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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름답다

작성자레인보우|작성시간03.02.17|조회수50 목록 댓글 0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연좌농성은 장애인권리운동의 정치적인 시대를 가져왔다. 또 이러한 항의는 장애인들끼리 서로 다른 장애영역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했다. "여러가지 다른 영역의 장애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은 다른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다. 즉 이 시점까지 시각장애인조직, 청각장애인조직, 휠체어장애인 모임 등이 따로 있었다"고 25일 동안 농성장에 머물러 있었던 M. J. 오웬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소교구주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더욱 발전하였다. 연방건물의 6층에서 시위자들은 장애인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였고, 사생활이 없는 구역을 만들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친근한 친구가 되었다. 한 지체장애여성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어느날 밤, 이 젊은 여성과 12명의 사람들은 둘러앉아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여기서 그 젊은 여성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아름답게 되기를 바랬었고, 절름발이가 아니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웬도 "우리는 모두 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정신지체이거나, 시각장애인거나 청각장애인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들은 모두 다 아름답고 힘이 있으며, 강하고 존엄하다"라고 말했다.
이 법이 통과된 지 4년이 지난 후인 1977년 4월 28일 칼리파노는 장애인들의 잇단 항의에 굴복하여 일체의 변경없이 법안에 싸인을 했다. 그리고 4월 30일 시위자들은 이같은 승리를 기뻐하며 행진을 하였다. 동시에 칼리파노는 모든 장애아동의 교육을 위한 법안에도 싸인을 했고, 의회는 1975년에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가 이러한 두 법안에 싸인을 함으로써 학교는 모든 장애아동에 대해 가능한 최상의 공공교육의 보장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어 부모들이 수업의 질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법률은 상당한 수의 장애인이 대학교 진학을 가능케하는, 교육받은 장애아동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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