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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작성자kbmt|작성시간09.08.22|조회수22 목록 댓글 0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日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사재(私財) 출연해 일본의 노벨상 '교토상' 만들어

지난 2007년 일본스미토모(住友)생명보험은 전국의 기업체 사장 2만6000여명에게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가 누구인가 물었다. 고인(故人)이 된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혼다 소이치로가 각각 1,2위에 올랐고, 3위가 바로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었다. 현존 인물 중에선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청춘 시절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입시에서부터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결핵에 걸렸다 간신히 나았다. 대학 시험은 1지망에 불합격했고, 고향의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 시험에 번번이 낙방했다. 은사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에 입사는 했는데, 그 회사는 내일 당장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다 쓰러져 가는 회사였다.

그는 인생 역전(逆轉)의 비결을 "마음을 바꿔먹은 데서 출발했다"고 했다.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다면 차라리 180도 마음을 바꾸어 일에 정성을 들이고 필사적으로 연구해 보자'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그 후부터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실험에 열중했습니다. 그때 누적시킨 기술과 실적은 훗날 교세라를 일으키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는 27세 때인 1959년 300만엔을 빌려 목조 창고에서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세운다. 교세라는 세라믹을 소재로 한 전자부품의 제조·판매를 전문으로 하는데, 세계 대형 전자메이커 중에서 교세라와 거래하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이다. 휴대전화와 태양광 발전시스템도 만들며 주부들에게는 세라믹 칼로 유명하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공대 출신이지만, 경영 관리로도 명성을 쌓았다. '아메바 경영'으로 대표되는 분산형 조직과 투명하고 과학적인 회계 시스템이 그것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은 "재고 관리나 현금흐름은 교세라처럼 훌륭한 회사가 드물다"고 말하곤 했다.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1984년 미지의 분야인 통신시장에 진출, DDI(현 KDDI의 전신)를 창업해 공룡기업 NTT에 맞서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벌이고 나섰고, 결국 성공한다.

그는 사재(私財) 200억엔을 출연, 일본의 노벨상으로 비유되는 '교토상'을 만들어 시상하고 있다. 그는 "회사는 세습해서는 안 된다"면서 65세이던 1997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엔 교세라 이사직을 사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6억엔을 몽땅 대학에 기부했다.

1983년 그의 경영철학을 전수하기 위해 세이와주쿠(盛和塾)가 설립됐는데, 회원이 5000명에 이른다. 요즘 그는 교세라에 매일 출근해 자문을 해주며, KDDI에도 최고 고문으로 주 2회 자문을 해준다. 이 밖에 사외이사와 고문을 맡고 있는 회사가 하나씩 더 있다고 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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