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씌어/쓰여 있는 글씨가 잘 안 보인다”와 같은 예문에서 ‘씌어’를 써야 하는지 ‘쓰여’를 써야 하는지 애매하게 생각될 때가 있다.
‘씌어’와 ‘쓰여’는 모두 ‘쓰-+-이-(피동접사)+-어(연결어미)’에서 나온 것인데, ‘씌어’는 ‘쓰-’와 ‘-이-’가 축약된 것이고, ‘쓰여’는 ‘-이-’와 ‘-어’가 축약된 것으로서, 둘 다 올바른 형태이다.
‘보이어’, ‘쏘이어’ 등이 각각 ‘뵈어’와 ‘보여’, ‘쐬어’와 ‘쏘여’ 두 가지 축약형을 가져서 “선을 보였다/뵈었다”, “바람을 쏘였다/쐬었다”가 모두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씌어’를 발음 때문에 ‘씌여’로 쓰는 경향도 있는데, 이는 축약이 잘못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씌어/쓰여’ 대신에 “칠판에 씌어져/쓰여져 있는 글씨가 잘 안 보인다”, “수익금의 일부는 결식아동들을 위해 쓰여집니다/씌어집니다”와 같이 ‘씌어져/쓰여져’ 형태를 쓰는 경우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피동사 ‘쓰이-’에 다시 피동의 의미를 나타내는 ‘-어지-’가 결합된, 이른바 이중피동형이다. 현실적으로 이중피동형이 쓰이는 경우가 있지만 규범상 허용되지는 않는다.
물론 아주 예외적으로 이중피동 형태가 올바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잊혀지다’가 바로 그러한 경우인데, 이것은 능동사 ‘잊-’에 피동접사 ‘-히-’가 결합하고, 다시 여기에 ‘-어지-’가 결합한 구성이다. 이중피동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피동사 ‘잊히다’보다 오히려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잊히다’와 함께 올바른 형태로 인정된다.(그러나 현재 사전에는 ‘잊히다’만 표제어로 올라 있고, ‘잊혀지다’는 표제어로 올라가 있지 않다. 사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국어에서 피동사를 만들어주는 피동의 접미사가 결합하는 동사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피동을 만들기 위한 장치로 ‘-어지-’가 보편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런데 ‘쓰다-쓰이다’와 같이 피동의 접미사가 결합된 피동사가 있는 경우에는 ‘-어지-’가 결합한 형태보다 피동의 접미사가 결합된 형태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글이 잘 쓰인다”보다 “요즘에는 글이 잘 써진다”가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쓰-+-어지-’ 형태 또한 올바른 것으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