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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詩-양전형 시인

작성자흙담솔|작성시간22.03.10|조회수311 목록 댓글 0

 

                                                                          양전형 시인                                                         

 

 

○ 대표 약력

 

* 1953년 제주시 오라동 출생

* 1994년 <한라산문학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 시집 <나는 둘이다><동사형 그리움><길에 사는 민들레><꽃도 웁니다><도두봉 달꽃> 외

* 제주어 장편소설 <목심> 발표

* 제5회 제주문학상 수상, 시집<허천바레당 푸더진다>로 2015년 제주시one city one book 작가 선정

* 연락처 : 010-6685-3960

 

 

 

서귀포 천리향

 

 

대문 없는 순아네 마당에 천리향이 산다

봄마다

혼자 피어 집을 지키기도 하고

고운 향기를 칠십 리 가득 뿌리기도 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봄이 왔는데

순아 아버지가 그만 목을 맸다

빚이 춥고 농사가 춥다더니

봄은 왔는데,

사방 온통 섬꽃들

봄이 왔다고 야단법석인데

너무 춥다며 땅 속으로 숨어들었다

 

천리향은 다시 피었다

업둥이 눈칫밥처럼 살금살금 피어나던 날

뜰에 대문처럼 서서 순아는 울었다

봉곳하던 가슴도 함께 피어

서러운 향기만

서귀포 천리 밖까지 나섰다

 

 

 

사계리 해당화

 

 

너울지며

바람 이고 달려와

산산조각 부서지는 숙명 파도가

흐드러진 꽃무더기 보았는 듯

오늘따라 갈기 높이 세웠다

갯마을 해당화는

바람의 속내를 단숨에 읽는다

 

그렇게 수십 년

모래밭에 내린 꽃의 뿌리는

외로움만 무시로 밀어 올린다

 

외로움으로 피워 낸 꽃은

풀풀 나는 향기가 요요롭다

 

어느 바다에서 흘러온 바람도

이 향기를 비켜갈 수 없다

이 잠결의 꽃잎을

한 번씩 품고 나서

풀린 다리 휘청이며 풀숲에 스러진다

 

외로운 향기 흐드러진

사계리 해당화

몰려드는 바람 모두 품으며 산다

멀리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가끔, 눈물 뚝뚝 떨구며 산다

 

 

 

입동 귤밭

 

귤나무 굽은 등허리에

하늘이 추운 듯 오도카니 앉아 있다

상심한 햇살은

할쑥한 얼굴로 서귀포 귤밭을 어슬렁거린다

 

방풍숲에선 이따금

팽나무 이파리 늙은 가을

새앙쥐처럼 이리저리 고개 내밀고

열매의 마지막 숙성을 위하여

하늬바람은 밤낮으로 설레발을 떤다

 

고독할수록 더 반짝이는 그리움 하나

귤향 따라 밀려들고

누군가 내 안에서

회억 속을 한없이 발서슴하는데

하나 남았던 멧비둘기마저 떠난다

떠나는 것들이 많구나 입동 날은 쓸쓸하다

 

빈 농약병 속으로

바람이 잇달아 기어 들어간다

빈 병도 가야 할 곳이 있다는 듯

부웅부웅 뱃고동 소리를 내는데

밭 구석에 피어 싱그럽게 웃고 있는

때늦은 들국만 고독에 강하구나

 

 

 

한라산 층층잔대

 

휑한 들녘 헛손질로 한 여름 나서더니

땅을 향해 한 타씩 일제히 종을 치네

무작정 그리운 소리 어느 하늘이 부추겼나

 

세상 건너간 이는 이쪽만 본다는데

이 산 아래 잠든 친구 먼 길을 바라보며

뎅그렁 뎅그렁 덩덩 땅 위가 그립겠다

 

외로운 길 지친 듯 낮달도 푸석하군

친구야, 나도 종 됐네 그간 사연 타종할까

우리들 세상 달라도 고작 한 층 차이라네

 

일상이야 틀리겠지 넌 자고 난 먹는 일

잠연한 너의 고향 왕왕작작 나의 타향

아니다, 같은 일 있다 그립고 보고픈 것

 

첫 닭이 홰치기 전 꽃종소리 울리거든

햇귀도 잠 깰 시간 눈 번쩍 떠 보시게

멍한 듯 벌떡 일어나 나 좀 잠깐 보시게

 

 

 

마라도

 

누가 살가운 아이 하나 낳아

이리 멀리 보내두었나

태평양 닮은 어미 소곱에서

염치없이 보채던

내 염통 한 토막인 듯

모태 속 내 둥근 낮잠인 듯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아스라이 떠있는 섬

 

외롭다고 울 필요는 없다

끼룩 끼룩

괭이갈매기 젖 보채는 소리

바람 타고 저승문 두드릴 때마다

젖가슴 다 내주고도 모자란

굽은 등 내 어머니

흰머리 날리시며

남단 바닷길 허위허위 달려오신다

 

 

서귀포 앞바르

 

서귀포 앞바당에 강 보라

서귀포 사름덜 춤추는 거 닮은다

물절이 너월 너월 너월 너월

서귀포! 서귀포! 멍 려왐신다

 

서귀포 앞바당에 강 보라

정방폭포 보고정 문섬 디서

지친 물절이 꼼 쉬멍 자웃자웃멍

솔동산 가냐귀를 비룽이 붸렴신다

 

서귀포 앞바당에 강 보라

하늘광 바당은 밤새낭 손심엉 싯곡

서귀포 등에 업진 할락산이

지꺼진 생인고라 빙삭빙삭 염신다

 

서귀포 앞바당에 강 보라

서귀포 사름덜 가심소리도 남신다

물절이 왈랑 왈랑 왈랑 왈랑

칠십리질 랑도 눈 텅 이신다

 

 

첫꽃 핀 동백

 

돈네코 허리춤에 네 살바기 제주동백. 언어 이전 몸짓으로 억겁 섭리 터득더니, 저 봐라 생살 뚫은 송이들 그리움이 분명하다. 동지 섣달 긴긴밤 눈발이 하 서럽고 소대한 모진 바람 자진모리로 되치기하다 겹치마 걷어 올리며 난생 처음 벙글었네.

아스랗던 새천년이 어쩜 이리 성큼 왔나. 고운 입에 여의주 물고 비상하는 서귀포여, 아무튼 저 꽃 보게나 드디어 속 보였네.

저 한 몸 불질러 이 땅을 밝히려나 등성이를 내려온 허옇게 시린 산울음도 길섶에 붉어 따스한 치마폭으로 스미는군. 핏빛보다 진솔한 거 있으면 나오라며 정방포구 물어뜯다 돌아누운 스무세기, 어쩌면 저 꽃 피우려 천년 밤 지새운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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