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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역사 탐방

쇠, 鐵, 鋼 - 鐵의 文化史 (5-2)

작성자孤 山|작성시간17.11.01|조회수383 목록 댓글 1

쇠, 鐵, 鋼 - 鐵의 文化史 (5-2)



(44) 鋼鐵의 時代


(45) 다마하가네[玉鋼]  -日本 –日本美術刀劍保存協會



일본도[日本刀]와 다마하가네[玉鋼]

다마하가네[玉鋼]는 日本刀를 만드는 특별한 鋼鐵로, 日本의 전통적인 철 생산기술인

 ‘다타라(多多良)’ 工程으로만 제작된다.

酸素 등의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어 柔軟하고 쉽게 늘어나는데, 日本刀의 유연함은 이런 성질에서

비롯된다.

전시 중인 다마하가네[玉鋼]는 다타라 전통기술 傳受者인 무라게(村下)가 만든 것 중에서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이다.



                

           (46) 일본도(와키자시)[日本刀]  -17~18세기, 日本 –국립중앙박물관

     *와키자시(脇差): 무로마치(室町)時代後期~에도(江戶)時代(1392~1868)에

            사용된 打刀의 일종으로, 외견상으로는 타도와 다를 바가 없으며

            칼날의 길이(30~60cm)에 따라 구별했다.


       *刀劍: 상대방을 베거나 찔러서 피해를 입히는 武器이다.

       =刀: 곡선의 형태로 한 쪽에만 날이 있어 베는 것이 주용도이다.

       =劍: 직선의 형태로 양쪽에 날이 있어 찌르는 것이 주용도이다.


                  

             (47) 쇠도끼[鐵斧]  -야요이시대[彌生時代] –후쿠오카현 히에 유적

                                        –후쿠오카시[福岡市] 매장문화센터

      日本 후쿠오카현(福岡縣) 히에(比惠)유적에서 발굴된 이 도끼는

      쇠도끼를 鋼鐵化한 대표적인 事例이다.

      히에 유적의 쇠도끼를 도끼 날에서 자루방향으로 절단하여 斷面을

      관찰한 결과 2000년이 지났어도 도끼 날 부분에 灰白色으로 빛나는

      鑄鐵이 남아있었으며, 주철의 가장자리를 鋼鐵이 감싸고 있었다.

      주철로 만든 쇠도끼의 표면을 熱處理하여 강철로 코팅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


(48) 쇠도끼[鐵斧](再現品)(왼쪽)-신풍유적의 쇠도끼[新豊遺蹟 出土 鐵斧](오른쪽)

=쇠도끼[鐵斧](再現品)(왼쪽)  -야요이[彌生]시대 –후쿠오카현[福岡縣] 히에[比惠] 유적

                                          –후쿠오카시 매장문화센터

=신풍유적의 쇠도끼[新豊遺蹟 出土 鐵斧](오른쪽)  -馬韓 -完州 新豊 –국립전주박물관

            完州 新豊遺蹟에서 나온 쇠도끼의 날 부분은 日本 히에(比惠)유적의 쇠도끼 날 부분과

            매우 類似하다.

            도끼 날이 날카로워 儀禮用이 아닌 실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날 표면이 살짝

            벗겨진 흔적도 있다.

            신풍유적 쇠도끼를 절단하여 斷面을 관찰할 수는 없으나 히에(比惠)유적의 쇠도끼처럼

            날 부분을 강철로 만들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49) 강철로 된 고리자루 큰칼[鋼鐵製 還頭大刀]  

                                                   -百濟 -烏山 水淸洞 –국립중앙박물관

       烏山 水淸洞 무덤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칼은 4세기 百濟의 製鋼技術을

       잘 보여주고 있다.

       金屬學的으로 분석한 결과 철광석에서 추출한 鑄鐵을 다시 녹여 鋼鐵로

       만드는 製鋼工程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칼의 工程을 이해하면 강철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三國時代 匠人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50) 鐵의 숲  -1996년, 최기석(1962년!)  -국립현대미술관

 25개의 鐵 構造物을 배열한 작품으로 숲 속의 빽빽한 나무들의 형상을 鐵을 사용하여

 강력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自然이라는 素材를 産業革命 이후 都市化의 상징인 鐵로 形象化하였다.

발전하는 物質文明 속에서 自然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51) 産業化와 鐵의 숲

 

 産業革命과 鐵

지금과 같은 現代文明은 18세기 英國의 産業革命을 土臺로 하고 있다.

산업혁명은 農業中心의 사회에서 機械化된 工業社會로 一大 變化시켰으며,

世界秩序를 뒤흔들었다.

産業革命은 鋼鐵을 싸게 많이 만들 수 있었던 技術力이 바탕이 되었다.


(52) 産業革命으로 제작된 최초의 鐵 構造物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鐵橋, 아이언 브릿지-철제 구조물, 크리스탈 팰리스-戰艦 네메시스號-蒸氣機關, 트레비式

트레인

=鐵橋, 아이언 브릿지(Iron Bridge)

         윌리엄 웨스트우드가 그린 영국의 아이언 브릿지이다.

 이 교량은 1779년에 완공한 세계 최초의 鐵橋로 높이 12.2m, 아치의 너비 30.6m이다.

토마스 파놀드 프리처드가 설계하고 에이브라함 다비 3세가 건립하였다.

=鐵製 構造物,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

 1851년 제1회 世界萬國博覽會가 열린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Hyde Park)

 Crystal Palace의 揷畵이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J. 팩스턴이 설계한 최초의 대형 鐵製構造物이다.

=戰艦 네메시스(Nemesis)號

 1841년 영국의 鐵製 蒸氣船 네메시스號와 淸나라 木製戰艦의 海戰을 그린 삽화이다.

 이 전쟁은 後에 阿片戰爭으로 부르게 되고 東洋과 西洋의 관계가 뒤바뀌는 契機가 되었다.

1839년에 건조된 네메시스호는 세계 최초의 鐵製戰艦이었다.

=蒸氣機關 트레비(Trevithick)式 트레인

 1804년 英國에서 R. 트레비식이 鐵製 레일 위를 달리는 蒸氣機關車 실험에 성공하였다.

이 그림은 1809년 英國 런던 블름즈버리 유스턴 광장에서 試運轉하는 트레비식 기관차이다.


(53) 製鐵技術 擴散經路


(54) 鐵의 文化史(3-1)


(55) 鐵의 文化史(3-2)


(56) 鐵의 文化史(3-3)

 

2부. 鐵, 權力을 낳다

韓半島에 鐵器가 등장한 후 鐵이 본격적으로 이용되면서 나타난 모습을 살펴본다.

철기의 등장은 생산력의 증가로 이어지고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철에 대한 支配者의 욕망은

커져, 철의 소유가 권력의 상징이 되기도 하며, 철의 象徵性은 古代에서 朝鮮時代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띠며 지속된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다툼은 전쟁이 발발하고, 鐵이 만들어낸 생산력 증가가 ‘成長’을

의미한다면, 권력이 만들어낸 전쟁은 ‘破壞’를 의미한다. 철이 낳은 권력으로 인해 나타나는

모순된 현상을 만들어내 사람들의 모습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57) 生産과 權力


(58) 쇠낫[鐵鎌](왼쪽)-돌낫과 쇠낫[石鎌∙鐵鎌](오른쪽) (*鎌: 낫 겸)

=쇠낫[鐵鎌]  -弁韓 -昌原 茶戶里 –국립중앙박물관(再現品)

=돌낫과 쇠낫[石鎌∙鐵鎌](위에서부터)

1. 쇠낫[鐵鎌]  -高句麗 -峨嵯山 紅蓮峰 2堡壘 –국립중앙박물관

2. 쇠낫[鐵鎌]  -馬韓 -加平 大成里 –국립중앙박물관

3. 쇠낫[鐵鎌]  -辰韓 -大邱 八達洞  -국립대구박물관

4. 돌낫[石鎌]  -靑銅期 -山淸 召南里 –국립진주박물관


               

          (59) 다호리 유적의 철기[茶戶里遺蹟 出土鐵器], 쇠도끼[鐵斧](왼쪽)

                 -쇠도끼[鐵斧]  -原三國時代 –昌原 茶戶里 –국립중앙박물관(再現品)


    *近來의 韓國史 時代區分

   =原三國時代: 西曆紀元 전후부터 AD 300년경까지의 시기.

   =三國時代: 高句麗·百濟·新羅가 4세기에서 7세기 중엽에 걸쳐 韓半島를

 3分하여 세력을 다투던 시대. 

   =南北國時代: 統一新羅와 渤海가 竝存한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의

    시기.


(60) 쇠도끼의 생산력[鐵斧生産力], 돌도끼[石斧](오른쪽 위)-돌도끼[石斧](오른쪽 아래)

              -주조로 만든 쇠도끼[鑄造 鐵斧](왼쪽)

쇠도끼는 돌도끼와 비교하여 얼마나 效率的이었을까? 윌리엄 타운센드는 직경 20cm의

나무를 베는 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시간을 비교한 결과 돌도끼는 평균 12분,

쇠도끼는 평균 3분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쇠도끼는 나무를 베어낸 후 날을 세우기 위해 가는[硏磨] 횟수가 돌도끼보다 훨씬

적어 4배 이상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돌도끼[石斧](오른쪽 위) -靑銅器時代 –咸北 雄基 松坪洞–국립중앙박물관

=돌도끼[石斧](오른쪽 아래) -靑銅器時代 –雄基 松坪洞 –국립중앙박물관

=주조로 만든 쇠도끼[鑄造 鐵斧](왼쪽) -馬韓 –加平 大成里 –국립중앙박물관


(61) 여러 종류의 쇠도끼[各種 鐵斧]

도끼모양의 철제 도구를 쇠도끼[鐵斧]라고 부르고 있으나 현재 學界에서는 날이 한쪽 또는

양쪽에 있는가에 따라 도끼나 자귀, 괭이와 같은 용도를 추측하고 있다.

        실제 발견되는 古代의 쇠도끼는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쇠도끼의 多樣性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古代社會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  -馬韓  -加平 大成里 –국립중앙박물관

(2)  -三國時代 -忠州山城 –국립청주박물관

(3)  -百濟 –烏山 水淸洞 –국립중앙박물관


(62) 여러 종류의 쇠도끼

(4)  –辰韓 –大邱 八達洞  –국립대구박물관

(5)  -三國時代 –釜山 福泉洞  –부산대학교박물관


(63) 따비와 삽날[鐵耜]   (*耜: 보습 사)

따비와 삽날은 대표적인 農器具이다. 따비는 農耕文 靑銅器에 기록으로 남은 첫 농기구로

주목 받았으며, 鐵器로 제작된 우리나라 고유의 농기구로 자리잡았다.

        鐵로 만든 삽날은 나무로 만든 삽 머리 위에 끼워 사용하였다.

주로 땅을 파거나 뒤집는 起耕具로 점점 크기가 커지면서 가래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다.

       삽날은 쇠스랑과 함께 농업기술의 발전을 알려주는 尺度가 된다.

(1) 따비[鐵耜]  -弁韓 –昌原 茶戶里 –국립중앙박물관(재현품)

(2) 따비[鐵耜]  -辰韓 –大邱 八達洞 –국립중앙박물관

(3) 삽날[鐵鍤]  -馬韓 –金浦 雲陽洞 –국립중앙박물관 (*鍤: 가래 삽)

(4) 삽날[鐵鍤]  -馬韓 –加平 大成里 –국립중앙박물관


*따비: 풀뿌리를 뽑거나 밭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로 쟁기보다 조금 작고 보습이 좁게

         생겼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에서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農耕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64) 象徵性과 權力者


(65) 辰韓과 弁韓의 鐵器, 팔달동 유적철기   -辰韓 –大邱 八達洞 –국립대구박물관


(66) 辰韓과 弁韓의 鐵器, 팔달동 유적철기   -辰韓 –大邱 八達洞 –국립대구박물관


(67) 고조선의 철기[古朝鮮 鐵器], 용연동 유적의 철기[渭原 龍淵洞 鐵器]

                          -初期 鐵器時代 -平北 渭原 龍淵洞 –국립중앙박물관

平安北道 渭原郡 龍淵洞에서 출토된 鐵器는 중국 燕 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며, 韓半島

여러 지역의 初期 鐵器文化와 관계가 깊다.

그 중 鑄物로 녹여 만든 農∙工具는 古朝鮮과 三韓의 鐵器文化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示唆點을 던져준다.

최근 學界에서는 龍淵洞 遺蹟鐵器를 燕 나라의 영향을 받은 랴오닝(遼寧)지역의 독자적인

철기 또는 古朝鮮의 鐵器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68) 마한의 철기[馬韓 鐵器]

三韓 중 馬韓이 가장 먼저 燕 나라의 鐵器를 받아드렸다. 馬韓의 철기는 대부분 鑄物로 만든

쇠도끼, 쇠낫과 같은 農∙工具였다.

마한 사람들은 철기를 귀하게 여겨 지배자들의 무덤에도 넣었으나 스스로 철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馬韓은 이후에도 韓半島 北部地域에 있는 古朝鮮과 樂浪郡 鐵器文化의 영향을 받았으나

독자적인 찰기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1) 갈동 유적의 철기  -馬韓 –完州 葛洞 –國立全州博物館

(2) 신풍 유적의 철기  -馬韓 –完州 新豊 –국립전주박물관

(3) 남양리 유적의 철기  -馬韓 –長水 南陽里 –국립전주박물관


(69) 진한과 변한의 철기[辰韓∙弁韓 鐵器]

辰韓과 弁韓은 馬韓보다 늦게 鐵器文化를 받아들였으나, 일찍부터 스스로 鐵器를 만들려고

시도하여 독자적인 형태의 철기문화를 발전시켰다.

외날 따비, 鐵製短劍, 측면에 隆起線이 있는 쇠도끼 등은 辰韓∙弁韓 圈域에서 보이는

특징들이다.

辰韓∙弁韓圈域의 철기문화는 伽倻, 新羅의 철기문화로 이어져 우리나라 고유의 철기문화를

이끌어가는 土臺가 되었다.

(3) 임당동 유적의 철기  -辰韓 –慶山 林堂洞 –국립대구박물관

(4) 다호리 유적이 철기  -馬韓 –昌原 茶戶里 –국립중앙박물관


(70) 象徵의 持續


(71)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李景奭 几杖 및 賜几杖 宴會圖 畵帖],

사궤장과 살포[賜几杖∙鐵鏟] (*几: 안석 궤 *鏟: 대패 산)

궤장을 하사하는 연회와 耆老會[李相國 几杖 宴帖] -1623년 –국립중앙박물관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李景奭 几杖 및 賜几杖 宴會圖 畵帖)

        -보물 제930호(1987.12.26) -조선시대 목공예 2종 6점

    조선시대에 70세가 넘는 臣下에게 恭敬의 뜻으로 나라에서 지팡이[杖], 의자[几],

    가마 등을 주는 풍습에 따라 왕이 내린 물품이다. 顯宗 9년(1668) 11월 왕이 당시

    元老大臣이었던 李景奭에게 공경의 뜻으로 내린 의자 1점과 지팡이 4점 그리고 이를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 1점 등 총 6점의 유물이다.

  =궤: 높이 93㎝, 폭 77.4㎝로 앉을 때만 펴고 평상시에는 접어둘 수 있게 만든 의자이다.

  =지팡이: 길이 189.5㎝의 새머리가 조각되어 있는 지팡이와 149.5㎝의 칼이 들어있는

               지팡이, 총 길이 141㎝인 삽 모양의 지팡이 2점 등 총 4점이다.

  =화첩: 궤장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잔치를 열었는데 議政府의 東∙西班을 비롯한 大臣들을

            참석시키고 藝文館이 작성한 교서를 낭독하게 하였다.


(72) 안석과 지팡이[几杖]  -보물 제930호 -조서시대 –경기도박물관 –이완주 소장

*안석(案席): 앉을 때 벽에 세우고 몸을 뒤로 기대는 데 쓰는 등받이.


(73) 살포[鐵鏟](앞)-살포[鐵鏟] (*鏟: 대패 산)

(3) 살포[鐵鏟](앞)  -伽倻 –昌原 加音丁洞 –국립김해박물관

(4) 살포[鐵鏟](뒤)  -조선시대 –楊州 檜巖里 –국립중앙박물관

 

(74) 鐵의 獨占, 皇南大塚


(75) 쇠 거울[鐵鏡]  -新羅 –慶州 皇南大塚 –국립경주박물관


(76) 덩이쇠[鐵鋌]  -신라 –慶州 皇南大塚 –국립경주박물관 (*鋌: 쇳덩이 정)


(77) 쇠솥[鐵鍑]  -신라 –慶州 皇南大塚 –국립경주박물관 (*鍑: 솥 복)


(78) 덩이쇠[鐵鋌]

辰韓, 弁韓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덩이쇠는 鍛造 쇠도끼의 날 부분이 사라진 긴 鐵板으로

위 아래 끝부분이 넓게 퍼지는 모양이다.

덩이쇠는 철기제작을 위해 만든 중간단계의 素材로 三國時代 韓半島 南部지역에서

확인되며, 日本에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덩이쇠가 많이 출토된다.

덩이쇠는 철기의 재료로서 流通을 위한 용도 외에도 地位를 과시하는 威信材나 화폐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1) 伽倻(迦耶)  –咸安 道項里 –국립김해박물관

(2) 伽倻(迦耶)  –金海 大成洞 –국립김해박물관

(3) 百濟  –忠州 彈琴臺 土城 –국립청주박물관


                 

           (79) 등울[篝臺]  -三國時代 –大邱 飛山洞 –국립대구박물관 (*篝: 배롱 구)

       등울[燈臺]은 돌방무덤[石室墳] 안에 등잔을 올려놓는 등잔받침이다.

         大邱 飛山洞 돌방무덤에서 鐵製 등울 두 점이 나왔으며, 하나는 등울을

         버티는 살대 위에 평면 받침대가 놓여있고, 다른 하나는 圓筒形 망 안에

         등잔을 넣을 수 있게 만들었다.

         등울은 죽음의 공간 안에서도 불을 밝혀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권력의

         念願이 담겨있다.


(80) 사인검[四寅劍]

*干支의 年∙月∙日∙時가 모두 ‘寅’인 寅年, 寅月, 寅日, 寅時에 제작된 칼.


四寅劍(사인검)

乾降精(건강정) / 坤授靈(곤수령) / 日月象(일월상) / 岡澶形(강선형)

撝雷電(휘뢰전) / 運玄坐(운현좌) / 推山惡(추산악) / 玄斬貞(현참정)

(*澶: 물 이름 선/물 고요히 흐를 전 *撝: 찢을 휘)


(81) 금은입사 사인검[金銀入絲 四寅斬邪劍]  -朝鮮時代 –국립중앙박물관

        칼의 象徵性은 先史에서 古代, 中世, 近世로 이어진다.

칼은 당시 유행에 따라 材質과 형태가 달라지지만 강력함을 드러내는 칼의 屬性은 권력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百濟가 日本에 전해준 것으로 유명한 七支刀, 뱀처럼 구불구불한 蛇行劒, 지도자의 통솔과

승리를 의미하는 四寅劍, 자루에 龍이 장식된 조선시대 王의 御刀, 大韓帝國 皇室의 칼인

銳刀 등은 鐵로 된 칼이 권력의 상징으로 지속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82) 고리자루 큰칼[環頭大刀]

고리자루 큰칼은 중국 漢나라 때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는 三國時代 이후

韓半島 全域으로 확산된다.

이 칼은 값비싼 재료를 활용하여 金銀으로 장식한 큰칼로 제작되기도 하고, 둥근 고리

안쪽에 龍과 鳳凰모양을 細工한 큰칼로 발전되었다.

고리자루 큰칼은 대부분 權力者의 무덤에서 출토되어 당시 권력자만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 –馬韓 –高敞 南山里 –국립전주박물관

(2) –伽倻(迦耶)  –慶州 池山洞 -국립경주박물관


(83) 고리자루 큰칼[環頭大刀]

(3)  -新羅 –皇南大塚 –국립경부박물관

(4)  -百濟 –論山 茅村里 –국립부여박물관

(5)  -三國時代 –任實 金城里 –국립전주박물관


(84) 어도[御刀]-예도[禮刀]-곤봉[棍棒](앞에서부터) (*棍: 몽둥이 곤)

(1) 어도[御刀]  -조선시대 –국립고궁박물관

(2) 예도[禮刀]  -大韓帝國 –국립중앙박물관

(3) 곤봉[棍棒]  -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85) 퉁거우 12호분 고구려벽화무덤의 개마무사[通溝 十二號墳 高句麗壁畵 鎧馬武士] 

                                 -고구려 –국립중앙박물관(模寫圖) (*鎧: 갑옷 개)

壁畵 중앙에는 갑옷을 입은 武士가 긴 창을 비껴 들고 갑옷으로 무장한 말을 타고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그 왼편에는 鬪具를 쓰고 비늘갑옷을 입은 武士가 말에서 내려 비슷한 복장을 한 다른

무사의 목을 베는 斬首장면을 묘사하였다.

벽화 속의 전투장면은 古代 鐵製武器의 특징과 戰鬪技術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86) 목가리개[頸甲] (*頸: 목 경)

(1) -신라 –浦項 玉城里 -국립경주박물관

(2) -삼국시대 –釜山 福泉洞 11호분 –복천박물관


(87) 목가리개[頸甲]-팔가리개[肱甲]-투구[縱長板胄](왼쪽부터) (*胄: 투구 주)

(3) 목가리개[頸甲]  -삼국시대 –釜山 福泉洞 21호분 –국립김해박물관

(4) 팔가리개[肱甲]  -삼국시대 –釜山 福泉洞 10호분 –부산대학교박물관

(5) 투구[縱長板胄]  -伽倻 –南原 月山里 M5호분 –국립전주박물관


(88) 찰갑[札甲]  -고구려 –漣川 無等里 –서울대학교박물관


(89) 찰갑[札甲]  -가야 –南原 月山里 5호분 –국립전주박물관

 

 

     - 쇠, 鐵, 鋼 - 鐵의 文化史 (5-3)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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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야포 | 작성시간 17.11.02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잘 보고 모르던 역사이야기도 알고 갑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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