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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 11월 7일

작성자구름위집|작성시간07.11.07|조회수62 목록 댓글 1
[1983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따내
1983년 11월 7일, 동아건설이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규모인 32억 9700만 달러의 대수로공사를 리비아에서 수주, 현지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대수로공사는 지름 4mㆍ총길이 1872km의 송수관을 묻어 하루 400만t의 물을 공급, 사막을 옥토로 바꾸기 위한 리비아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2년 5개월전 공사 정보를 사전에 귀띔받은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은 사내에 비밀전담반을 설치ㆍ운영하고 21차례나 해외출장을 다니며 직접 뛰었다.
통수식은 연인원 1100만명이 동원되고 550만대의 건설 중장비가 투입된 대역사 끝에 1991년 8월 28일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가졌다. 가다피는 이 공사를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격찬했다. 동아건설은 1989년 2차 공사까지 수주하는데 성공, 1996년 9월 1일에 2차 통수식을 가졌다.

[1998년] 조용필 음악30년 콘서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조용필 음악 30년` 콘서트는 진정한 대중의 스타란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게 만든 감동적 무대였다.
1998년 11월 7일 조용필은 음악 30년을 기념하는 대형 콘서트를 가졌다. 4000석 극장을 가득 메운 공연은 `창밖의 여자`가 실린 1980년 1집부터 최근 발표한 17집 `야망`까지 조용필 음악 발자취를 자료화면으로 엮은 5분짜리 영상쇼로 시작했다. 관객은 정장 차림 40-50대 중장년 부부부터, 친구나 연인끼리 온 20대 젊은이들, 이 공연을 보려고 일부러 한국을 찾은 일본인 팬도 3백여명이나 됐다.
3일간 계속된 공연에서 관객들은 극장이 떠나갈듯 환호했고, 뜨거운 현장 열기는 10대 인기 댄스그룹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1시간40분으로 예정했던 공연은 계속된 "앙코르!" 함성에 2시간으로 길어졌다. 한 공연기획자는 "가수는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해야 관객층이 두터워진다는 정설을 보여준 공연"이라고 말하고 "조용필 공연은 절정에 오른 느낌"이라며 "공유할만한 문화적 체험이 드문 우리나라 중산층의 대중문화 사랑을 이끌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열성 여성팬 수십명은 조용필 얼굴을 보려고 공연이 끝난 뒤 1시간 넘도록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럼 내년이면 40년인가 보네요? 커피님, 조용필 씨 좋아하세요?^^*



[1992년]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두브체크 사망
1968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알렉산드르 두브체크가 1992년 11월 7일 숨졌다. 향년 70세였다. 두브체크의 일생은 불운의 이상과 실패한 열망으로 상징된다.
1921년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18세에 공산당에 입당한 뒤 2차대전 중엔 공산당의 나치 유격전에 참가, 두차례 부상하기도 했으며 1958년 소련공산당의 정치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10년 뒤 체코 공산당의 제1인자가 됐다. 공산당 제1서기가 된 두브체크는 체코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접목시킨 `제3의 방법`을 모색했다.
두브체크의 개혁의지는 마침내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자유화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군은 체코를 전격 침공,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켰으며 그후 축출된 두브체크는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약20년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1989년 체코연방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하벨에게 패배한 뒤 상징적인 연방의회의장이 됐다.
결국 두브체크의 `인간적 사회주의`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의 세계에 대한 이상적이고 순수한 비전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1945년 함흥 학생반공의거
드라마 서울 1945에서는 함흥에 모두 문동기같은 공산주의자들밖에 없었던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문동기와 오철형이 그 지역에서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반공애국지사들이 연이어 일어나 반공 의거를 일으켰었다. 그 당시 남한에는 반공이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었고, 남한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반공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때에 함흥과 신의주 일대의 애국지사들이 반공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 반공의거를 일으켰었다.
1945년 11월에 일으킨 반공 의거는 공산체제에 항거한 북한 지역 최초의 학생 의거였다. 교장 주기용을 제거하며 오산학교를 공산주의 이념의 학교로 재편, 장악하려는 공산당의 음모를 전해 듣고 학생들이 격분해 있던 중 러시아 혁명기념일 행사에 오산 밴드부를 강제 동원하려하자 4학년 150명 전원이 11월 6일 정주 고읍의 공산당 각 기관들을 습격한 사건이었다. 이 때 구속된 주모자급 학생들은 교장의 보증으로 풀려났으나, 공산 당국이 다시 교장을 구속하자 13명의 학생들이 혈서를 쓰는 등 석방 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결국 교장도 석방되었다. 이 일의 전말이 신의주 동중학교에 본부를 둔 평북 학생회에 알려지게 되어 신의주 소재 학교의 학생들도 일제히 궐기하여 마침내 압록강 물을 피로 물들게 한 1945년 11월 의 신의주 학생 반공 의거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산 학생들은 1947년 5월 23일에도 반공 의거를 일으켰다. 당시 공산 당국은 교장 주기용을 해임하고 공산주의 앞잡이 전의원을 교장으로 내세웠다. 이에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들은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전의원과 일부 교사 및 민청파 학생들에 항거하여 학교를 제 모습대로 바로 세우려 하였다. 반공 민족주의자 교사들과 학생들은 정주 보안서까지 쳐들어가며 과감하게 귈기했으나 소련의 뒷받침 아래 도도히 전개된 북한의 공산화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주모자 박승종 등 20여명의 학생들과 민족주의자 교사 들은 체포, 구속되고 대부분의 오산 관계자, 교사, 학생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찾아 월남하게 되었다.
당시에 반공 이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공산 당국에 의해 쫓겨난 민족주의자 교사로는 경희대 법대 학장을 역임한 학술원 회원 이근칠(20회), 헬싱키 올림픽 레슬링 국가 대표팀 감독이었던 현 학교 법인 이사장 김옥규(金玉圭·23회), 경희대 교수와 오산 학교 교장을 역임한 고한권(高漢權), 반공교육의 최선봉에 섰다가 신의주 형무소에 투옥되었던 현 학교 법인 이사 김봉빈(金鳳彬· 26회), 오산학교에서 후진 양성에 한 평생을 바친 임상흠(林相欽 ·27회) 등 20여 명이 있었다.
한편 오산학교의 졸업생들도 반공 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1947년 1윌 압록강변 청성진 출신이 주축이 되어 중국 국부군과의 협력을 도모하고 반공 의지를 드높이기 위해 청성진 보안서를 습격하였다. 이 의거로 김홍제(35회)는 목숨을 잃고, 한익룡(29회), 심 창휘(32회), 김옥섭(33회) 등은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되는 수난을 당하였으나 김영록(35회)은 다행히 월남에 성공했다.
1950년 12월 오산 출신들과 정주 지역 애국 청년들은 서해의 애도 (艾島)를 거점으로 유격백마부대를 결성하고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 부대는 유격전을 전개하여 북괴군의 시설과 보급로를 파괴하고 수많은 북괴군과 중공군을 사살하는 등, 적 후방을 교란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공산 통치에 감연히 항거하여 재학생들이 일으킨 두 차례의 반공 의거와 졸업생들의 청성진 보안서 습격 사건과 유격백마부대의 활동 등은 오산에서 가르치고 오산에서 배운 대로 민족을 구하고자 행한 몸부림이었다. 이리하여 항일 민족 학교라 불린 오산학교는 시련기를 거치면서 반공 민족 학교라는 또 하나의 명예를 얻게 되었다.

1867년 마리 퀴리 부인 출생
[Curie, Marie, 1867.11.7~1934.7.4]
프랑스의 물리학자·화학자.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물리학, 화학 /출생지 폴란드 바르샤바
주요수상 노벨물리학상(1903), 노벨화학상(1911)
폴란드의 바르샤바 출생. 결혼 전 이름은 Marja Skłodowska이다. 당시 폴란드는 분할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정 러시아의 압정(壓政)을 겪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김나지움의 수학 및 물리학 교사였다. 10세 때 어머니를 잃고 17세 무렵부터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독학하였다. 1891년 파리의 소르본대학에 입학, J.H.푸앵카레, G.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으며, 수학·물리학을 전공하였다.
1895년 P.퀴리와 결혼 후 남편과 공동으로 연구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사상(事象)이 잇달아 발견된 시기였는데, 뢴트겐의 X선 발견, H.베크렐의 우라늄 방사능 발견에 자극되어 퀴리 부부도 방사능 연구에 착수하였다. 먼저 베크렐의 추시부터 시작, 이때 방사능의 세기를 측정하는 데에 전기적 방법(피에르가 발견한 압전기의 이용)을 썼다. 그것은 방사선의 정량적 측정법으로서 베크렐의 사진법(寫眞法)보다 편리했다. 토륨도 우라늄과 마찬가지의 방사선을 방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방사능(放射能:radioactivity)’이라 불렀다.
또한 방사능이 원자 자체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가지 시료(試料)에 대하여 측정하던 중 우연히 우라늄광물 피치블렌드가 우라늄 자체보다도 강한 방사능을 보인다는 것을 관찰하고, 그 속에 미지(未知)의 강한 방사성 성분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 이것의 추출을 시도했다. 보헤미아의 요아힘스탈에서 산출되는 피치블렌드에 대하여 방사능을 바탕으로 화학분석을 하여(방사화학분석법의 시초), 1898년 7월 폴로늄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그녀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이어 그 해 12월 라듐을 발견하였다.
이 두 원소는 방사성원소로서 발견된 최초의 것으로, 특히 라듐은 우라늄에 비하여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이 발견은 방사성물질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03년 퀴리 부부는 베크렐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피에르는 소르본대학 이학부(理學部) 교수, 마리는 그 실험실 주임이 되었다.
얼마 후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이 후 단독으로 방사성물질을 계속 연구, 1907년 라듐 원자량의 보다 정밀한 측정에 성공하고, 1910년에 금속 라듐의 분리에도 성공하였다. 그 동안 남편의 후임으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소르본대학 교수가 되었고, 라듐연구소 건립에도 노력하였다. 이것은 그 후 파스퇴르실험소와 퀴리실험소가 되었는데, 그녀는 퀴리실험소 소장으로서 프랑스의 과학 연구에 공헌하였다.
1911년 라듐과 폴로늄 발견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물리학자인 장녀 이렌은 마리의 실험조수로 있던 F.졸리오 퀴리와 결혼, 1935년 남편과 함께 인공방사능 발견의 공적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61년 만인 1995년 4월 20일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역대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는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

그밖에
2005년 감옥서 사상 첫 복싱 세계챔피언전(태국)
2005년 전교조의 교원평가제 실시 반대 집회
2005년 한국·벨기에 확대정상회담(서울)
2004년 이라크 임시정부, 이라크 전역 60일간 비상사태 선포
2004년 중국 뤄양 룽먼석굴서 백제불상 첫 발견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 미국 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1998 깅리치 미국 하원의장 은퇴
1998 독일 헬무트 콜 총리 퇴임
1997년 김영삼 대통령, 신한국당 탈당
1997년 유학자 류정기 옹 별세
1993년 대전 EXPO 폐막
-- 8월 7일 개막된 뒤 93일간 개장, 이 기간 동안 입장객은 모두 1,400만 5,808명 (외국인 70여만명)
1991년 SBS TV방송, 시험전파 발사
1990년 보리사브 요비치 유고 대통령, 동구권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방한
1984년 신병현 국무총리 권한대행 취임
1983년 한국-파키스탄, 국교수립
1982년 서아프리카 오트볼타에 쿠데타
1982년 레바논, 한국에 파병요청
1980년 미국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 사망
1980년 정치풍토쇄신위 발족. 위원장 김중서 대법원장
1979 한국서 첫 일란성 다섯 쌍둥이 태어남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 사령관에 베시 대장, 부사령관에 유병현 대장 임명
1975년 해군기동연습서 함대함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안 확정
1972년 닉슨 미국대통령 재선
1962년 주은래, 인도가 중국의 주장선을 인정한다면 국경선에서 중국군을 철수시키겠다고
1962년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사망
1955년 영국 애틀리 노동당수 사임
1953년 발칸3개국, 조약부속의정서에 조인
1953년 막사이사이, 필리핀대통령에 당선
1952년 레바논, 부녀자에 참정권 부여
1950 이발료 300원, 목욕료 100원
1950년 유엔안보리, 한국대표 초청안 가결
1932년 제2차 쌍성보전투
1931년 강서성 서금에서 중화소비에트 임시중앙정부 수립. 주석에 모택동
1923년 대전에서 전국형평사대표자대회
1922년 소련, 코민테른 기념 중앙 라디오 본 방송 개시(소련 라디오방송 정식 개시)
1921년 이탈리아, 국가파쇼당 창당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 발생
1915년 월북 사학자 김석형 출생
1913년 영국의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 사망
1913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출생
--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지 마라. 최후의 심판은 날마다 발생하고 있다.”
-- 1957년 노벨문학상.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
1911년 국세징수령 공포
1908년 어업법 반포
1903년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로렌츠 출생
1901년 청 이홍장 사망
1879년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 출생
1876년 한글학자 주시경 출생(음력)
1840년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산드로 코발레프스키 출생
1818년 독일의 동물생리학자 에밀 뒤부아레몽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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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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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드러운 커피 | 작성시간 07.11.07 조용필씨 좋아하지요..북한에서 공연하고 온 필름을 TV를 통해 본적이있는데 눈물까지 나던데요.^^..자료 무척 고맙습니다.기다려지게되요.좋은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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