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
세월이 쏜화살같이 빠르다는 말을 줄여 쏜살로 표현한다
2015년 12월 달력에 눈이 멎으면서 또 한해가 가는것을 실감한다
세월은 삭풍 날리며 을미년의 끝자락에 와 있다.
마지막 남은 12월 달력 한 장을 보면서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면서 상념에 젖게 된다.
빨리 어른이 되고픈 유년과 학창시절때는 참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느껴었는데... .
그놈의 시간은 쏜살같구나.
그렇지만..
추위에 웅크리며 온기를 찾다보면 그때 그시절 아이같은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일과 선과 공적을 쌓아야 한다.
마음과 육체가 분리되면서 죽음이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죽기를 바라거나 원하여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가장 정확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 죽음은 우리 안에 있다.
요즈음 얼마나 정서가 메말랐는지 모두가 바쁘다고 외치며 허둥대며 산다
사람들은 항상 붙어다니는 자기의 그림자가 있는지조차도 잊고 정신없이 쫓겨다닌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또한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에게도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라.
그 그림자는 항상 나를 졸졸 따라 다닌다.
그 그림자가 지워지는 날이 죽는 날이다.
죽음이란 무엇이던가.
육체와 마음(종교에서는 영혼, 정신, 명)이 분리되는 순간을 말한다.
그래서 마음이 없는 육체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조금 전까지 육체를 끌고 다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자동차가 시내에 굴러다니다가 운전사가 없으면 그 자동차는 정지되고 마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의무를 다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며, 진정 ‘참나’는 누구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육체가 나인양
육체에 연연해 살아온 사람은, 육체가 어느 날 갑자기 못쓰게 되었을 때 육체를 따라 죽을 수도
없게 된, 남아 있는 나를 그제야 본다.
즉 마음이 아뿔싸! 하고 어이할꼬! 어이할꼬!
아무리 땅을 치며 소리쳐 울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영혼이 있음을 부정하고 살았으니 영의 세계(마음의 고향)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신앙 세계
(천국·극락 등)에 들어가자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갈 곳 없는 이 내 마음, 인간계에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인연을 가진 자(파장이 일치하는 자)를
찾아갈 수밖에······.
세상에서의 한평생, 길다면 길지만 돌아서 보면 금방이다.
그 삶에서 우리는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한 점 두려움, 공포심도 없어야겠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환영받고 새 삶을 축복받기 위한 평소 마음의 준비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다를 것이다.
평소 삶의 일부를 선업에 투자했더라면, 노후에서부터 다음 세대에까지 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한 업을 지었으면 부귀 쌍전의 영화가 자손의 ‘사주인자(四柱因子)’ 주머니에 넣어지게 되며,
악업을 많이 쌓았으면 자손의 사주팔자에 고통과 악연이 넣어질 것이다.
가끔 나는 사주의 그 여덟 자 흐름에서, 그 부모와 조상이 지금 어떻게 되었으며 그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는지 등을 볼 때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음을 실감한다.
빛(viit)의 세계, 한없는 평화와 충만이 깃들인 님의 고향, 살아서 복되게 살고, 죽어서 영원한
행복 찾는 이 깨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비록 초광력과 우주의 존재를, 천지신명이 있음을 거부해도 좋다.
다만 육체를 벗어버린 진정한 나를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간곡히 바란다.
마음의 영원한 집을 눈앞에 두고, 우수수 늦가을 낙엽 지듯 떨어져 내리는 마음들,
살아서 숨쉴 때 단 5분간만이라도 ‘참나’를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남은 삶, 착하고 선하게 이끌어 보자.
사람이 죽으면 남는 것은 업적이고, 그 업적은 선이든 악이든 유전한다.
그래서 ‘닮았다’라는 것이다.
책/초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