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최상일 선생이
<마산문학> 37집에
동화 "느티나무 사랑"을 발표했다.
동화
느티나무 사랑
│최상일
“까꿍~”
소슬한 가을바람이 강변을 타고 불어와 언덕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에게 인사합니다.
“아휴! 깜짝이야.”
옆에 있는 은행나무의 잎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느티나무가 이제 나도 단풍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귓가에 가을바람이 불어와 ‘까꿍~’하니 놀랄 수밖에.
“얘! 너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마.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
“참 영감님도 500년이나 살아온 나무가 그게 뭐가 놀랄 일이에요?”
“아냐! 사람은 모르는 일이야. 작은 일에도 놀라고 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
“알았네. 알았어요.”
가을바람과 느티나무는 한참이나 이야기를 하며 강물을 내려다봅니다.
산기슭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한가롭습니다. 심술쟁이 가을바람은 코스모스의 가느다란 허리를 건드려도 봅니다. 코스모스는 자지러집니다.
그게 재미가 있어 한참이나 흔들어대다가 그것도 시시해서 느티나무에게 와서 ‘까꿍~’한 것인데 느티나무가 놀랐다고 하니 가을바람은 어이가 없습니다.
느티나무는 가을바람이 언제나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고 온갖 세상일들을 쫑알쫑알 들려주는 참 좋은 벗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무는 지난해에는 강 언덕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한국의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가을바람도 시시해서 그만 실망하고 휙-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마을로 내려오니 코스모스 꽃길 옆에 유모차가 한 대 서 있습니다.
옳다. 이것 재미있겠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네. 저 안에 틀림없이 아기가 있을 거야. 내가 놀려먹어야지.
가을바람은 어느 틈에 또 개구쟁이가 됩니다. 어딜 가더라도 자꾸만 남을 골려주고 있으니까요.
휙- 바람을 세게 유모차에 부딪혔어요.
아기가 놀라 입을 삐쭉거리며 얼굴을 찡그립니다.
어라. 이게 가만히 있다.
가을바람이 또 한 번 휙- 부딪칩니다.
아기 얼굴을 가렸던 수건이 휙~ 날아갑니다.
‘딸꾹! 딸꾹!’
아기가 딸꾹질을 합니다. 엄마가 날아간 수건을 주워 아기의 얼굴을 덮어줍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누군데.
가을바람은 아기에게 한참 동안 장난질을 계속하며 놉니다.
유모차는 코스모스 꽃길을 지나 어느 마을의 커다란 기와집으로 들어갑니다. 가을바람도 호기심에 따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할아버지가 달려 나와 유모차를 반깁니다.
“어휴! 내 손자 왔어.”
할아버지는 유모차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들치며 아기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기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집니다.
할아버지는 아기를 유모차에서 안아 올립니다. 아기의 표정이 우습습니다. 울듯 말듯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보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마냥 좋은가 봅니다.
“까꿍~”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웃어보라고 ‘까꿍~’ 하였습니다.
아기 얼굴표정이 더욱 이상해집니다.
할아버지가 한 번 더 “까꿍~” 합니다.
아기는 그만 ‘으앙!’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놀라 할머니가 달려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울음소리에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애기 엄마에게 미안합니다. 할머니 보기에도 미안합니다. 그러나 손자가 마냥 좋습니다.
“이리 줘요.”
할머니가 아기를 받아 안습니다.
“어유,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가 꼬집었어?”
할머니가 손자를 안아 달래니 금방 아기가 울음을 그칩니다.
할아버지는 머쓱해져서 ‘허! 허!’ 웃기만 합니다.
가을바람은 한참 동안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미소 띤 얼굴로 다시 느티나무에게로 되돌아왔습니다.
“어딜 돌아다니다가 왔어?”
“어디긴 그냥 이곳저곳 다녀보았지.”
“또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겠지?”
느티나무는 안 봐도 훤히 다 안다는 듯 말을 합니다.
가을바람이 느티나무 꼭대기에 앉아 쉬고 있는 아래에 몇 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할머니가 상추랑 시금치 밭에 난 잡초를 뽑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느티나무와 나란히 가을바람은 할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할머니는 이곳의 경치가 너무 좋아 정자를 짓고 느티나무 주위를 잘 가꾸어 놓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커피도 나누어주시는 참 좋은 할머니입니다.
평생 동안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선생님이셨던 남편을 위해 노력하신 분이랍니다.
이젠 허리가 활처럼 휜 모습이만 할아버지가 둘만의 삶을 찾아서 이곳 고향으로 데려와 터전을 잡고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어가곤 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아랫마을에 장을 보러 가시고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시장에서 할머니가 겨울에 신을 털신도 사고 맛있는 먹을거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방에는 할머니가 보이질 않습니다. 집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질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덜컥 겁이 납니다.
가끔은 노루도 나타나고 산돼지도 내려오는 곳이라 방정맞은 생각이 납니다. 할아버지는 산밭으로 가 봤습니다. 언제나 부지런한 할머니는 한 시름도 쉬는 사람이 아닙니다.
산밭의 시금치밭이랑 상추밭을 열심히 손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장난을 치고 싶어졌습니다.
가을바람과 꼭 같은 심술이 생겼나 보지요.
할머니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할머니는 오로지 시금치랑 상추에 난 잡초들을 뽑는 데만 열중입니다. 이 상추와 시금치를 잘 키워서 내년에 자식들에게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살금살금 다가온 할아버지가 할머니 뒤에 가만히 앉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모릅니다.
“까꿍~”
할아버지가 할머니 뒤에서 갑자기 덥석 앉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나~”
그 순간.
할머니가 외마디를 지르며 그만 까무라칩니다. 할아버지는 뒤에서 꼭 안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몸무게 때문에 할머니를 안은 채 그대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장난을 치는 줄만 알고 가만히 가슴에 안고만 있었습니다. 한참을 지나자 할머니의 몸에서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할멈! 할멈!”
아무리 할머니를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영영 깨어나질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느티나무는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이럴 어째? 이를 어째?’
그토록 자상하고 부지런하셨던 할머니.
언제나 사람들이 놀러오면 마시라고 항상 따스한 물과 커피를 준비해 두셨던 할머니입니다.
느티나무는 가을바람에게 울먹이며 말합니다.
가을바람은 작은 실수가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심심하면 이리저리 다니면서 장난만 친 것들이 후회가 됩니다.
“느티나무야!”
가을바람은 느티나무를 다정히 불러봅니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대답이 없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이 너무나 속이 상한가 봅니다.
“느티나무야!”
그래도 가을바람은 자꾸만 느티나무를 부릅니다.
느티나무는 가을바람에 잔가지를 흔들며 하염없이 강물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느티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강물을 내려다보며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합니다.
남지의 어느 강마을에 가보면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팔을 벌려 할아버지의 슬픈 사랑을 가슴으로 안아주고 있는 듯이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동화가 실린 마산문학 37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