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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단어 8 빌 3:10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20260614

작성자라미닌|작성시간26.06.14|조회수20 목록 댓글 1

신약단어 8 3:10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교제(친교)’는 성격, 취향, 학벌, 재력, 자녀 나이 등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나와 코드가 맞거나 나에게 이익이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선택적으로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출발점은 공통의 취향이지요. 세상의 교제는 주된 목적이 개인의 외로움 해소, 정보 교류, 혹은 감정적인 만족과 카타르시스에 있습니다. 만나서 즐겁고 위로를 얻으면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한 겁니다. 목적이 개인의 만족이지요. 세상의 교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해관계가 틀어지거나, 한쪽이 너무 힘들어져서 부담이 되면 쉽게 느슨해지거나 끊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건부로 지속하는 한계가 있지요. 교제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고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 교제를 친교(fellowship)’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Gemini)./

 

신약성경에서 말씀하는 교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헬라어 어근 코이노스(koinos, 공통의/함께하는)’에서 파생된 단어(명사, 동사, 접두어 결합형 포함)는 총 6번 등장합니다. 이 중 순수한 명사 형태인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는 총 3번 나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 말씀한 코이노니아의 핵심 구절들을 문맥과 내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말씀한 교제는 첫째, 선교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라입니다(신약단어, 169)./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해 물질(선교 헌금)을 보내고 마음으로 함께하였습니다. 세상의 교제: 만나서 즐겁고 위로를 얻으면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면, 바울의 코이노니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복음에 참여하고 재정을 후원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빌립보서 15절에서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명사 코이노니아)하고 있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NIV“because of your partnership in the gospel from the first day until now,”입니다. 여기서 “partnership”이 헬라어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이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복음 사역에 함께 참여한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첫날부터는 빌립보 교인들은 교인이 된 그날부터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도왔습니다(굿뉴스, 414)./ 3~5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쁨으로 기도합니다. 이 기쁨은 그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데서 나오며 사도에 대한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도의 안녕에 대한 깊은 관심도 수반합니다(ESV 스터디, 2,334)./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감사한 첫 번째 이유는 재정 후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410절에서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전파하는데도 참여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무디주석, 2,121)./ ‘첫날부터는 빌립보 교인들이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를 가리킵니다. ‘참여하고는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위한 과업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여기에는 재정적 지원도 포함됩니다(4:15, 성경신학 스터디, 2,363)./ 바울이 크게 기뻐한 것은 그들에게 최초로 복음을 전파한 루디아가 집을 개방한 첫날부터 그들이 복음에서 교제하였기 때문입니다. 보통 교제는 신약성경에서 교인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는 편안한 경험을 사귐이라 합니다. 그러나 빌립보서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알리는 사명에 참여하는 것과 또한 다른 교인을 구제하는데도 사귐을 사용합니다(IVP 성경주석, 1,716~1,717)./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동역자라며 그들이 빌립보에 있을 때 어떻게 도왔고, 감옥에 있을 때 어떻게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는지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사역자들을 기도와 환대와 경제적 지원으로 도와야 합니다(LIFE 스터디, 2,293)./ 의미: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전도 사역에 물질과 기도로 긴밀하게 파트너십을 맺은 것을 고마워하는 맥락입니다. 여기서 코이노니아는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복음 사역에 함께 참여하고 협력하는 동역 관계를 의미합니다. 복음 전파에 참여함, 기도와 후원으로 동역함, 사명을 함께 나눔입니다./

 

빌립보서 415절에서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동사 코이노네오)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NIV“Moreover, as you Philippians know, in the early days of your acquaintance with the gospel, when I set out from Macedonia, not one church shared with me in the matter of giving and receiving, except you only;”입니다. 여기서 “shared with me”은 헬라어 κοινώνησεν (에코이노네센)으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의 동사형입니다. ,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단순히 헌금을 보낸 것이 아니라, 복음 사역에 함께 참여했고, 선교에 동역했으며, 물질과 마음을 나누는 코이노니아를 실천했다고 칭찬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기도로 후원한 영적인 차원과 재정을 지원한 실제적 차원에서 바울의 사역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마게도냐에 있는 데살로니가로 간 지 얼마 안 된 때(4:16)와 마게도냐를 떠난 뒤에서(4:15) 바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ESV, 2,342)./ 바울과 빌립보 교회와는 상호적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주었고, 교회는 재정 후원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목회적인 돌봤고, 교회는 물질로 필요를 채웠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칭찬했습니다. 그것은 헌금 이상이었습니다. 괴로움을 겪는 바울과 연대한 거였습니다. 그런 교회는 유일무이했습니다. 교회는 바울이 다음 사역할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선물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순종과 관대함으로 얻을 영적 유익 혹은 열매에 있었습니다(무디주석, 2,128)./ 여기서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는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가능성이 큽니다(성경신학, 2,372)./ 14~16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친절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괴로움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은 선물을 보내주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Macedonia) 속주인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로 갔을 때도 그들은 한두 번 쓸 것을 보냈습니다(IVP 성경주석, 1,729)./ 돈은 매력적이고 돈을 나누는 것은 스트레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프로젝트가 주님을 높인다고 판단하면 기쁜 마음으로 후원 요청에 응해야 합니다(LIFE 스터디, 2,304)./

 

바울이 말씀한 교제는 둘째, 성령님 안에서 영적으로 연합하라 입니다(신약단어, 167)./ 삼위일체 하나님, 특히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신앙 공동체 내부에 영적인 유대감이 흘렀습니다. 세상의 교제는 나와 코드가 맞거나 나에게 이익이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선택적으로 맺어지는 관계라면, 빌립보서의 교제: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빌립보서 21절에서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명사 코이노니아)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NIV“Therefore if you have any encouragement from being united with Christ, if any comfort from his love, if any common sharing in the Spirit, if any tenderness and compassion,”입니다. 여기서 “common sharing in the Spirit”는 헬라어 κοινωνία (코이노니아),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함께 참여하고 나누는 영적 교제와 동역을 의미합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코이노니아를 단순한 사귐이 아니라 복음과 성령 안에서의 공동 참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의 무슨 교제는 성령님이 빌립보 교인들을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 속으로 인도하셨다는 의미입니다(굿뉴스, 416)./ 바울은 권면, 성령님 안에서의 교제, 긍휼, 자비 등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이며 빌립보 교회 안에 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계속해서 발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마음을 같이하길 바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어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는 자세로 자신들의 다양한 은사를 사용해야 했습니다(ESV, 2,337)./ 여기서 조건절인 있거든은 권면과 사랑과 교제와 긍휼 등 표준적인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의지합니다. 권면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성령님과의 교제를 즐기는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했습니다(무디주석, 2,123)./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네 종류의 확신과 감정이 있음을 가정하며 각각 무슨이라는 말을 나열합니다(성경신학, 2,365)./ 여기서 권면은 위로나 호소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거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 됨을 호소한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면 교인은 당연히 그 사랑을 아무런 조건이나 차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령의 교제는 성령님이 교인에게 주시는 교제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 됨의 삶에 대한 강력한 근거입니다. 긍휼이나 자비는 교인이 다른 사람과 맺는 모든 관계의 특징이어야 합니다(IVP 성경주석, 1,720)./ 교인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영적 하나 됨을 강조하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마음과 목적에서 하나가 되라고 권면합니다(LIFE 스터디, 2,295)./ 의미: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성령 안에서 나누는 영적인 깊은 교제와 연합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기서는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영적 연합을 뜻합니다.

 

바울이 말씀한 교제는 셋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라 입니다(신약단어, 168)./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분의 부활 권능을 경험하기 위해, 그분이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라는 겁니다. 세상의 교제는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라면, 빌립보서의 교제:상대방의 아픔이나 감옥에 갇히는 위험까지도 내 것으로 여기며, 심지어 예수님을 위한 고난과 죽음까지도 기쁘게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빌립보서 31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명사 코이노니아)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NIV“I want to know Christyes, to know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participation in his sufferings,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입니다. 여기서 “participation”으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참된 신앙의 핵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라는 예수님에 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지식을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약적 의미에서 말하는 지식이나 앎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굿뉴스, 418~419)./ 10~11절에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 즉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또한 그 부활의 권능 즉 그리스도가 현재 하나님 우편에서 행하시는 권능을 아는 겁니다. 이 권능은 예수님이 겪으신 것과 같은 종류의 고난에 참여할 때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를 것이라는 소식입니다(ESV, 2,340)./ 바울은 10절에서 ‘~자 하여라는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를 얻는 목적은 첫째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고난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속적인 친밀함을 위해서였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영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부활의 몸은 그리스도를 얻는 최종적인 목표입니다(무디주석, 2,126)./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구원을 위한 사건 곧 반복될 수 없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또한 우리가 참여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겁니다. 그러나 고난은 결코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요셉은 구덩이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종국에는 고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받고 죽으셨지만 마침내 부활하셨습니다. 교인은 그분과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성경신학, 2,370)./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삶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경험에서 부활의 권능을 알고 또한 자기중심의 삶에 대하여 죽고 구원의 복음이 모든 백성에게 전파되도록 고난과 역경에 맞섬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그것을 뜻합니다(IVP 성경주석, 1,725)./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하나가 될 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능력을 경험합니다. 이 능력이 우리가 새롭고 거듭난 사람을 살도록 돕습니다. 또한 우리는 옛 생활 방식과 죄악된 욕망을 이미 죽어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그분의 죽음에도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그분을 위해 살도록 능력을 주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악된 옛 본성을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경험해야 부활도 경험하게 됩니다(LIFE 스터디, 2,300)./ 의미: 바울에게 코이노니아는 좋은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감옥에 갇히고 고난받는 자리까지도 기쁘게 함께 나누는 비밀스러운 연합을 의미했습니다. 여기서 코이노니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약하면 세상의 교제는 공통의 취향에서 출발해 개인의 만족을 얻다가 조건부로 지속한다면 빌립보서에서 말씀하는 교제는 복음을 전할 때 재정으로도 동참하는 것이요 교인들이 서로 자기 자랑하지 않고 성령님으로 연합하는 것이요 고난까지도 참여하므로 영광까지도 경험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배가 파선되는 고난을 겪었지만, 복음이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는 열매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면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결국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 고난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를 잘 알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합시다. 이 말씀을, 예배를 앞두고 하늘에서 주신 영감으로 청년들에게 적용한다면 교제는 파트너가 아니라 파트너십입니다. 세상에서는 파트너를 쉽게 바꾸지만, 성경은 동반 관계를 넘어 협력 관계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돈을 쓰면 오래가기 어려워요. 서로 상대에게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공통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결혼하면 한 주는 교회 가고 한 주는 놀러 가고 신앙이 하향 평준화됩니다. 신앙적으로 대화가 되는 사람과 사귀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고난과 허물까지도 감당할 사람과 사귀어야 합니다. 고난을 같이 이기면 결속력이 더 강해집니다. 우리 청년들이 이런 사람과 교제하다가 맞다고 생각하면 결혼해서 아들과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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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영우예성엄마 | 작성시간 26.06.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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