졸려 죽겠다며 툴툴댄 너지만,
항상 영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뿐일까. 아침 햇살을 맞으며
영화관으로 함께 가는 길은 매번 즐거웠다.
혼자가 아닌 둘이라 좋았다.
으르렁거리는 일상 속에서 네가
나와 함께라는 사실이 좋았다.
종종 심야관에서 쪽쪽거리자는
너의 응큼한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렴 너와 오래 함께 있는 것보다
좋을 수야 있겠는가.
카라멜 묻은 손가락이 더럽다며
내 옷에 닦아대던 네가 마냥 좋았다.
울지 않을 거라며 다짐했던 날
휴지가 닳도록 닦아대는 너를 보노라면
너무 웃어 배가 아파 오기도 했다.
조조 할인은 내 지갑뿐만 아니라
널 보는 내 마음도 충족하게 했다.
좋은 추억이라…. 보통 미화된 기억들이라며
손가락질하지만, 조조영화를 함께 본
날들만큼은 미화가 필요 없는 명화였다.
네가 웃을 때 나도 웃었고, 네가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그것이 내가 조조 할인을 택한 이유다.
아침 일찍부터 너와 더 오래 있을 수만 있다면
난 잠쯤이야 포기할 수 있었다.
시간이 아깝다며 대충 나오라는 말의 의미를
넌 지금쯤 깨달았을까?
난 너의 헝클어진 머리가 좋았고,
허겁지겁 팝콘을 집어먹는 모습이 좋았다.
언제 한 번은 네가 나서
다음 날 조조영화를 예매했다며 내게 말했다.
신파극이라 손가락질받는 작품일지라도
나와 함께 보면 무엇이든 재미있다며
꺄르륵거리던 네가 기억난다.
평소와 다르게 넌 모두가 기피하는
오른쪽 구석 자리를 골랐다.
어떤 바람이 불어
네가 그 자리를 택한 것인지
난 알 턱이 없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모든 불이 꺼졌을 즈음인가,
따뜻한 입김과 함께 너의 솜털은 간지러웠고
우리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난 너의 의도를 깨달았다.
부끄럽지만, 난 그날 뽀뽀가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우린 매 주말마다 꾸준히 조조영화를 봤다.
여관방에 있던 날보다 영화관에 있던 날이 더 많았다.
크게 다툰 뒤에도 돌아오는 주말은
무조건 조조영화를 함께 봤다.
서로 뾰루퉁해진 채 스크린을 보다
익살맞은 배우 탓에 웃다 보면 어느새 풀려 있었다.
그때마다 넌 항상 깍지를 낀 채
내 어깨에 기대었다.
서로 탓할 것 없이 더 사랑하자고.
적어도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최소한의 단어로 최대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대화법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이별 또한 간결했다.
관계가 소원해지고
더 이상 둘 중 그 누구도
조조영화를 찾지 않을 때쯤이었다.
술에 젖은 눈을 하고 들어와
미안하다며 나서는 널 붙잡지 못했다.
네가 내 어깨에 기댄 것이 최악의 복선이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너무 우리다웠다.
악에 받치지도, 비난하지도 않고
서로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안일했던 나는 네가 돌아올 줄 알았다.
새로 개봉한 영화가 있다며,
카라멜 팝콘은 꼭 먹어야 한다며
다시 올 줄 알았다.
그게 클리셰니까. 우리는 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넌 오지 않았다.
너와 함께 맞던 아침은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조조영화를 예매했다.
잊으려 애쓸 바에는
마음이나 아프자라는 식의 충동이었다.
옛말에 쇠뿔도 당긴김에 빼랬다고,
너와 처음 입을 맞춘 오른쪽 구석으로 잡았다.
한가한 시간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연인들도 있었다.
광고가 끝난 상영관은
이내 어두워지고 침묵만이 나돌았다.
모두가 영화에 집중하는 와중에
난 오직 내 빈 옆자리만을 바라보았다.
조조영화는 여전히 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비싸게 느껴졌다.
단순히 네가 없는 아침이 어색해서인지,
물가 상승 탓인지 모르겠다.
내가 여지껏 아끼고 싶었던 것은
고작 ‘몇천 원’ 따위가 아니었다.
너와의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던
우리들만의 시간.
난 여전히 조조 할인을 받는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