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음새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 나는 뉴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게 된다. 얼마 전부터 그곳을 지나며 다리의 이음새를 세는 버릇이 생겼다. 어떨 때는 스물일곱, 어떨 때는 스물여덟이다. 옆에 앉은 아내는 스물여덟이라 한다. 한 곳의 이음새가 2m 간격으로 겹쳐져서 자동차가 빨리 지나갈 때는 그 마디가 하나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했다. 어릴 때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 가던 날 친구들과 세며 가던 덜컹거리는 철길의 이음새를 떠올리며 나의 무딘 감각을 나이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를 학자들은 “회상효과” 로 설명을 한다. 어떤 일은 거듭할수록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하기보다는 적절한 시간 간격을 유지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 속에 저장되어있는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삶의 시기를 길게 느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년기로부터 소년기까지의 기억은 생생하고 많은 내용이 저장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노인들도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일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해 내지만, 가장 분주하게 열심히 살았다고 여겨지는 40-50대 이후의 기억들은 바쁘기는 했지만,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일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한마디로 재미 없이 살기 때문에 그 시기가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청소년기 여자 친구와 처음으로 함께했던 생일 파티, 졸업 수학여행 등등… 어른이 되기 전까지의 기억들은 모두가 가슴 벅찬 일들로 수놓아져 있다. 이것들은 대부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장기기억정보처리 과정의 활성화로 인해 자주 떠올리게 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저런’일들이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간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일들은 내가 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일종의 함정이었다.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자신을 압박하고 그동안 즐기면서 간직했던 일들을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자기 합리화를 고집하다 보니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채 지내 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바로 삶의 마디를 만드는 일이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삶의 마디가 있을 때 그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대나무의 마디는 여느 나무와 달리 속이 비어있는 가느다란 나무가 한 뼘 정도의 두께로 하늘 높이 20~30m까지 자라게 한다. 마디가 촘촘하고 튼튼한 대나무는 여간해서 부러지지도 않고 아무리 심한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잘 견디어낸다. 그 이유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형성된 마디 때문이다.
그렇다. 성장과 마디에는 신비한 조화가 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던 일을 멈추고 매듭지어 줄 때가 필요하다. 그것이 마디의 역할을 한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나 일주일, 혹은 한 달 단위로 매듭짓고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런 인생의 마디가 많아질수록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무난히 버티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남은 삶의 길이를 계수해 본다. 그렇게 길지 못하다. 그래서 아이티의 지진처럼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어려운 때를 대비해 삶의 이음새인 인생의 마디를 더욱 굳게 보존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San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