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의 공간에서 광주나 전라도가 정치적으로 다림질된 은유의 옷을 걸치게 된 것은 1980년 봄 이후다.
그 해 5월 광주와 그 둘레에서 일어난 민간인학살, 그리고 이에 맞선 시민항쟁은 광주와 전라도를 밋밋한 지명에서 수난과 소망의 이중적 보조관념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런 인식과 상상력의 테두리 안에서 쓰여진 시들을 뭉뚱그려 오월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항쟁 직후에 쓰인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로 파종된 오월시는 이듬해 결성된 ‘오월시’ 동인들의 용기와 감수성에 신세 지며 움트기 시작했고, 한국 민주주의가 오랜 잠에서 깨어날 무렵 출간된 사화집 ‘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1988년)에 일단 수습되었다.
미적 정제가 목소리의 새됨을 따라잡지 못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 시집의 갈피들을 팽팽하게 채우고 있는 윤리적 긴장은 한 시대가 문학 속에 어떻게 수용되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라 할 만했다. 아무튼 오월시의 개화는 1980년 이후의 상황이다.
이런 문학사적 원근법에 익숙한 독자에게 이성부(63)의 두 번째 시집 ‘우리들의 양식’(1974년)을 읽는 것은 기이한 체험이다. 그 기이함이란 시간감각의 비틀림이다. 5월 항쟁 여섯 해 전에 출간된 이 시집의 몇몇 작품들 속에서, 더구나 그 시들의 일부는 1960년대에 쓰여진 것인데, 광주와 전라도를 매개로 한 윤리적 상상력이 인상적인 미적 성취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양식’의 어떤 시들은 1980년대의 오월시가 잘못 끼어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혼돈을 낳을 정도로 소스라치게 예언적이다.
시인이 “한 나라가 다시 살고 다시/ 어두워지는 까닭은/ 나 때문이다. 아직도 내 속에 머물고 있는/ 광주여, 성급한 목소리로 너무 말해서/ 바짝 말라 찌들어지고/ 몇 달 만에 와보면 볼에 살이 찐,/ 부었는지 아름다워졌는지 혹은 깊이 병들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고향, 만나면 쩔쩔매는/ 고향, 겁에 질린 마음을 가지고도/ 뒤돌아 큰 소리로 외치는 노예, 넘치는 오기/ 한 사람이, 구름 하나가 나를 불러/ 왼종일 기차를 타고 내려오게 하는 곳/ 기대와 무너짐, 용기와 패배,/ 잠, 무서운 잠만 살아 있는 곳, 오 광주여”(‘광주’ 전문)라고 노래할 때, 1972년에 쓰여진 이 시에서 1980년 5월의 기억을, 미래의 기억을 엿보는 것은 차라리 악몽이다.
‘우리들의 양식’에서 전라도는 수난의 공간이자 희망의 공간이다. 그 곳은 “푸른 삽으로 저녁 안개와 그림자를 퍼내고/ 시간마저 무더기로 퍼내 버리면/ 거기 남는 끓는 피, 한줌의 가난”(‘전라도 2’) 밖에 없는 땅이지만, 그와 동시에 “심장의 더운 불, 손에 든 도끼의 고요”로 “커다란 잠의, 끝남”(‘전라도 2’)을 이룩할 땅이기도 하다. 백제 역시 이 시집에선 고대 국가의 이름을 넘어서 휘어진 삶의 상징적 시공간이 된다.
“반도 서남쪽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을 대지 위에 세우고도/ 그 몸은 서지 못한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농부 한 사람의 죽음으로도/ 세계가 자기 몸에 피 적시는 까닭이 여기 있다”(‘백제 1’). 그러나 그 곳은 또 질긴 생명력과 버팀의 땅이기도 하니, “어떤 제왕도/ 죽은 농부의 아내를 꺾을 수는 없”고, “이 농부의 아내를 옷 갈아 입히지는 못하”고, “결코 떠나 살게 하진 못하”(‘백제 1’)기 때문이다.
광주는 시인의 고향이다. 그래서 수난의 시공간으로서 광주나 전라도나 백제를 노래할 때, 시인의 목소리에는 애정만이 아니라 가슴 에어내는 연민이 깊숙이 배어있다. 다섯 편의 ‘백제’ 연작과 여덟 편의 ‘전라도’ 연작을 읽는 것으로 ‘우리들의 양식’의 탐색을 마무리할 수는 없지만, 그 시편들에 이 시집의 핵심 주제가 응축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주제란 어려운 사람들끼리의 연대와 투쟁이다.
시집 맨 앞에 실린 ‘벼’에서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湧?보아라(…)//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이라고 유창하게 표출된 어려운 사람들끼리의 연대와 투쟁의 다짐은 시집 전체에 출렁인다.
바로 위에 인용된 시에서도 드러나지만, 시인이 보기에 투쟁할 힘, 맞버틸 힘은 그리움에서 나온다.
“슬픔보다도 노여움보다도 먼저 지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네 그리움이다”(‘그대가 나를 문문이 보는구나’). 결핍으로서의 사랑이라 할 그 그리움은 시집 여기저기서 기다림이라는 유의어로 대치되기도 한다. 시인이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은 “오 우리들의 기쁨, 온통 미쳐 날뛰는 사랑의 기쁨”(‘저 바위도 입을 열어’)이자 “구름 뒤에 남아 기다리는/ 뜨거운 햇살”(‘누가 살고 있는지’)일텐데, 아쉽게도 아직은 밤이다.
그러나 시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밤이 한 가지 키워주는 것은 불빛”이고 “사랑”(‘밤’)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전태일을 기리는 것이 틀림없는 시 ‘새벽길’의 화자가 갈파하듯, “완성된 암흑의 한가운데”가 바로 “미래의 처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양식’은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로 나왔으나, 그 미적 감수성은 전형적으로 ‘창비시선’의 것이다. 이 시집이 나온 1974년은 ‘창비시선’이 출항하기 직전이었다.
이성부의 이후 시집들이 ‘창비시선’에 진열돼 있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우리들의 양식’과 ‘창비시선’ 첫 권으로 나온 신경림의 ‘농무’(1975년)는 1970년대의 이른바 민중시를 대표한다고 할 만한데, 그 속살은 사뭇 대조적이다.
‘농무’의 화자는 고향에서 도시를 그리며 시름겨워 하지만, ‘우리들의 양식’의 화자는 서울에서 고향을 그리며 시름겨워 한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후자의 목소리는, 전라도를 노래할 때조차, 전형적인 도시인의 것이다. ‘우리들의 양식’의 세계는 신경림과 함께 창비 시문학의 테두리를 만들어온 고은의 시 세계와도 여러 모로 다르다.
‘우리들의 양식’에서는 고은의 후기 시에서처럼 굵은 팔의 남성 화자가 자주 엿보이지만, 그 화자들이 고은 시들의 화자가 자주 그러듯 허세를 부리는 경우는 없다.
또 비교적 초기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양식’에서는 예컨대 청년 고은이 “기침은 누님의 간음,/ 한 겨를의 실크빛 연애에도/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을/ 누님이 그렇게 보고 있다”(‘폐결핵’) 운운하며 구가했던, 낯간지러운 ‘문예반적’ 감수성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양식’은 신경림이나 고은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 못지않게 서정적이다. 사회정치적 상상력을 투영한 시는 투박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우리들의 양식’만큼 보기 좋게 허물고 있는 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리들의 양식’을 민중시집이라고 부르는 것도 썩 합당하진 않다.
시인이 도처에서 민중지향적 목소리를 내고 있긴 하지만, 시집의 전반적 감수성은 “가난해도 누더기 입지 않는 마음,/ 차라리 알몸으로 누워 이기는 마음,/ 겉으로 살쪄 아파 버린 고장에서/ 견디는 길은 이뿐이구나./ 삭지 않고 썩지 않아/ 싱싱할 길은 이뿐이구나”(‘풍경’) 같은 구절에서 드러나듯 차라리 선비적 서정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도시의 건설노동자로 설정된 표제작의 화자조차 “내가 들고 오는 도시락의 무게를/ 구멍 난 내 바짓가랑이의 시대를/ 그러나 나는 읽고 있다”(‘우리들의 양식’)고 말할 정도로 예민하다. ‘우리들의 양식’의 화자들은 적어도 현실의 ‘비루한 민중’에 미달한다.
그것은 이 시집의 화자들이 문학의 위엄을 신봉하는 것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우리들의 양식’의 가장 뛰어난 시 가운데 하나일 ‘이 볼펜으로’의 화자는 “이 볼펜으로/ 사랑을 적기 위하여/ 한 점 붉디붉은 시의 응결을 찍기 위하여/ 오늘 밤 나는 다른 마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은 볼펜을 통해서, 시를 통해서다. 또 다른 화자는 “시를 몰랐다면 나는 아무 살인자나 도둑이 되어/ 남의 피를 훔쳤을 게다.
혹은 눈물뿐인 사내도 되어/ 저 배고픔과 죽음들 쪽에/ 쓸데없는 슬픔만 보탰을 거다//(…) 내가 더욱 시를 몰랐다면 뜬눈으로도/ 감긴 세상의 어둠을 붙잡지 못했을 거”(‘마을’)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들의 양식’의 화자들이 끝내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문학주의의 버캐는 이 시집을 당대의 ‘모자라는 민중문학’으로 만든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독자의 감수성을 깊숙이 자극하는 ‘넉넉한 문학’으로 만들었다.
▲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