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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장애인의 역사

작성자레인보우|작성시간03.02.19|조회수361 목록 댓글 0

역사의 대부분 시기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은 곳이었다. 식민지시대의 미국에서, 거대한 새로운 농경사회 초기의 이주자들에게 신체의 건강은 중요한 프리미엄이 되었다. 초기의 식민지는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없고 주정부의 원조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민을 거부하였고,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서 잠재적으로 의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영국으로 추방당하였다.
이러한 국가의 태도는 독립전쟁 동안에 어느 정도 누그러지게 되었다. 대륙의회는 장애를 가지게 된 병사들에게 연금의 50%를 지불하였는데, 이것이 연방정부가 장애인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원조를 한 최초의 일이다. 1798년도에는 병들고 장애를 가진 선원들을 위해 해상 병원(Marine Hospital) 체계가 설립되었는데, 이 해상 병원서비스가 후에 공중보건서비스로 발전하기도 했다. 전쟁중에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에 대해 국가가 빚을 지고 있다는 의식은 미국 역사를 통하여 많은 주요 장애프로그램들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을 반영한 식민지의 대도시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정신적,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구빈원을 설립하였다. 인구가 늘어나고 농촌사회가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는 19세기 초반기에 이 구빈원들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보스턴의 한 여교장 도로시아 딕스는 어른과 아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범죄자, 그리고 간질, 발달지체, 만성질병이 만연한 지방 구빈원의 관리를 주정부가 맡아줄 것을 1840년대에 요구한 개혁자였다. 딕스는 만성질병과 발달지체를 가진 사람들이 '감옥, 벽장, 지하실과 같은 곳에 갇혀 있고, 체인에 묶여 있거나 벌거벗겨져 있고, 채찍질을 당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결과 주정부는 그러한 기관들을 인계했고, 더 많이 지었으며, 범죄자, 장애인 그리고 구빈원에 있던 사람들을 위한 시설을 각각 따로 지었다.
1854년에 딕스의 압력을 받은 의회는 과거의 정책내용들을 폐기하고, 그 당시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그리고 정신병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위한 각각의 시설들을 위해서 연방정부의 재원을 제공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프랭클린 피어스(14대 대통령 : 1853-1857)는 여기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원조는 연방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는 의사와 교육자들은 장애인들이 기관에 보내지는 것보다 사회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이해하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1812년에 발티모어에 설립되었고, 1817년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하트포드에 설립되었다. S. G. 호위는 다른 학교와 교과과정이 비슷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수용시설을 설립하였는데, 그의 이론은 주류화의 초기 형태였다. 그는 시각장애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호위는 시각과 청각의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는 로라 브리드만이라는 여성을 가르치는데 성공하였으며, 이것은 개혁가들에게 이들 중복장애인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은 호위가 '정신지체 청소년'을 훈련시키는 첫번째 주립학교를 1848년에 설립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호위와 그의 동료들은 정신지체가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과 또 교육도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결과 이러한 학교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위한 학교라기 보다는 그들을 보호하는 요양원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다. 역사학자인 레니한은 "사회의 주류와의 격차가 메워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발달지체가 더 이상 정신이상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져서는 안된다"고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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