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리나무
Mysore Thorn , 夜皁角 , ジャケツイバラ蛇結茨
분류학명
| 콩과 |
| Caesalpinia decapetala |
실거리나무는 한반도의 남부 해안과 섬 지방에서 자라는 자그마한 갈잎나무다. 나무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름조차 생소할 것이다.
실거리나무와 나의 첫 만남은 전남대 재직 시절이었던 1980년대 초 보길도에서였다. 마을 앞 여러 잡목들이 멋대로 자란 작은 숲에 들어가는데, 이 녀석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긴 세월 동안 숲속을 자주 헤매고 다닌 터라 큰 나무가 아닌 웬만한 나무는 한쪽으로 밀치고 밟고 다니는 일에 익숙한 나였지만, 그 나무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길게 뻗은 가지에 마치 낚싯바늘이 연상되는 짧고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의 예리한 가시가 달려 있어서다. 크진 않아도 낫 모양의 가시가 너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원래 덩굴나무는 아니지만 길게 늘어진 가지들이 덩굴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이 녀석의 심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막대기 하나를 잡아 이리저리 누르고 발로 밟으면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유연성이 좋은 가지들이 자꾸만 앞을 가로막았다. 실랑이는 금방 내가 들어간 길로 되돌아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실거리나무라는 이름은 얼기설기 가시 때문에 ‘실이 걸린다’는 특징에서 따온 것이다. 실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잘 걸린다. 그래서 보길도에서는 총각이 이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 하여 총각귀신나무라 하고, 흑산도에서는 단추걸이나무란 별명도 있다. 지방에 따라 띠거리나무, 살거리나무라고도 한다.
어쨌든 실거리나무의 특징은 험악한 갈고리 가시로 대표된다. 제주도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1) “옛날 바닷가 어느 마을에 젊은 과부가 살고 있었다. 모양내기를 좋아했던 과부는 대처로 나가 예쁜 옷을 한 아름 사들고 배를 타고 마을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일어난 풍랑에 배가 기우뚱거리자, 옷 보따리를 그만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과부는 보따리를 건지려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사람도 옷 보따리도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후 사람들은 실거리나무가 바로 한을 간직한 과부의 넋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거리나무는 낚싯바늘 같은 가시를 달고 사람만 얼씬거리면 옷을 걸어 꼼짝 못하게 하고, 한번 걸리면 가시가 부러지기 전에는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거리나무의 가시 특징을 한참 이야기했지만, 이 나무의 진짜 백미는 꽃이다. 5월 중하순 경에 피는 꽃은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다섯 장의 5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샛노란 꽃잎을 펼친다. 그냥 노랗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운데에 가느다란 10개의 붉은보랏빛 긴 수술이 노랑 꽃잎의 화사함에 악센트를 주고 있다. 금방 날아가 버릴 노랑나비가 앉아 있는 듯, 가시투성이의 나무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꽃의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실거리나무의 잎도 꽃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화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까시나무 잎처럼 잔잎이 여럿 달린 겹잎이다. 더 작고 초록빛도 더 짙으며 잎의 개수도 많고, 또 이중 겹잎이다.
짧은 콩꼬투리 안에 들어 있는 까만 열매는 해열제나, 설사를 멈추게 하는 데 쓰이며, 때로는 구충제 등 민간약으로 이용한다. 콩과에 속하는 나무라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
나는 따뜻한 남쪽나라에 자그마한 농장 하나를 갖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이제 그 꿈을 접어야 할 연륜이 되었지만, 항상 머릿속에서는 실거리나무 산울타리에 노랗게 핀 꽃 천지를 그리고 있다. 아름다운 꽃은 꽃대로 감상을 하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접근하기 어려운 울타리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나무가 바로 실거리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