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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역사 탐방

명재(明齋) 윤 증(尹 拯) 특별전-예술의 전당 書藝박물관 (3-1)

작성자孤 山|작성시간18.07.23|조회수848 목록 댓글 0

명재(明齋) 윤증(尹拯) 특별전-예술의 전당 書藝박물관

 

예술의 전당 書藝박물관에서는 조선 후기 政治史의 핵심 인물이며 少論의 領袖인

明齋 尹拯(1629~1714)의 遺物을 통하여 그의 삶과 思想을 체계적으로 선보이는

특별전을 전시하였다. (*拯: 건질 증)

(전시장소; 서예박물관 상설전시실 3층, 전시기간; 2018.03.29~05.13)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尹拯 肖像>과 <影堂紀蹟> 두 점의 보물은 尹拯 宗家에 전해 내려오는

肖像 5점과 초상의 제작관리 내력을 상세하게 적은 <影堂紀蹟> 일괄로 2006년

보물 제1495호로 지정되었으며, 華山館 李命基가 1788년에 新法으로 그린 초상을

<영당기적>과 함께 전시하였다.

전시구성 내용은

Ⅰ. 삶: 尹拯 先生의 親筆, 文集, 肖像 등을 중심으로 明齋의 삶을 이야기한다.

Ⅱ. 예술: 당시 尹拯 선생과 交遊하던 學者 및 門下生들의 친필글씨를 확인 할 수 있다.

Ⅲ. 가계: 윤증 선생의 家系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을 조명한다.

Ⅳ. 학문: 조선후기 윤증 선생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 등이다.

 

지난 04.27(金) 瑞草洞 예술의 전당 書藝博物館에서

 

韓國書藝史 34 [명재(明齋) 윤증(尹拯) 특별전]을 관람하였다.

사진을 3회로 나누어 올린다

 

                    2018. 07. 22   孤 山  朴 春 慶

 

명재(明齋) 윤 증(尹 拯) 특별전-예술의 전당 書藝박물관 (3-1)

 

*明齋(酉峰) 尹拯(1629~1714): 西人이 老論과 少論으로 분리될 때 少論의 領袖.

尹拯은 조선중기 性理學의 大家인 坡平 尹氏 美村 宣擧의 아들로 부친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仁祖 20년(1642) 市南 兪棨, 同春堂 宋浚吉, 尤庵 宋時烈의 3大 師門에 들어가 朱子學을

기본으로 하는 當代의 正統儒學을 修學하였으며, 宋時烈의 門下에서는 高弟로 지목되었다. 

     (*擧: 들 거 *棨: 창 계)

登科는 하지 않았으나 學行이 士林間에 뛰어나 遺逸로 천거되어 內侍敎官 발탁을 시작으로

右議政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實職에 취임하지 않았으며, 그의 政見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上疏로 피력하고, 정치당국자나 學人과의 書簡을 통해 나타났다.

그러한 그의 정치적 性行이 老少分黨과 그를 이은 黨爭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老論의 일방적인 政局專橫을 견제하였다.

그의 思想的 背景은 16세기 이래 변화되어온 조선사회를 이해하는 視角差異에서

尤庵 宋時烈과 대립하였으며, 밖으로는 壬辰倭亂과 丙子胡亂, 그 후 국제관계의 변화에 따른

宋時烈의 崇明義理와 尹拯의 對淸 實利外交의 대립이었고, 兩亂 以後의 사회변동과 경제적

곤란은 朱子學的 義理論과 名分論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역사적 命題를 제기하였다.

그가 스승인 宋時烈에게 보낸 辛酉擬書에 스승을 義利雙行(의리와 이익을 함께 행함)이라

비판하여 背師論으로 지목되고, 宋時烈의 朱子學的 宗本主義와 尊華大義 및 崇明伐淸의

北伐論을 정면으로 반박, 懷尼是非의 발단을 이루었다. (*擬: 비길 의 *懷: 품을 회 *尼: 여승 니)

宋時烈이 작성한 그의 부친 尹宣擧의 碑文 是非와 더불어 辛酉擬書의 작성으로 老少黨人間에

격렬하게 전개된 회니시비는 송시열과 윤선거 父子가 모두 죽은 후에도 더욱 격렬하여

老少黨人들이 대립되었던 17세기를 넘기면서도 끝을 맺지 못하고 景宗∙英祖∙正祖 때에

해당되는 18세기 老少黨論으로 넘겨졌다.

著書는 <明齋遺稿>, <明齋疑禮問答>, <明齋諭書> 등이 있다. (*諭: 타이를 유)

*高弟: 高足弟子(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

*遺逸: 조선시대 草野에 은거하는 선비를 찾아 천거하는 人材 登用策. (*逸: 편안할 일)

*懷尼是非: 肅宗 7년(1681) 尹拯이 宋時烈에게 보내려고 했던 書札로. 송시열이 평생

      높이고 따른 사람은 朱子였으나 정작 그의 행동은 朱子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을 들어

      송시열의 本源과 學術에 대해 공박한 내용이다.

  尹拯은 朴世采의 만류로 편지를 부치지 않았으나, 宋時烈의 손자이자 박세채의 사위

  宋淳錫이 몰래 베껴 송시열에게 전하였다. (*采: 풍채 채)

 

明齋 尹拯 특별전

 

(01) 예술의 전당 書藝博物館

 

(02) 韓國書藝史 특별전 34 [明齋 尹拯]을 展示하며

 

               

          (03) 尹拯 肖像  -李命基 1788년작  -보물 제1495호- 

                                   -개인소장(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寄託 保管)

      華山館 李命基가 그린 3점의 肖像 중에 이 작품은 圖畵署 畵員

      張景周(敬周)의 筆法을 참고하여 1788년 舊法으로 그린 明齋 尹拯의

      肖像이다.

     ‘崇禎紀元後三戊申二月摹’라는 墨書가 있는 1788년작 <尹拯 肖像> 2점은

     <影堂紀蹟>에 李命基가 模寫하였다. 正面 1점과 側面 1점은 新法을

      加味하여 그렸으며, 舊本의 畵法을 後代에 전하지 않을 수 없어 舊法을 따라

      측면 1본을 그렸다고 한다. (*禎: 상서로울 정 *摹: 베낄 모 *模: 본뜰 모)

      明齋 尹拯은 生前에 자기 肖像을 그리지 못하게 했으나, 尹拯이

      83세 때(1711년) 卞良이 弟子들과 몰래 초상화를 그렸으며, 1744년 張敬周,

      1788년 華山館 李命基, 1885년 希園 李漢喆 등 當代 최고의 화가들이

      尹拯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초상화 5점은 <影堂紀蹟>과 함께 2006년 보물 제1495호

       <尹拯 肖像 一括>로 지정되었다.

     *影堂紀蹟: 1711년부터 1885년까지 3차에 걸쳐 尹拯 肖像을 그린 과정을

                     상술한 책.

 

尹拯의 삶

 

(04) 明齋 尹拯의 삶

 

               

          (05) [朱子 詩]  - 明齋 尹拯 書  -年代 未詳

    鼎鼎百年能幾時(정정백년능기시) / 빨리 가는 백 년 세월 얼마나 더 살까

    靈芝三秀欲何爲(영지삼수욕하위) / 영지버섯 세 송이는 무엇에 쓰려고 하나

    金丹歲晩無消息(금단세만무소식) / 長生不死 靈藥은 세월이 다 가도 소식이 없으니

    重歎篔簹壁上詩(중탄완당벽상시) / 거듭 운당포 벽에 걸린 詩를 보며 탄식하네.

        *운당포(篔簹鋪): 운당은 껍질이 얇고 마디와 줄기가 긴 대나무로, 운당이 많이

                     자라는 洋州 篔簹谷을 가리킨다. 朱子가 젊은 시절에 쉬었다는 곳.)

(*鼎: 솥 정 *芝: 지초 지 *歎: 탄식할 탄 *篔: 왕대 운 *簹: 왕대 당 *鋪: 가게 포)

 

 (06) 簡札  - 明齋 尹拯  -1683년.  오른쪽은 [明齋年譜] 上

尹拯이 1683년 知人에게 자기가 出仕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書簡이다.

“辭職上疏를 올려도 解任되지 않고 설령 해임된다 해도 장차 또 殿下의 부름이 계속되면

 어찌 몸을 숨길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며 “국가에는 不忠하고 집안에서는 不孝의 죄인이

 되고 죽어서도 後世의 기록과 책망을 들을 것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心情을

 토로하고 있다. (*疏: 소통할 소)

 또 스스로 평가해보면 “재주와 學問이 허술하고 소홀해 끝내는 나라에 이익이 없는 까닭에

 出仕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明齋年譜  (*譜: 족보 보)

 조선 후기의 文臣 性理學者 明齋 尹拯의 年譜로 활자본. 51卷 26冊이다.

 本集 46권 23책, 別集 4권 2책, 目錄 1권 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英祖 8년(1732)

 宗孫 尹東洙가 편집∙간행하였다.

 본집 卷1∼4는 辭, 賦, 詩, 권5∼8은 疏, 狀, 書, 啓, 권9∼29는 書, 권30∼31은 雜著,

 권32∼46은 銘, 書, 記, 跋, 祝告文, 書院祝文, 墓表 등을 수록하고, 별집에는

 宋時烈과의 往復書牘이 실려 있다. 당시의 정치사상연구 ·인물연구와 사회동향 및 黨爭 ·

 禮訟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賦: 부세 부 *疏: 소통할 소 *啓: 열 계 *銘: 새길 명

                                        *跋: 밟을 발 *牘: 서찰 독)

 

               

          (07) 복관교지(復官敎旨)  -1782년 正祖가 尹拯에게 내린 復官敎旨이다.

      尹拯 死後인 肅宗 43년(1717) 부친 美村 尹宣擧와 함께 官爵이

      삭탈되었으나 景宗 2년(1722) 관작이 회복되고 이듬해 ‘文成’이라는

      諡號를 받았다. (*爵: 벼슬 작)

      그러나 1776년 正祖 즉위 직후 다시 관작이 삭탈되었으며 正祖 6년(1782)

      다시 관작을 회복시킨 復官敎旨이다.

 

(08) 簡札  -明齋 尹拯  -1682년

辛酉擬書 사건이 걱정되어 동생에게 세 차례에 걸쳐 보낸 간찰이다. (*擬: 비길 의)

明齋가 尤庵을 비판한 辛酉擬書의 내용을 權頤鼎이 尤庵에게 전한 時點에 懷德縣監인

동생에게 “특히 言行을 조심하라”고 謹愼할 것을 종용한 1682년 10월 下旬에 3알간

연달아 보낸 간찰이다. (*尤: 더욱 우 *庵: 암자 암 *擬: 비길 의 *頤: 턱 이 *鼎: 솥 정

                                *懷: 품을 회)

明齋는 동생 農隱 尹推에게 “權頤鼎이 나와 尤庵 사이를 離間시키고 헛소리를 조작한 죄는

장차 그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 가련해 어찌할꼬?”라고 말하며 “잘 처리할 방도가 없으니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하며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하며 “尤庵을 禮遇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술회하였다. (*隱: 숨을 은 *推: 밀 추 *離: 떠날 이)

*簡札: 簡紙(두껍고 품질이 좋은 便紙紙)에 쓴 漢文 편지.

*辛酉擬書

肅宗 7년(1681) 明齋 尹拯이 尤庵 宋時烈에게 보내려고 했던 書札로 宋時烈이 평생

높이고 따른 사람은 朱子였으나 정작 그의 행동은 朱子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을 들어

宋時烈의 本源과 學術에 대해 공박한 내용이다.

윤증은 朴世采의 만류로 편지를 부치지 않았으나, 그 후 宋時烈의 손자이자 朴世采의

사위인 宋淳錫이 몰래 베껴 송시열에게 전하였다. (*采: 풍채 채)

 

(09) 簡札  -尹拯  -69세(1682년)때 左議政에게 보낸 簡札.

자신이 임금의 召命에 부응하지 못했고, 동생 尹推가 金堤郡守로 발령되었으며,

아들 行敎가 科擧에 급제한 것을 알리고 있다.

한 해가 저물어 나라를 위해 몸을 잘 호위하고, 새 福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아울러

祝壽하고 있다.

 

(10) 시고(詩稿)  - 明齋 尹拯  -1714년

尹拯이 死亡 4일전 白光瑞에게 써준 詩

思君一見意淒淒(사군일견의처처)/그대 한 번 보고픈 생각 간절했었는데

去人無窮萬象虛(거인무궁만상허)/저승으로 돌아가면 만상이 다 공허하리.

惟有酉峯山月好(유유유봉산월호)/상상컨대 유봉에는 산과 달이 아름다워

淸光終古照林溪(청광종고조림계)/맑은 빛 영원토록 숲과 내를 비추리라.

此乃牛溪先生訣李峒隱(차내우계선생결이동은)/이것은 우계선생이 이동은이 왔을 때

來別詩也偶然思得書呈(내별시야우연사득서정)/ 이별할 때의 詩이네 우연히 생각 나

                                                                글을 지어 올리네.

甲午年 元月 二十日 拯(갑오년 원월 20일 증)/갑오년(1714년) 1월 20일 증

(*淒: 쓸쓸할 처 *窮: 다할 궁 *照: 비칠 조 *訣: 이별할 결 *峒: 산 이름 동 *偶: 짝 우)

 

(11) 염계서당(濂溪書堂)   -주돈이(周敦頤)  (*濂: 물 이름 염)

廬山我久愛 買田山之陰(여산아구애 매전산지음) / 여산을 오랫동안 사랑했기에 여산의

                                                                  북쪽에 산을 샀네

田間有流水 淸此出山心(전간유유수 청차출산심) / 밭 사이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물은

                                                                  산속에서 나온다네.

                                         - 중 략 –

飽暖大富貴 康寧無價金(포난대부귀 강녕무가금) / 따뜻하고 배부르니 부자이고 평안한 것은

                                                                  금으로 값을 할 수가 없네

吾樂蓋易足 名濂朝暮箴(오락개이족 명렴조모잠) / 내 즐거움으로 만족하니 염계라 이름해서

                                                                 아침 저녁으로 좌우명을 삼는다.

 (*廬: 농막집 여 *飽: 배부를 포 *蓋: 덮을 개 *箴: 경계 잠)

 

(12) 복거(卜居)  -주자(朱子)  (왼쪽 세 번째 줄부터)

卜居屛山下 俯仰三十秋(복거병산하 부앙삼십추) / 병산(屛山) 아래 산지 30년이 되었고

終然村墟近 未愜心期幽(종연촌허근 미협심기유) / 끝내는 마을 옛터에 가깝고 붉은 마음

                                                           이 산에 그윽하네.  (*墟: 터 허 *愜: 쾌할 협)

                                           - 이하 생략 –

 

(13) 감회(感懷)  -주자(朱子)  (가운데서부터 왼쪽으로)

經濟夙所尙 隱淪非素期(경제숙소상 은륜비소기) / 경제는 일찍부터 내가 숭상했지만 숨어

                                                              사는 일은 평소에 생각했던 것은 아니네.

撲年霜露感 白發忽己書(박년상로감 백발홀기서) / 그 몇 해나 이슬 속에서 지냈는지 백발이

                                                                이미 늘어져 있네.

鑿井幾山泣 耕田南澗渭(착정기산읍 경전남간위) / 북산 터에 우물 파고 남쪽 시냇가에서

                                                                   밭을 가네

乾坤極浩蕩 歲聣將何之(건곤극호탕 세아장하지) / 천지는 몹시 넓고 해는 늦었는데 물은

                                                                 어디로 흘러가나.

          (*夙: 이를 숙 *淪: 빠질 윤 *撲: 칠 박 *鑿: 뚫을 착 *澗: 산골 물 간 *渭: 물 이른 위

           *蕩: 방탕할 탕 *聣: 아 아)

 

(14) 간찰(簡札)  -명재(明齋) 윤증(尹拯)  -1688년  -개인 소장

科擧공부하고 있는 제자 都允中에게 보낸 간찰.

서울 가는 것보다 시골에서 조용히 마음을 지키며 독서하는 것이 좋으니 서울에 가면 가

느라고 힘을 낭비하고,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하나의 손해이며, 친구를 쫓아 다니며

雜談이나 하며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또 하나의 손해라 만류하는 것이다.

科擧 합격은 自古로 다 자기 운명이 있는 것이니 마음이 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5) 증별 시(贈別 詩)  -윤증(尹拯)  -1675년  -개인 소장

弟子인 成氏, 鄭氏에게 學問을 권하는 詩

 

贈別

成鄭二賢有志當希聖 爲儒要立誠 才良年又竗 努力繼家聲

(성정이현유지당희성 위유요입성 재량년우묘 노력계가성) / 뜻이 있으면 마땅히 聖人을

 바라봐야 하고, 선비가 되려면 정성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재주가 좋고 나이 또한 젊으니

 노력해서 집안의 名聲을 이어가라.

 -乙卯 窮臘 明齋病蟄(을묘 궁랍 명재병칩) / 을묘(1675년) 세밑에 명재라는 병들고

                                               움츠린 이가. –    (*臘: 섣달 랍 *蟄: 숨을 칩)

 

(16) 간찰(簡札)   - 윤증(尹拯)  -1687년  -개인 소장

肅宗 때 仁顯王后의 廢位를 반대하다 모진 拷問을 당한 뒤 珍島로 流配 도중 鷺梁津에서

숨진 定齋 朴泰輔(1654~1689)의 慘禍에 대한 心情을 술회한 簡札이다.

나는 구차하게 붙어있는 목숨을 보존하는데 생질 朴泰輔의 참담한 禍는 사람으로 하여금

뼈가 놀래고 魂을 잃게 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달이 넘어도 능히 마음을 정하지 못하니

이것은 또한 사사로이 아플 따름이리요.

 

(17) 간찰(簡札)  -定齋 朴泰輔  -1688년  -개인소장

定齋 朴泰輔가 부친에게 보낸 친필 간찰이다.

定齋 朴泰輔(1654~1689)는 明齋 尹拯의 門人이며 甥姪이다. 본래 西溪 朴世堂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朴世堂의 형 認齋 朴世煦의 養子가 되었다.

1677년 文科에 壯元及第하고 吏曹佐郞, 坡州牧使 등을 역임하였으나

己巳換局(1689년) 때 西人을 代辨하여 仁顯王后의 廢位를 반대하다가 모진 拷問 끝에

珍島로 유배 도중 鷺梁津에서 숨을 거두었다.

外三寸인 明齋 尹拯이 모함을 받자 少壯派들과 함께 상소하여 변론하기도 했다.

               (*甥: 생질 생 *姪: 조카 질 *煦: 따뜻하게 할 후)

 *己巳換局: 肅宗 15년(1689) 南人이 禧嬪 張氏(張玉貞)의 소생을 元子로 定號하는

                世子 책봉 문제로 西人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

 

(18) 범준 심잠(范浚 心箴)(1)  -명재(明齋) 윤증(尹拯)  -年代 미상  -개인소장

茫茫堪輿 俯仰無垠(망망감여 부앙무은) / 아득하고 아득한 천지는 굽어보고 우러러 봄에

                                                     끝이 없네

人於其間 渺然有身(인어기간 묘연유신) / 사람이 그 사이에 작게 몸을 두고 있으니

是身之微 太倉稊米(시신지미 태창제미) / 이 작은 몸을 비유하면 큰 창고의 낟알 하나에

                                                      불과한데

參爲三才 曰唯心耳(참위삼재 왈유심이) / 참여하여 三才가 됨은 오직 마음 때문이네

往古來今 孰無此心(왕고래금 숙무차심) / 예나 지금이나 누가 이 마음이 없겠냐 만은

心爲形役 乃獸乃禽(심위형역 내수내금) / 마음이 형체에 사역을 당하여 마침내 禽獸가 되었네.

(*范: 법 범 *浚: 깊게 할 준 *箴: 경계 잠 *茫: 아득할 망 *堪: 견딜 감 *垠: 지경 은

 *渺: 아득할 묘 *稊: 돌피 제)

 

(19) 범준 심잠(范浚 心箴)(2)  -명재(明齋) 윤증(尹拯)  -年代 미상  -개인소장

唯口耳目 手足動靜(유구이목 수족동정) / 오로지 입, 귀, 눈과 수족의 동정이

投閑抵隙 爲闕心病(투한저극 위궐심병) / 마음의 빈 틈을 파고들어 마음의 병이 되네

                                                    (*隙: 틈 극)

壹心之微 眾欲攻之(일심지미 중욕공지) / 작은 한마음을 여러 욕심들이 공격하니 

                                                      (*眾: 무리 중)

其與存者 鳴呼幾稀(기여존자 명호기희) / 그 보존된 마음이 아, 얼마 되지 않는구나

君子存誠 克念克敬(군자존성 극념극경) / 군자는 성을 보존하여 능히 생각하고 능히 경하니

天君泰然 百體從令(천군태연 백체종령) / 천군이 태연하여 온 몸이 명령을 따르네.

 

                

           (20) 明齋 尹拯과 尤庵 宋時烈

 

(21) 간찰(簡札)  -윤증(尹拯), 송시열(宋時烈)  -1684년  -개인소장

明齋 尹拯이 尤庵 宋時烈에게 보낸 書簡(謄寫本)

尤庵 宋時烈이 明齋 尹拯에게 보낸 書簡(謄寫本)

明齋 尹拯의 아버지 美村 尹宣擧의 墓碣銘과 辛酉擬書 등으로 不和가 생긴 1684년

明齋가 尤庵에게 보낸 書簡과 尤庵의 答信을 보관용으로 또 하나를 謄寫한 것이다.

明齋가 4월에 보낸 간찰의 내용은 <明齋文集> 別集 권3에, 尤庵의 답신은

<明齋文集> 別集 권4에 수록하였다. (*碣: 비석 갈)

 

               

           (22) 明齋 尹拯이 尤庵 宋時烈에게 보낸 簡札

 

(23) 尤庵 宋時烈이 明齋 尹拯에게 보낸 答信

 

(24) 尤庵 宋時烈이 外孫子에게 보낸 親筆 簡札  -1672년  –개인 소장

 

答殷敎孫(답은교손)

見汝問書 甚慰戀思 吾 亦輿諸孫兒相會恨不置汝於此間也 曾有秋來之示想使我屈指以

俟耳只此   壬子 六月 二十二 外翁  (*俟: 기다릴 사)

(견여문서 심위연사 오 역여제손아상회한불치여어차간야 증유추래지시상사아굴지이

사이지차   임자 유월 이십이 외옹)

 

은교 외손자에게 답장한다

네가 안부를 묻는 편지를 받고 많이 위로되며 네 생각이 나는구나.

나는 여러 손자들과 서로 만나는 것과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을 바꾸지 못하니 한스럽구나.

네가 가을에 찾아온다고 하니 나는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이만 그친다.

임자(1672년) 6월 22일 외할아버지.

 

(25) 송우암선생 시열(宋尤庵先生 時烈)  -門人 金昌協 撰

효종묘정 문묘배향(孝宗廟庭 文廟配享) 은일좌의정(隱逸左議政)

은진인 시 문정공(恩津人 諡 文正公)

 

(26) 윤휴(尹鑴)가 尹拯의 아버지 美村 尹宣擧에게 보낸 시고(詩稿)  -연대미상  -개인소장

白湖 尹鑴(1617~1680)는 南人으로 美村 尹宣擧의 벗이며, 明齋 尹拯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南人이었으나 西人 계통의 學者들과 활발하게 交遊했으며, 특히 尤庵 宋時烈 등이

白湖 尹鑴의 學問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北伐을 주장하며 武科인 萬科를 설치하여 息庵 金錫胄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經典의 새로운 이해와 해석으로 새 분야를 開拓하였으나 斯文亂賊으로 몰리고, 1680년

庚申換局으로 최후를 마쳤다. 白湖 尹鑴를 두고 美村 尹宣擧와 尤庵 宋時烈의 갈등이

있었으며, 이는 老少分黨의 한 契機가 되기도 했다.  (*鑴: 솥 휴)

*萬科: 조선시대 많은 인원을 합격자로 뽑던 科擧

조선시대에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된 式年試에서 武科試驗은 정원 28명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과거제도가 문란해지고, 宣祖 때 壬辰倭亂, 仁祖 때 丙子胡亂을

치르면서 仁祖 5년(1627) 5,464명, 肅宗 2년(1676) 18,251명을 선발하여 많은 인원을

뽑는다는 뜻에서 ‘萬科’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萬科는 科擧制度가 폐지된 高宗 31년(1894)까지 계속되었다.

 

(27) 신유의서(辛酉擬書) 초고본(草稿本)  -1681년  -明齋 尹拯  -개인소장

肅宗 7년(1681) 尹宣擧의 아들 明齋 尹拯이 尤庵 宋時烈에게 보내려고 했던 書札로,

宋時烈이 평생 높이고 따른 사람은 朱子였으나 정작 그의 행동은 朱子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을 들어 宋時烈의 本源과 學術에 대해 攻駁한 내용이다.

尹拯은 이를 보여준 玄石 朴世采의 만류로 편지를 부치지 않았으나, 그 후 宋時烈의

손자이자 朴世采의 사위인 宋淳錫이 몰래 베껴 宋時烈에게 전하였다. 이는 懷尼是非의

단초가 되어 老論과 少論으로 分化를 야기하였다. (*駁: 논박할 박)

  *懷尼是非: 肅宗 때 尹拯과 宋時烈이 서로를 비방했던 사건으로, 집권세력이었던

   西人이 老論과 少論으로 分派되는 계기가 된 사건.

   顯宗 10년(1669) 丙子胡亂 때 江華城을 지켰던 尹宣擧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尹拯이

  스승 宋時烈을 찾아가 墓碣銘을 부탁했는데, 宋時烈이 무성의하고 尹宣擧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적어 보내자 師弟之間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가 敵對的인 관계로

   바뀌면서 급기야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西人이 宋時烈 중심의 老論과

   尹拯 중심의 少論으로 갈라서게 되는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碣: 비석 갈)

   *斯文亂賊: 儒敎에 대한 朱子의 敎理를 다르게 해석하는 선비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

       말로, 宋時烈이 尹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經典 原本보다

      朱子가 내린 해석을 더욱 중시하고 盲目的으로 따랐던 경직된 조선 중기의 思想을

      보여준다. (*鑴: 솥 휴)

 

(28) 간찰(簡札)  -玄石 朴世采  -1694년  -개인소장

論山 遯巖書院(사적 383호) 儒生에게 魯西(美村) 尹宣擧의 配享을 相議하고자 보낸

간찰이다. (*遯: 달아날 둔)

 

(29) 간찰(簡札)  -眉叟 許穆(1595~1682)  -연대미상  -개인소장 (*眉: 눈썹 미*叟: 늙은이 수)

上狀(상장)  (*공경하는 뜻이나 弔喪하는 뜻을 나타내어 올리는 편지)

李上舍行次 手札之(이상사행차 수찰지) / 이 상사가 행차하는 곳에 가는 편지입니다.

問遠事喜感何可爲喻 老人又得一年節序人事耗減又一倍奈 (문원사희감하가위유

             노인우득일년절서인사모감우일배나) / 손수 쓴 편지로 안부를 물으시니

            기쁘고 감사한 것을 어떻게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한 살 더 먹어 기억력이 쇠하고 슬픔이 더하니 어찌하리까?

何且暖遠訪之期令人喜 企不宜(하차난원방지기령인희 기불의) / 따뜻할 때 멀리서

                                   찾아주신다니 기뻐 기다릴 뿐입니다. 갖추지 않습니다.

元月 十一日 纍人不敢名(원월 십일일 유인불감명) / 1월 11일 귀양간 사람은 이름을

                                                                  생략합니다.

原州 近有消息何如(원주 근유소식하여) / 원주의 근래 소식은 어떻습니까?

        (*喻: 깨우칠 유 *耗: 소모할 모 *纍: 맬 유/류)

*上舍: 조선시대 生員 ∙進士 시험에 합격한 사람.

 

 

  -명재(明齋) 윤 증(尹 拯) 특별전-예술의 전당 書藝박물관 (3-2)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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