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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역사 탐방

제88차 文化踏査(10-10), 세계문화 이집트(2-2)

작성자孤 山|작성시간20.02.06|조회수271 목록 댓글 0


제88차 文化踏査(10-10), 세계문화 이집트(2-2)


(51) 폐와 기도모양의 부적⑬ -삼각자 부적⑭ -심장부적⑮

 =⑬ 폐와 기도(windpipe)모양의 부적  -後期王朝時代, 제26~30왕조  -BC 약 664~332 

                                                     –黑曜石

 =⑭ 삼각자 부적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BC 약 664~332  -赤鐵石

   木手가 直角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를 차용하여 미라가 잘 만들어지기를

   기원하는  부적이다.

 =⑮ 심장부적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BC 약 664~332  -紅玉髓


(52) 두 개의 손가락 부적 (위) - 인간 다리 부적

 =두 개의 손가락부적  -프톨레마이오스시대  -BC 약 332~30  -흑요석

 손가락은 병의 치유를 상징하는데 內臟을 제거하기 위해 切開한 腹部部位에 놓았다.

 =인간 다리 부적  -古王國, 제5~6왕조  -BC 약 2500~2130년  -紅玉髓

 死後世界에서도 잘 움직이기를 祈願하기 위해 만들었다.  (*髓: 뼛골 수)


                

             (53) [死者의 書] 第30章

            *死者의 書: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埋葬한 死後世界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死者의 復活과 永生의 획득을 돕는

              葬禮文書의 두루마리이다.


               

            (54) 티예트 부적(이시스의 매듭) (뒤 ①)-

                              제드기둥 부적(오시리스의 척추) (앞②)

     =① 티예트 부적(이시스의 매듭)  -新王國, 제18~19왕조  

           -BC 약 1539~1075 -碧玉

       티예트(Tyet)는 이시스女神이 찬 벨트의 매듭을 뜻한다. 이것은

       <死者의 書>에 따르면 이 부적은 이시스에게 肉體를 보호해 줄 것을

       기원하는 부적으로, 碧玉으로 만들어 미라의 목에 놓아야 한다.

       형태는 앙크(Ankh)와 비슷해 보이지만 팔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이 부적이 자주색이나 붉은색으로 만들어 ‘이시스의 피’를

       의미하기도 한다. (*碧: 푸를 벽)

    =② 제드기둥 부적(오시리스의 척추)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BC 약 664~332  -파이앙스

       제드(djed)는 원래 나무기둥을 뜻했으나 後期時代에 이르러 오시리스의

      脊椎를 상징하게 되었다. <死者의 書> 제155 주문에서는 이 부적을

       장례식 당일 날 屍身의 목에 올려놓는다고 했다. 葬禮를 主管하는 司祭는

      부적을 올려놓으며 “오시리스여, 다시 일어서십시오! 다시 한번 척추가

       생겼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脊: 등마루 척 *椎: 등골 추)


(55) 심장 스카라브 부적(Heart Scarab)  -후기왕조시대, 제26왕조 –BC 664~525  -凍石, 金箔

이집트인들은 心臟이 사람이 살면서 했던 모든 생각과 行動을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生前의 나쁜 짓까지도 알고 있어 亡者가 永生을 얻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심장 스카라브라고 부르는 특별한 부적을 死者의 心臟에 올려두었다.

스카라브는 쇠똥구리 또는 풍뎅이모양의 부적이다. 이 심장 스카라브에는 <死者의 書>

제30장의 내용을 새겼다. 심장의 무게를 다는 審判에서 主人을 背叛하지 않도록 심장에게

부탁하는 글이다.

*스카라브(scarab)

古代 이집트인이 매우 神聖視한 하나의 甲蟲이며 그 모양을 본 딴 護符로, 天地創造의 神

케페리(Kheperi)로 숭배되어 작은 모양의 護符·印章·裝身具 등을 만들었다.

*凍石: 質 좋고 모양이 고운 滑石의 하나.

흔히 잿빛 또는 엷은 녹색이며, 蛇紋石이나 雲母 片岩 속에서 발견된다.

도장이나 彫刻의 재료, 耐火材料, 絶緣材料 등으로 쓴다. (*凍: 얼 동 *蛇: 긴 뱀 사)


(56) 이시스, 어린 호루스, 네프티스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BC 305~30  - 파이앙스에 釉藥

세트에게 殺害된 오시리스를 다시 살려 호루스를 낳은 이시스는 오시리스가 死後世界로

간 뒤 여동생인 네프티스와 함께 호루스를 키운다.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죽이고

이집트의 王座를 빼앗은 질투심 많은 세트를 피해 아들을 숨겼다. 미라의 몸통 아래쪽에

놓는 부적으로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호루스를 보호했던 것처럼 죽은 이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奉獻했다. (*釉: 광택 유)


(57) 파타이코스 부적  -後期王朝時代, 제26~30왕조  -BC 약 664~332  -파이앙스

난쟁이神 파타이코스(Pataikos)는 악어 두 마리 위에 서서 양 손에 뱀의 목을 쥐고 있다.

머리 위에는 太陽神을 상징하는 스카라브가 놓여있고, 양 옆에는 오시리스의 夫人과

여동생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서있다. 뒷면에는 死者의 靈魂 중 하나인 바(bar)새가 있다.

이 부적은 死後世界에서 뱀과 악어로부터 死者를 보호하도록 끈을 연결해 死者의 목에 걸었다.

파타이코스는 난쟁이神 베스나 악어 위에 서있는 어린 호루스神(하포크라테스)과 聯關이 있다.


(58) 센카마니스켄(Senkamanisken)王의 샤브티(Shabti) (왼쪽) -

                                    피누젬 Ⅰ세(Pinudgem Ⅰ)의 葬禮 彫刻像

=센카마니스켄(Senkamanisken)王의 샤브티(Shabti)  -수단, 누리, 피라미드 Ⅲ 

                                          -후기왕조시대, 제25王朝  -BC 약 643~623  -凍石

=피누젬 Ⅰ세(Pinudgem Ⅰ)의 葬禮 彫刻像  -데이르 엘바하리  -제3중간기, 제21왕조 

                                      -BC 1025~1007  -파이앙스

 샤브티(Shabti)와 葬禮彫刻像은 神이 死者에게 저승에서 요구하는 各種 일을 대신해서 하는

 下人이다. 여기에서는 괭이를 들고 있어 農事를 대신해서 하는 의미를 가진다.

 센카마니스켄王의 샤브티에 새긴 聖刻文字 주문은 <死者의 書> 6章에 나오는 내용으로,

 누비아의 王 센카마니스켄을 대신해 來世에서 일할 것으로 샤브티에게 부탁하고 있다.

簡略하게 이름과 職位만 적은 文句도 葬禮 彫刻像에서 볼 수 있다.


(59) 목걸이  -후기왕조시대, 제26~30왕조  -BC 약 664~332  -파이앙스

後期王朝時代에는 그물처럼 생긴 목걸이가 미라 싸개의 일부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목걸이는 一種의 갑옷처럼 呪術的 保護網을 형성해 死者의 肉體를 해로운 힘으로부터

막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後期王朝時代 末에는 목걸이가 미라 全身을 감쌀 수 있을 만큼

커져 그전까지 미라 겉싸개 役割했던 커다란 亞麻 천 壽衣를 대신하기도 했다.

 

文字와 藝術


(60 文字와 藝術


                  

             (61) 네페르카우의 石碑  -테베  -新王國, 제13~20왕조 

                                               -BC 약 1292~1075  -석회암

       이 石碑는 저승세계의 構造를 보여준다. 맨 위쪽에는 太陽이 배를 타고

       來世를 이동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그 아래는 네파르카우가 來世를 다스리는

       여섯 명의 神에게 禮拜드리고 있다. 긴 碑文은 葬禮貢物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下端왼쪽 구석에서 네파르카우는 두 손을 든 채 위쪽에 적힌 祈禱文을

       暗誦하고 있다. (*誦: 외울 송)


(62) 네헤메스라타워의 石碑  -후기왕조시대, 제25~26왕조  -BC 760~656  -석회암, 채색

부분적으로 채색된 이 石碑는 석비의 주인인 네헤메스라타위가 오시리스와

레-호라크티(Rê-Horakhty)神에게 供物을 바치는 모습을 그렸다. 머리에 太陽 원판이 달린

매로 표현된 太陽神 레-호라크티는 저승의 神인 오시리스의 도움으로 매일 復活한다.

이 두 神이 함께 네헤메스라타위의 부활을 돕고 있다. 그림 아래에 적힌 供物祈禱文은

來世에서 그녀의 靈魂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이 끊어지지 않도록 적은 것이다.


(63) 제피와 안케네스이테스의 석비  -기르가  -제1중간기  -BC 2170~2008  -석회암, 안료

이 석비는 무덤 내에서 행하는 祭祀儀式을 보여준다. 제피와 그의 夫人 안케네스이테스는

供物 테이블 앞에 서 있는데 이 테이블에는 음식이 나서 자라는 ‘들판’을 뜻하는 象形文字를

새겼다. 石碑 오른쪽 象形文字는 저승에 있는 두 사람에게 빵과 맥주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祈禱文이다.


                 

              (64) 우세르베크티나수와 파네체르의 石碑  -사카라 

                   -新王國, 제18왕조  -BC 1539~1425  -석회암, 顔料흔적

       이 石碑에는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네 사람이 등장한다. 네 명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碑文을 통해 각기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石碑 왼쪽은 夫婦를 표현한 것이고, 그 위에 적힌 글에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집트의 모든 人物表現에서 머리와 다리는 옆면으로, 어께에서 허리까지는

       앞면으로 그린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姿勢이나 이렇게 하면

       인간의 全體 輪廓을 표현할 수 있다. (*廓: 둘레 곽)


(65) 아문호테프 Ⅰ세의 石碑

이 석비는 아문호테프 Ⅰ世로부터 7代가 지난 아문호테프 Ⅲ세 때 만들었다.

아문호테프 Ⅰ세는 死者들의 땅을 다스리는 王인 오시리스神에게 예배드리고 있다.

그 옆에 王의 母親 아흐모세-노프레타리가 있다. 王은 現世와 來世 사이에서 神과 연결된

存在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66) 민호테프의 석비  -사카라  -新王國, 제18~19王朝,  -BC 1530~1075

이 석비에는 出納責任者인 민호테프의 葬禮供物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象形文字는 그림을 사용해 소리를 표현한다. 이 문자는 하나, 두 개, 혹은 세 개의 자음은

표현할 수 있으나 母音은 표현할 수 없다. 중간줄 왼쪽에서 두 번째 그룹에 있는

供物테이블처럼 생긴 記號가 물건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도 많다. 또는 그린 물건과

發音이 같은 개념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마지막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그룹에 있는

앙크 상징은 ‘생명’ 또는 ‘살다’를 뜻하는 글자이지만 기호는 샌들끈 모양이다.

이집트어로 샌들끈이라는 단어의 발음과 ‘生命’을 뜻하는 단어와 소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67) 서기(書記)가 표현된 석비  -테베  -후기왕조시대, 제25왕조 후기~제26왕조 초기  

                                                     -BC 670~650  -석회암, 안료

     이 석비에는 무덤 주인인 몬투엠하트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표현했다. 왼쪽에 일부만

     남아 있는 人物은 나일강河口의 監視者이며 오른쪽의 인물은 書記이다. 두 사람의 실제

     이름은 기록하지 않고 職位만 적혀 있다. 書記의 몸은 정면이고 머리는 전형적인 옆모습이다.

     서기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들고 흔히 글을 쓸 때 취하는 자세인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68) 파디마세스(Padimahes)  -타레모우(레온터폴리스) 

                    -後期王朝時代, 제25왕조~26왕조  -BC 680~650 

                    -長石 斑點이 있는 花崗閃綠巖 (*斑: 아롱질 반 *閃: 번쩍일 섬)

       이 彫刻像의 주인공은 ‘파디마헤스’이며,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들어 앞을

       보고 있다. 이 彫刻像은 神殿의 바닥에 놓아 파디마헤스가 神들을 위한 儀禮에

       영원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人物彫刻像을 神殿에 모시는 이유는

       자신의 魂이 무덤에서 나와 조각상에 깃들어 신에게 바친 供獻物을 나누어

       가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내용은 古代都市 타레모우(Taremou)의

       神들에게 供物을 바치고 싶다는 소원을 담은 祈禱文이다.


                   

               (69) 머리조각 일부(石棺뚜껑) 

                     -新王國, 제18王朝 後期~제19왕조 初期, 아마르나 時代~

                       람세스 시대  -BC 약 1336~1250  -砂巖

        이 彫刻像은 두툼한 눈두덩, 肉感的이고 두툼한 입술이 微笑짓듯 살짝

        올라가 있는 모습으로 제18王朝 後期와 제19왕조 初期의 특징을 담고 있다.


                 

             (70) 긴 假髮을 쓴 女性  -新王國, 제18왕조 후기~19왕조 초기  

                                          -BC 1336~1279  -석회암, 채색

       古代 이집트인들은 祖上의 彫刻像을 집에 모셔 놓고 死後世界에서의

       편안한 삶을 祈願했다. 머리의 푸른 染料, 얼굴의 노란색 염료흔적은

       죽은 女性이 來世에 到達해 女神의 푸른색 靑金石 머리카락과

       노란색 황금빛피부를 갖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71) 인물상(人物像)  -中王國, 제12왕조, 아무넴하트 1세~

                     센워스레트 2세 治下  -BC 1938~1837  -석회암, 채색

         이집트에서 書記는 文字를 기록하는 역할을 했고, 上流層에 속할 정도로

         身分이 높았으며, 서기는 주로 글을 읽거나 쓰고 있는 모습으로 彫刻되었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무릎에 손을 올려놓은 이 彫刻像의 포즈는

         數百 年 前인 古王國의 제5王朝 때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넓은 假髮과

         땅딸막한 얼굴은 제12왕조 초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의 앞치마에 쓴

         銘文은 死者의 靈魂에 供物을 바칠 것을 주문하는 祈禱文이다.


​(72) 얼굴彫刻 一部(石棺뚜껑)  -룩소르  -新王國, 제18王朝 初期  -BC 약 1539~1400  -화강암

典型的인 아치모양 눈썹에 눈의 앞꼬리가 뒤꼬리보다 낮고, 化粧으로 표현한 눈썹線이

귀까지 길게 빠져있다. 이는 제18왕조 初期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73) 머리彫刻 一部  -中王國, 제13왕조 초기  

                                        -BC 약 1759~1675  -검은색 화강암

              이집트 遺物 중에는 이 彫刻처럼 부분적으로 파괴된 것들이 많다.

              彫刻의 製作 年度는 비록 銘文은 없으나 각각의 특징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이 조각은 갸름한 얼굴에 솟아 오른 광대뼈,

              뾰족한 턱으로 보아 中王國 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입술線이 뚜렷하고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74) 죽음 뒤의 世界


(75) 死者의 書


(76) 死者의 머리 위를 떠돌고 있는 바(Ba),  [아니(Ani)의 死者의 書]  -英國 博物館 所藏

*아니(Ani) 파피루스

  現存하는 <死者의 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BC 1240년에 썼으며, 永生을

  祈願하고 神을 칭송하는 讚歌들이, 아니(Ani)와 그의 아내가 저승을 여행하고

  죽음의 神 앞에 서는 장면을 묘사한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 (*讚: 기릴 찬)


(77) 미라 붕대(繃帶)  -프톨레마이오스 時代 혹은 그 이후  -BC 332~AD 100  -아마천, 잉크

이 미라 繃帶에는 死者의 領域에 있는 靈魂에게 음식을 바치고, 그 음식이 그들에게 無事히

도달하기를 祈願하는  <死者의 書> 제148 呪文을 기록하였다. 死者는 제드기둥 앞에 서서

女神이 받치고 있는 오시리스레하라크티(Osiris-Reharakhty)形象에 香을 피우고 있다.

       (*繃: 묶을 붕)


(78) 미라 붕대  -프톨레마이오스 時代 혹은 그 이후  -BC 332~AD 100  -아마천, 잉크

이 미라에 기록한 것은 <死者의 書> 제148章으로, 死者가 맞이할 여러 評議會의 神들

앞에서 死者를 辯護해 달라고 神에게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 붕대의 오른쪽 글귀 부분과

떨어져 있는 곳에 ‘세 번째’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것은 전체 미라붕대 중에서 이 띠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시이다.


(79) 미라 붕대(Mummy Bandage) (左半部)  -프톨레마이오스 時代 혹은 그 이후 

                                                           -BC 332~AD 100  -아마천, 잉크

<死者의 書>에는 心臟을 다루는 呪文이 많다. 古代 이집트인들은 마음이 있는 곳이

심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붕대에는 오시리스의 法庭에서 死者에 대해 불리한

證言을 하지 말아 달라고 심장에게 懇請하는 呪文을 썼다.

이런 呪文은 미라의 심장 위에 놓이는 스카라브에 흔히 새기는 文句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러 스카라브는 풍뎅이 모양으로 표현된다. (*懇: 간절할 간)

*스카라브(scarab)

古代 이집트인이 매우 神聖視한 하나의 甲蟲으로 그 모양을 본 딴 護符로, 天地創造의 神

케페리(Kheperi)로 숭배되어 작은 모양의 護符·印章·裝身具 등을 만들었다.


(80) 미라 붕대(Mummy Bandage) (右半部)  -프톨레마이오스 時代 혹은 그 이후 

                                                             -BC 332~AD 100  -亞麻천, 잉크


(81) 死者의 書  -제3中間期, 제22王朝  -BC 약 945~712  -파피루스, 잉크

아문(Amun)神을 모시는 상당히 높은 지위의 神官을 위해 만든 것으로,

<死者의 書> 제15章과 제17章의 내용을 담았다. 第15章은 太陽神에게 바치는 讚歌이며

第17章은 死後世界에서 문제에 逢着했을 때 難關을 克服하기를 祈願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主人公은 테베(*Thebes, 古代이집트 新王國時代의 首都)의 司祭인

제드콘수이우에판크로, 太陽神 레호르아크티 앞에 서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세로로 쓴 글에는 死者를 환영하는 神의 인사말을 비롯해 死者의 이름과 家系圖를 적었다.


(82) 저승의 書  -제3중간기, 제22왕조  -BC 약 945~712  -파피루스, 잉크

<저승의 書>에서는 太陽이 來世에서 12시간동안 지나가는 길을 그림과 더불어 자세하게

설명했다. 太陽이 배를 타고 저승세계를 통과하여 아침에 다시 살아있는 者들의 세계로

돌아가는 旅程과 그 과정에서 이를 방해하는 敵들을 물리치는 것을 보여준다.

이 파피루스는 太陽이 살아있는 者들의 땅에 다시 떠오르기 直前인 12번재 時刻을 다루고 있다.

이집트사람들은 自身을 太陽神과 同一視함으로써 死後世界에서 自身의 存在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第3中間期 以前에는 王만 이 文書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以後에는 高位官僚들도 死後世界로 들어가기 위한 補助道具로 이 문서를 이용했다.

*파피루스(papyrus): 古代 이집트에서 파피루스 풀 줄기의 섬유로 만든 종이.


(83)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을 조사하는 東方學者들 

                                                   -일러스테레이트 런던뉴스 삽화  -1874년

로제스타스톤의 발견으로 유럽 全域에서 古代 이집트에 대한 關心이 高潮되었으며,

各國의 言語學者들은 象形文字의 解讀에 경쟁적으로 매달렸다. (*潮: 밀물 조)

*로제타석[Rosetta Stone]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遠征時 砲兵士官 부샤르가 알렉산드리아市 東方 약 60km

떨어진 나일江河口의 로제타마을에서 陣地構築中에 발굴한 花崗閃綠巖 碑石조각이다.

1822년 聖刻文字의 解讀에 성공하여 國王 프톨레마이오스 5세에 대하여 독실한 信仰과

德行을 稱頌한 神官의 頌德文으로 王의 戴冠式 다음해인 BC 196년의 기념식날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稱: 일컬을 칭)

 

 

이집트 더 보기

 

BC 3000년경


               

            (84) 달력의 사용  -콤 오보(Kom Ombo) 寺院壁에 새긴 聖刻文字 달력.

               *聖刻文字: 神聖한 彫刻 글자라는 뜻으로 원래는 古代 이집트

                              象形文字를 말한다.


                

             (85) 數學과 幾何學의 발달  -린드 파피루스 

                                     -BC 1650년경  -영국박물관 소장


                

            (86) 醫學의 발달  -콤 오보(Kom Ombo) 寺院 壁에 새긴 手術道具

 

BC 2500년경

              

           (87) 스핑크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19세기 말 촬영 

                                                             -대영박물관 소장

 

BC 1500년경


               

            (88) 오벨리스크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로 옮긴 투트모스 Ⅲ세의 오벨리스크


                

            (89) 女王 핫셉수트  -데이르 알바흐리에 있는 핫셉수트의 葬禮寺院

 

BC 1250년경


              

           (90) 람세스 Ⅱ세  -룩소르(Luxor)神殿의 람세스 Ⅱ세 石像

 

BC 5世紀


                

             (91) 헤로도토스의 이집트여행  -헤로도토스頭像 

                               -2세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BC 69~30년


                 

             (92)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Ⅶ) -피에르 미냐르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1635~1640   -얘르미타시 박물관 소장

*클레오파트라 7세  -출생/사망: BC 69~BC 30  -在位期間: BC 51∼BC 30

프랑스의 數學者·哲學者인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만 낮았어도

世界 歷史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西洋美人의 代名詞인 클레오파트라는

容貌와 姿態의 女性的 魅力과 數個 外國語를 자유롭게 驅使하는 外交手腕을

발휘하여, 카이사르·안토니우스 두 사람의 로마英雄을 操縱하여 激動期의

이집트王國을 능란하게 유지해 나간 智略家 女王이었으나 才色을 兼備한 이 女性에

대해서 단지 蠱惑的인 매력만 강조되어, 오늘날까지 妖婦·奸婦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나 아우구스투스皇帝의 帝政 創生神話를 형성하기 위해 꾸며낸 說話로

보는 見解가 있다. 우리가 보통 클레오파트라女王은 한 명인줄 알았는데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은 마케도니아의 王家, 특히 프톨레마이오스家門이

이집트에서 愛用한 女性의 이름으로, 우리가 일고 있었던 女王은 클레오파트라 7세이다.

그녀는 BC 69년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BC 51년 이후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共同統治하였다.

그 후 한때 王位에서 쫓겨났으나, BC 48년 이집트에 와 있던 로마의 G.J.카이사르와

인연을 맺고 復位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戰死한 뒤인 BC 47년에는

막내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再婚하여 共同統治했다.

    (*이집트王室은 王室의 피가 다른 피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近親婚을 法으로

      정했었다.)  (*驅: 몰 구 *腕: 팔뚝 완 *蠱: 고혹할 고)

BC 41~BC 40년 M. 안토니우스와 인연을 맺었으며, BC 37년 결혼하여 政治的·

人間的 紐帶가 심화되었다. BC 34년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로마의

全體 屬州를 주었다(알렉산드리아의 寄贈). 그러나 BC 31년 악티움海戰에서 그녀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패배하여 再起를 꾀하였으나, BC 30년 옥타비아누스군의

공격을 받고 안토니우스도 사망하고, 클레오파트라도 毒蛇를 이용해 自殺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프톨레마이오스 王家 300년의 終末이고, 로마에 의한

地中海世界 支配의 成功이며, 옥타비아누스에 의한 로마帝國의 開幕을 뜻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王家

  BC 305~BC 30년 이집트를 다스렸는데 이들의 起源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大王의 部下將軍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BC 323년 알렉산드로스 死後

이집트總督으로 임명되었다가 스스로 이집트의 王이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그를

파라오로 인정하고 그의 後孫들이 약 300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王家의 통치 당시 이집트의 首都는 알렉산드리아였고 王家는 이집트의

傳統과 함께 그리스文化도 유지했다.

 

642년


               

            (93) 잊혀진 文明  -쿠푸王의 大피라미드 입구(중앙)와

                                        알마문의 侵入口(오른쪽 아래)

 

1798년


                 

             (94) 나폴레옹의 이집트遠征  -피라미드 전투 

                                   -1898년  -베르샤유宮 박물관 소장

 

1922년


                 

             (95) 투탕가멘 무덤의 發掘

 

1967년


                  

              (96) 아부심벨 神殿과 아스완댐 建設


(97) 이집트 제19왕조(BC 1300년경), 파피루스

 

 

踏査를 마치고….


(98) 국립중앙박물관 으뜸홀에서 본 南山과 서울타워


(99) 午餐場, 電鐵 舍堂驛 12번출구에 있는 [바른식 시골보쌈과 감자옹심이 별관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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