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낙관적으로 보이기만 했던 운동이 시위자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곧 주춤거리게 되었다. 버클리 부근이 이미 '장애인의 메카'라고 언론에 의해 꼬리표가 붙여졌지만 다른 지역에는 로버츠와 휴맨이 캘리포니아에서 구축하려고 했던 행동주의의 중심부가 없었던 것이다.
신문들은 아이오와주의 5백명 이하의 농장지역 사람들의 분노를 보도했다. HEW 지방사무소는 그 마을의 공공 도서관에 장애인들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통보했다. 공무원들 중 누구도 휠체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경사진 진입로를 만드는 데에 6천5백불이 소요되기에 이르렀다.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베코비츠는 나중에 장애인에 대한 반차별 조치의 급격한 실현은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분리수용의 종결이 재정 절약을 의미했던 흑인의 시민권 운동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베코비츠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비용은 정치적이었다. 미시시피대학의 제임스 메레디쓰는 경사로나 난간이 있는 넓은 화장실, 계단이 아니라 수업에 출석할 수 있는 용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제임스 메레디쓰의 대학에 대한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은 비용을 절감하기보다는 비용이 드는 것이었다." 이는 곧 대학이 연방 조치에 따르는 행정적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장벽 없는 환경'의 건축가 론 메이스는 대학 관계자들이 대체로 장애인들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을 지나치게 과대추산했다고 말한다. 북부 캐롤라이나 교육 공무원은 주립대학 건물을 접근가능토록 만드는 데에 150억불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산했다고 메이스는 말했다.
사실 변화의 대부분은 간단했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탄 학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대학은 학생들을 높은 층까지 옮길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보다는 1층으로 수업을 옮겼다. 메이스는 실제로 겨우 1천5백만불 정도의 비용이 든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노동부의 1982년 조사 역시 장애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큰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왜냐하면 작업장의 변화 중 50%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30%의 변화는 피용자 1인당 1백불에서 5백불이 소요되는 것이었고, 최고로 비용이 많이 드는 4%의 변화도 피용자 1인당 2천불이 소요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인들이 504조를 사인한 직후 몇년간 여전히 연방의 자금제공기금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있었다. 흑인들의 시민권운동의 진보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던 법원이 장애인들에게는 덜 호의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남동부 커뮤니티 칼리지 v. Davis의 최고 법원은 청각장애여성인 프랜시스 데이비스가 북캐롤라이나 대학의 간호원 양성프로그램에 그녀의 장애가 임상 과정에 참여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입학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직무에 고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그녀의 청각장애가 입학만 거절당하지 않는다면 학교에 가거나 간호원이 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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