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에 적절한 어휘를 가려 쓰지 않아 어색해진 문장의 예 중 몇 개를 아래에 적는다.(7쪽)
가. 시험 준비에 시달린 탓인지 신체가 많이 줄었다.
나. 이번 학기에는 노력한 만큼 성적도 많이 상승했다.
교재에서는 '신체'는 '줄다'와, '성적'은 '상승하다'와 어울리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고칠 것을 제안한다.
가'. 시험 준비에 시달린 탓인지 몸이 많이 줄었다.
나'. 이번 학기에는 노력한 만큼 성적도 많이 향상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만, 어휘에 따라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로 보아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도 다른 어휘와 어울려 쓰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다소 혹은 전혀 부자연스럽기도 한 경우가 있다고 소개한다. 후자의 설명이 (가,나)에 해당할 것이다.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어휘의 기본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사전에 제시된 의미를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사전에 제시된 의미만으로는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는 뜻일까? '신체'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신체「명사」
「1」사람의 몸.
¶ 신체의 자유/신체가 허약하다/신체가 튼튼하다/신체를 단련하다/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그리고 목마름과 배고픔에 견디면서, 움직이고 싶어 하는 신체 각 부위의 부단한 욕망과 싸우면서 보냈다.≪조해일, 왕십리≫「2」갓 죽은 송장을 이르는 말.
¶ 김 선생의 신체를 모신 방에서 사람들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있었다./논개는 정신이 아찔했다. 그대로 김시민의 신체 앞에 엎드려 흑흑 느낀다.≪박종화, 임진왜란≫
'갓 죽은 송장'은 (가) 문맥의 쓰임과 전혀 다르므로 문제가 되지 않고 그럼 '사람의 몸'이 '신체'의 의미라면 '몸'의 자리에 '신체'가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왜 부자연스러운 것일까? 왜 몸이 주는 건 가능한데 신체가 주는 건 불가능할까? 교재에서는 단지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했다. '신체'와 '몸'의 차이는 뭘까? 이번에는 '몸'을 보자.
몸 「명사」
「1」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이루는 전체. 또는 그것의 활동 기능이나 상태. ¶ 몸이 크다/몸이 건강하다/몸에 좋다.
「2」물건의 기본을 이루는 동체(胴體). ¶ 추락한 비행기는 날개가 부러지고 몸만 남은 흉측한 모습이었다.
「3」((관형어 뒤에 쓰여))그러한 신분이나 사람임. ¶ 귀하신 몸/천한 몸/여자의 몸/학생의 몸.
「4」=몸엣것「1」.
「5」잿물을 덮기 전의 도자기의 덩저리. ≒이태02(耳胎)ㆍ항태(缸胎)「2」.「6」한자에서 글자의 바깥 부분을 에워싸고 있는 부수. ‘國’, ‘匹’에서 ‘囗’, ‘匚’ 따위이다.
비교의 대상이 되는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이루는 전체. 또는 그것의 활동 기능이나 상태'이다. '신체'를 '사람의 몸'으로 풀어놓은 이상 이들 의미만으로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들의 용례를 간단히 살펴보자.
신체: 신체 검사, 신체 충실 지수, 신체 포기 각서, 신체의 자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신체가 허약하다/튼튼하다, 신체를 단련하다 ...
몸: 몸 튼튼 마음 튼튼, 몸이 크다, 몸이 건강하다, 몸에 좋다, 귀하신 몸 ...
우선 들 수 있는 사실은 '신체'는 한자어이고 '몸'은 고유어라는 점이다. 대개 유의어로 고유어와 한자어가 같이 존재하면 고유어가 더 추상적, 한자어가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몸'과 '신체'가 유의어라고 해서 '학생의 몸으로서, 천한 몸'을 '학생의 신체로서, 천한 신체'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땐 '신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또,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기본의미로만 쓰였을 때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어울리는 편이다. '몸 튼튼' 자리에 '신체 튼튼'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렇지만 '신체가 허약하다/튼튼하다, 신체를 단련하다'에서는 '신체'를 '몸'으로 바꾸어도 자연스럽다. 오히려 어떤 표현은 '몸'이 더 알맞은 인상마저 든다. 반대로 '신체 포기 각서', '신체의 자유'의 '신체'는 '몸'이 분명하나 '몸 포기 각서, 몸의 자유'로 바꾸면 어색하다. 그 의미는 통할지라도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내려와도 그 의미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 열쇠는 다음 두 용례 '신체 검사'와 '신체 충실 지수'에 들어 있어 보인다. 이들을 '몸 검사' '몸 충실 지수'로 바꿔보자. '몸 검사'는 '신체 검사'가 아닌 '몸 수색'의 어감이 강해져 자칫 엉뚱한 의미로 전달될 소지가 보이고 '몸 충실 지수'는 본래 의미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 두 용례에서는 '신체'와 '몸'이 다른 예에 비해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신체 검사'는 '건강 검진'과는 약간 다르다. 그 경계가 문제가 될 순 있지만 '신체 검사'의 기본적인 조사 항목'은 '키, 몸무게, 가슴둘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신체 충실 지수'는 키와 몸무게의 상관관계를 따져 마르고 찐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여기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실이 있다. 즉, '신체 검사'와 '신체 충실 지수'의 '신체'는 '키와 몸무게' 다시 말해 '신장과 체중'인 것이다. 바로 '신체'의 또 다른 의미가 '신장과 체중'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신체가 많이 줄었다'가 이상한 이유가 해결이 된다. '신체'엔 '신장(키)'의 의미가 포함되므로 줄어드는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반면 '몸'은 '신장'이나 '체중' 등을 구체적으로 담지 않고 '형상을 이루는 전체'를 의미하므로 '줄었다'와 의미가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신체'의 3번 풀이로 '신장과 체중'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나)는 함께 생각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