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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역사 탐방

奇巖怪石·巖峯(3) 一字山-淸溪山-冠岳山

작성자孤 山|작성시간22.08.14|조회수96 목록 댓글 1

奇巖怪石·巖峯(3) 一字山-淸溪山-冠岳山

 

서울-河南 一字山

(01) 江東區 遁村洞 一字山 ‘둔굴’

     遁村 李集(1327~1387)은 高麗末의 學者·文臣으로 恭愍王 17년(1368) 辛旽의 失政을 彈劾했다가 迫害를 받아

     이를 避해 이곳 둔굴에서 一時 隱居했으며, 그 苦難을 子孫後世까지 잊지 않게 하기 위해 雅號를 ‘遁村’으로

     바꾸었다. 江東區 遁村洞의 洞名은 李集의 雅號 ‘遁村’에서 비롯되었다. (*穡: 거둘 색 *旽: 밝을 돈)

 

서울-京畿 淸溪山

(02) 淸溪山 돌문(石門)바위

(03) 血泣재 너머에 있는 魔王窟

     高麗末 忠臣 松山 趙狷이 고려가 망하자 頭流山(智異山)으로 들어가 이름을 ‘胤’을 ‘狷’으로 바꾸었으며,

     李太祖가 公의 절개를 찬양하고, 才能을 아껴 戶曹典書(判書)에 임명했으나 辭讓하고, 淸溪山 淸溪寺로

     居處를 옮기고, 頂上인 望京臺에 자주 올라 松都(開城)를 바라보며 슬피 울었는데, 望京臺로 오르는 길가의

     魔王窟샘에서 목을 추겼다고 한다. (*狷: 성급할 견)

(04) 허가(許家)바위 -서울시기념물 제10호 -서울 江西區 加陽洞

     허가바위는 가로 6m, 세로 2m, 길이 5m이며, 일명 ‘공암바위’라고도 한다. 옛날 石器時代사람들이 조개와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으리라고 추측되는 강가에 있는 天然바위동굴이나 올림픽大路가 건설되면서 陸地로

     변했다. 이곳은 陽川 許氏의 始祖 許宣文이 태어났다는 說話가 있어, 陽川 許氏의 發祥地라고 하며 ‘

     許家바위’라고 한다.

 

 

(바) 서울·京畿 冠岳山

(01) 戀主臺 -경기도기념물 제20호

   戀主臺는 冠岳山 頂上(△632m)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깎아지른 바위絶壁위에

   약간의 石築을 쌓고 작은 臺를 구축해 집터를 만든 곳이다. 戀主臺는 太宗이 셋째王子

   忠寧大君(훗날 世宗)을 世子로 정하려 하자 두 兄은 宮을 떠나 여러 곳을 流浪하다가

   讓寧大君이 이곳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詩를 지었으며, 孝寧大君은 스님이 되어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戀主臺위에는 작은 佛堂 應眞殿이 있다.

(02) 冠岳山頂上의 氣象觀測레이더옆에 있는 횃불바위(출입금지구역)

(03) 登攀可能한 冠岳山 頂上標石, △629m로 표기했다. (*攀: 휘여잡을 반)

(04) 冠岳門바위

(05) 冠岳門附近의 奇巖

(06) 韓半島地圖바위

(07) 舍堂稜線의 거북바위

(08) 冠岳山 男根石

(09) 두꺼비바위

(10) 새 바위

(11) 악어(鰐魚)바위 (*鰐: 악어 악)

(12) 冠岳門 남쪽의 奇巖

     들짐승이 엎드려 있는 모습 같다.

(13) 冠岳山 主稜線의 奇巖

(14) 冠岳山 主稜線의 奇巖

(15) 冠岳山 主稜線의 奇巖

(16) 冠岳山 南東稜의 奇巖

(17) 冠岳山 六峰稜線의 第一峰

(18) 冠岳山 八峰稜線의 奇巖

(19) 冠岳山 八峰稜線의 奇巖

(20) 冠岳山의 奇巖

(21) 冠岳山의 奇巖

     雪嶽山 女深瀑布와 비슷하게 생겼다. (*深: 깊을 심)

(22) 冠岳山의 奇巖

(23) 冠岳山의 奇巖

(24) 冠岳山의 奇巖

 

 

                             -  奇巖怪石·巖峯(4) (사) 京畿道-仁川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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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야포 | 작성시간 22.08.15 고산 덕분에 추억을 되새기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네요 잘 보고갑니다 아직은 건재하니 기쁘고요 우리 모두 갈때 가드라도 모두건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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