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논문 심사 소감
국어국문학과 4학년 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졸업논문 심사가 일단락되었습니다.
저는 고전문학 분야를 심사했는데, 제가 지도교수로 지정되어 있는 사람 중에는 수정 지시를 받은 학생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졸업논문은 우리 학과를 마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며, 스스로에게는 몇 년 동안 공부한 마지막 결실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졸업논문을 작성함에 있어서도, 심사를 함에 있어서도 추호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사를 하고 수정지시를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지나치게 허술하게 쓴 논문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지도와 수정지시를 할 때 학생의 입장이 아닌 사회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례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제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이며, 스스로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점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도교수의 이름도 모르고, 연구실 주소도 모르며, 원고지에 써야 하는지 아니면 몇 장을 써야 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상태에서 졸업 논문을 썼다는 사실 등등이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점들을 종합하여 심사와 수정지시를 하면서 느낌 점들을 몇 가지 적어볼까 합니다.
첫째, 이번 고전문학 분야 졸업논문에서는 경기지역 학생들의 실력이 가장 돋보였습니다. 논문주제의 선정에서부터 體制와 내용에 이르기까지 경기지역 학생들이 제출한 것들은 나무랄 데가 별로 없는 논문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제가 추측하건대 경기지역 학생들은 오래전부터 졸업논문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서로 토의를 하면서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노력들이 좋을 결과를 낳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애써 가르친 보람을 새삼 느끼게 되었던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지역 학생들은 경기지역 학생들이 지닌 이러한 학문자세를 본받았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가장 실망스런 논문을 많이 낸 곳을 꼽는다면 서울지역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생 수도 많고 보고 접할 자료와 정보 등도 많기 때문에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논문을 써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이러한 상식을 뛰어넘어 서울 지역은 불합격과 수정지시가 가장 많았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이 점을 서울지역의 학생 여러분 모두가 반성하고 각성해야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둘째, 주제가 너무 크고, 방대한 내용의 논문을 써서 낸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낸 논문 주제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연암소설에 나타난 실학사상연구와 금오신화 연구인데, 이것은 박사논문으로 써도 몇 개를 써야할 분량이고 주제입니다. 이렇게 큰 주제를 대상으로 하는 논문은 학부 논문으로 부적당할 뿐 아니라, 이 경우는 대개가 누군가가 써준 것을 구입해서 내는 것으로서 자신이 쓴 논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지없이 수정 지시가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논문을 내는 사람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으로서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할 것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의 학위논문을 요약하거나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1000원짜리 글을 그대로 전제한 논문을 내는 사람이 상당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접할 수 있는 논문이나 상업적인 글들은 저 역시 앉은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에서 나온 학위 논문을 요약하여 낸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제 연구실에서는 전국의 모든 학위 논문이 검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졸업생이 되려면 이런 행위는 스스로가 하지 말아야한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넷째, 매우 주관적인 자신만의 주장을 논문의 형식에도 맞지 않게 써서 제출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대학원에 가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학위논문이나 다른 학술잡지에 실어야 하고, 졸업논문으로는 부적당하기 때문에 수정을 하라고 하여도 막무가내로 버티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것은 배우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가 아님을 지적해두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움을 받아야할 때는 겸허한 자세로 배우고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때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행위입니다.
다섯째, 자신이 쓴 논문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직접 쓴 것인지 아닌지가 의심스러울 때는 직접 전화를 걸어서 논문의 내용에 대해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경우 본인이 쓴 논문에 나오는 용어나 내용 등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惺所覆瓿藁’에 나타난 허균의 사상에 대한 것을 논문으로 쓴 경우 이 한자를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이것이 어떤 말이며, 논문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등을 물으면 논문을 쓴지가 오래 되어서 잊어버렸다는 당치않은 이유를 대면서 당연히 모른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란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정성을 들여서 쓴 논문이라면 내용을 모를 리가 없고, 어려운 용어가 있었다면 반드시 그것을 찾아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그러냐하면 핵심적인 용어를 모르고서는 그 논문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물어본 핵심 내용이나 용어에 대해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반성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섯째, 자신이 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는 동안 여러분들은 모두 학생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으로 대우 받고 학생으로 행동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논문에 대한 지도나 수정지시 등에 대하여 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인으로 받아들여 매우 기분이 상했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사회인으로 만났다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본인이 쓴 글이냐고 물어야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논문의 내용을 물어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딱딱한 어투와 분위기로 묻고 확인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자신이 학생의 신분이라는 마음자세로 겸허히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이상이 이번 졸업논문을 심사하면서 제가 느꼈던 몇 가지 감상들이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는 것은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4학년들은 스스로 반성함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과 후배 재학생들은 선배들의 이런 점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의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행운과 건강과 늘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005년 9월 21일 손종흠 드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