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용(acceptance)과 자기-연민(self-compassion)

작성자이성준|작성시간12.04.18|조회수599 목록 댓글 0

※본 글은 <셀프 컴패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아래 글에서 '나'는 저자인 크리스토퍼 거머입니다.

 

 

수용이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수용은 호기심, 용인, 기꺼운 마음, 친화를 포함한 다양한 경험을 망라한다. 수용의 반대가 저항이다. 저항이 고통을 낳는 반면, 수용은 고통을 누그러뜨린다.

  수용한다고 해서 나쁜 행위를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다. 수용이란 지금 이 순간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정서적으로 열려 있음이다. 우리가 어떤 고통스런 관계에 있을 경우, 그 관계 전체를 두고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수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용은 "이건 내게 상처를 줘!"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행위가 자신들의 기분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알아차릴 때, 많은 이들이 삶(관계, 식습관, 일 등)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나는 봐왔다. 수용이란 체념이나 침체가 아니다. 수용에는 자연스럽게 변화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자각이 없다면,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 후보자한테 투표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선뜻 수용해버릴 수 있다. 맹목적 수용은 또한 감상으로 흘러 버릴 수 있다. 현실으 미화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감상은 결코 수용의 본보기가 아니며, 결국 더 많은 고통으로 이끌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사용하는 '수용'이란,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우리의 감각, 감정, 사고를 경험하려는 의식적 선택을 가리키는 말이다.

 

※내가 만약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면, 마음챙김 명상을 하는 것처럼 똑같이 "나는 너무 화가나~! XXX OOOO" 하면서 스스로의 감정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분이라면, 하느님에게 나는 이렇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바로 수용입니다. 혼자 있을 때, 더 깊은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내뱉는 것이 바로 수용입니다. 그런 감정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수용입니다.

 

 

 

자기연민이란?

 

자기연민이란 수용의 한 형태이다. 수용이 우리한테 일어나고 있는 것, 곧 감정이나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을 가리킨다면, 자기연민은 그런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을 수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연민이란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용과 자기연민은 더 나은 기분을 느끼려고 한사코 애쓰기를 포기한 뒤에 더 쉽게 일어난다. 이는 알콜중독자모임(AA, Alcoholics Anonymous)에서 "자포자기 끝에 주어지는 선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났을 때, 여러분은 십중팔구 수용과 자기연민을 더 잘 받아들일 것이다. 여전히 더 기분이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도움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회의가 든다. 신념은 거의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마음이 완전히 고갈된다.

  이 시점이 정신에서 가슴으로 작업을 옮겨갈 호기다. 자기연민은 정확히 아무런 의식도 노력도 들어지 않는 태도다. 우리가 고통 속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분투하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면, 가슴은 저절로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좀 더 기분이 좋아지려고 애쓰기를 그만두고,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찾아낸다.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다.

  '돌봄'과 '치유'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치유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 때, 우리가 애써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돌봄이란 치유하려는 온갖 노력이 실패했을 때도 여전히 해볼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마치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것과 흡사하다. 곧 애써 노력하길 그만두고 부드럽게 죽음의 경험에 동참하는 것이다. 정서 생활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분투하기를 빨리 멈출수록 더 낫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돌봄을 통해 치유가 이루어진다.

  'compassion(연민)'은 라틴어 어근 'com(더불어)'과 'pati(고통받다)'에서 나온 말로, '함께 아파하다'라는 뜻이다. 진정한 연민을 보낼 때, 우리는 상대의 고통 속에 동참한다. 연민의 감정을 드러냄은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는 때를 알아챈다는 뜻이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나 저항을 그만둔다는 뜻이며, 자연스런 자애심이 고통받는 사람한테로 흐른다는 뜻이다. 연민의 체험은 불편한 정서에 저항하려는 성향을 완전히 포기함을 뜻한다. 연민은 온전한 수용이다. 곧 연민이란 사람, 그 사람이 겪는 고통, 고통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발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이다.

  자기연민은 남들에게 베푸는 연민을 똑같이 우리 스스로한테 베푸는 것일 뿐이다. 머리말에서도 지적했듯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나 일상의 고역을 치러내야 할 때, 그저 주목의 방향을 조금 돌리는 것만으로 우리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잊히거나 억눌려 있더라도 자기연민의 본능이 있다. 사실 자기연민은 고통에 저항하려는 본능보다 훨씬 강력하다. 누구나 자기연민을 연마할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보면, 자기연민은 자기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불편함, 감정들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겠죠. 그 불편함과 감정들을 피하고 싶은 우리 마음도 존재함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 피하고 싶은 욕구마저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