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취하여 6월의 마지막 날, 한 학기가 막 끝났다. 그리고, 드디어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아마 새벽부터인지도 모르겠다. 달팽이 걸음이라도 들에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시골 노모의 합죽 웃음이 떠오른다. 난 가방도 우산도 던져두도 두 발에 몸만 싣고 집을 나섰다. 얼마나 오랜만에 빈 몸으로 맞아보는 비인가. 소나기도 이슬비도 아닌 그 중간의 쾌적한 축복. 유년기 들판에서부터 맞은 비를 내 몸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비만 오면 저 어린 시절 시골 들판의 서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마냥 어린아이가 된다. 무거운 꼬리로 파리 쫓기에 지친 암소도 좋아하던 오뉴월의 소나기, 그 자연의 카타르시스는 세월이 흘러 늙어도 변함이 없다. 하늘 높은 곳, 세속과 가장 멀리 있다가 오직 순정함으로 내려오는 비라서 그럴까. 
그렇게 다산 들길을 지나고 낙동강을 건너 학교로 가는데 묵이가 뭐 하냐고 전화를 해왔다. 역시 비의 서정을 아는 남자, 빗속을 홀로 드라이브하다가 동병상련의 영혼을 찾았던 것. 파전에 막걸리가 그만이지만 알코올과 거리가 먼 묵이와 술잔을 건넬 수는 없어 커피 집으로 갔다. 창 밖 비에 젖은 의자에 앉아 마시는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 잔, 그리고 빈 잔에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빗소리만 들었다. 가끔 막거리 생각도 하면서 ㅋㅋㅋ. 
밤비 오세영 밤에 홀로 듣는 빗소리. 비는 깨어 있는 자에게만 비가 된다. 잠든 흙 속에서 라일락이 깨어나듯 한 사내의 두 뺨이 비에 적실 때 비로소 눈뜨는 영혼. 외로운 등불 밝히는 밤, 소리없이 몇천 년 흐르는 강물. 눈물은 뜨거운 가슴속에서만 사랑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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