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아름다운 우리말

[쉼표, 마침표 21] '당해 물건'과 '해당 물건'

작성자지현♡4|작성시간08.04.01|조회수1,141 목록 댓글 3

이대성(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법조문에서 자주 눈에 띄는 용어 가운데 ‘당해(當該)’가 있다. 이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 사물에 해당됨을 나타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해당(該當)’과 별 차이가 없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전에서는 이 둘을 비슷한 말로 처리하였다. 그러고 보니 ‘당해(當該)’와 ‘해당(該當)’은 같은 한자를 순서만 바꾸어 쓴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밖에 나가서 물어보면 어떤 말을 더 많이 알까? 법조문을 자주 접하는 이들 말고는 ‘당해’를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당해’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말’인 것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는 쓰이지 않는데도, 그래서 어려운 말인데도 유독 법조문이나 공문서에서는 자주 쓰이는 말들이 있다. 법이 진정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려면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조문이나 공문서에 쓰는 용어를 다듬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1)

취득세의 과세표준이 되는 취득가격은 과세대상물건의 취득의 시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 당해 물건을 취득하기 위하여 거래상대방 또는 제3자에게 지급하였거나 지급하여야 할 일체의 비용을 말한다. <지방세법 시행령>

 

   (1)에서 ‘당해 물건’은 ‘해당 물건’으로 바꾸어 써도 문제가 없다. 더 나아가 ‘그 물건’이라고 해도 괜찮아 보인다. 이미 앞에서 ‘과세대상물건’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2) 공단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신고 또는 제출받은 자료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소속직원으로 하여금 당해 사항에 관하여 조사하게 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2-1)

공단은 제1항 규정에 따라 신고되었거나 제출된 자료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소속 직원에게 해당 사항을 조사하게 할 수 있다.

 

   (2)에는 ‘당해 사항’을 ‘해당 사항’으로 바꾸는 것 말고도 고칠 점이 많다. 글은 필요한 만큼만 쓰면 되는데, 우리 법조문은 쓸데없는 말들을 너무 늘어놓기 일쑤다. 그래서 (2-1)과 같이 고쳐 보았다.

 

(3)

민법 제750조에 대한 특별규정인 민법 제755조제1항에 의하여 책임능력 없는 미성년자를 감독할 법정의 의무 있는 자가 지는 손해배상책임은, 그 미성년자에게 책임이 없음을 전제로 하여 이를 보충하는 책임이고, 그 경우에 감독의무자 자신이 감독의무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입증하지 아니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

 

   (3)에 쓰인 ‘해태(海苔)하다’는 사전에 “어떤 법률 행위를 할 기일을 이유 없이 넘겨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다.”로 풀이되어 있다. 즉, 해야 할 일을 제때에 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평소에 ‘해태’라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없다. 말하자면, “너는 왜 학교 숙제를 해태하니?”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3)을 쓴 대법관들도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법조문에는 이 말이 자주 쓰인다. 일상 언어에서 동떨어진 말은 죽은 말과 다르지 않다. (3)의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은 ‘성실히 수행하였음’이나 ‘게을리하지 않았음’ 정도로 고쳐 쓸 만하다.

 

(4)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중에 있는 자가 그 행상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무기에 있어서는 1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 <형법>
(4-1)

징역형이나 금고형으로 수감 중인 자가 생활 태도가 양호하여 뉘우치는 빛이 뚜렷할 때에는 무기형은 1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에 행정처분으로 가석방할 수 있다.

 

   ‘행상(行狀)’은 ‘하는 짓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평소에는 거의 들을 일이 없는 말이다. ‘개전(改悛)의 정(情)’ 또한 어색한 표현인 것은 매한가지다. 게다가 (4)에 쓰인 ‘~에 있어서’는 일본어투로 자주 거론되는 표현이다. 그래서 (4-1)처럼 고쳐 보았다. 글쓴이가 법 전문가가 아니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친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바가 있지만 취지는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함부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형법은 다른 법조문보다도 명확하고 엄격해야 하는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엉성한 표현과 이해 못할 어려운 한자어들이 너무 많다.

 

(5) 향후 안전관리 실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모니터링하여 문제가 있을 경우 영업정지 등의 엄중한 행정처분을 확행할 것이며 <소방방재청>
(5-1)

앞으로 안전 관리 실태를 꾸준히 살피고 감시하여 문제점이 있을 때에는 영업 정지, 면허 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엄격히 시행할 것이며

 

   ‘확행’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말이다. 잠깐 찾아보았지만 일어사전이나 중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인 듯하다. 그래서 그 뜻을 짐작만 할 뿐인데 ‘確行’ 즉, ‘확실하거나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말을 싣지 않은 사전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사전에도 없는 말을 함부로 써 대는 공공기관을 탓해야 할까?

 

(6) 취재를 목적으로 출입을 요청하는 언론사는 인터넷 사전 예약과는 별도로 수도방위사령부에 승인을 득한 후(얻은 다음에/받은 후에) 안내를 받아 취재할 수 있습니다. <북악산 관람 준수 사항>
(7) 본 절의 선거관리에 소요되는 경비는 후보등록 마감 익일에(→이튿날에/다음날에) 각 후보의 선거자금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파악, 확정하여 각 후보에게 고지한다. <○○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8)

군 복무를 필한 자(→마친 자)

 

   (6)~(8)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훨씬 자연스럽게 고쳐질 수 있는 예들이다. ‘득(得)하다’, ‘익일(翌日)’, ‘필(畢)하다’ 따위는 이런 문서들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말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말들이 전문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워낙 눈에 익어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말들 하나하나를 쉽게 다듬어 쓰려는 자세가 우리말을 다듬고 바루는 첫걸음이 된다.

   공공기관이 일상의 말과 동떨어진 말을 쓰게 되면, 그만큼 국민은 공공기관에서 멀어지게 된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말, 생명력이 넘치는 말을 쓰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이다. 몇 해 전부터 법제처에서 ‘알기 쉬운 법령문 만들기’라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진해(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글을 쓰다 보면 사람이 참 인색해진다. 뭐든지 뚫어지게 째려봐야 글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즐겨 쓰는 말로 사람이 참 ‘까칠해진다’. 게다가 타고난 품성도 옹색하여, 뭐든 작은 꼬투리 하나를 잡았다 싶으면 이를 침소봉대하여 전체 문제인 양 툴툴거린다. 오늘은 잘 만들어진 방송의 작은 꼬투리 하나를 잡으려 한다. 그것은 한국방송공사(KBS)의 ‘우리말 겨루기’이다. 예심에 1,600여 명이 참가하고 달인이 되기 위해 적게는 몇 달, 많게는 1년 넘게 공부한다는 프로그램, 말장난의 향연으로만 이어지는 토크쇼의 범람 속에서 국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우리말 지킴이, 국립국어원에서 보증한 품질 좋은 이 프로그램에 딴지를 걸려 하고 있으니 이제 필자는 곤경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말을 꺼내보자. 태생적으로 모든 퀴즈 대회는 출전자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맞냐, 틀리냐’의 문제, 즉 옳고 그름의 문제와 닿아 있으므로 이 프로그램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말 겨루기’를 문제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언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적인 직업의식이 발동한다.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우리가 겨루고 있는 그 ‘우리말’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겨루어야 할 우리말, 그것은 정말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퀴즈의 특성상 낱말을 빨리 떠올리는 순발력을 뺀다면) 표준어이다. 또한 우리말 실력을 겨루자고 할 때 그 우리말은 ‘지나간 말, 기억되지 않은 말, 말한 적 없는 말’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겨루어야 할 우리말은 ‘공부’해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말’인데도 남이 써 놓은 책을 봐야지만 알 수 있다. 서점에 널려 있는 ‘당신의 우리말 실력은?’류의 책들이 언어를 과거로 계속 회귀시키고 현재의 언어는 뭔가 잘못된 것, 고치고 증보되어야 할 것, 더럽혀진 것으로 보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돌아가야 할 무엇, 그래서 지금은 거의 혹은 전혀 쓰이지 않는 말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말 ‘실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국어’ 앞에만 서면 그렇게도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
   표준어를 국가에서 제어하는 한, 그것은 은근할지언정 난공불락의 권력이 된다. 개인은 그 말에 어떠한 각주도 달 수 없으며 오로지 수긍하고 따라야 한다. 물론 권력 자체가 무어가 그리 나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효과는 개인의 자발적 복종, 문제의식이 소실된 추종을 낳는다. 그래서 자신의 입에서 나오지만 언제나 표준에 미치지 못하므로 정정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내 말은 늘 부족하며 불구적 우리말, 우리말 아닌 우리말이 된다. 따라서 ‘우리말’은 아무 의심 없이 ‘표준어’와 동의어로 쓰이는 것이다. ‘우리말 겨루기’가 실제로는 ‘표준어 겨루기’, ‘맞춤법 겨루기’가 된다.
   이것은 정당하지 않다. 언어는 그렇지 않다. 일반 상식 퀴즈와 언어 퀴즈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지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기술적(記述的) 지식과 다른 하나는 과정적 지식이다. 기술적 지식은 각각의 지식이 분리되어 있으며 기억하느냐 못하느냐, 또는 정확하게 아느냐 부정확하게 아느냐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6.29 선언은 누가 했는가?”, “1평(平)은 몇 제곱미터인가?”, “‘소나기’를 지은 작가는 누구인가” 등에 대한 지식은 모르면 그저 “무식하다”, “그것도 모르냐”는 정도의 핀잔만 들으면 된다.
   그렇지만 과정적인 지식은 이와 다르다. 과정적인 지식은 하위 지식들이 전체 지식과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다. 부분에 대한 지식이 전체 지식에 유기적으로 통합된다. 예컨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은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리는 일과 균형을 잡는 일, 속도를 내거나 줄이는 방법, 모퉁이를 도는 방법 등을 분리하여 기억하지 않는다.
   두 가지 지식이 엄격하게 분리되지는 않지만, 상식 퀴즈는 기술적 지식에 가깝다. 언어에 대한 지식은 어떤 성격일까? 언어학자조차도 ‘단어’는 하나하나씩 분리되어 있는 기술적 지식이고, ‘문법’은 체계를 이루며 통합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적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어’와 ‘문법’은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언어학자는 “각각의 단어는 고유한 문법을 갖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모든 언어 지식은 그것이 단어이든, 문장이든 다 ‘과정적 지식’이다.
   그런데 우리말 겨루기는 그러한 과정적 지식을 기술적 지식으로 변경한다. 단어들은 또각또각 나뉘어 다른 단어들과는 무관하게 고립되어 홀로 존재한다. 여기에 가장 큰 ‘실증적’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 사전의 뜻풀이다. ‘우리말 겨루기’는 사전 뜻풀이를 절대화한다. ‘우리말 겨루기’에서 사전 뜻풀이를 절대시하고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는 코너는 1단계 다섯째 판이다. 다섯째 판은 ‘제시된 낱말을 보고 뜻 맞히기’이다. 예를 들어 ‘자몽하다’라는 낱말을 주고 (‘(ㅈ)(ㄹ) 때처럼 (ㅈ)(ㅅ)이 (ㅎ)(ㄹ)한 상태이다’ 식으로) 뜻풀이에 쓰이는 말의 첫소리를 맞추고 나서, 이 낱말의 뜻이 ‘(졸릴) 때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이다’라고 말하면 ‘정답!’이 된다. 낱말 자체도 생소할 뿐만 아니라, 그 뜻을 추리하여 맞히는 과정이 거듭되다 보면, 대중들은 사전 뜻풀이가 낱말의 ‘의미’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자닝하다’의 뜻은 무엇인가? ‘파니’는?
   도대체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것인가? 물론 달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은 이 문제들을 너끈히 풀지만, 필부 입장에서는 그 답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부디 ‘실력 없는’ 사람의 투정이라 보지 말기를. 단어를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도 ‘옳게’ 정의할 수 있는가? ‘도깨비’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사전을 펼쳐 보니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잡된 귀신의 하나’(표준대사전)라고 되어 있기도 하고,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고서 비상한 힘과 괴상한 재주를 가져 사람을 호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이나 험상궂은 짓을 많이 한다는 잡된 귀신’(민중사전)이라고도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사전의 공통분모인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 ‘잡된 귀신’이 도깨비의 의미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잡된 귀신’은 무엇인가?
   우리말에 대한 질문이 ‘너 이 단어 아냐?’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 모국어의 아름다운 도약은 먼 훗날의 일일 것이다. 그럼 퀴즈 프로그램에서 뭘 물어보란 것이냐고 항의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무책임해 보이겠지만 ‘묻지 말라’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하지 말라’이다. 언어는, 의미는 퀴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언어는 알아맞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을 ‘너는 잘 산 인생’, ‘너는 못 산 인생’이라고 판별할 권한을 가진 이가 있을 수 없듯이, 언어도 ‘이 말은 옳고 저 말은 틀렸다’고 말할 권한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의미는 이것!’이라고 말할 방법이 없다. 의미는 비결정적이며 중의적이다.
   뜻풀이를 맞혀야 하다니, 이 얼마나 무섭고 폭력적인 발상인가? 낱말을 정의(定義)할 수 있다는 생각, 정의된 법전이 있다는 생각은 언어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낳는다. 언어를 맞고 틀리고의 문제로 단순화할 때, 그런 행위만으로 ‘우리말’(표준어)은 ‘오만한’ 이데올로기로 치닫게 된다. 언어에는 유일무이한 속성, 변경되지 않는 무엇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언어는 무엇인가? 개인이 ‘폐쇄적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의존과 관계의 고리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듯이, 언어 또한 ‘고정된 언어’가 아닌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언어는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단어는 그것이 단어인 순간부터 다른 단어와의 상호의존의 고리, 다른 단어와 이어지는 연속의 질서 속에 놓인다. 언어를 이렇게 볼 때 사전에 갇힌 언어, 외우고 맞혀야 하는 언어가 아닌, 즐기고 삶을 확장시키는 언어, 관계 속에서 시시각각 생성되는 언어의 본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낱말의 의미를 말하더라도 그것은 늘 불완전하며,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불온한 몸부림일 뿐이다. 언어의 불확정성을 망각하게 만드는 모든 시도는 설령 그것이 ‘상금’을 건 흥미로운 내기일지라도 중단되어야 한다. 의미는 언제나 생성 중이고 변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고정시켜 놓은 사전은 언어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원죄를 타고 난다. 설령 몇 개의 사전에서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은 뜻풀이를 하더라도 그것은 부정직한 베껴 쓰기의 결과일 뿐이지 모든 언어 사용자들이 공인한 불변의 확정태일 수 없는 것이다.
   의미는 다른 낱말로 ‘다시쓰기’될 뿐이다. 다시쓰기는 의미가 역동적으로 계속 확장해 간다는 뜻이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이 국가가 과학적 권위를 부여한 ‘뜻풀이’일지라도 미안하지만 결코 받아들이고 수긍할 수 없다. 사전에 담긴 뜻풀이는 그저 그 기호의 존재를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손가락이 없을 때 아쉽긴 하겠지만, 그것이 의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을 의미라고 우기면 안 된다. 사전 뜻풀이는 의미가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실체로 환원될 수 있다는 허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기호 속에 고정된 의미, 잘 정리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오만한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것이다. ‘당신 자신도 다른 텍스트에 대한 오만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국어학자들은 자신들이 사전에 적어놓은 뜻풀이가 인쇄되지 않은 수많은 ‘의미’에 대한 오만한 텍스트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퀴즈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전영복(졸업대기생) | 작성시간 08.04.02 김진해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또다시 어려운 국어를 실감하게 되네요.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을 그렇게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 해봤습니다. (어려워서) 문장을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말씀하시려는 내용에 대해서 감이 옵니다. 그동안 대충 훑어보고 가던 '아름다운 우리말'을 오늘 새삼스럽게 또박또박 잘 읽고 갑니다. 지현씨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지현♡4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4.03 저도 글이 살짝 어려워요..감사합니다, 선배님 ㅎㅎ
  • 작성자김향아 | 작성시간 08.04.03 우리말 겨루기를 보면서 글자 한자라도 틀리면 정답이 될 수 없는 뜻풀이 문제가 제일 어려운 코너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글을 읽으면서 아주 많이 공감을 합니다..물론 저도 모두를 이해한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