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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자립생활'의 가능성과 함의

작성자레인보우|작성시간03.04.11|조회수262 목록 댓글 0

7. 한국에서의 '자립생활'의 가능성과 함의

최근 한국에서 자립생활의 개념이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지면서, 자립생활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발전된 개념이고, 어느 정도 수준의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어렵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한국의 상황이 자립생활 모델이 정착되기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열악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의 한계가 무엇인지, 어떠한 방향에서 제한점을 바라 볼 것인가를 검토하기 위해, 일본의 최초의 자립생활센터인 휴먼케어협회의 대표인 나까니시가 미국의 ADA와 같은 JDA(장애를 가진 일본인법)가 일본에서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열거한 일본의 부족한 요소, 충분한 요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에이타 야시로 외, 1993 : 283-284)

<부족한 요소>
① 직접서비스(개호, 자립생활프로그램)를 제공하는 자립생활조직이 성숙되지 못하였다.
② 자립생활 실천가가 운동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③ 권리옹호활동과 직접서비스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④ 정책입안능력이 있는 장애인이 양성되어 있지 않다.
⑤ 보수, 혁신을 막론하고 로비(lobby)활동이 미약하다.
⑥ 국민, 장애인 모두가 권리의식, 공민권적 발상이 부족하다.
⑦ 지체, 청각, 시각, 정신 등 장애의 유형을 초월하여 대동단결한 일이 없다.

<충분한 요소>
① 외부압력에 약하기 때문에 ADA가 자극이 된다.
② 인권도 민주주의도 성숙되지 못하여, 장애인의 자립생활운동이 리더쉽을 가지고 이들을 모두 키워갈 수 있다.
③ 정부의 직접서비스가 발달되지 못하여 장애인의 활동 기회가 풍부하게 남아 있다.
④ 정부가 아직 복지사회의 전망(viosion)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에 소비자조직인 장애인단체에게 기회가 남겨져 있다.
⑤ 공공교통의 접근성(Access)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전국적인 공동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이상의 지적은 물론 JDA(장애를 가진 일본인법)를 염두해 두고 일본과 미국을 비교한 것이지만, 서구사회와 동양사회, 복지 선진국과 후발국이라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따라서, 비교한 내용은 한국 자립생활운동의 제한점과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데 있어서도 경청해 볼 만한 것이다.

최근 한국의 장애인복지정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이 장애인의 인권의 신장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장애인복지정책의 도입과 발전은 외부적 영향과 시혜적 성격이 강했다.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급조된 정책은 장애인의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기 보다 부분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초보적 수준에서 제공하는 데에 머물러 있다. 일본 장애인의 권익옹호 활동과 직접서비스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나까니시의 진단도 한국의 상황에서는 더욱 적절하다. 한국 장애인복지정책의 문제가 단순히 시민의식, 인권의식의 결여에 의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자립생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기에는 한국에서 장애인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와 관련하여 미국 사회가 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는데 비해 한국은 그러하지 못해, 아직까지 가족과 같은 공동체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최근 한국도 가족공동체가 많이 와해되는 과정에 있지만, 의존성을 탈피하는 자립생활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수용하기에는 아직 개인적이건 사회적이건 공동체적 전통이 상당부분 지배하고 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장애인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이 결여되어 있고, 장애인복지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애연금이 없어 중증장애인의 삶은 위협 받고 있다. 다양하고 일상적인 삶은 얘기하는 것이 아직은 사치스러운 얘기일지 모른다. 개호서비스체계도 없고 물리적인 환경도 열악한 상태이다. 사회의 차별과 편견의식은 여전해 거의 모든 장애인이 직업의 보장이 되어 있지 못하다. 중증장애인은커녕 경증장애인조차도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들을 놓고 볼 때, 한국에서의 장애인 자립생활은 가능하지 않고 요원한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자립생활은 이상적으로 완성된 상태를 두고 얘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립생활은 장애인의 인권보장과 평등, 그리고 완전한 사회참여로 가는 과정에서, 장애인에게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책임질 권한을 부여하고 장애인 동료로부터 지원 받을 수 있게 하며, 포괄적인 서비스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과정에서의 실천방안, 접근방식, 인식과 태도의 측면을 중시하는 것이 그 근본정신이다. 자립생활은 그 자체가 완성태이자 과정태이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의 조건이 열악하다는 것이 자립생활의 근본정신을 거부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또한 자립생활에 대한 부정적 주장은 자립생활의 근본정신을 소화하지 못한채 자립생활을 하나의 서비스프로그램 체계로만 이해한 데에 기인한다. 결국, 자립생활에서 표방되고 있는 원칙, 즉 장애인 당사자의 결정권과 선택권, 주도적인 참여, 사회환경의 개선은 그 나라의 복지역량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줄기차게 견지되어야 할 근본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직접적인 참여의 요구는 부진한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장애인복지의 상황에서 새로운 전망을 열어 준다 하겠다.(김동호, 1999)
나까니시가 일본을 진단했던 것처럼, 한국의 열악한 조건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얘기한다는 역설이 가능할 수 있다. 아무런 전망과 철학이 없이 파행적인 한국 장애인복지의 풍토에서 자립생활운동은 새로운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직접서비스가 발달하지 못하여 장애인 당사자의 활동 가능성이 있고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으며, 정부가 못하고 있는 장애인복지의 전망제시에 있어 자립생활운동가들에게 기회가 남아 있다. 물리적 접근성의 요구는 단순히 환경의 개선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장애인의 권리를 담아 장애인 문제를 상징화시킬 수 있다는 전략적인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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