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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불로 피카소의 작품세계 [어린시절과 청년기]

작성자Nowon|작성시간21.02.23|조회수10,020 목록 댓글 0

파불로 피카소의 작품세계

-Pablo Ruizy Picasso [어린시절과 청년기]

Spanish painter, sculptor & printmaker born 1881- died 1973

 

어린시절과 청년기 (Childhood and Youth. 1881 ~ 1900)

 

1881년 (1세)

10월 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하였으며, 소묘를 가르치던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와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교사였고,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급학교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했고 졸업이 어려울 정도로 학습능력이 저조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1891년 (10세)

가족은 라코루냐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울 때부터 피카소는 이미 남달리 뛰어난 소묘 실력을 발휘했다. 아들의 비범한 재능에 놀란 아버지는 자신의 야망을 온통 아들에게 쏟으며 어린 피카소에게 모델을 구해주었다.

 

피카소 8세 그림

1894년 (13세)

아버지가 첫번째 개인전을 열도록 도와주었다.

 

1895년 (14세)

이해의 가을 피카소의 가족은 다시 바르셀로나로 이사했으며, 그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소묘를 가르치던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학교 규칙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시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미술학교에 다녔지만 결과는 같았다.

 

 

Pablo Picasso. The Barefoot Girl. 1895.

Oil on canvas. Musée Picasso, Paris, France.

 

 

Man in a Beret, 1895, 50.5 X 36cm, Museum Picasso, Barcelona,

 

피카소의 어릴시절(12세 ~14세)의 작품의 특징은 매일 사실적이고 묵직하다. '베래모를 쓴 남자"는 어린나이에 그린 그림 같지 않게 아주 성숙함이 느겨진다. 화가였던 피카소의 아버지는 가 13살 때 아들의 그림이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그림을 접었다.

 

이 그림은 Ruiz"락도 싸인되어 있는데 하였는데 피카소는 처음엔 아버지의 성 '루이즈'를 쓰다가, 한 동안은 '루이즈 피카소' 를 , 1901년 부터는 어머니의 성인 '피카소' 로 그림에 남기는 싸인를 바꾼다. 일설에 의하면 성공하지 못한 화가였던 아버지와 차별화를 두려고 어머니의 성를 따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1896년 1897년, 어린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규 미술학교만 집어 넣으면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 나와 자신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다..

 

Pablo Picasso. First Communion. 1895/96.

Oil on canvas. Museo Picasso, Barcelona, Spain.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Self Portrait. 1896, 32.7 X23.6cm,

Museum Picasso, Barcelona, 15세에 그린 자화상

1881년에 태어난 피카소는, 다작의 시기, 혹은 초기라고 여기기 쉬운 '청색시대'만 해도, 피카소에게는 20대의 일이다. 14살에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입학하였고 16세에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가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만 하여도 그의 미술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다. 5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을 뿐 아니라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다면 15년동안 그림을 그린 후의 작업이 '청색시대'라고 할 수 있다.

 

 

피카소 여동생 (13 세때의 그림)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Portrait of Artist' Mother. 1896.(13살 때)

Pastel on Paper. Museo Picasso Barcelona, Spain

 

 

피카소의 부친 (1896)

 

15세의 피카소가 미술교사이며 아버지인 호세 루이지 블라스코(Jose Ruiz Blasco)를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는 아버지에게서 청색을 느꼈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영향으로 청색기의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First Communion, 1895-96, 22.5 X 16.5cm, oil on canvas, Museo Picasso, Barcelona

 

5년전 얼굴에 비해 이제는 완전히 청년 같이 보이는 피카소, 피카소는1900년 파리박람회가 있던 이 해 친구와 함께 꿈을 품고 파리로 간다. 바르셀로나에서 신동소리깨나 들었던 피카소는 파리로 가 처음에는 인정도 못 받고 돈도 떨어져 고생깨나 한다.

 

게다가 바르셀로나를 함께 떠나 파리에서 룸메이트 였던 절친한 친구 Casagemasrk 가 1 년후 실연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를 떠난다. 이충격으로 인해 우중층하고 멜랑코리한 청색시대(Bule Period)가 시작된다

 

1897년 (16세)

가을, 피카소는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왕립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의 교수법이 따분하다고 느낀 피카소는 카페, 사창가 등을 배회하며, 그곳의 생활을 그리는 데 더 열중했으며, 프라도 미술관을 자주 찾아가 스페인 회화의 진수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벨라스케스가 최고이며, 엘 그레코는 위대한 몇몇 대가들 가운데 속하는 반면, 무리요는 별로 감동을 주지 않는다"라고 썼다. 이곳에서 감상한 작품들은 평생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했다. 그의 아버지를 모델로 그린 〈과학과 자선, Science and Charity〉이 마드리드 미술 전시회에서 가작 입선하자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Science and Charity. 1897(16살 때), 197 X 250cm, Museum Picasso, Barcelona, Spain

죽어가는 여자가 침상에 누워있고 의자에 않은 의사는 시계를 보며 환자의 맥박을 체크하고 있다. 간호하는 수녀는 환자에게 티(혹은 약)을 권하고, 아이는 걱정스럽게 엄마를 내려다 보고 있다. 환자를 중심으로 양쪽의 인물들이 들어선 구도에는 허튼 공간이 없다. 파카소가 10년후 '아비농의 처녀들'을 비롯한 입체파 (큐비즘)으로 변신하는 것이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이 그림은 묵직하고 클래식하다.

 

이시기 피카소는 아버지를 즐겨 그렸는데 여기에 의사롤 앉아 있는 사람도 피카소의 아버지이다. 이그림도 말라가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그림이다.

 

19세기 말, 과학화되어 가는 의학에서 의사의 이미지의 변환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그림의 무대는 흰 벽으로 둘러 싸여 밝은 느낌을 주는 병실이다. 침대에 환자가 누워 있는데 환자는 젊은 여인이지만 수척한데다가 창백한 얼굴에 병색이 짙어 얼굴만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환자의 병상 옆에 앉은 의사는 지금 시계를 들고 환자의 맥박수를 측정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서 시계는 의학의 과학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며 이 덕분에 의사는 냉정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 더구나 지금 의사의 시선은 시계의 초침에 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의사는 환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열심인 것이다. 마치 환자에게 손 한 번 잡아 주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 주는 것보다는 환자의 검사 결과를 파악하는데 더 열심인 요즈음의 의사와도 닮았다.

 

 

Matador Luis Miguel Dominguin. 1897(16살 때). Pencil on paper

 

1898년 (17세)

봄, 피카소는 병에 걸려 바르셀로나에서 사귄 마누엘 파야레스와 함께 카탈루냐 지방의 오르타 데에브로에 가서 1년 내내 휴양을 하며 보냈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며, 이 무렵부터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르누아르, H.툴루즈 로트레크, E.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이곳에서 묘사한 고야의 작품들, 즉 〈투우사 페페 이요의 초상, Portrait of the Bulfighter Pepe Illo〉과 한 뚜쟁이가 젊은 여인의 스타킹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묘 〈됐어, Bien tirada esta〉에 나오는 인물들이 피카소의 후기 작품에도 등장한다.

 

1899년 (18세)

18세가 되던 해의 초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그는 미술학교의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또한 어머니의 성을 더 선호하여 작품에 종종 P.R. Picasso라고 서명했다.

 

Lola, Picasso's Sister. 1899.

1900년 (19세)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였고, 파리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미술의 천재가 프랑스의 현대 조형예술 분야에 혁명을 일으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 파리 만국박람회 회고전에 출품했다.

 

 

A Spanish Couple in front of an Inn. 1900. Pastel on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y Picasso

피카소에게 열정을 준 여인들

생애: 1881.10.25~1973.4.8 국적: 스페인

대표작품: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전쟁과 평화> <한국전쟁>

 

큐비즘, 청색시대,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 굳이 이름이 아니고서라도 그를 대표하는 상징어.

입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파블로 피카소이다. 그는 1881년 스페인에서 미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그리기엔 재능이 있었지만, 읽기와 쓰기는 더뎌, 졸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미술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규칙과 규율에 적응을 하지 못한 파블로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다 결국 독학을 하게 되된다.

 

어린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선배화가들은 로트렉과 뭉크였다. 그들의 화풍을 습득하려 노력하던 피카소는 열 아홉되던 해 파리를 방문해 그곳에 매료되어 거처를 옮기게 된다. 몽마르뜨에서 생활하며 고갱과 고흐 모네 피사로의 그림을 접하며 감흥을 받게 되며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였다.

 

화려한 대도시의 이면에 가난, 빈곤을 함께 목격하며 자신도 추위와 가난 속에 생활하던 그는 실연의 아픔으로 자살한 친구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절망과 충격 속에 오로지 청색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이 시기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색시대’이다. 절망의 색으로 사회 소외계층을 주로 그리며 보내던 그의 삶 속으로 어느 날 환한 빛의 아름다운 연인, 페르낭드가 찾아온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며 그의 작품들은 화사한 장밋빛으로 색들을 되찾게 된다.

 

그 후 1907년, 파리 트로카데로에 있는 인류사 박물관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조각품과 가면들을 본 피카소는 그 마술적인 분위기, 강력한 상징성, 원시적인 감각에 깊은 감명을 받고 드디어 큐비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게 된다.

 

친한 친구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고수하면서, 이후 <게르니카>, <전쟁과 평화>같은 작품들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스페인 전쟁과 2차세계대전등을 겪었던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무용함을 화폭에 담기도 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기도 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남겨둔 채 아흔 두살의 나이로 세상에서의 긴 여정을 끝냈다. 파블로 피카소는 후대 화가들에게 “자연의 모방”이라는 화가의 제한적 역할에서 ‘독자적 시각’이란 자유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 파불로 피카소의 작품세계 Ⅰ - Pablo Picasso 어린시절과 청년기[1881~1900]|작성자 ohyh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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