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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경주 월정교

작성자밴마운틴|작성시간20.11.23|조회수616 목록 댓글 0

-38 만에 돌아보는 고국의 모습-

 

경주 월정교

   월정교는 신라 경주 시내에서 남촌을 건너는 개의 다리, 일정교(춘향교) 월정교 월성 서쪽에 위치했던 다리이다.

월정교는 삼국사기 경덕왕 19(760) 궁궐의 남쪽 문천 위에 춘양(春陽), 월정(月淨) 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에 전하는 다리로, 후에 춘양교는 일정교(日精橋), 월정교는 한자가 바뀐 월정교(月精橋) 이름이 바뀌었다.

다리가 각각 해와 달의 정령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바뀌어 강한 상징성을 띠게 셈이다.

 

   개의 다리 이제 월정교가 복원되었다. 본래 남아 있던 교각 사이에서 불에 목재편과 기와편이 수습되어 교각 위에 목제 누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었는데, 바로 누각이 달린 다리가 복원된 것이다.

다리 길이는 60.57m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복원 공사를 때부터 다리의 모습이 상당히 화려할 것으로 추측되었고, 완성된 모습이 어떨까 궁금했다.

 

    ‘원효대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 들어갔다’라고 전하는 경주의 월정 교지는 통일신라  시대 월정교 옛터이다.

이때 원효대사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리요?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만들겠노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무열왕은 노래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요석공주에게 원효대사를 보내도록 했다. 원효대사가 경주 남산으로부터 내려와 월정교를 지나다가 자신을 찾고 있는 신하를 보고는 다리에서 떨어져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빠지니, 신하는 월정교 바로 옆의 요석궁으로 원효대사를 인도하여 옷을 말리게 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머물게 되었다.

이때 얻은 아들이 바로 설총(薛聰)이고, 이후 원효대사는 자신을 소성거사(小性居士) 하였다.

또한 월정교는 김유신 일화에 나오는 김유신의 말이 김유신이 졸고 있던 동안 김유신이 평소에 다니던 기생집 지나갔던 일화에 나오는 다리이기도 하다.

 

   신라 최고의 로맨스로 남은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남은 월정교, 수많은 사람과 물류가 시내로, 서라벌 외곽으로 이동했던 번화하고 번잡했을 다리, 궁궐이었던 월성 양쪽으로 춘양교와 월정교가 남천을 가로지르며 밤낮을 화려했을 신라 때의 현장을 상상해 본다. 무려 1,300 전에 만들어진 다리이다.

더구나 월정교는 달의 정기를 상징하는데, 마침 달이 밤이다. 남천에 어린 월정교의 모습과 달리 어울려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물이고 어디까지가 물에 미친 그림지인지 헷갈린다. 신라 때도 그랬을까?

 

   교촌 마을 남천 가에 차를 세우고 월정교가 보이는 돌다리에서 보는 야경이 전체를 있어 좋고, 사진 촬영에도 좋다.

흔히 보기 어려운 누각 달린 다리가 복원되었으니, 문화재적 가치는 충실한 복원 여부를 떠나 하나의 명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보인다.

S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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