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조선달 시인의 동화시 <민들레의 땅>을 올립니다.
동화시
민들레의 땅
조선달
1
높은 시멘트 담장 아래서
민들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민들레들은
봄이 되면 열심히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희망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민들레들은 곳곳에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뿌리를 단단한 땅속으로 내리고 말이지요.
그때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2
“이곳은 담이 너무 높아!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물도 부족해.
우린 결국 말라죽고 말 거야.”
키 작은 보라색 제비꽃이
시무룩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여기는 흙마저도 부족해.
여기는 온통 부족한 것들만 가득해.
아무리 강인한 담쟁이라도
여기서는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오르기 힘들 거야.
여기처럼 사방이 막힌 시멘트 벽 아래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담 너머 세상 구경 한 번 못하고
결국은 말라서 죽고 말테지.
게다가 여기는 뿌리 내릴 흙도 부족해.”
노란 애기똥풀이 말했습니다.
3
“그러니 처음부터 어디에 뿌리를 내리느냐가 중요해.”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자운영이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양지 바른 곳의
거름 밭에 자리를 잡았다면
정말 멋진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
온갖 벌들이 날아들어서 붕붕- 소리를 내겠지.
만일 내가 옆 골목의 빨간 벽돌담 아래에 있었다면
누군가 지나는 사람들이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옮겨 심어 줄 테지.
그런데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한번 보라구.”
자운영은 살짝 토라진 듯이 말을 마쳤습니다.
4
그러자 민들레 하나가 말을 했습니다.
“아니야,
우리는 비록 여기에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저 담 너머로 날아갈 수 있어.
그때까지 힘을 내자고.”
또 다른 민들레가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그때까지 우리 힘을 내자고.”
5
그러자 그늘에 있던 할미꽃이 고개를 들며 말했습니다.
“자,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겠니.
우리가 언제부터 여기서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
아마도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이곳에서 살았을 거야.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바람이 불지 않거든.
사방이 꽉 막힌 곳이야.
봄이 되면 우리는 꽃을 피우지.
노란 꽃, 빨강 꽃, 보랏빛 꽃…….
그러나 사람들을 그것을 모를 거야.
저 벽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면
이곳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내가 이곳에 뿌리를 내린 지가
벌써 삼년 째야.
여기는 햇볕도 물도 아주 귀한 곳이야.
늘 그늘 속에 있다가
막상 해가 비치게 되면
그때는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곧 여름이 오고
큰 가뭄이라도 드는 날이면 견디기가 어려울 걸.”
모두 조용히 그 말을 들었습니다.
키 작은 보라색 제비꽃도
노란 애기똥풀도
자운영도 말이지요.
그 담은 너무 높았습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모두 슬퍼졌습니다.
6
꼬마 민들레도 슬퍼졌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점은
씨앗들이 저 높은 담을 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꼬마 민들레가 뿌리를 내린 곳은
담벼락 아래의 작은 틈새였습니다.
그곳에서 몸을 비스듬히 내밀고 있었던 것이지요.
흙도 부족하고 물도 부족해서인지
키는 더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노란 꽃들을
꽃대마다 달고 있었습니다.
7
그렇게 봄날이 지나가고
드디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낮이면 뜨거운 열기로
담장 안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꼬마 민들레도 너무 어지러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정신을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8
꼬마 민들레의 몸에도
벌써 두 송이의 씨앗이 생겨났습니다.
꼬마 민들레는
그 탐스러운 씨앗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저 담을 넘는 날까지
기운을 잃지 말아야 해.
호오옷~
호오잇~
아니야, 여기서 끝이 나서는 안 돼.
호오옷~
호오잇~
꼬마 민들레는 밤이고 낮이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기운을 냈습니다.
9
시멘트벽 너머엔 누렁소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시멘트 담장을 넘어 오는
작은 흰나비가 소식을 전해주었답니다.
어느 날 누렁소 할아버지가
벽 사이로 난 작은 구멍으로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여름이
자신의 마지막 삶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꼬마 민들레야,
나는 내일이면 나는 팔려 갈 거야.
그러니 내가 마지막으로
너희들을 위해서 저 벽을 무너뜨려 줄게.”
“할아버지,
저 벽은 너무 단단해서 무너뜨릴 수 없어요.”
꼬마 민들레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야.”
그리고는 그 긴 뿔을 벽에 대고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두 시간이 지나도록
시멘트 벽에 이마를 대고
밀고 또 밀었습니다.
10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누렁소 할아버지의 머리에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쉬었다가는 다시 밀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침내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그토록 단단하던 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엾게도 누렁소 할아버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11
눈부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햇살과 함께 몸이 흔들려 왔습니다.
꼬마 민들레는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바람이 불어와요.
드디어 할아버지가 해냈어요!”
그러나 누렁소 할아버지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꼬마 민들레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12
그 순간 강한 바람 한 줄기가
무너진 벽 사이를 휘감고 들어왔습니다.
꼬마 민들레는 온몸을 바람에 맡겼습니다.
씨앗들이 휘리릭~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따라서 높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저 멀리 둥실둥실
민들레 씨앗들이 날아갑니다.
꿈을 꾸는 듯 멀리 멀리 날아갑니다.
“잘 가거라. 나의 아이들아!”
꼬마 민들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빈 꽃대를 들어 배웅하듯이 흔들어 댔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저 푸른 하늘 너머로 씨앗들이,
아니 수많은 꼬마 민들레들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