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浚 博物館과 龜巖公園(2-2); 許浚 博物館-龜巖公園
(51) 許浚 肖像畵. 1980년대, 한의학박사 석영 최광수 작
(52) 약장
(53) 약연(藥碾). 약재를 가루로 빻거나 즙을 내는 의료기구. (*碾: 맷돌 연)
(54) 약 맷돌과 유발(乳鉢) (*鉢: 바리때 발)
=유발: 약재를 가루로 빻는데 쓰는 사발모양의 의료기구
(55) 약 맷돌[藥磨石]
(56) 약 절구[藥臼]
목재 약절구-19세기 중국 淸 代 약절구-도자기 약절구[白磁 靑華 藥臼], 日帝 强占期-
놋쇠 약절구, 20세기 (왼쪽부터)
(57) 약연-약절구
약연, 20세기 초-돌 약연[石材 藥碾], 조선시대-목재 약절구, 20세기
(58) 돌 약연, 19세기
(59) 곱돌 약탕기(조선 18세기)-돌 약화로(조선 19세기)-청동 약수저(고려 12~13세기)
(60) 조선시대 곱돌 약탕기-놋쇠 약탕관(뒤)
(61) 돌 약솥-곱돌 약탕기-곱돌 약화로와 곱돌 약탕관, 조선시대
(62) 백자청화 수자문 약사발- 백자 강판-백자청화 수복자문발
=白磁靑華 壽字文 藥沙鉢: 사발 안쪽 바닥에 長壽를 뜻하는 ‘壽’字가 쓰여 있다. 조선시대.
=白磁 薑板: 9줄로 홈을 파 과실 류를 汁으로 내던 기구, 20세기(*薑: 생강 강)
=白磁靑華 壽福字文鉢: 표면에 菊花 무늬와 ‘壽’ ‘福’글자가 새겨있으며 구면부는 격자무늬,
안쪽 바닥에는 ‘壽’字를 靑華로 그렸다. 19세기.
(63) 毒∙劇 藥欌
(64) 약저울. 19세기 중국 淸 代
(65) 휴대용 약저울과 추
(66) 약 작두-약틀-작두와 약틀
(67) 동인(銅人)
온 몸에 鍼穴을 뚫어 鍼術을 연습할 때 쓰는 구리로 만든 사람의 형상.
(68) 침통(針筒). 조선 19세기
(69) 침통. 18~19세기
(70) 목제 약연(木製 藥碾). 조선 19세기
(71) 지승 소호(紙繩 小壺). 19세기
기름 먹인 종이를 꼬아 만든 작은 항아리로 여러 차례 옻칠을 했으며 솜씨가 뛰어난 秀作이다.
(72) 경옥고 단지-곱돌약탕기
(73) 약 절구. 20세기
(74) 청동초두(靑銅 鐎斗).
발이 세 개 달려있고 자루가 달린 청동제 작은 냄비. (*鐎: 초두 초)
(75) 草書 文 사발과 약 소반(藥 小盤)
屋上庭園과 藥草園
(76) 옥상정원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高陽 대덕산-蘭芝公園과 加陽大橋
(77) 섬 초롱꽃. 잎, 꽃은 解産촉진제, 咽喉炎, 頭痛의 藥材.
(78) 은방울꽃. 잎은 利尿劑, 강심, 浮腫, 타박상에 효과
(79) 까치수염. 全草, 뿌리는 관절염, 타박상, 인후염에 효과
* 全草: 잎, 줄기, 꽃, 뿌리 따위를 가진 옹근 풀 포기.
(80) 기린초. 잎과 뿌리는 폐결핵, 심장병, 타박상, 고혈압
(81) 藥草園
약초원에는 <동의보감>에 실린 100여종의 약초를 심어 관람객들이 약초의 특성을
이해하고 自然學習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다.
(82) 은쑥(아지랑이꽃)
(83) 백리향(百里香), 全草는 기관지염, 진경, 해열, 치통
*진경(鎭痙): 경련을 가라앉힘.
*박물관의 안내문은 韓醫學에 기초지식이 없는 나 같은 ‘문외한’이 보면 알기 어렵게
표기했는데 ‘진경’이라고만 표기되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지금까지 사진에 올린 설명문 대부분은 ‘門外漢’이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설명문을
만드느라고 여러 날 걸렸다.
(84) 人蔘. 약효; 신체허약, 피로, 면역증강. 사용부위; 뿌리
(85) 당귀(當歸). 약효; 보혈작용, 신체허약, 빈혈. 사용부위; 뿌리
(86) 꽃양귀비. 全草는 진통, 마비, 위장병
(87) 참좁쌀풀. 잎은 驅蟲劑
(88) 한련(旱蓮). *안내판에 꽃 이름만 있음.
(89) 톱풀. 잎, 줄기는 관절염, 타박상
(90) 해당화(海棠花). 뿌리는 토혈, 치통, 관절염.
*토혈(吐血): 消化管 내에 많은 量의 출혈이 일어나 피를 토하는 일.
(91) 大韓韓醫師協會
龜巖(近隣)公園
구암공원은 <東醫寶鑑>의 저자 龜巖 許浚의 출생지인 江西區 加陽洞에 있는 許浚 記念公園으로
‘허준공원’이라고도 하며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의 <許浚 銅像>과 許家바위(서울기념물 제11호),
廣州바위, 호수, 정자, 놀이시설 등이 있다.
이 일대 원래의 地名인 齊次巴衣(구멍바위, 동굴바위라는 뜻)의 由來地이기도 하며, 陽川 許氏의
始祖 許宣文이 이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양천 허씨의 發祥地로도 알려져 있다.
호수는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면서 漢江의 일부분이 잘려 나와 만들어진 것으로 호수 안에
옛날 큰 홍수 때 경기도 廣州에서 떠내려왔다는 광주바위가 있다.
(92) 구암공원(龜巖公園)
(93) 구암공원 호수, 호수 너머 塔山초등학교가 보인다.
원래는 漢江邊이었으나 1982~1986년 올림픽대로를 건설할 때 한강 일부가 메워져
지금의 구암공원 연못이 생겼다.
(94) 廣州바위
예전에는 한강에 있던 바위섬이었으며, 塔山 봉우리 옆에 있었으나 올림픽대로 건설로
한강 일부가 메워져 구암공원 연못 안에 자리하게 되었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 경기도 廣州에서 떠내려 온 바위라고 ‘광주바위’라 부른다는 전설이 있다.
*홍수 때 없어진 바위를 찾은 廣州官衙에서는 租稅를 바치라고 하자 양천 고을에서는
그 바위에서 생산되는 싸리나무로 해마다 비 세 자루를 만들어 보내 주다가
“이 바위는 소용이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하자 광주고을에서는 이 바위를 가져갈 수 없어
양천고을에 빼앗기고 말았다고 한다.
(95) 醫聖 許浚 銅像. 1993년 12월 社團法人 醫聖 許浚 紀念事業會 건립.
-조각 金弘中 -글 孫弘烈 -글씨 金聖煥
孔岩나루公園
1993년에 개원한 近隣공원으로 구암공원과 공암나루공원의 사잇길이 공암나룻길이라 불렀다고
‘공암나루공원’이라고 하며, 길게 뻗어 있는 공원에는 1.5km가 넘는 탄성고무바닥 산책로가
있어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96) 공암나루터[孔巖津址]
陽川과 幸州를 잇던 나루터로 일명 ‘北浦나루’라고 했으며, 나루 중간쯤에 구멍이 뚫려있는
바위가 있어 구멍바위 즉 ‘孔巖’이라는 나루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97) 許家바위 -서울기념물 제11호-
강서구 加陽洞 塔山 아래 절벽에 있는 자색을 띤 구멍 뚫린 바위로, 陽川 許氏의 始祖
許宣文이 이 바위에서 태어났다는 說話가 전해오며, 허가바위굴, 孔巖이라고도 한다.
許宣文은 고려 太祖가 後百濟 甄萱을 정벌하러 가면서 공암나루를 통과할 때 渡江의 편의와
軍糧米 제공 등으로 공을 세워 三韓功臣 陽川村主(孔巖村主)로 삼았다고 한다.
(*甄: 질그릇 견 *萱: 원추리 훤)
이 바위에는 장정 20여 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 壬辰倭亂, 丙子胡亂,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신했다고 한다.
許浚을 비롯하여 <洪吉童傳>의 저자 許筠, 栗谷의 母親이며 여류시인 許蘭雪軒,
世祖 때 ‘李施愛의 亂’을 평정한 北兵使 許琮 등이 陽川 許氏라고 한다. (*琮: 옥홀 종)
(98) <孔巖바위> 표석
서울시文化財 제11호 / 陽川 許氏 始祖 高麗開國功臣 / 孔巖村主 遺跡地
(99) 동양의학의 집대성 <동의보감>
[하늘이 내린 명의 허준은 이곳 허가바위에서 당시의 의학을 집대성하여 <동의보감>을
저술했다. 몸 안팎의 의학적 기능과 질병의 종류 및 치료법을 정리한 <동의보감>은
세계 최초로 예방의학을 강조하였으며, 동아시아 의학발달에 지대한 공헌 하였다.]
(100) 세계인이 주목하는 <동의보감>, 허준박물관 앞 許浚路 교차로에 있다.
[우리나라 의학을 ‘동의(東醫)’라고 칭하며 독자적인 전통을 강조한 허준의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의서(醫書)이다.
또 세계최초로 예방의학과 국가적 보건정책에 대한 관념을 구축했다.
<동의보감>은 의학적 ∙사회적 ∙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9월 보건의학서로는
최초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