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 김상준동기의 발인식은 12월 8일 06:30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동기생 5명이 참석한가운데 추도 예배를 드린 후, 07:00 장지로 출발,
08:00 죽전간이 정유장을 경유, 대전현충원에 도착하여
11:00부터 35분간 안장식 행사를 진행하였다.
김성회동기의 고인에대한 약력을 소개에 이어 김수남 동기가 조사를
읽으면서 고인 생존시 생생한 모습을 이야기하며 고인을 보내는 아쉬움
과 함께 명복을 빌었다.
2. 안장식순서는 조총,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略曆)소개, 조사(弔詞),
헌화, 하관, 허토순으로 진행하였다.
3. 이 날 발인식에는 김성희, 김수남, 이해종, 최희영, 최석립동기가
참석하였고 안장식행사에는 동기회장을 비롯하여
김수남부부, 이인원부부, 최권영부부, 최석립부부, 김성희, 김정환,
문기성, 신창균, 신형철, 이채우, 최희영, 하범승, 현민웅부인 등
18명이 참석하였고 유가족, 동료, 친지를포함 약 50 여명이 참석하였
다.
4. 헌화순서는 상주, 대전현충원 의전관, 육본대표, 동기회장순위로
진행하고 하관식이 끝난 후 유가족, 동기생 순서로 분향하였다.
5. 장례기간 중에 문상하여 주신 동기생과 발인식과 대전현충원
안장식에 참석하여 주신 동기생 여러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동기회장 성백관 자료제공)
안장식(사진제공: 이인원동기)
유가족
동기생
略曆보고(略曆 참조)
弔詞(弔詞참조)
하관
허토
가묘
고인의 약력(略曆)소개
김장군께서는 1941년 12월 20일 평북 태천에서 아버님 김봉국씨와 어머님 이숙자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 나셨습니다.
해방 후 월남하여 명문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품고 1959년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읍니다.
사관학교에서는 공부에서도 우등생이었을 뿐만아니라, 육사대표 럭비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10번 Stand Off로서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많은 선 후배 생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1963년 육사 졸업하고 2년의 전방근무를 마친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에 편입하여 2년간 수학하였고, 이어 육군사관학교에서 2년간 후배 생도교육에 열성을 다하다가 월남전에 소충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장교에게 필요한 전투역량배양에 노력하였으며, 이 후 지휘관, 참모직을 훌륭히 수행하여, 드디어 1984년 1월 1일 부로 동기생 중에서 1차로 장군 진급을 하였습니다. 이 후 보병 제1사단장,제1군단장, 합참작전본부장을 역임하였고, 1994년7월 31일중장으로예편하였습니다. 군 근무중에는 참모로서는 작전계통에서, 지휘관으로서 엄정하면서도 명철한 판단으로 상하급자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음은 물론 군 전투력 중강에 기여하여 대통령 표창과 보국훈장 2급 국선장, 3급 천수장을 수령하였습니다.
군의 발전을 위하여 공부에도 열심하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미국 Columbia 대학교 동아연구소 객원교수로 1년간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예편 후에는 방산관계 회사인 (주)풍산에서 8년간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여 풍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가족으로는 1971년 11월 27일 미인이신 이영희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김세진군과 따님 예경, 윤경 등3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만 74년의 아쉬운 삶을 마치시고 하나님 품으로 가신 김상준 장군의 명복을삼가 빌면서 약력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2015년 12월 8일 육사19기 동기생 김 성 희
조사(弔詞)
상준아! 김상준! 나의 사랑하는 벗이여, 어찌하여 대답이 없는가?
어찌하여 이 추운 겨울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두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홀로 떠났단 말인가?
이 자리에는 자네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자네를 아끼던 친구들이 슬픔을 삼키며 모여 있네.
자네를 보내면서 자네와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네.
1959년 2월 청운의 뜻을 품고 육군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나 자네와 한 내무반에서 지낼 때 자네의 준수한 모습과 명석한 두뇌로 인하여 자네는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네!
자네는 1학년생도 때부터 럭비선수로 선발되어 선수생활을 하면서 다른 생도들보다 훨씬 바쁜 생활을 하였지.
때문에 저녁 자습시간이면 럭비연습으로 지친 자네는 내 앞에서 자주 졸곤 하였지.
그러다가 내무반장이었던 김진영 선배로부터 꾸중을 많이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 시험을 보면 언제나 자네의 성적이 나보다 좋아서 나는 자네가 무척 부러웠었다네.
임관 이후로는 멀리 떨어지게 되어 별로 가까이 지낼 수는 없었지만 자네의 부하로 지냈던 후배들을 내가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자네를 존경하고 칭찬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네와 친구된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네.
또한 자네의 명석함으로 인하여 자네를 아는 상사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자네를 자기 밑에 두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네.
자네가 승승장구하여 장군으로 진급되고 중장까지 되었을 때 자네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보았으며 그 이상의 직위라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었네.
그러나 시대를 잘 못 만나 그 이상의 진출을 못하게 된 것이 무척 아쉬웠다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그 이상의 직위에 올라간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설령 대통령까지 되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음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네는 앞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전역 후 예수님의 가르침에 몰입하여 성직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않았던가? 우리는 자네가 우리의 곁에 좀 더 오래 있기를 기원했었는데 안타깝게 너무 일찍 떠났구려.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린 것이니 우리는 자네를 보낼 수밖에는 없네. 이 고달픈 세상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나. 그리고 우리는 자네를 보지 못하더라도 자네는 우리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곳에서 남은 가족 잘 지켜주시고 꿈에라도 자주 나타나서 남은 가족 위로해 주게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벗들이여!
상준이의 몸은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우리의 곁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머지않아 그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쥐었다 할지라도 또 이 땅의 재물을 모두 가졌다 할지라도 죽어서 천국 가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요, 이 땅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렵게 살았을지라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가게 된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됩니다.
저는 상준이가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품 안에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친구들이여!
우리 모두 남은 인생을 잘 추스려서 성공한 인생을 삽시다.
이영희 권사님과 자녀들에게 권고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련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시련을 잘 참고 견디고 극복하면 그 다음에는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고인은 떠나면서도 가족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가족들이 그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라도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영희 권사님과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가호가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12월 8일 김 수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