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풀꽃 따는 여자 4 /자연의 변화 그 신비 속에서

작성자추정강숙려|작성시간19.02.28|조회수74 목록 댓글 0
자연의 변화 그 신비 속에서

강 숙 려


하늘이 잠잠하고 울적한 날엔 마음도 울적하게 가라 앉는다.
그런 날이면 버릇처럼 올림픽 대교를 타고 미사리를 거쳐 강물을 보러 떠나곤 했다. 미사리 길은 4킬로가 넘는 긴 길이다. 카누 경기장을 끼고 길게 뻗은 아주 매력적인 길이기도 하다. 얼마 전 팔당 대교가 개통 되기 전 까지만 하여도 연인들의 데이트 차들이나 연수하는 차들이나 가끔 드나들던 한적한 길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청평이나 양평 또는 춘천이나 설악산 까지도 이 길을 통과하여 대교를 타게 된다. 그러다 보니 평일 날 이른 새벽이나 겨우 한적할 뿐이라 나 같이 이 길을 사랑하던 이들은 매우 애석한 일일 것이다. 새벽 같이 차를 몰아서 물을 따라 올라가 보면 강으로 가득 안개가 피어 오른다. 가끔 너무나 아름다운 동양화 한 폭에 가던 길을 멈추고 넋을 잃고 있을 때도 더러 있게 된다. 겨울 산의 작은 나뭇가지들이 품어내는 운무의 색조가 산봉우리의 선과 어우러져 강에서 피어 오르는 물 안개와의 조화는 한 폭의 잘 그려진 수묵화가 된다. 코 끝에 스치는 안개 내음을 맡으며 한 달이면 일곱 여덟 번은 족히 오갔는데 그래도 항상 신비로운 것은 나는 인자(仁者)도 智者(지자)도 아니지만 물이 있고 산이 있어서 그러하리라 여긴다..

어느날 운무 속에 쌓여있던 안개 빛 산이 진달래를 피우면서 연분홍으로 물들면 봄이 왔다는 소식이다. 진달래 빛이 연하여 지면서 연록색의 잎파리들이 나오고 산은 연두 빛으로 변한다. 연두 빛 잎파리들 사이사이로 피어나는 개벚꽃의 새하얀 빛은 희망처럼 기쁨이다. 산은 어느새 록색으로 치마를 두르고 아까시아 꽃잎을 열어 온 통 오월의 하늘엔 향기를 날린다. 봄이 익는 숲 속에선 뻐꾸기가 울고 경치 좋은 길 어깨엔 나 같은 감성적인 차들이 몇 대씩 서 있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좋은 친구가 되어 자연 속에 하루를 동행하기도 한다. 아까시아 향기가 꽃잎과 함께 지는가 싶으면 유월이 오고 특이한 냄새를 풍기면서 밤꽃이 피어난다. 벌들이 웅웅거리며 꿀을 모으고 양봉 꾼들이 벌통을 들고 모여든다. 록음은 더욱 짙푸러지고 하늘이 점점 내려오면 물빛도 하얗게 달라진다. 칠월이 매미 소리와 함께 작열하고 팔월이 더불어 불탄다. 맴맴 매미는 스르람 스르람 늙어 가고 고추잠자리가 바지랑대 위에서 곤히 잠들면, 여름도 한풀 꺾어져 조석으로 찬 바람이 구월을 알린다. 어디에선가 메밀잠자리가 날아와 낮게 날아 다닌다. 이렇게 계절은 한 치의 어김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가을을 맞는다. 이글거리던 태양 아래서 이삭을 익히던 벼들은 고요히 고개를 숙여 영걸은 모습을 보여 겸손의 미를 가르친다. 고추 밭에서 고추가 익어가는 시간 대추 나무에선 대추도 볼이 빠알갛게 익어 간다. 하늘이 높아지고 거울처럼 청아한 푸르름이 담기면 강물 또한 하얀 손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단번에 들 것 같이 파아랗게 하늘을 닮아간다. 이렇게 가을은 푹푹 익어 간다.

꽃은 남쪽에서 피어 오르고 단풍은 북쪽에서부터 들어 내려간다. 서산스런 바람이 몇 차례 불고 나면 록음도 어느새 색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남한강을 끼고 석양에 비치는 산들은 황홀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환상적인 노을로 변한다. 자연의 순리 앞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한번 감격하며 숙연한 자세가 된다. 겨울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하여 잎을 떨구고 묵묵히 자연에 순응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하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다치면서까지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지 않는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누리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마땅히 우리는 귀 기우려야 한다. 나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사랑도 쓰고 그리움도 쓰고 눈물도 쓰고 희망도 쓴다. 주님이 불러 주시는 그날 까지 건강하게 풍월주인 風月主人이 되어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항시 떠날 수 있는 날들이 주어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이제 나는 여기 밴쿠버의 언덕에서 태평양의 푸른 물결과 눈 덮인 산봉우리의 설경을 보며 이방인의 회한으로 서기도 하고 신비의 눈빛이 되기도 하며 대 자연의 신비에 감격하고 있다. 내 나라 한국의 정서와 너무나 다른 이국의 정서에서도 자연의 숨쉬는 모습은 한결 같음에 편안하다. 철 맞추어 피어나는 꽃들과 피고지는 초목들의 질서 속에서 더욱 절대자를 발견하게 된다. 되어지는 모든 일과 살아가는 모든 순리를 그 분에게 감사하며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98년 10월에 씀)

’98. 좋은만남 10월호 (종이상자 6)
풀꽃 따는 여자 5 동아라이프 ’05. 10. 2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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