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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처갓집 창녕 성씨 고가

작성자己旲 朴政本|작성시간19.02.18|조회수250 목록 댓글 4

창녕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4키로에 과거 그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1만석 대지주 成氏 古家가
있다. 경상도의 1만석 대지주 경주 최씨, 진주 허씨, 동래 정씨와 더불어 창녕 성씨는 쟁쟁한 집안
이었더란다. 그런데 이 집안이 몰락한데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이 있다.


독살 당한 김정은이의 이복형 김정남의 친모가 성혜림인데 그녀의 아버지가 이 집안 장손이었는데
일본 유학 시절에 공산주의에 심취해서 가족들을 데리고 월북하여 김일성과 절친이었더란다. 이미
결혼했던 성혜림을 김정일이 데리고 살며 아들을 낳는 바람에 이 성씨 고가를 김정일이 처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즉 성혜림의 생가 이며, 죽은 김정남의 외갓집이다. 러시아 망명한 성혜림이 언니의 아들이 이한필인가

그랬는데 월남했다가 남파 간첩에 암살 당했고, 성혜림이 남동생은 간첩으로 남파 되었다가 체포되었다는

 소문이었는데 그 뒤에 소식을 모른다, 월북했다가 풍비박산 난 집안이다.


사상 전력이 있는 집안사람은 연좌제로 중동 노무자 취업도 못하던 반공 시대에 남한의 이 집안
친인척들도 작살 났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내가 처음 이 집을 찾았을 때가 김영삼 시절 이었는데
그 큰 대저택이 기와는 너덜거리고 담벽은 허물어져 잡초에 뒤덥혀 있어 볼상 사납고 쓸쓸하기 그
지 없었다. 그 누구도 마음놓고 이 집을 관리할 수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럴 사람도 없었겠고...


그런데 10년 전인가 가 보고 깜짝 놀랐다, 담이야 자붕이 모두 깜끔하게 수리 되어 있었고 옛날의
위용을 되찾았는지 그 어리어리 함은 경주 최부자집이나 구례 일대 갑부집 운조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부자집들이 개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CCTV가 곳곳에 설치 되어 출입을 못하게 되어
있어 담 넘어 쳐다 볼수 밖에 없었는데 대지주 저택의 웅장한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부근 사람들한테 어찌 된건지 물어 보아도 잘 모르고 어느 큰 부자가 사서 수리하지 않았나 하는데,
그 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NorthFace 회장이 성씨 인데 그 집을 수리하고 관리한다는 풍문이었다.
좌익 복역자도 양심수가 되고, 김정은이도 영웅시 되는 시대에 김정일이 처가라고 누가 허물 잡겠는가.


세월의 부침과 허무를 느끼고 싶고, 대저택의 웅좌를 보고 싶거던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 보소.
내비에 '성씨 고가'라고 입력하면 안내해 준다.


저멀리 앞쪽에 보이는 화왕산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고도 하는데,
불의 기운이 한 집안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나 싶어 새삼 송연해 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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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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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 정욱 | 작성시간 19.02.18 여러군데 잘 살피고 다니면 머잖아 대풍수 출현하겠네
  • 답댓글 작성자己旲 朴政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2.18 잘 계시우? 고향 함 오시우, 대성동에 집 짓 짓고 살고 있시요....
  • 작성자이 정욱 | 작성시간 19.02.18 최근들어 우리 까페 글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 조선일보 조모의 칼럼보다 한 수 위!
  • 작성자이 정욱 | 작성시간 19.02.18 십수년 전 여름 밤 장유 치킨집 앞에 앉아 낄낄대며 얘기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김해 가게되면 사전에 연락하고 한번 찾아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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