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조현술 경남아동문학회 전 회장(현 가락문학회 회장)이
<가락문학>(2013년, 19집)에
동화 <토끼의 도전>을 발표했다.
토끼의 도전
조현술
1.
금강산 골짜기예요.
그 골짜기 양지 쪽 푸른 잔디 언덕에 작은 바위굴 하나가 소나무 둥치에 가려져 있어요. 봄햇살이 그 보일락말락한 동굴을 찾아들어가 햇살을 보드랍게 쏟아 붓고 있었어요.
바위굴 앞에서 한 마리 토끼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무언가 중얼거렸어요.
“요즘 통 거북이를 볼 수 없어서 마음에 걸리는 데.”
“그래. 통 거북이가 우울증이래. 이상하지. 신통한 거북이라고 ‘통’이란 이름으로 부르는데 말이야.”
토끼 옆에 언제 왔는지 달록이라는 산까치가 그 하얀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면서 말을 받았어요.
“뭐, 우울증? 통 거북이가 그런 것에 얽매일 것 같지 않은데!
내가 경주에서 낮잠을 자면서까지 거북이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는데.”
“ 어허, 그것 믿어도 되나? 야아, 그렇다면 그게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는지 몰라.”
“음, 내가 양보한 걸 알고, 언제 도전장이 날아올지 몰라 걱정한다 이거지.”
하고 토끼가 웃음의 말꼬리를 빼물고 말끝을 흐렸어요. 그러면서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어요.
“그런데 통 거북이가 아고라 광장에 놀러 나오지도 않아.”
“그것은 사실이야. ‘거실모’ 에서도 통 거북이를 그걸 걱정하고 있어.”
“ ‘거실모’라는 게 무어야”
“통 거북이를 싫어하는 모임을 부르는 줄임말이야.”
“ 그렇담, ‘거사모’도 많을텐데.”
“그야 거사모가 월등이 많기는 하지.”
토끼는 산까치의 말에서 통 거북이가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음- 통 거북이가 우울증에 빠져 있다니. 그러나 그게 사실인지 알아보아야겠는데.”
산까치가 토끼 곁에서 수다를 떨다가 싫증이 났는지, 거북이 마을로 날아가 버렸어요. 토끼 마을의 정보를 거북이 마을에 팔려 가는 지도 몰라요.
토끼는 비위 굴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통 거북이를 생각하느라 하루해가 지는 것도 몰랐어요.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어요.
2.
숲 속 잔디 마을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토끼 마을에서 그 소문이 먼저 퍼졌어요.
“토기가 거북이에게 도전장을 내었대.”
“그것 좋다. 이번에는 우리 토끼가 꼭 이길 거야.”
“그야, 당연히 이겨야지. 두 번 실수야 있을 수 있나.”
‘토사모’에서는 벌써부터 응원부대를 조직한다느니, 경기에 대한 규칙을 엄하게 하자는 등의 의견을 토끼 마을에 퍼뜨렸어요. 더구나 이번에는 선수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토실모’에서 만만찮게 나돌았어요. 양쪽 의견이 팽팽했어요.
“이번에는 경기 선수를 롱다리 토끼에서 다른 선수로 바꾸어야 해.”
“그것은 쉽지 않아. 사실 우리 토끼 마을에서 롱다리 토끼를 따라 갈 토기가 어디 있니“
“아냐, 연습만 부지런히 하면 돼. 토끼가 아무리 느려도 그 느림보 거북이와 비교가 되니. 굴러가도 자신이 있어.”
‘토사모’에서도 만만찮게 반격이 시작되었어요.
“우리가 롱다리 토끼를 재끼고 다른 토끼를 선수로 내보낸다는 것은 전체 토끼를 모욕하는 것이야. 그 늠늠한 자세, 긴 다리, 날씬한 몸매 그리고 남자다운 기개, 그 것만으로도 우리 토끼 마을을 대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설사 이번에 또 진다고 해도 나는 롱다리를 미워할 수 없어.”
‘맞아. 그 말이 맞아. 선수를 함부로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옳소! 우리는 롱다리 펜이야. 토사모, 만세!”
머리가 하얀 산까치가 이 소식을 물고 거북이 마을로 날아갔어요. 호숫가의 작은 바위 아래가 거북이 마을이에요.
“얘, 통 거북아, 토끼 마을에서 너에게 도전장을 낸다는구나.”
통 거북은 밖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그냥 의미 있는 웃음만 지었어요. 어쩌면 바깥의 정보를 다 알고 있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요.
산까치를 피하는 눈치였어요.
“나는 그런 것에 관심 없어. 경주를 하든 말든 나는 그런 일 하고는 별 상관하고 싶지 않아.”
“아니야, 너를 믿고 있는 ’거사모‘에서는 대대적으로 응원하겠단다.”
“글쌔, 나는 경기고, 응원이고 뭐 그런 것 모두 싫으니, 나 혼자 있게 해줘.”
산까치가 날아간 뒤에 통 거북은 혼자 골똘이 생각했어요.
‘나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일부러 우울증 환자로 보이게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지.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제발 토끼 마을에 많이 퍼져야 하는데.’
그 날 밤, 통 거북이가 거북 마을의 대표가 되는 추장 거북에게 아무도 몰래 살짝 찾아갔어요.
“대표님, 만약에 경기를 한다면 꼭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달리기’를 하자고 경기 규정을 바꾸어 주십시오.”
“그게 더 어려운 게 아닌가. 산 위에서 아래로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하긴 자네의 깊은 생각을 내가 참고로 하겠네마는.... .”
이 말은 아무도 모르고 그 대표와 통 거북이만 아는 일급비밀로 하기로 했어요.
거북이 마을 양지녁에서는 ‘거사모’와 ‘거실모’ 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이번 경기에도 통 거북이를 선수로 보내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건 안 돼. 지금 통 거북은 우울증에 걸려있대. 그런 거북을 경기에 내보내어 실수를 하게 된다면 우리 거북이 마을의 명예에 큰 손실이야.”
“그건 확인한 일이 아니야, 어쩜 토끼의 도전을 유도하는 작전인지도 몰라. ”
“현실적으로 통 거북을 따라 잡을 걸음걸이가 우리 마을에 없는 것도 이유가 되지만 그보다 통 거북의 지혜는 우리가 감히 따라 갈수가 없지 않느냐.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을 적마다 통 거북이가 그 해결책을 내어놓을 때가 많지 않아.”
“우리는 지금 큰 것을 놓지고 있다고 생각해. 이 경기는 애초에 잘못된 거야. 생각해 봐. 그 빠른 토끼와 느림보 거북이가 경기를 한다니 그것은 멍청한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야.”
‘맞아, 토끼가 이 경기의 도전장을 낸다는 그 자체가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고 승리에 자신이 있다는 것 아니겠니?“
거북이 마을에서는 ‘거실모’ 의견과 ‘가사모’ 의견이 팽팽했어요.
3.
토끼와 거북이의 도전 경기를 위해 양 쪽의 대표들이 모였어요. 토끼 쪽에서 대표가 3명, 거북이 쪽에서 3명 모두 6명이 회의를 했어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토끼 쪽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했어요.
“이번 경기는 우리 측에서 도전장을 내었으니 모든 경기 규칙을 우리 중심으로 했으면 합니다.”
“그것은 안되지요. 회의란 본래 서로의 의견을 모아서 그 의견의 좋은 점 나쁜 점을 고쳐서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저번 경기는 우리 토끼가 양보의 의미에서 토끼가 일부러 잠을 든척했다는 것을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뭐라고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우리 통 거북이가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얼마나 최선을 다한 경기인데, 그런 소리를 해요. 만약에 그런 의미라면 우리 이번 경기에 불참합니다.”
거북이 쪽에서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토끼 쪽에서 주춤했어요.
“우리 거북이 쪽에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번 경기는 무학산 정상에서 평지인 넓은 아고라광장으로 달려 내려오기로 하는 것이 어떨지요?”
토끼 쪽에서 발칵했어요. 회의장을 뒤집을 기세로 거세게 나왔어요.
“ 안되지요. 우리 토끼는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아서 위에서 아래고 향해 뛰는 것은 엄청나게 불리한 경기입니다.”
“그렇다면 저번 경기에서는 아래에서 산 정상으로 뛰었지요. 그것은 이미 토끼에게 유리한 경기규칙을 정한 것이 아닙니까? 이번에는 산 정상에서 아래로 뛰기 규칙을 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북이 쪽의 이 말에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나 봐요. 토끼 쪽에서도 고개를 꺼덕이는 자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토끼 쪽의 대표가 강하게 반발을 했어요.
“경기의 규칙을 선수에 맞춰 경기 때 마다 바꾼다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 경기 규칙을 정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까? ”
“아니지요.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은 경기를 할 것인지 아니할 것인지, 또 경기 날짜를 잡는 것이지 경기 규칙에 관한 것은 없습니다.”
양쪽 모두가 회의 소집 통지서를 들여다보았어요. 회의 소집 통지서에는 토끼 쪽의 말대로 경기규칙에 관한 것은 없었어요.
토끼 쪽의 대표들의 얼굴에 웃음, 자신감이 여유 있게 감돌았어요.
이때, 거북 쪽의 막내로 따라온 거북이가 억지처럼 말했어요.
“우리는 원칙을 존중합니다. 당신네들이 그렇게 통지서 내용을 존중한다면 우리는 저번의 경기에서 승리한 보상의 규정을 엄격히 지키겠어요. 그 규정에는 경기에 진 토끼들은 옹달샘에 가는 길, 넓은 아고라 광장 사용권을 제한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여태까지 그냥 평화, 화합의 차원에서 서로 양보하며 지내기는 했지요.”
토끼들의 반응이 돌변했어요. 토끼들이 돌연 휴회를 신청하더니, 저희들 끼리 한 쪽 모여 귓속말로 의논을 했어요.
‘옹달샘 길과 아고라 광장을 사용하지 못하면 우리 토끼들은 큰 타격이다.’
‘그러니까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아.’
‘그것은 다르지, 이번 경기에서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어,’
‘거북이들이 이 경기를 거부하면 저번에 이긴 그대로 저들이 모든 것의 독점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야.’
‘그들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그들이 말한 경기 규칙을 따라주자.’
잠시 후, 회의가 다시 계속되었어요.
토끼 쪽에서 일부러 강한 어조로 말했어요.
“이번 경기에서 우리가 이기면 거북이 당신네들도 아고라 광장 과 옹달샘 가는 길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예, 자신 있게 말하지요. 우리는 그렇게 넓은 아고라 광장도 필요 없고, 옹달샘 가는 길은 그 길 말고도 있어요.”
“우리 토끼들은 경기 규칙을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습니다.”
거북이 쪽에서 강하게 나오자, 토끼 쪽에서 주춤했어요. 토끼 쪽의 대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꼭 그렇게 우리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
“뭐, 그러면 양보라도 하시겠어요.”
“양보라기보다는 그날 비가 온다든지 바람이 세차게 불면 경기는 다음날로 미루기로 합시다.”
거북이 쪽은 그 말을 듣고 그 말 속에 무슨 함정이라도 있을까 하여 곰곰이 새겨들었어요. 거북이들은 서로의 눈길이 오고 간 뒤에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좋습니다. 토끼 쪽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거북이가 그 말을 하고는 이 쪽 저 쪽 눈치를 살피다가 빠르게 한 마디 했어요.
“오늘 회의에서 정한 경기 규칙은 무학산의 정상에서 아래쪽 아고라 광장으로 내려 달리기입니다.”
거북이 쪽은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 나왔어요. 혹시라도 예기치않은 의견으로 회의를 어렵게 할까 걱정이 되었어요.
토끼들은 거북이들이 황급히 회의장을 빠져나가자, 저들끼리 둘러 앉아 도란거렸어요.
“자식들, 거북이 자기들이 위에서 내리 달리면 뽀족한 수라도 있나?”
“아니지, 미끄럼 타듯이 내려오면 그것도 방법이 되지.”
“그것은 걱정 않아도 돼. 그 코스에는 미끄럼 탈 정도의 잔디 언덕이 없어”
그 다음날부터 양 팀에서는 연습에 열중했어요. 서로의 연습 과정을 숨기기 위해 남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 밤에 주로 연습을 했어요. 그러나 여기저기서 근거도 없는 말들이 나돌았어요.
“이번에는 지능적인 게임이 될 것 같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아.”
“토끼는 앞다리가 짧아 내리받이 언덕을 내려오는 연습을 열심히 한다는군. ”
“내리받이 언덕에서 훈련 중에 곤두박질을 해서 코를 크게 다쳤대.”
“그래서 묘한 방법을 생각해 내었대. 그것은 일절 비밀이야”
“거북이도 엉금엉금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중이래.”
“통 거북이가 주로 높은 바위 위에서 펄떡펄떡 뛰어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대.”
“묘한 것은 통 거북이가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얼굴에 함빡 웃음을 머금고 여유 있게 연습하는 중이래. ”
“그야, 무슨 묘한 방법으로 경기에 이길 자신이 있다는 증거일거야.”
4.
드디어 경기 날이 되었어요.
무학산이 바로 앞으로 보이는 넓은 아고라 광장, 그 앞 언덕에 거북 팀과 토기 팀으로 나누어 앉았어요. 양 팀은 서로의 로그송을 부르며 응원의 열기가 대단했어요.
“산토끼, 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충깡충 뛰어서 승리하러 간단다 ? 무학산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승리를 주워서 올테야.”
“거북아, 거북아 어디를 가느냐? 엉금엉금 기어서 토끼 이기러 단다 ? 무학산 아래엔 거북이 깃발이 팔랑팔랑 휘날리네. ”
무학산 꼭대기입니다.
무학산 꼭대기 망대 언덕에는 롱다리 토끼와 통 거북이가 나란이 서 있어요. 둘은 긴장된 몸으로 저 아래 넓은 아고라 광장의 꼴인 지점에 있는 하얀 깃발을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숨을 고르며 심판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롱다리 토기가 곁에 서 있는 통 거북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았어요.
“ 어때, 좀 떨리지. 최선을 다해. 나도 너를 참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서로가 최선을 다해야 될 것 같아.”
“글쎄, 나는 떨리지 않는데. 뭐, 내가 롱다리 토끼 너에게 져도 모두가 고개를 꺼득이겠지. 다리가 긴 너희들과 애초에 경기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
그러는 중에 사슴 심판이 하얀 깃발을 들고 무학산 꼭대기 바로 옆에 있는 망대 바위 위에 올라섰어요. 아래 위를 훑어보고 경기에 어려움이 없는지 살폈어요. 그리고는 눈을 지긋이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들었던 하얀 깃빨을 힘차게 내렸어요.
그와 동시에 토끼가 재빨리 앞장서 달리기 시작했어요. 토끼가 서두르지 않았어요.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뛰었어요.
거북이도 엉금엉금 기었어요. 거북이는 토끼가 뛰는 길과 조금다른 옆길을 엉금엉금 기었어요. 그 길은 저 아래 결선 지점과 가깝기는 하지만 경사가 아주 급한 길입니다. 위험한 코스이지요.
토끼와 거북이의 거리가 별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어요. 그만큼 토끼가 조심을 하는 것 같았어요.
서로의 앞뒤가 조금씩 차이가 나자, 토끼가 거북이 쪽을 힐끗 바라보다가 숨을 크게 쉬고는 뛰는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여태 연습을 하면서 특별히 개발한 방법입니다. 지그재그로 뛰어가는 것이었어요. 새로 개발한 지그재그 법 달리기는 산비탈을 비스듬하게 달리다가 다시 옆으로 꺾어서 비스듬하게 달리는 것이지요. 앞다리가 짧은 롱다리 토끼이지만 앞으로 넘어지는 일이 없었어요. 토끼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어요.
저 아래 넓은 잔디 광장에서 응원하던 토기들이 이 모습을 보고 와! 함성이 크게 터져 나왔어요.
통 거북이가 롱다리 거북이가 앞서가는 모습을 보고는 싱긋 웃었어요. 마치 예견한 일이라는 것처럼 대수럽지 않게 생각했어요.
롱다리 토끼와 통 거북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아고라 광장의 토끼들이 승리의 노래가 우렁차게 무학산의 메아리로 번져왔어요. 거북이 쪽의 응원단은 점점 응원소리가 낮아졌어요.
토끼는 지그재그로 달리니까 아무리 내리받이 길이라도 넘어지지 않고 쉽게 뛰어 내려갈 수 있었어요. 물론 지그재그로 달리면 거리가 멀어져서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해도 워낙 빠른 롱다리 토끼에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이제 중간 지점을 가볍게 통과하여 결승선을 멀직이 바라보고 신나게 뛰었어요.
통 거북이는 그런 토기를 내려다보고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중간지점을 지났어요. 중간 지점을 지나자 바로 앞에 작은 바위가 거북의 길을 가로 막았어요. 통 거북은 묵묵히 작은 바위 위로 올라갔어요. 아래로 떨어지면 아주 위험한 곳이지요.
저 아래 아고라 광장 거북팀에서 우-우-우 - 하고 함성을 질러댔어요
“통 거북아, 그 길은 돌아와, 위험해! 그 바위 위로 올라가면 위험해. 우! 우! 우! ”
통 거북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바위 위에 올라섰어요. 아고라광장이 저 아래로 한 눈에 들어왔어요. 토끼가 결승선을 향해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것도 보였어요.
통 거북은 숨을 크게 들여 쉬었어요.
“이제 내가 땀 흘려 연습한 기술을 보여줄 때이구나.”
통 거북은 작은 바위 위에 우뚝 일어섰어요. 그리고는 아주 날렵한 몸짓으로 쟁반처럼 몸을 날려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요. 통 거북의 몸은 그와 동시에 아주 빠른 속도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마치 비행접시가 옆으로 세워져서 굴러가듯이 빠르게 굴렀어요. 날아가는 것만큼이나 싱싱 빨리 굴렀어요.
그와 동시에 롱다리 토기가 이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빨리 달리다가 그만 앞으로 꼬꾸라져 넘어졌어요.
그 아래 아고라 광장에서는 골짜기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나왔어요. 더구나 거북이 쪽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 했어요.
“통 거북 만세! 만세! 만세!”
“역시 통 거북의 지혜는 따를 수 없어.”
그 함성 속에서 롱다리 토끼는 정신없이 달렸어요. 몇 번을 곤두박질해 넘어졌는지 이마에 흙투성이가 되었어요.
통 거북이도 어지럼증을 꾹 참고 비행접시를 세운 모습으로 굴렀어요.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하는 것을 참았어요. 결승선이 거북이 앞으로 바싹 다가왔어요. 큰 걸음걸이라면 크게 펄쩍 뛰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까지 왔어요.
그런데 큰일났어요. 거북이가 굴러오는 바로 앞에 작은 구덩이가 파져 있지 않겠어요. 빨리 굴러오던 거북이가 그만 그 작은 구덩이에 빠져 버렸어요. 그것도 거북의 등이 구덩이 아래쪽으로 향한 채 빠져 버렸어요.
거북이 팀의 그 힘찬 응원 소리가 갑자기 탄식의 소리로 바뀌었어요.
“아, 큰일났구나. 이 일을 어쩌나?”
통 거북이는 구덩이 아랫쪽에 등이 닿아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온 힘을 다해 굴러왔기에 몸을 뒤집을 기운조차 없었어요.
이를 뒤에서 바라본 롱다리 토끼는 숨을 헐떡거리며 힘을 다해 달려왔어요. 롱다리 토끼에게 갑자기 용기가 힘차게 솟아올랐어요.
“좋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번에는 나의 승리가 확실하군.”
롱다리 토끼는 숨을 크게 들여 쉬며 안도의 한 숨을 내 쉬었어요. 여유롭게 응원석을 향해 앞발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어요.
바로 그 때였어요.
작은 구덩이에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하던 통 거북이가 겨우 구덩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어요.
“와! 우리 통 거북 만세! 만만세!”
통 거북은 그 소리를 들리지도 않는지 숨을 크게 쉬고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결승선을 향해 기었어요.
양 팀의 응원이 대단했어요.
“롱다리 롱, 롱, 롱. 산토기 토, 토, 토”
“통 거북 통, 통, 통, 거북이 북, 북, 북”
롱다리 거북이와 통 거북이가 누가 앞인지 구별할 수가 없이 결승선을 들어섰어요.
통 거북이가 결승선에 앞발을 걸친 채 다리를 벋고 쓰러지자, 그 위를 롱다리 토끼가 거북이 등을 밟고 달렸어요. 롱다리가 의기양양하게 아고라 광장을 한 바퀴 돌자, 광장에 모인 토끼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함성을 질렀어요.
“롱다리 만세, 롱롱롱 만만세”
통 거북은 귀 밖에 희미해져 가는 토끼들의 함성을 들으며 힘없이 눈을 스르르 감았어요.
5.
잠시 후, 결승선 심판을 맡은 사슴들이 모였어요. 오늘은 심판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특별히 이웃마을 사슴들을 불러 심판을 맡겼어요.
사슴 심판들은 모여, 롱 다리와 통 거북의 결승에 대해 서로 의논을 했어요. 심판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심판장을 맡은 키 큰 사슴은 결승선에 서서 신중하게 말했어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롱다리 토끼가 단연 우승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승선을 들어왔어도 저렇게 힘차게 뛰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심판을 해도 바르게 합시다. 롱다리 토끼는 발로 뛰었지만 통 거북은 굴렀어요. 그것은 뛰는 것과 다릅니다.”
“아닙니다. 저는 통 거북이를 우승자로 뽑고 싶습니다. 결승선에 먼저 발을 내딛었어요. 그것은 경기 규칙에 ‘발이 먼저 결승선에 닿은 자를 우승자로 한다’라고 밝혀져 있어요.”
“저도 통 거북이를 우승자로 밀고 싶습니다. 경기 규칙에는 구르든지 뛰든지 그런 규정이 없이 결승선에 먼저 닿는 자를 우승자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심판장을 맡은 키가 큰 사슴은 긴 목을 빼고 한 참 생각에 잠겨 있더니 엄숙하게 말했어요.
“저도 통 거북이에게 손을 들어 주고 싶어요. 얼마나 자신의 일에 충실했으며 슬기로 왔는지에 대한 점수를 주고 싶어요.”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잔디 광장의 거북이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아고라 광장에서 강강수월래로 돌았어요.
잠시 후 시상식이 있었어요.
부축을 받아 시상대에 올라온 통 거북은 겸손한 자세로 우승 소감을 말했어요.
“힘만으로 되는 일이 있고, 힘과 지혜가 합해져야 되는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성원 감사합니다.”
산까치가 온 마을에 다니면서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높이 날아올랐어요.
(동화가 실린 가락문학 2013. 19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