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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처럼 번진 자립생활운동

작성자레인보우|작성시간03.02.17|조회수76 목록 댓글 0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행정부는 기업과 정부기관에 불길한 조짐으로 여겨지는 규정들, 특히 504조와 교육법을 재검토하였다. 1984년 사회학자 스코치는 "장애인 권리 운동의 효과는 1978년 최고조에 달했으며, 레이건의 당선 이후 영향력의 감소가 지속적으로 빨라졌다"라고 썼다.
몇 년이 지난 후 버클리에서 시작된 자립운동은 전국으로, 매우 빠르게 번져갔다. 1977년 장애인정책 전문가 마가렛 노섹에 따르면 미국에는 자립센터가 52개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10년 동안 집단활동이 열정적으로 번져 그 수가 3백개에 달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초기 자활센터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가장 활동적이고 번성하다고 여겨졌던 버클리 센터를 모델로 삼았다.
1976년 한 보고서에 의하면 센터는 이미 약 1천명의 장애인에게 이동시 원조, 휠체어 수리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1988년 센터는 1년동안 평균 81시간의 원조를 받는 1807명의 장애인을 도왔다고 보고하였는데, 전체 장애인의 4분의 3이 빈곤상태에 있었다.

1978년 의회가 로버츠의 증언에 따라 자활센터를 운영할 기금을 주에 지원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면서 중요한 순간이 왔다. 이는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재정자금의 확보를 보장하였다. 그러나 센터가 연방의 돈에 의존했기 때문에 공공연한 정치적 활동의 대부분을 유연하게 해야 했다.
자활센터의 번성은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심지어는 고립된 전원지역까지의 전국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 그리고 장애인 전문가들에게 장애인 권리운동의 새로운 철학을 심어주었다. 그들은 자활의 새로운 이상을 주장하였다. 센터는 아무도 심지어는 의사나 치료자들조차도 장애인의 욕구에 대해서 장애인 자신들 보다는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무엇보다도 센터는 자신들의 자조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자기결정권을 갖는 장애인의 새로운 모델을 제공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세대 이후의 미국의 장애인은 전장애아동교육법과 자활운동의 새로운 인식의 수혜자가 되었다. 1977년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장애아동들은 권리를 보장받은 첫 세대로서 198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학교를 떠나 학교에서 보호받았던 만큼의 장애인권리를 보호받을 수 없는 사회로 나가는 시점이 새로운 장애인 활동의 출발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집단의 일원으로서 보호받았던 이 세대들은 앞서의 권익이 유린됐던 세대보다 스스로를 일으키는 데에 자기확신적이었다. 갈라데학생들의 저항, 장애를 가진 미국인법안의 통과, 504조의 확대 등은 197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 시위 참여 세대들의 장애인 권리행동의 짧은 동요가 떠난 자리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사건들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장애인라는 소수의 정체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버클리에 뿌리를 둔 자조의 이념에 근거한 활동가의 전망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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