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벌새(Humming Bird )

작성자추정강숙려|작성시간19.04.01|조회수185 목록 댓글 0

                          벌새(Humming Bird)

 

                                                                  

 

 

겨우내 하늘이 비로 넘치나 싶도록 내리던 비가 계절을 바꾸느라 뜸해 지고 있다.

예전엔 5월도 말에나 가서야 개이던 비가 올해는 3월에 햇살을 보게 되어 올 봄은 따사한 햇빛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수선화 꽃대궁이 쑤욱 고갤 내밀더니 날마다 자라 올라 꽃이 만개하고, 이어 개나리, 벚꽃, 목련, 튜립까지 피었다 지고 보니 어느새 봄도 가고 여름의 문턱에 앉은 것 같다.

작은 꽃밭이 있어 평소에 심고 싶던 꽃들을 하나 둘 심었더니 계절 맞추어 꽃이 피어나고 있다. 채마 밭도 하나 있었으면 하던 터라 아예 잔디 한 자락을 덮고 텃밭도 일구었다. 상추도 심고 쑥갓도 심고 부추도 심어 제법 채마밭의 냄새가 난다.

어제는 친구가 들깨랑 방아 모종을 들고 와서 심고 보니 고국 냄새도 나는 듯 하여 감회가 새롭다. 부추랑 깻잎이 자라면 방아 몇 잎이랑 넣어 부쳐서 먹어야 겠다 싶으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방아는 깻잎과로서 독특한 향이 있어 때론 싫어 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지만 경상도 음식으로 추어탕엔 필이 들어가는 특이한 맛을 내는 허브 식물이다.

흙을 만지며 흙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의 일과가 사뭇 즐겁다.

 

채송화 봉선화 할미꽃 개망초 등 줄줄이 입에 익은 꽃들이 눈에 아롱거린다.

늘 이름이 생소하여 외우기를 몇 차례고 하여야 하는 이 나라 꽃들을 심어 놓고 눈이 아프도록 들어다 보고 있다.

어느날인가 꿈을 꾸나 싶은 황홀한 일이 눈 앞에서 보았는가 싶게 사라졌다. 늘 한번 보고 싶었던 그 벌새가 왔다 간 것이다.

사진으로서나 보았던 엄지 손가락 만 한 새를 정말 본 것이다. 얼마나 순간적으로 왔다가 날아가 버렸는지 아쉬움에 가슴이 다 설레었다.

그 후 다시 올 벌새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지고 정말 벌새는 다시 오고 또 왔다. 꽃밭에 그가 좋아하는 초롱 모양의 꽃인 허니써클이 피어 있었던 것이다. 입이 길어 초롱꽃 모양의 긴 초롱에서 꿀을 뽑아 먹는 모양이다. 그 작은 날개로 점처럼 한자리에서 바람개비처럼 날며 고개를 갸웃 거린다. 전진과 후퇴를 수 없이 하면서 꽃대궁 속을 하나하나 드나들며 꿀을 먹곤 핑 날아 갔다가 돌아와 있곤 하는 짓을 하루에도 수 차례 한다. 요즘은 벌새를 기다리고 보는 즐거움이 대단하다.

 

벌새는 칼새목 벌새과에 속하며 이 과는 대강 116속 350종을 포함한다.  새 중에 가장 작은 새로 금속광택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독특한 비상법으로 공중에 한 점으로 멈추어 호버링(정체비행)으로 날기도 하고 전후진 비행을 자유자재로 한다.  쿠바산의 콩벌새 Melisuga helenae는 부리와 꼬리를 제외한 몸 길이가 2.5cm밖에 안 되어 전체 조류 중 가장 작은 새다. 그러나 큰 벌새 Patagonia gigas를  비롯한 몇 종은 전체 길이가 20cm를 넘는 것도 있다. 역시 수컷이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벌새류는 날개 치는 속도가 소형종은 매초 70 80 회, 대형종은 매초 8 10회 날개를 친다고 한다. 입은 가늘고 길며 먹이는 꽃꿀 외에 꽃에 모인 곤충이나 거미이며 때론 수액을 빨아 먹는다.

둥지는 보통 지름 5 6cm의 그릇 모양으로 가지 위에 만든다. 한 배에 2개의 알을 낳으며 포란 기간은 14 19일이다. 장시간 사육은 어렵다 한다. 북쪽의 알라스카에서 남쪽의 푸에고 섬까지 분포하며 꽃꿀이 많은 공원이나 인가의 정원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종은 열대·아열대의 삼림에도 서식하고 있다. 특히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에 분포하는 것이 많다. 벌새라는 이름이 이쁘다. 정원에서 벌들이 콧노래를 부르듯 붕붕거리며 날고 있는 듯 하다고 하여 벌새(Humming Bird)라는 이름을 얻었다.

멕시코의 아즈텍 족은 자기들의 선조가 벌새로 변신한 멕시토라(주신)의 길 안내를 받아 이 땅에 왔다고 믿는 전설도 있다 한다. 지금도 그들은 사랑을 얻는 주술에 효과가 있다고 믿어 벌새를 귀중히 여긴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 차례 오는 벌새 덕분에 즐거움이 하나 더 는 셈이다.

처음에 내가 벌새를 보았을 때의 감격이란 말하기 힘든 황홀이었다. 나 왔어요 라는 신호라도 하듯 소리를 낸다. 날개를 부웅 떨면서 엄지 손가락 만 한 것이 어쩜 그렇게 앙징맞게 점처럼 떠 있는지 그냥 감격이다. 이젠 제법 한소끔 씩 꽃나무의 그 얇은 가지에 앉아 쉬기도 하고 친구를 데려 오기도 한다. 지금도 내 눈 앞에서 예쁜 짓을 하고 있다. 저 작은 날개로 날아 알라스카에서 록키산맥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기특하여 더욱 사랑스러운 마음이 된다. 우리집에 오는 벌새가 2.5cm라면 새의 종엔 하물며 키가 2.5m가 넘는 타조도 있지 않은가. 각각 종류 대로 씨를 만드신 하나님의 솜씨에 감동함이 더욱 새롭고도 새롭다. 캐나다에 살아서 느끼고 볼 수 있는 감동중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이제 저 꽃이 지고 나면 올해는 오지 않을 벌새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저리다.

내년에 라야 다시 볼 벌새를 나는 기다리며 그리워 하겠으나 벌새는 그러할 수 없을진데 아쉬움이 슬프다. 한번 스쳐가는 인연이 어찌 사람에게서만 있으랴. 내게는 만물이 다 그러한데 하물며 한 계절을 두고 어여뻐한 벌샌데 어쩌랴.

허전함을 달래느라 애궂은 그대에게로 화살을 보낸다. 변치 않고 곁에 있는 따뜻한 그대에게 이 마음을 전하며 오래오래 사랑하자 주술을 걸어 본다.

 

                                                                              04. 5. 11  발코니에서

 

                                                                               한국일보 04. 8.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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