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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현우 동화 / 늘보, 참돌, 날치 친구들

작성자김현우|작성시간21.05.11|조회수78 목록 댓글 2

김현우 동화작가가 <월간문학> 2021. 5월호(통권 627호)에

동화 "늘보, 참돌, 날치 친구들"을 발표했다.

 

동화

 

늘보, 참돌, 날치 친구들

 

김현우

 

“아아! 봄이 왔구나.”

늘보 곰 아저씨가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면서 동굴 밖을 내다봤어요. 가슴에 있는 반달 모양의 하얀 무늬가 더욱 멋지게 보였어요. 천천히 두리번두리번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살폈으나 밖에는 잎이 떨어진 나무들만 보였어요.

“아직 봄이 아닌가?”

“우리가 너무 일찍 일어난 거 아녜요?”

졸려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늘보 아주머니가 중얼거렸어요. 한 달 전 낳은 아기 둘을 꼭 끌어안고 누워서요.

“들어보라고! 개울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 얼음이 다 녹은 거야.”

동굴 속 반달가슴곰 부부가 주고받는 소리를 누가 들었는지 밖에서 “헤헤에!” 웃음소리가 들렸어요.

“게으름뱅이 늘보야! 아직도 자냐? 헤헤에!”

“누구야!”

동굴 입구 바로 위에서 누군가 폴짝 뛰어내렸어요. 얼룩덜룩 갈색 무늬 몸집이었어요. 고양이보다 컸어요. 얼굴은 고양이 같은데요. 작은 머리에 큰 눈이 달린 살쾡이였어요. 가느다란 몸을 흔들며 어두컴컴한 동굴 안을 살피며 또 웃었어요.

“헤헤에. 나야 나! 용시골에서 날쌔기로 1등인 날치지.”

“어어! 굶어 죽지 않고 살았나? 날치 동생!”

“늘보 형님이야말로 겨울 서너 달을 굶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나?”

그때 시커먼 그림자가 슬그머니 아래쪽에서 나타났어요. 덩치가 날치 서너 배나 되는 멧돼지 참돌이었어요. 참돌은 엄살부터 떨었어요.

“아아! 배고파! 너희들은 배 안 고프냐? 킁킁. 늘보 곰탱이. 날치 괭이야.”

“어어! 참돌 돼지 아냐? 용케 살아남았군.”

“내가 죽긴 왜 죽어. 다람쥐가 숨겨 놓은 도토리도 찾아 먹고 맛좋은 칡이랑 풀뿌리도 곳곳에 널렸는걸.”

멧돼지 참돌은 큰소리쳤으나 여전히 배가 고픈 표정이었어요. 셋은 지리산 용시골에 사는 친구들이었어요. 반달가슴곰 반달38호는 가장 몸집이 크지만 느림보라서 늘보, 잘 부서지는 부석돌이 아니라 단단한 돌 같은 몸이라며 자랑하는 멧돼지는 참돌, 몸집이 작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 날다람쥐보다 빠른 살쾡이를 날치라고 불렀어요.

겨울잠에서 깬 늘보는 느릿느릿 일어났어요. 몸이 가려워서 온몸을 흔들었어요. 동굴 입구 바위에 등을 비비기도 했어요. 그 바람에 몸에 묻은 지푸라기와 함께 먼지가 떨어져서 시원해졌어요. 그리고는 개울가로 가서 차가운 냇물을 벌컥벌컥 마셨어요.

“역시 이 용시골 개울 물맛이 최고야. 동생들도 물이나 마셔.”

참돌이 고개를 흔들자 살쾡이 날치가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말했어요.

“동굴 안에 뭐 먹을 것 가져다 놓지 않았어? 보호소 사람들이…….”

“갓 태어난 우리 애기들 먹이라고 뭘 가져다 놓았는데 마누라가 딱 지키고 있어!”

“그러면 얻어먹기 틀렸군. 아주머니가 난 무서워!”

남의 먹이를 잘 훔쳐 먹는 날치가 묻는 말에 늘보는 딱 잡아뗐어요.

골짜기 아래에는 반달가슴곰을 키우고 보살피는 보호소가 있었어요. 거기서 자란 반달가슴곰을 지리산 산속에 풀어놓고 지켜주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간혹 맛좋은 사료를 몇 자루씩 늘보가 사는 굴 앞이나 바위 위에 가져다 놓곤 했어요. 그런데 언제 알았는지 늘보와 같은 반달곰들이 먹기도 전에 살쾡이들이 달려와 먹었어요. 그래서 용시골 동물들은 살쾡이를 날치기 잘하는 날치라고 놀렸어요.

보호소 직원들이 먹이를 가져다 놓으면 늘보는 제 혼자 다 먹으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요. 용시골 동물들을 다 불러 모아 사이좋게 나눠 먹었지요. 그러니까 다들 늘보를 마음씨 좋은 아저씨라 부르며 좋아하고 잘 따르고 있었어요.

“몸이 통통하게 살이 찐 걸 보니 날치 넌 또 마을에 내려가서 닭을 잡아먹었겠군.”

늘보 아저씨의 말에 날치가 ‘헤헤에!’ 하고 웃었어요.

“하도 식구들이 굶주려서 오랜만에 닭을 잡아 왔지. 너구리들이 더 설쳐서 내가 욕을 먹었지만. 그런데 참돌이는 외딴집에 내려가 고구마 움을 뒤져 먹었지?”

“난 아냐! 다른 놈들이 배가 고프니까 내려가서 고구마를 훔쳐 먹었지. 난 그 근처에 가지도 않았어.”

참돌이 툴툴거리며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어요.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는 오후 늘보 동굴에 참돌이 찾아왔어요.

“저기 소나무 사이에 우릴 잡으려고 쇠창살로 만든 틀을 가져다 놓았어. 조심해!”

참돌의 말에 늘보 아저씨가 깜짝 놀라,

“어, 어디야? 당장 가보자! 우리가 사는 이 용시골에는 그런 덫을 갖다 놓을 수 없어.”

했어요. 셋은 개울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갔어요. 정말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동물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쇠창살로 만든 네모진 포획틀이 놓여 있었어요.

“조심해! 근처에 올무도 있구먼!”

늘보 아저씨의 말에 날치와 참돌이 발걸음을 멈추고 아래쪽을 살폈어요. 정말 근처 다복솔 아래쪽에 올무가 숨겨져 있었어요, 산토끼나 노루가 지나가다 발목에 잘 걸리도록 숨겨 놓았지요. 셋은 올무를 피하면서 쇠창살 덫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어요.

“야아! 저기 안에 맛좋은 게 많네! 닭도 있고 고구마에 옥수수까지!”

날치 말에 늘보와 참돌이 침을 꿀떡 삼켰어요. 정말 틀 안에 놓인 털이 뽑힌 하얀 닭이 먹음직하게 보였어요.

“고것 맛있겠다.”

늘보의 말에 참돌이 고개를 내저었어요.

“조심해! 저건 미끼야. 우리 친구들이 저 틀 안에 든 것 먹으려다 잡혔어.”

“여긴 반달이들을 놓아 보호하는 구역이라 덫이나 올무를 놓을 수 없어.”

날치 살쾡이가 입맛을 다시며 틀 속에 놓여 있는 닭고기를 빼낼 궁리를 했어요.

“내가 몸이 빠르기로 용시골에 최고니까 저걸 집어내 올 수 있을까?”

 

“안돼! 닭고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쇠창살 문이 쾅! 하고 눈 깜짝할 새 닫혀.”

“내가 날쌔기로 최고 아닌가? 나무에 폴짝 오르고 사뿐하게 뛰어내린다고.”

“허어! 문이 너보다 더 빠르게 떨어져 닫혀! 아예 틀 안에 들어갈 생각을 마!”

“저건 공짜야! 그저 먹기 아니야?”

“공짜가 아니야! 미끼야.”

날치가 욕심을 내자 늘보가 말렸어요.

“늘보 자네야 워낙 느리기로 용시골에서 소문이 났으니 안 되겠지만 이 몸은 해 봐야겠어.”

늘보와 참돌이 여러 번 말렸어요. 그렇지만 닭고기에 눈이 뒤집힌 날치가 참지를 못했어요.

“하나! 둘! 셋!”

날치는 몸을 움츠렸다가 살짝 틀 안으로 들어갔어요. 틀이 흔들리지 않아 다행이었어요.

“어어! 조심해!”

늘보와 먹통이 고함쳤어요. 얌체는 살금살금 다가가 닭고기를 순식간에 낚아챘어요. 그리곤 몸을 획 돌리며 틀 밖으로 튀어 나가려 했어요.

“철컥!”

날치보다도 철문이 더 빨리 내려 닫혀버렸어요.

 

반달가슴곰 보호 관리소에서 용시골의 반달38호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골짜기 아래로 이동한 것을 알고 있었어요. 늘보 몸에 이동 신호를 보내는 송신기가 달려 있었으므로 알 수 있었지요. 소장님이 걱정했어요.

“강 반장! 사료 좀 가지고 용시골 반달38호에게 가보게.”

“오랜 동면에 배가 고플 텐데 먹을 게 없을 거야 지금은.”

관리소 직원 두 사람이 사료를 어깨에 지고 용시골로 올라갔어요. 곧 반달38호가 신호를 보내는 곳에 도착했어요.

“아니! 저기 멧돼지 포획틀이 있구먼! 뭐가 잡힌 듯해.”

“여긴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 덫이나 올무, 저런 틀을 놓을 수 없는데….”

“당장 저것부터 철거하세. 그런데 저기 반달38호가 우릴 보고서 슬슬 피하는 듯하구먼.”

“다행이네. 반달38호가 이 근처에 온 모양인데 틀에 들어가지 않아 다행이야.”

“배가 고팠을 텐데. 용하게 참았네.”

직원들은 틀 안에 갇혀 있는 살쾡이를 보았어요.

“어어! 잡으려던 멧돼지는 아니고 살쾡이로군. 살쾡이도 보호 동물이니 잡으면 안 되지.”

“풀어줘야지.”

쇠창살 문이 열리자 날치 살쾡이는 재빠르게 도망쳤어요. 멀리서 바라보던 늘보 아저씨와 참돌에게 달려와서,

“아아! 죽다 살았네.”

하고 가쁜 숨을 헐떡였어요. 늘보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어요.

“날치야. 이젠 공짜라도 훔쳐 먹지 마라.” ***

 

 

김현우 약력

* 1964년 ‘학원’에 장편소설 당선, 동화집 『산메아리』 『나는 냐옹이야』 외, 소설집 『욱개명물전』 『그늘의 종언』 외 다수. 경남문학상 수상

 

동화가 실린 <월간문학> 6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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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늘 | 작성시간 21.05.12 날치가 식겁했네요ㅎㅎ.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들을 아껴줘야겠어요.
  • 작성자유행두 | 작성시간 21.05.19 아하! 지리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군요. 김현우 선생님~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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