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 年 만에 빛을 본 寧國寺와 道峯書院 (3-3)
(76)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河南 下司倉洞 鐵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332호 -고려시대 불상 높이 2.88m
河南 下司倉洞 鐵造釋迦如來坐像은 京畿 河南 下司倉洞의 절터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鐵佛 坐像이다.
얼굴은 둥글고 치켜 올라간 눈, 꼭 다문 작은 입, 날카로운 코의 표현에서
觀念的으로 변해가는 고려시대 佛像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 감싸고 있는 偏袒右肩의 法衣,
무릎 앞에 펼쳐진 부채꼴의 주름, 降魔觸地印의 手印 등이 慶州 石窟庵 本尊佛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고려 초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豪族 勢力이 제작한 것으로
보아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下司倉洞 일대가 고려시대 天王寺터로 추정되어
下司倉洞 出土 鐵佛을 天王寺의 佛像으로 보기도 한다. (*偏: 치우칠 편
*袒: 웃통 벗을 단 *肩: 어깨 견 *觸: 닿을 촉)
*降魔觸地印: 坐禪할 때의 손 모양에서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석가모니가 修行을 방해하는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성취한 正覺을, 地神이 증명하였음을 상징함.
(77)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河南 下司倉洞 鐵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332호 –고려 10세기 -1911년 입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2016.06.02 사진-
쇠로 만든 이 부처는 京畿 河南市 下司倉洞의 한 절터에서 옮겨 온 것으로,
지금도 이 절터에는 돌로 만든 臺座의 일부가 남아있다.
높이 2.88m, 무게 6.2톤으로 우리나라에서 강 큰 鐵佛이다.
慶州 石窟庵 本尊佛의 양식을 따르고, 세부표현으로 보아 統一新羅 佛像을
계승한 高麗初期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부처의 양 무릎에는 딱딱하게 굳은 옻칠흔적이 남아있어
원래 佛像 전체에 두껍게 옻칠한 다음 鍍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78) 靑石塔 – 河南 天王寺
(79) 靑石塔
(80) 河南 天王寺
(81) 청동 풍탁[靑銅 風鐸] -고려 -하남 천왕사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82) 도가니[坩堝] -고려 -하남 천왕사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坩: 도가니 감 *堝: 도가니 과)
(83) 청석탑 기단면석(서측)[靑石塔 基壇面石(西側)](왼쪽) - 청석탑 기단면석(북측)
[靑石塔 基壇面石(北側)] -고려 -하남 천왕사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84) ‘천왕’을 새긴 수키와[‘天王’銘 圓瓦](왼쪽) - ‘천왕’을 새긴 암키와[‘天王’銘 平瓦]
-고려 -하남 천왕사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85) 연꽃무늬 수막새[蓮花文 圓瓦當] – 도깨비눈무늬 수막새[鬼目文 圓瓦當] –
당초무늬 암막새[唐草文 平瓦當] (왼쪽부터) -고려 -하남 천왕사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86) 용 얼굴무늬 수막새[龍面文 圓瓦當] -고려 -하남 천왕사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87) 연꽃무늬 수막새[蓮花文 圓瓦當] -고려 -하남 천왕사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88) 道峯書院의 建立
次韻-道峯書院/차운하여 도봉서원에 제하다. -農巖 金昌協(1651~1708)
空山肅肅廟門開(공산숙숙묘문개)/텅 빈 산에 엄숙한 사당문이 열렸는데
碧石淸泉左右迴(벽석청천좌우회)/푸른 바위 맑은 개울 좌우에 감아 돈다
可惜當年丘壑志(가석당년구학지)/애석할손 그 당시 님이 지닌 구학의 뜻
君王不放此間來(군왕불방차간내)/여기 와서 지킴을 임금 아니 허여했지
(*肅: 엄숙할 숙 *迴: 돌아올 회 *壑: 골 학)
(89) 정암집[靜菴集] -조선 -靜庵 趙光祖(1482~1519) -서울역사박물관
靜庵 趙光祖 死後 160년이 지난 肅宗 9년(1683)에 간행되고,
高宗 29년(1892)에 重刊된 詩文集으로 原集 5권, 附錄 6권, 續集 4권의
15권 5冊이다.
책 머리에 肅宗의 御題詩와 尤庵 宋時烈의 舊本序와 淵齋 宋秉璿의 重刊序가
있으며, 玄石 朴世采의 跋文과 葵堂 鄭範朝의 중간발문이 있다.
當代 儒學者들의 사상과 趙光祖의 개혁정치에 대한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靜: 고요할 정 *尤: 더욱 우 *璿: 구슬 선 *采: 풍채 채 *跋: 밟을 발
*葵: 해바라기 규)
(90) 송자대전[宋子大全] -조선 -尤庵 宋時烈(1607~1689) -서울역사박물관
正祖 11년(1787) 총 236권(원편 215권, 목록 2권, 부록 19권), 102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간행하였다.
栗谷 李珥에서 沙溪 金長生으로 이어지는 畿湖學派의 性理學理論을 주장한 著者 尤庵의
政治觀이 잘 드러나 있다. 2권에는 1668년 宋時烈이 道峯書院에 들렸을 때 지은
七言律詩 <題 道峯書院(도봉사원에 쓰다)>가 실려있다. (*珥: 귀고리 이)
(91) 송자대전[宋子大全] 권2, [題 道峯書院(제 도봉서원)]
七言律詩 <題 道峯書院>
蒼崖削立洞門開(창애삭립동문개)/푸른 절벽 깎아 세운 듯 동구 열렸으니
澗水潺湲幾曲廻(간수잔원기곡회)/도랑물 잔잔히 몇 굽이 돌아왔나
堯舜君民當世志(요순군민당세지)/요순시대 군민 만들려는 당시의 뜻을
廟前空有後人來(묘전공유후인래)/사당 앞에 후인들이 와서 기리네.
(*崖: 언덕 애 *澗: 산골 물 간 *潺: 졸졸 흐를 잔 *湲: 흐를 원
*堯: 요 임금 요 *舜: 순 임금 순)
(92) 율곡전서[栗谷全書] -조선 -栗谷 李 珥(1536~1584) -서울역사박물관
英祖 25년(1749) 陶庵 李 縡(1680~1746)가 기존의 文集 등을 合本하고 추가로 보충하여
<栗谷全書>로 改題하였다.
13권에는 道峯書院의 위치, 건립 내막, 靜庵 趙光祖의 位相, 건립비용의 充當 등에 대하여
언급한 <道峯書院記>를 실었다. 15권에는 隱屛精舍學規, 文憲書院學規 등 이후 畿湖學派
書院의 典範이 된 學規들을 실었다. (*陶: 질그릇 도 *縡: 일 재 *隱: 숨을 은 *屛: 병풍 병)
(93) 栗谷全書 권 13, [道峯書院記(도봉서원기)]
(94) 道峯書院의 構造
(95) 도봉추색도[道峯秋色圖] -조선 18세기 -謙齋 鄭敾
-종이에 엷은 색 -한양대학교박물관 소장
18세기 이후 朝鮮山水畵의 확산과 深化에 큰 영향을 미친 謙齋 鄭 敾
(1676~1759)이 道詵寺를 중심으로 주변의 가을경치를 그린 작품이다.
그림 왼쪽 위에 ‘道峯秋色’이라는 제목과 함께 ‘謙齋’라는 서명이 적혀있으며,
그 아래에는 ‘鄭’과 ‘敾’의 白文方印을 찍었다. 遠景에는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를 짙은 먹으로 그리고, 中景에는 산과 안개에 둘러싸인
道峯書院과 계곡이 펼쳐져 있다.
近景에는 다리와 民家 등이 낮은 산과 함께 표현했다. 道峯書院의 제일 뒤쪽에
있는 건물은 祠堂으로 보이며, 이밖에 講堂과 枕流堂, 昭曠亭 등으로 보이는
건물을 그렸다. (*謙: 겸손할 겸 *祠: 사당 사 *枕: 베개 침 *昭: 밝을 소 *曠: 빌 광)
(96) 도봉서원도[道峯書院圖] -조선 18세기 -玄齋 沈師正 -종이에 엷은 색
-건국대학교박물관 소장
道峯書院圖는 道峯書院을 題材로 그린 眞景山水畵로, 조선 후기에 南宗畵를 定着∙流行시킨
선비 畵家 玄齋 沈師正(1707~1769)의 작품이다.
오른쪽 위에는 ‘道峯書院’이라는 畵題를 적었으며, ‘玄齋’라는 朱文方印과 ‘頤叔’이라는
白文方印을 찍었다.
왼쪽 아래에 보이는 朱文方印은 ‘小桃源’이다. 遠景의 험준한 바위봉우리는 짙은 먹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新綠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道峯書院과 계곡이 보인다.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祠堂이며, 이 밖에도 講堂과 東齋, 西齋 등의 건물을 그
린 것으로 보인다. (*頤: 턱 이)
(97) 한수재집[寒水齋集] -조선 -한국학중앙연구원 藏書閣
조선 후기의 학자 寒水齋 權尙夏(1641~1721)의 詩文集 총 35권 15책으로
英祖 37년(1761) 曾孫들이 간행하였다.
19권에는 道峯書院의 院規에 대하여 논의한 [答道峯院規]와 [再答道峯院規]가, 22권에는
1723년 이후 도봉서원의 ‘舞雩臺’와 ‘永歸門’, ‘昭曠亭’의 신축과정과 同春堂 宋浚吉 ∙
尤庵 宋時烈 등의 바위글씨에 대한 내력을 적은 [昭曠亭記]를 실었다.
(*舞: 춤출 무 *雩: 기우제 우 *昭: 밝을 소 *曠: 밝을 광/빌 광)
*寒水齋集은 조선후기 儒學史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문헌이다.
특히, 조선 性理學史의 주요 논쟁인 '人物性同異論'과 관련된 湖洛論爭이 그의 文人인
南塘 韓元震과 巍巖 李 柬 사이에서 발단하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는 人物性相異論을 주장하는 南塘 韓元震을 지지함으로써 人物性俱同論을 주장하는
巍巖 李 柬과 맞서게 되었다. (*塘: 못 당 *震: 우레 진 *巍: 높고 클 외 *柬: 가릴 간)
*湖洛論爭: 조선 후기 性理學에서 人性과 物性이 같은 가 혹은 다른 가에 대한 논쟁.
(98) 書院撤廢令과 道峯書院의 毁撤 (*毁: 헐 훼 *撤: 거둘 철)
(99)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興宣大院君 李昰應 肖像]
-보물 1499-1호(복제) -조선 -希園 李漢喆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1880년 朝鮮末期의 御眞 畵師 希園 李漢喆(1808~?)이 제작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 所藏되어있는 興宣大院君 李昰應(1820~1898)의
全身肖像 5점 중에서 검은 幅巾을 쓰고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黑巾靑袍本이다.
還甲을 맞은 興宣大院君의 61세 周甲像으로 오른쪽에는 興宣大院君의
親筆 表題를 쓰여있다. (*昰: 여름 하 *幅: 두건 복 *巾: 수건 건 *袍: 도포 포)
(100) 寧國寺 터 -道峯溪谷 現地 -2015.10.29 사진
(101) 현재의 道峯書院 內三門 [由道門] -道峯溪谷 現地 -2004.09.25 사진
(102) 道峯書院 祠堂 -[道峯書院] 편액; 宣祖 甲戌 賜額 -2010.04.08 사진
(103) 道峯山의 바위글씨 位置圖
(104) 道峯山의 바위글씨
(105) 제월광풍갱별전 요장현송답잔원(화양노부서)[霽月光風更別傳 聊將絃誦答潺湲
(華陽老夫書)] – 무우대(한수옹)[舞雩臺(寒水翁)]
=霽月光風更別傳 聊將絃誦答潺湲(華陽老夫書) -尤庵 宋時烈 글씨 (*霽: 비 갤 제 *
更: 다시 갱 *聊: 애오라지 요/료 *誦: 외울 송 *潺: 졸졸 흐를 잔 *湲: 흐를 원)
원래 <朱子大全>에 실린 詩句로 중국 宋나라의 儒學者 晦庵 朱熹(1130~1200)가
지은 詩 두 편에서 각각 한 句節씩 발췌하여 썼다.
첫 번째 詩句의 ‘霽月光風(제월광풍)/비 갠 뒤의 깨끗한 달빛과 화창한 바람)’은 宋나라
학자 山谷 黃庭堅이 朱子의 스승 北宋의 性理學者 濂溪 周敦頤(1017~1073)의 人品과
기상을 稱頌하는 글이며, 두 번째 詩句는 오로지 學問에만 專念하기를 권고하는
내용이다. (*晦: 그믐 회 *熹: 빛날 희 *堅: 굳을 견 *濂: 물 이름 염 *頤: 턱 이
*稱: 일컬을 칭)
霽月光風更別傳(제월광풍갱별전) / 비 갠 뒤의 깨끗한 달빛과 화창한 바람을 다시금
특별히 이어받았도다.
聊將絃誦答潺湲(요장현송답잔원) / 애오라지 거문고 타고 글을 읽으며 냇물소리에 화답하네.
=舞雩臺[寒水翁] -寒水齋 權尙夏 글씨 (*雩: 기우제 우)
‘舞雩’는 <論語> [先進]에 나온다. 孔子의 弟子 曾點(*曾子의 부친)이 “늦은 봄에
봄 옷을 만들면 冠을 쓴 대여섯 사람과 童子 예닐곱 사람과 함께
淇水(河南省 치수이 江)에서 목욕하고 舞雩에서 바람을 쐰 다음 읊조리며
돌아오겠다.”라고 한데서 따온 말이다. (*淇: 물 이름 기)
(106) [霽月光風更別傳 聊將絃誦答潺湲(華陽老夫書] – [舞雩臺(寒水翁)] 道峯溪谷 현지
刻字바위 -2012.12.18 사진
(107) 2. 염락정파 수사진원(춘옹서)[濓洛正派 洙泗眞源(春翁書)] – 3. 광풍제월(천옹서)[
光風霽月(泉翁書)] – 4. 고산앙지(경진칠월 김수증)[高山仰止(庚辰七月 金壽增)
(*濓: 내 이름 염)
=濓洛正派 洙泗眞源(春翁書) -刻字: 春翁 -글씨: 同春堂 宋浚吉(1606~1672)
濓洛은 濓溪와 洛水를 뜻하며 北宋시대의 儒學者로 性理學의 기초를 닦은 濂溪
周敦頤(1017~1073)와 그의 弟子인 明道 程顥 ∙伊川 程頤 형제가 講學하던 곳으로,
濓洛正派는 일반적으로 宋代의 新儒學을 가리킨다.
洙泗는 洙水와 泗水로 孔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朱子學의 바른 줄기이며 공자
가르침의 震源’이란 뜻이다. (*濓: 내 이름 염 *程: 한도 정 *顥: 클 호 *頤: 턱 이
*泗: 물 이름 사)
=光風霽月(泉翁書) -寒泉 李 縡(1680~1746) 글씨 (*縡: 일 재)
宋나라 학자 山谷 黃庭堅이 朱子의 스승 濂溪 周敦頤의 인품과 기상을 칭송한 말로, ‘
비 온 뒤 맑은 바람 비 갠 뒤의 깨끗한 달’이란 뜻이다. 道峯書院에는 霽月樓와
光風堂이 있었다.
=高山仰止(庚辰七月 金壽增) -肅宗 26년(1700) -谷雲 金壽增(1624~1701)
<詩經> [小雅]편에 ‘高山仰止(고산앙지) 景行行止(경행행지)’라 하였다.
‘큰 산은 올려다 볼 수 있고, 큰 길은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으로 谷雲 金壽增이 ‘靜庵 趙光祖의 學德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에서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止는 ‘정지하다’는 뜻은 없고
終結詞(*문장을 끝내는 품사)로 쓰였다. 충북 沃川에 尤庵 宋時烈이 세운
二止堂(*충북유형문화재 42호)은 윗글[高山仰止]에서 따온 것이다.
(108) [濓洛正派 洙泗眞源(春翁書)] -道峯溪谷 현지 刻字바위 -2012.12.18 사진
(109) [光風霽月(泉翁書)] -道峯溪谷 현지 刻字바위 -2012.12.18 사진
(110) [高山仰止(庚辰七月 金壽增)] -道峯溪谷 현지 刻字바위 -2012.12.18 사진
(111) [道峯洞門] -道峯溪谷 현지 刻字바위 -2012.12.18 사진
[道峯洞門]은 尤庵 宋時烈의 친필로, 漢學을 연구하는 後學들의 里程標이며 學問의
중심이었던 道峯書院의 前堂에 들어서는 것을 알려주고 동시에 道峯山의 入口를 알려주는
石刻으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12) 에필로그; 道峯山길 90의 歷史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