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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연구 알림

연변대학교 대학원생 안금화(조선어문학 전공)의 한국방문기

작성자박우진|작성시간06.11.27|조회수131 목록 댓글 1
안금화의 한국 방문기(1) 내 삶의 전환기
“낯설다, 낯설지 않다. 그래서 더 낯설다”
[69호] 2006년 11월 06일 (월) 10:15:20 안금화 enhui329@hanmail.net

   
 
   
 
2005년 1월 연구생(대학원생) 입시가 있었다. 그동안의 아팠던 심장이 크게 위로를 받듯 3월 나는 초시에 합격이 됐고, 뒷이어 5월의 복시를 거쳐 최종적으로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조선문학 전공 석사연구생 과정에 합격이 되었다. 참으로 다난했던 갈등의 해소를 맞을 무렵,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전환기가 다가왔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조남철 교수님을 만나 연변대학 장학생으로 연 4000원(인민폐)의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내 학업의 길에 도움이 되었다면, 물질적인 것 외에도 사람으로서 사람을 만나는 일에 깊은 감회를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남한테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기쁜 일이다. 받는다는 것이 기쁘기에 앞서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소지로 인한, 실질적인 인정과 그에 대한 기쁨이 더 큰 것이다. 그러나 기쁜 일면에 받는 자로서 부담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조남철 교수님이 제일 처음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왜 여러분한테 이 장학금을 지불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실 한국에도 어려운 학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이 한마디는 교수님의 의도와 인품을 몰랐을 땐, 좋게는 그분의 말씀처럼 동질의식으로 인한 책임감 내지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도움을 시도하게 했다고 생각되지만 부담스러운 일면은 고집스럽고 불필요한 자존심일진 몰라도 이제껏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법을 배웠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기본으로 꾸준히 해나가려던 소위 ‘스스로’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물었던 적이 있다. 교수님은 나라가 어려웠을 때, 품지 못한 민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강조하셨다. 그 책임감이라는 낯설지만 또 낯설지도 않은 표현에 결국 받는 자로서의 부담감을 거룩한 부담감으로 가져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사랑이 책임감을 낳고 책임감이 더한 사랑을 낳는다. 그런 연유로 1년을 마칠 무렵의 제2학기 5.1휴가기간에 교수님 요청으로 나와 같은 전공인 미성이와 학부생 3학년 수학전공 선녀랑 셋이서 한국 땅을 밟을 기회를 가졌다.

   
 
  ▲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전시관 사자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안금화씨 일행  
 
4월 29일 오후, 기차로 연길을 떠났다. 황금기간이라 표를 사기가 무척 어려웠다. 붐비는 사람들에 밀려 우리는 13시간의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은 훈련된 사람들이다. 그 훈련된 사람들 속에 끼어 우리도 반 훈련된 상태로 13시간의 좌석을 행복하게 여겼다. 왜 비행기로 안 가느냐는 주위사람들의 질문도 있었으나 여행은 그 여로를 몸소 느끼는 것이며 피곤하더라도 더욱 많은 시간동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주어진 이 길을 감사했다.

수많은 무리들 중엔 “낯설다, 낯설지 않다. 그래서 더 낯설다.”라는 조선족이 일컫던 한국이란 나라를 목적지로 떠나는 조선족학생 세 명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들이었다.

조선족이란 이름 때문에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13시간은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13시간을 앉아 가기는 쉽지 않다. 이튿날 점심, 심양북역에서 기차를 타고 3시간 반을 달려 단동에 도착했다. 이제야 출국이란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항구에서 해관검역이 시작됐고 드디어 동방명주(東方明珠)에 올랐다. 배엔 장사로 중국에 드나드는 한국 상인들 대부분과 한국으로 돈 벌러 들어가는 조선족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한 사람은 중국인이었는데 우리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터라 불법으로 한국에 처음 가는 그 사람은 내내 사색이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마저 제대로 못 잔다.

불법과 보다 나은 삶, 또 동정심은 중국이라는 내 나라 국민의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떨쳐버릴 수 없는 비애이다. 엄연한 중국인, 조선족과는 다른 이질적인 서러움이 나의 목까지 꽉 차오른다. 인간이 친 인간의 울타리가 밉다.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과 다른 이름을 가졌지만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

배에서 보는 이름 모를 작은 섬들과 바다 갈매기를 손에 잡을 듯 가까이서 보는 것은 피곤함을 떨쳐버리고 정신과 기운을 작흥시킬만도 했다. 드디어 이튿날 오전 10시가 다 돼 배가 인천항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2시간 좌우 늦은 셈이다. 게다가 세관검역도 기계고장으로 좀 지연됐다.

그 긴긴 줄을 따라 끝내 출구로 나온 우리는 교수님보단 흥사단 나종목 부장님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교수님이 나오셨다가 급한 회의 때문에 금방 가셨다고 했다. 아쉬웠으나 별수 없었다. 전화로만 도착했음을 알릴 수밖에.

 

   
 
  ▲ 한국을 방문했던 안금화씨 일행들이 간절곶 찻집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교수님과 같이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따뜻한 코코아 한모금 들이키노라니 이 아침이 반갑기만 했다. 종종걸음을 걸어가는 한국인, 그 삶의 리듬을 되새겨 본다.

출발시간이 다 돼온다. 떠나기 전 교수님이 잠깐 부르셨다. “생각할게 있어. 뭐가 다른가? 왜 다른가를 생각해야 돼.” 교수님다운 질문이다. 가진 짐은 적었으나 그 질문만은 무게를 더해 온다.

첫 코스, 울산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이다.
올라가는데 산 중턱 이리저리 슬픈 무덤들이 널려있다. 소나무 무덤이랬다.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균때문에 소나무가 멸종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멸종이라는 말에 그 무덤들이 더 서글퍼 보인다. 정상에 오르니 울산 전역이 다 보인다. 멀리 동해바다까지도 보인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바람 불어오는데…”  그 노래가사가 생각되는 바다바람이다.
왜성을 내려와서는 간절곶으로 갔다. 동북아시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라고 한다. 바다바람이라 조금 차갑기까지 한데 소금가루가 날려와 안경이 희미해진다. 짜가운 맛이 혀끝으로 느껴진다. 그곳 길거리찻집은 너무 예쁘다. 그리고 ‘소리바다’라는 이름까지도. 그곳에서의 차 한잔은 바다와 바람과 인정과 목소리가 섞인 것이었다.

그날 저녁, 울산의 만찬은 역시 따뜻한 향취 그대로다. 편하고 따뜻한 정회가 감도는 조경애학우님의 댁에서 울산 홈스테이는 시작된다. 마음의 창을 여는 일은 늦은 저녁이라도 별무리가 쏟아져오는 소리 속에 감격스럽기만 하다.

나름대로 자(尺)질하던 인식의 틀을 벗어버리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가 온듯도 싶었다.
한국인은 조선족과 이 사회를 너무 모른다는 느낌이 가끔씩 들 때가 있다. 자신의 이해방식으로 표면상의 조선족의 삶의 방식을 조선족의 인격과 전부의 삶의 양상으로 생각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이 생각하는 조선족은 중국에 사는 가난하고 무책임하고 세련되지 못한 비전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대부분임을 그들의 안색과 설법과 태도에서 늘 느꼈던 바라 한 조선족인으로서 한심스럽고 기가 막혔으며 또 얼마나 아팠는지도 모른다.

조선족(많이는 연변사람)에게는 늘 불법과 위장결혼 등등의 어두운 색조로 마침표를 찍어주는 이들 한국인을 우린 어떤 시각에서 느껴야 하는지 고민되고 그 고민마저 황당함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두운 마침표는 우선 스스로를 돌아보며 겸비해야 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부정적인 말의 씨앗은 부정적인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이런 한국인의 조선족에 대한 의식이 그대로 한국인에 대한 조선족의 생각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좋은 면보다는 한국인의 거만함과 사기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인이나 조선족이나 서로 불가분리의 처지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결점만을 꼬집으며 불신과 경망의 담을 쌓아올렸던 것이다. 그날 저녁 이런 아픔을 나누며 눈물이 보일까봐 스스로를 억제하던 기억이 난다.

변두리는 중심이 있는 전제하에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심은 변두리가 있어야 중심다운 것이 아닐까 싶다. 그 길고 깊은 생각들을 그날 밤에 다 나누지 못함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란 것이 있는 까닭이요, 우리의 삶이 다 하지 않은 까닭이리라.

(연변대 조선-한국학학원 조선문학전공 석사연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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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우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11.27 작년 연변문학기행 때 3일 내내 동행했던 연변대 학생들 중 한 명입니다. 올해 서울에서도 아주 잠깐 만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말수가 특히 적었던 이 친구가 써내려간 마음의 깊이를 같이 나누고 싶어서 퍼왔습니다. 첨부된 파일은 애초에 썼던 글인데 이 기사보다 더 깁니다. 지면 관계상 줄여서 실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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