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두
우리의 우방 필리핀
─필리핀 기행
필리핀을 향해 출발
벼르던 필리핀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필리핀 하면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스페인을 거쳐 미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여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국가라는 것, 그리고 더욱 우의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6·25 사변 때 우리를 도우러 군대를 파견한 우방국가라는 긍정적인 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라고 아나톨 프랑스가 말한 대로 그렇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필리핀으로 몸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에 대한 좁은 나의 식견을 넓혀서 여러 모로 삶이 윤택해지는 그런 여행이 되기를 기대하며 아내와 같이 집을 나섰다.
3월 17일, 아침 7시 30분! 초등학교 동기부부들과 나선 해외여행길이 더욱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김해비행장 안에서 서성이는 동안 솜사탕 타래가 점점 부풀어 오르듯 나는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를 그리며 그 감성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12시 5분! 우리와 같이 갈 가이드와 함께 필리핀항공을 타고 이륙했다. 우중충한 날씨와 엊그제 필리핀항공의 회항 사건으로 염려와 불안한 마음이 꿈틀거리기도 했지만, 우리가 탄 비행기는 관계없다는 혼자의 믿음으로 안심하기도 했다. 비행기가 힘차게 땅을 박차고 가뿐히 치솟아 구름을 뚫고 나왔을 때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춰 주어 마음도 덩달아 어두운 구석이 싹 가셨다.
필리핀은 시차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마닐라에 도착한 시각은 필리핀 시간으로 2시 50분이다. 입국수속을 밟고, 수화물을 챙겨 나오니 우리를 태울 버스와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염려했던 더위는 아니나 바람이 분다. 곧 태풍이 올 것 같은 그런 바람이 야자나무 잎들을 흔들며 마중 나온다.
우리가 4일 동안 머물 트레이더스 호텔로 가는 동안 후덕해 보이는 가이드 장씨는 필리핀에 여행하는 동안의 주의 사항부터 말해 주며 생소한 바깥 거리에 눈을 박는 일행을 신비한 여행의 나라로 이끌어 간다.
첫째, 건강이다. 그중 가장 조심할 것은 뜻밖에 감기란다. 더운 나라여서 의아하게 여겼는데 이 나라의 인심은 에어컨 제공부터 시작하기에 잠들기 전 반드시 에어컨을 끄고 잘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물에 젖은 채 에어컨 바람 쐬는 것도 좋지 않다는 설명이다. 다음으로 배탈이다. 화산 폭발로 생성된 조산지대라 물에 석회질이 많을뿐더러 물이 바뀌면 배앓이가 일어날 수 있으니 꼭 호텔에서 제공하는 물만 먹으라니 새겨둘 일이다.
둘째, 귀중품 관리다. 귀중품은 본인이 잘 관리하여야 하며 특히 잘 분실하는 것이 선글라스, 카메라, 휴대폰이란다. 이 분실 원인은 관리 소홀로 인한 것이지 도둑으로 잃는 것이 아니라니 이 나라 치안유지상태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어서 필리핀의 서구적인 특이한 문화에 대해서도 안내했다. 미국의 지배를 받아서인지 총기 소지가 자유다. 대신 경찰이 많은데 그중에는 경비원도 경찰복장을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란다. 그리고 팁 문화가 일상화 되어 있어서 조그만 심부름을 시켜도 팁을 줘야 하는데 꼭 지킬 에티켓은 자고 난 후 침대에 1불 정도는 놔 둬야 하는 일.
짐을 푼 후 잠깐 호텔 방에서 쉬며 방 내부를 살펴보니 콘센트 모양이 예쁘게 디자인된 것이 이색적인데다가 220V, 110V 공용이어서 전기기구 사용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리고 변기 누름이 대소변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나 메모지에 볼펜 대신 연필을 둔 것은 물자 절약차원에서 배워둘 점이다. 반가운 점은 TV 75번 채널에 한국방송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곳도 대장금, 허준, 동이 등의 우리나라 드라마가 인기란다. 그만큼 우리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우리와 가까워졌다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이동하여 ‘솔 한국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된장찌개인데 밑반찬으로 나온 깍두기, 배추김치, 미나리무침, 멸치볶음, 고추 말려 찐 것, 열무김치 등 6가지가 나왔다. 하나같이 우리나라 여느 식당보다 더 맛이 좋아 필리핀에서는 음식문화로 곤혹을 치르지 않겠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저녁에는 어메이징쇼를 관람하였다. 늘씬하게 뻗은 8등신 미인들이 온 마음을 다하여, 온 정성을 다하여 노래하고 춤추는데 절로 감동이 일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게이라는 데는 깜짝 놀랐다. 동남아는 필리핀을 비롯해 대개가 모계사회란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이 여성이 되기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보면 되겠다. 특히 필리핀은 혼혈민족이라 그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공연에는 한국 프로그램이 따로 있어 아리랑을 부르며 부채춤을 추는데 우리나라 연예인을 뺨칠 정도로 잘한다. 어디 한국에서 공연하는 걸 보고 있는 착각을 할 정도다. 그들은 강남스타일도 선보이는가 하면 관중석으로 내려와 관중과 함께하는 공연을 한다. 미남인 양씨는 입맞춤까지 당하는 영광을 안았다. 마치고 사진을 같이 찍자며 미인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양씨는 희희낙락 같이 어울리며 폼을 잡는데 한 친구가 샘이 나서 한 마디 던진다.
“오늘 양씨, 생일이다.”
여행 이틀째, 팍상한 폭포
호텔에서 아침밥을 먹은 후 8시에 팍상한으로 이동하였다. 이동수단은 관광버스다. 하루 대절료가 약 35만 원정도 된다니 꽤 비싼 편이다. 운전수 이외 보조 인원을 1명 더 채용하여 우리나라 버스보다 승강구가 높아 불편을 느끼며 오르내리는 우리 일행을 일일이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운반해 주면서 곳곳의 절경지에서는 사진까지 찍어주는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이 전용버스에 대우 마크가 찍혀 있어 자긍심이 일었다. 차 내부는 안전벨트와 의자 뒤에 물건 넣는 그물망이 없는 것이 색다르고.
팍상한 폭포는 마닐라에서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에 있는 세계 7대 절경지이다. 원래 이곳은 원주민 땅이었는데 1500년 경 스페인이 무력으로 점령한 후 한 귀족의 딸이 폭포를 맞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전설을 믿고, 이곳 낚싯배를 징집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간 후로 명승지로 탈바꿈하였다고 한다. 이곳에 닿자 뜨거운 시내의 기온과는 달리 쾌적한 바람과 맑은 물과 매우 청결한 환경이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현지인 사공 2명이 앞뒤에서 끄는 카누를 타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때로는 물줄기가 약하여 오를 수 없는 곳이 나타나면 밀어서 올렸다. 양쪽으로 펼쳐지는 높이 100m가 넘어 보이는 절벽의 열대식물이 펼쳐지는 풍광에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어도 너무 빠른 움직임이라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피하는 날렵한 사공의 동작은 묘기대행진을 보는 것 같아 감탄하면서도 맨발로 자갈밭을 밟고 달리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동정이 갔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카누 난간을 붙잡고 위태위태하게 빠져나가는 스릴을 즐겼다. 도중에는 이름 모르는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도 들리는가 하면,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타는 모습도 보이고, 거북이가 바위섬에 엎드려 햇빛 바라기를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이 있는가 하면 계곡물이 흰 거품을 내며 쏟아지는 급류도 있다. 험한 바위를 통과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조약돌이 펼쳐진 곳을 지나는 곳도 있다. 넝쿨식물이 수면까지 뻗어 대롱거리기도 하고, 넓은잎나무가 온통 벽면을 뒤덮어 푸른 세상을 만들어 놓는다. 이런 비경까지 구경할 수 있어서 이번 레프팅 체험관광은 금상첨화였다.
약 4㎞의 깊은 계곡 종점에 이르니 90m 높이의 폭포가 힘차게 내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 일행은 다시 대나무로 엮은 뗏목으로 옮겨 타고 쏟아지는 폭포 밑을 통과하는데 순식간에 물 폭탄을 맞으니 정신이 알딸딸하면서도 짜릿하고, 통쾌했다.
내려올 때는 급류를 타고 달리니 올라올 때의 힘든 과정은 반으로 줄어들고, 시간도 단축된다. 마치고 가이드의 지시대로 팁을 한 사람당 2천 원씩 주었는데 앞에서 이끌던 사공이 서툰 한국말로 “아빠, 그 모자 조!”하며 내가 쓰고 있는 모자에 욕심을 낸다. 그들의 카누를 운행하는 능숙함이나 다른 사공처럼 중간에 배를 대놓고 팁을 요구하지 않은 매너가 좋아서 벗어줄까 하는 마음도 일순 들었지만, 당장 자외선이 우리나라 4배로 강한 뙤약볕에 얼굴을 내놓기 싫어 거절하고 돌아서니 뒤통수가 가렵다.
저녁은 삼겹살로 먹고, 2시간짜리 전신마사지를 하였다. 5명이 한 방에 들어가 마사지를 받았는데 여자아이들의 손길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움직여 온 몸의 피로가 싹 가시었다. 서툰 영어로 한 달 급료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필리핀 화폐로 7000페소라고 대답한다. 1페소가 25원이니까 약 175,000원인 셈이다. 그들의 싼 인건비가 마음에 걸리는지 옆자리의 박씨는 한국에 데려가 자기가 운영하는 이발관에 마사지를 시켜볼 기상천외한 궁리로 욕심을 내면서 내 의견을 묻는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월 20만 원 주겠다고? 2배로 준다 해도 오지 않을 걸.”
여행 사흘째, 따가이따이
호텔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9시에 따가이따이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마닐라 남쪽으로 향한다. 길거리에는 이 나라의 특색인 지푸니 차가 오고간다. 지푸니는 유리도 없는 차라 매연이 그대로 차 안에 들어간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군은 인심 좋게 군용트럭을 필리핀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필리핀인들은 이 차를 개조해서 지금까지 대중의 교통수단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버스도 있지만 장거리용으로 사용되고, 단거리는 값싼 지푸니를 이용하니 지푸니의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지푸니 앞 범퍼에 말 모형을 상징적으로 달아 놓았는데 말의 마리수가 부인 수를 나타내는 표시라는 것이다. 요즘은 말 대신 백조를 다는 추세라고 했다. 우스갯말로 지푸니 기사가 여성들의 1등 신랑감인데 이유는 우선 25만 원의 많은 월급, 그리고 매연을 많이 마신 관계로 일찍 천국으로 가기 때문이란 말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따가이따이란 ‘잔 속의 잔’이란 뜻으로 이중 화산지역을 나타내는 말이다. 마닐라에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하며 산정에 있는 따알호수는 직경이 18㎞, 둘레가 40㎞가 넘고, 깊이가 300m나 되어 백두산의 천지보다 60배로 넓단다. 호수라기보다는 파도가 이는 바다와 같이 끝도 보이지 않은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다. 거기에다가 더욱 신비스러운 것은 이 호수 안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따알산이 생성되고, 그 꼭대기에 또 작은 호수가 있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이중화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루터 인근까지 관광버스로 온 일행은 그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는 벙커를 타고 따알호수를 건넜다. 그리고 말 타기 전에 주의 말씀을 들었다. 마부들이 우리의 간단한 말을 다 알아 들으니 빠르다고 느끼면 ‘살살’, 느리다고 생각하면 ‘빨리’를 말하라는 것이다. 올라갈 때는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내려올 때는 허리를 뒤로 젖혀 균형감각을 잡으라고 했다. 이 나라 말안장은 가죽이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 딱딱하니 앞으로 붙여 앉고, 몸이 흐트러져 기울면 조금만 엉덩이를 올렸다가 살풋 앉으면 자세가 바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말을 보니 두려움과 기대로 심장이 갑자기 요동친다. 해발 700m 정상까지 흙먼지 날리며 40분 소요되는 비탈길을 따라 말을 타고 오르는 일은 큰 모험이다. 남자들이 용감하게 먼저 말에 오른다. 나도 용기를 내어 4번째 말에 올랐다. 말은 잿빛이 감도는 백마다. 마부가 다른 마부와는 달리 곧 내 뒤에 타고 오르더니 말을 빨리 몰아 앞서서 천천히 걸어가던 3마리의 말을 순식간에 떨쳐내고 앞질러 달린다. 천천히 안전하게 가려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빨리 달리는 말 위에서 어느덧 쾌감을 느낀다. 전생에 내가 말 타고 과거보러 가는 선비였을까 상상을 해 봤다. 말은 두 사람을 태우고도 딱깍딱깍 힘차게 정상을 향해 오른다.
해내었다!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그런 기쁨이 벅차오른다. 섬 속의 호수와 바깥 호수를 번갈아 보며 정상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며 쉬었다. 오른쪽 오솔길을 따라 가니 바위 사이에 흰 연기가 뭉게뭉게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이란 말이 맞는 모양이다.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좁은 진흙 길을 다시 말을 타고 내려간다. 원래 등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를 조심하라고 했다. 자꾸 앞으로 숙으려지는 몸을 뒤로 젖히며 나름대로 늠름한 자세를 유지하느라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 눈에 익숙한 곳이 보이고 스릴 있던 말 타기가 빨리 끝나버린다.
가이드의 지시대로 나는 정확하게 팁을 2천 원만 주고, 말 팁을 따로 주라는 걸 약속에 그런 말이 없다며 매정하게 딱 끊고 돌아섰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가이드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천 원을 더 준 것은 일반이고, 어떤 이는 그보다 많이 주고, 머플러까지 목에 감아주었다는 말을 듣고, 역시 한국 사람들은 인정에 약하여 규정 같은 것은 쓸모없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객의 이런 인정스러움으로 다음 여행객들이 고초를 겪는다는 가이드의 주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 나 혼자라도 지시사항을 위반 안 한 것을 잘 했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면서 자꾸 후회가 인다. 마부가 뒤에 앉아서 모자가 벗겨지면 올려주고, 마스크도 씌워주며 다정하게 대해 주던 일들, 더구나 내려올 때는 가장 먼저 내려온 영광의 배려까지 해주었는데 나만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니!
저녁을 먹고는 우리 방에서 같이 온 일행들이 모여 과일시장에서 사온 망고, 파인애플, 레몬, 멜론, 망고스틴, 바나나 등의 과일들을 먹으며 남국의 밤을 즐겼다. 주로 말 탄 이야기들, 누구는 몸이 뚱뚱하여 그 말이 고생했느니, 누구는 말에서 내리다가 넘어졌느니, 누구는 엉덩이 살갗이 벗겨졌느니 웃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몇 잔의 술로 얼굴이 불콰해진 곽씨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만 이곳으로 이민 와 버릴까?”
여행 나흘째, 히든밸리
아침에 창문을 통해 조깅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보였다. 여자 동기들을 불러내어 산책을 하며 필리핀인들 속에서 한 바퀴 돌았다. 정규코스를 가이드만 따라 다니면 진작 여행의 백미인 현지인의 일상생활과 접하는 체험을 간과하게 된다. 비록 깊은 속마음은 나눌 수 없지만 한 사람이라도 만나서 짧은 대화라도 하여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있겠지.
오늘은 히든밸리다. 이곳은 원래 대통령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국가에서 관리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온천이 나오는 국제적 관광지로 많은 외국인이 오는 곳이니 가이드는 고성방가나 음주를 하지 말아달라고 두 번 세 번 신신당부다.
이곳에 버스로 도착한 후 이른 점심을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었다. 식당 뜰에 어미닭이 병아리를 달고 다니는 모습이 정겹다. 밥을 먹는데 기타를 맨 3인조 그룹이 곁에 와서 노래를 부른다. 만남, 사랑해, 소양강처녀 등 우리 가요가 매끄럽게 흘러나온다. 한국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몇몇 일행은 나가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는 팁도 한국 사람답게 척척 낸다.
히든밸리는 마닐라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울창한 숲의 계곡이다. 잘 다듬어진 오솔 길을 따라 갖가지 열대의 나무들이 기운차게 늘어서서 우리 일행을 반긴다. 숲 속에는 어른 열 사람이 손을 맞잡고도 둘레를 잡을 수 없는 거목들이 군데군데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아마 몇 백 년은 됨 직하다. 남국의 태양은 공원을 안락하게 만들어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에서 평화로움이 물씬 풍겼다. 드리워진 나무그늘 속을 걸으니 어디 신선이 사는 곳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늘을 찌를 듯한 야자나무 군락을 지나 관리소에서 수영복으로 바꿔 입고 계곡으로 갔다. 맑은 물과 둘레를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청량함이 먼저 가슴을 씻어주었다. 모두 몸을 담갔다. 온천물이 솟아나오는 곳에 계곡물이 흘러와 뜨겁지 않은 적당한 수온을 유지해 목욕하기에 좋았다. 위쪽에서는 흰 거품을 내며 폭포가 쏟아진다. 그곳에 자리 잡아 물 맞는다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인어들 같이 싱싱하다. 동그랗게 풀장처럼 만들어져 있는데 상당히 커서 헤엄치기에도 넉넉했다. 촬촬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은 자연과 더 동화되게 했다.
이번 여행은 한 곳에 숙박을 정하여 개미 쳇바퀴 돌 듯 코스에 따라 여행을 하기에 피로하지 않고, 테마가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다. 오늘처럼 느긋하게 망중한을 즐기는 시간도 있으니 우리 또래의 여행으로 안성맞춤이다.
돌아오는 길에 정씨는 좌중을 돌아보며 은근히 자기 몸매에 자신 있다는 듯 묻는다.
“오늘 수영복차림의 라인이 누가 가장 멋졌어요?”
여행 닷새째, 마닐라 시내 관광
오늘 아침은 한 발 더 깊숙이 필리핀인 속으로 들어갔다. 조깅 코스를 벗어나 과감하게 큰길을 건너 공원까지 갔다. 벤치에 쉬고 있는데 배드민턴 채를 가진 필리핀인이 같이 치자는 손짓이다. 어, 드디어 기회가 온 셈이다. 잠깐이지만 땀을 흘리며 치고받으니 국제게임이다. 즐기다가 마치고는 사진까지 찍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는 음악에 맞춰 아침체조를 하는 군중들을 만나 같이 에어로빅 춤도 췄다. 춤을 추는 필리핀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웃음이 번지고, 강사는 우리를 배려해서인지 강남스타일 음악을 넣어주며 더욱 힘이 넘친다. 아침 일찍 시민들이 체조를 하는 모습으로 건강한 필리핀, 발전하는 필리핀이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에서 맛보는 진미가 아닐까.
아침을 먹고 시내관광에 들어갔는데 먼저 필리핀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리잘공원에 갔다.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 호세 리잘을 기리는 공원으로 마닐라만 근교 로하스 거리에 있다. 공원 입구의 리잘 기념탑 앞에서 무장한 헌병이 이곳을 지키는데 기념탑 뒤에는 그가 죽기 직전 조국 필리핀을 위해 남긴 시 ‘나의 마지막 고별’이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돼 있었다. 공원 내부는 ‘마닐라의 허파’라 할 만큼 숲이 무성하고 정원이 잘 가꾸어진 휴식공간으로 주말에는 야외강당에서 콘서트가 열린단다. 북동쪽 부르고스 거리에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이 저 멀리에서 보이고.
리잘은 우리나라 김구 선생 같은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당시 필리핀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을 1800년대 중반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귀족이 다니는 420년의 역사의 산타 토마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수석을 놓치지 않아 스페인의 질시를 받았다. 그걸 느낀 리잘 부친은 리잘을 유럽으로 유학을 보낸다. 그곳에서 깨우친 그는 독립운동에 발을 담근다. 몇 번의 체포 그리고 귀양을 반복하여도 굽힘이 없는 그는 마침내 1896년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오늘날 필리핀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국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쉬리라.
필리핀인에게 인기 있는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일까? 갑자기 가이드가 묻는다. 우리 일행들은 아는 지식을 털어내며 신동파, 싸이 등의 이름을 거론했는데 가이드는 그들도 물론 인기 있는 한국인이지만 그보다 더 인기 있는 한국인은 뜻밖에 박정희라고 한다. 그들의 독재 대통령 마르코스와 비슷한 연대와 정권을 잡았다가 몰락한 박정희의 애국심은 초등학교의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우리나라 어린이보다도 오히려 필리핀 어린이들이 잘 알고 있다고 해서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리잘공원 기념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필리핀 역사가 숨쉬는 곳을 마차로 한바퀴 돌았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마닐라대학을 비롯해 군사요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산티아고요새,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교황이 인정한 5백년 역사를 지닌 마닐라 대성당, 바로크 양식의 성 어거스틴 교회가 있는 거리에는 일본의 침략의 잔흔이 남아 있는 사형장, 감옥소, 병원 등 폭탄으로 파괴된 건물들도 보였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마부는 손가락질 하며 능숙한 우리말로 내뱉는다.
“일본! 폭탄! 나쁜 놈! 쥑일놈!”
옆자리 앉은 박씨는 속이 시원하다는 듯 크게 웃고는 한 수 그들에게 가르친다.
“독도는 한국 땅, 대마도도 한국 땅!”
필리핀은 우리만큼의 긴 기간 동안은 아니지만 무지막지한 일본의 식민지정책을 겪은 나라라는 동류의식이 새롭게 느껴졌다, 사이판 여행할 때 느꼈지만 일본은 그 죄악상이 부담스러워 이곳의 관광을 꺼리는 줄도 모른다. 자업자득이란 말이 실감난다. 그런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일본 수뇌부는 아직도 사죄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필리핀 마부가 외친 말이 새삼 떠오르며 마음이 답답하다.
귀국길에, 못 다한 이야기
필리핀은 우방국가라는 이미지답게 국민들의 감정도 우리나라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실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귀국하는 날, 코피뉴를 돕기 위한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센터에 들어가니 각종 목각공예품을 비롯한 선물용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코피뉴란 한국인과 필리핀인의 혼혈 2세를 말한다. 우리나라로 결혼한 필리핀여성들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지만 그것보다 우리나라 유학생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필리핀에 남아 있는 코피뉴가 대략 1만 8000명 정도라니 심각한 정도에 이른다. 이들을 돕는 방법은 낯설고 물선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보다 현지에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최선인 줄 알았다. 우리 일행이 이심전심으로 모두 선물들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이들의 작은 선행이 코피뉴의 장래를 밝게 만드는데 일조하리라 굳게 믿는다.
필리핀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보다 잘 살았다. 지금 우리가 좀 잘 산다고 해서 내리 보아서는 안 될 나라이다. 우리의 우방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도 교육시스템이나 의료계 도덕성은 우리 보다 앞서는 나라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수출 길을 터 보려던 정주영은 장사수완이 대단한 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물도 처음으로 선진국 대열에 끼어 자동차를 수출하려고 하니 난감했으리라. 고심한 끝에 그래도 진출 가능한 나라가 필리핀이라고 판단하고 막상 문을 두드려 보니 이 또한 어려운 문제였다. 그때 우리나라 이혜정양이 미스필리핀에 뽑히는 경사스런 일이 물꼬가 트일 줄이야. 그 미스필리핀을 죽자살자 좋아하는 필리핀 굴지의 산미구엘 그룹회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 프로포스를 거부한 이혜정양은 한국으로 가 버린다. 이를 안 정주영이 산미구엘 회장을 초청하여 대연회장을 베풀면서 이혜정 양을 필리핀으로 오게 부른다. 이로써 현대 자동차는 산미구엘 그룹으로 수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필리핀은 생각보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이다. 인구가 9천만 명에 이르고, 그중 82%가 천주교를 믿는 나라, 영어와 따깔로어를 쓰는 나라, 일년 내내 무덥고 습기가 많은 나라,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열대의 나라다. 쌀농사를 3모작까지 하는 나라, 국민들은 짠 음식을 좋아하고, 느리나 순박하고 친절하다. 이웃에 있는 나라가 우리와 판이하면서도 공통점도 있으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또한 필리핀은 경치가 아름다워 우리나라 신혼부부의 여행지로 손꼽힌다. 그러나 여행제한지역이 있는 곳도 필리핀이다. 수도가 있는 루손섬을 비롯한 북쪽은 괜찮지만 남쪽의 민다나오 섬은 회교도가 많아 자치령으로 허락한 상태라 정정이 불안하다.
한편 필리핀은 역사의 정체성이 약하다. 16세기에 마젤란이 발견하기 전까지 국가라는 개념이 부족하여 원시사회를 이루며 살다가, 그 후 스페인령 식민지시대를 거쳐 미국령 식민지시대 그리고 일본의 침략시대를 끝으로 자주 독립 국가를 이루었다. 산업으로 봐서 이렇다할 특색 산업이 없고 단지 진주 생산지로 세계에서 알아주는 정도다. 호텔을 나서면 우리를 기다리는 진주 엑스사리 장사꾼을 만난다. 일행들은 부담 없는 선물용이라 다투어 사는데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 물건을 팔아 가정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과자봉지라도 사들고 가는 가장의 어깨 힘을 주라는 염원이 담겨 있으리라 본다.
비행기를 타며 창문을 통해 밋밋하게 뻗어 있는 산줄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버스가 지나가니까 손을 흔드는 순박한 아이들, 흰 셔츠에 가방을 멘 학생들, 비만이 없는 몸집의 어른들, 조깅을 하는 건강한 모습, 스페인풍의 교외 집들, 겉벽이 허름한 호텔, 거리를 누비는 지푸니 차량, 입구에 주유소가 먼저 나타나는 휴게소의 구조, 키 큰 대나무, 야자나무의 가로수 등 필리핀여행 동안의 모습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많은 것들우리의 국력 신장, 곳곳에 스며든 우리 문화, 필리핀인의 한국인에 대한 우호, 그들의 너그러움과 친절, 빼어난 자연환경 등을 싣고 오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고 없이 4박 5일을 유익하고 즐겁게 지낸 동행자들이 고맙다. 같이 카누 타고 레프팅, 말 타고 트래킹은 물론 같이 버스로, 비행기로, 배로, 마차로 동고동락 여행길이 새삼스럽게 감사함으로 가득 찬다.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보내라. 그 말의 뜻을 음미하며.
<작은문학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