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水 음력 12월 26일)
[1954년] 세계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 진수식
← 1954년 1월 21일 노틸러스호의 진수식이 거행됐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호가 1954년 1월 21일 진수식을 가졌다. 영어로 ‘앵무조개’란 뜻을 가진 노틸러스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社)가 건조한 것으로 길이 97m, 배수량 3180t으로 장시간 잠수할 수 있는 세계최초의 잠수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잠수함은 수중에서 축전지에 의존해 주행한 탓에, 8kn(노트)의 속력으로는 1시간, 3kn의 속력으로는 20∼40시간밖에 항속(航續)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잠수함은 전지의 충전을 위해서 수시로 부상해야하는 결정적인 약점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틸러스호는 가압수형(加壓水型)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증기로 터빈을 돌려 동력을 공급받아 움직이며, 1만 5000 마력으로 잠수상태에서 20kn 이상의 속력으로 항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력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할 수도 있었다. 1958년 8월 W.R.앤더슨을 함장으로 하여 극점에 도달, 북극해의 잠항(潛航) 횡단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0년 항해임무를 마친 후, 1985년부터 코네티컷주 뉴런던에 있는 ‘미군함 노틸러스호 기념 및 잠수함박물관’에 전시됐다.
이 노틸러스호는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르느(Joules Verne)의 ‘해저 2만리’라는 소설에도 등장한다. 인간의 바다 오염에 분노를 느낀 네모 선장이 노틸러스라는 잠수함을 타고 배들을 파괴하는 줄거리로 된 과학 공상 소설이다. 소설 속의 나오는 잠수함 노틀러스호는 공상 속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인류 최초의 잠수함이면서도 원자력 잠수함의 기본 개념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1954년에 미국에서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도 바로 소설 속의 이 잠수함 이름을 그대로 따와 지은 것이다. /조선
[1924년] 레닌 사망
← 러시아 혁명지도자 레닌.
본명은 Vladimir Ilich Ulyanov.
1870. 4. 22(구력 4. 10) 러시아 심비르스크 ~ 1924. 1. 21 모스크바 근처 고리키.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고 10월혁명을 주도한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 레닌이 1924년 1월 21일 고리키에서 뇌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1870년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난 레닌은 1887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계획에 연루돼 처형된 맏형 알렉산드르의 영향으로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1870년대 플레하노프에 의해 러시아에 도입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여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이후 1905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7년 국외로 망명했다. 1917년 2월혁명이 발발하자 귀국해 마침내 11월 7일 무장봉기로 과도정부를 전복하고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혁명정권을 수립했다. 1919년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다.
그는 러시아 10월혁명의 중심인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 러시아에 적용함으로써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혁명이론가이자 사상가였다. 레닌은 10월혁명 이후 최근까지도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아 왔으나 동구권 몰락과 소련의 해체로 그의 동상이 철거되는 등 수모를 당해왔다. /조선
[1919년] 조선 제26대 왕 고종 승하
← 고종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68세 나이로 사망했다. 갑작스런 죽음이었기 때문에 당시 독살설 등 많은 의문을 낳았으며, 결국 3·1운동을 촉발한 한 계기가 되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즉위 후 오랫동안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했다. 대원군이 물러난 후에는 왕비 명성황후의 외척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에 즉위해 황제권과 자위군대를 강화하는 광무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고, 이에 고종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해 조약 폐기를 호소했으나 실패했다. 일본은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브리태니커
[1905년] 프랑스의 의상 디자이너 디오르(Christian Dior) 출생
← 디오르(1957)
1905년 1월 21일 태어남 / 1957년 10월 24일 죽음
"나는 여성의 몸이 지닌 곡선과 그 윤곽에 맞추어 잘록한 허리와 넓은 히프, 볼록한 가슴을 강조한 구성물로서의 내 옷을 만들고 싶었다. " - 크리스티앙 디오르
디오르는 프랑스의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이다. 노르망디 그랑빌에서 태어나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1930년대초 화랑을 경영하고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었다. 1947년 매우 여성적인 긴 치마 '뉴룩'을 발표해 국제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물자 통제로 심이 들어간 어깨와 짧은 치마를 강조한 이전의 디자인과는 달리 뉴룩은 작은 어깨, 자연스런 허리선, 풍성한 치마가 특징이었다. 이어서 그는 H라인·A라인·Y라인 등 '알파벳 라인'을 비롯한 새로운 실루엣을 발표해 파리 및 세계의 패션계를 주도했다. 1947년 자신의 이름으로 국제적 패션 하우스를 세웠다. 향수·스카프·양말·액세서리 등 여러 분야를 접목시켜 패션의 종합화를 이루었다.
[1904년] 소설가·문학평론가 홍효민(洪曉民) 출생
1904. 1. 21 경기 연천~1975. 소설가·문학평론가.
본명은 순준(淳俊), 필명은 안재좌(安在左)·정복영(鄭復榮)·효민학인(曉民學人).
1924년 도쿄[東京] 세이소쿠 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졸업했으며, 1927년 조중곤·김두용 등과 함께 〈제3전선〉을 펴냈다. 귀국 후 〈동아일보〉·〈매일신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프로 문학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았으나 동반자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8·15해방 직후 그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에 가담했으나 이 단체가 조선문학가동맹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직을 떠났다. 이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27년 〈개척〉 7월호에 〈문예시평〉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소설도 몇 편 발표했으나 그의 문학적 업적은 주로 평론에서 찾을 수 있다. 〈행동주의 문학의 검토〉(조선문단, 1935. 7)·〈행동주의 문학의 이론과 실제〉(신동아, 1935. 9)에서 행동주의 문학은 인간주의 사상을 기초로 창조에의 의욕과 그 참여에 있어 정신적 자유주의를 주요개념으로 한다고 하고, 〈문학의 사회적 성격〉(조선문학, 1936. 8)에서는 문학의 사회적 성격을 중시하고 능동성·진취성을 언급하면서 꼭 경향파 문학이 아니라도 모든 예술이 성격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8·15해방 후 순수문학을 비판하거나 사실주의 문학론을 펼친 바 있으며, 6·25전쟁 후에는 〈애국사상과 애국문학〉(현대문학, 1956. 2)·〈문학의 윤리문제〉(자유문학, 1960. 1) 등을 통해 애국주의 문학론을 주장했다. 역사소설에도 관심을 보여 〈인조반정〉·〈양귀비〉·〈태조대왕〉 등을 발표했다. 소설집으로 〈인조반정〉(1986), 평론집으로 〈문학과 자유〉(1939)·〈문학개론〉(1945)·〈행동지성과 민족문학〉(1980) 등이 있다.
[1901년] 소설가 최서해(崔曙海) 출생
1901. 1. 21 함북 성진 ~ 1932. 7. 9 서울.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빈궁소설을 주로 썼다. 본명은 학송(鶴松). 일명 서해(曙海)·설봉(雪峰)·풍년년(豊年年). 이명은 저곡(苧谷).
극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1911년 성진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가난으로 5학년 때 중퇴하고, 1917년 간도로 이주해 방랑하며 하층민의 생활을 했다. 1918년 3월 〈학지광〉에 시 〈우후정원(雨後庭園)의 월광(月光)〉·〈추교(秋郊)의 모색〉·〈반도청년에게〉를 발표하여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이어 시 〈춘교(春郊)에서〉·〈자신 自信〉 등을 발표했다. 1924년 1월 28일부터 2월 4일까지 〈동아일보〉에 〈토혈 吐血〉을 연재해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같은 해 10월 단편 〈고국〉이 〈조선문단〉의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1925년 2월 〈조선문단〉에 입사하여 이 잡지에 간도 체험을 생생하게 그린 〈십삼원 拾參圓〉(1925. 2)·〈탈출기〉(1925. 3)·〈살려는 사람들〉(1925. 4) 등을 발표했다.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해 1929년까지 활동했으며, 1926년 KAPF 맹원이자 시인인 조운의 누이 조분려와 재혼했다. 〈현대평론〉·〈중외일보〉 기자를 거쳐 〈매일신보〉 학예부장으로 일하다가 31세의 나이로 죽었다.
[2006년] 도난된 첼리니의 걸작품 '살리에라(Saliera)' 회수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사박물관에서 도난당했던 '조각작품의 모나리자'인 ‘살리에라’가 양호한 상태로 회수됐다고 오스트리아 경찰과 언론이 21일 보도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이날 빈으로부터 가까운 숲속에 묻혀있던 나무상자 안에서 이 조각품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르네상스 예술의 진수라는 평가를 듣는 살리에라는 이탈리아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가 지난 1540년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의뢰로 제작한 황금 조각품으로 현재 6천만달러(600억원) 상당의 평가를 받고 있다. 금과 에나멜 등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26㎝의 높이의 이 작품은 바다를 상징하는 남자가 작살을 들고 육지를 상징하는 여자와 마주 앉아 있는 것으로, 지구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소금통’이라는 현실적인 목적으로 쓰였다.
이 조각품은 지난 2003년 5월 (11일) 새벽에 창문을 깨고 칩입한 절도범들에 의해 도난된 뒤 오리무중 상태로 있었다. 이후 절도 용의자가 지난해 경찰에 대가를 요구하는 데 사용한 휴대폰을 구입하는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잡혔고, 경찰의 공개 수배 하루만에 용의자가 경찰에 자진 출두해 극적으로 회수됐다. [빈 로이터.AP=연합뉴스] 2006-01-22
[1987년] 북한 세계 35번째로 남극조약 가입
남극 조약은 1959년 12월 1일 맺어져 1961년 6월 23일부터 그 효력을 발휘했다. 1957년/1958년의 국제지구관측의 해를 맞아 남극에서 활동중인 12개 나라를 미국이 초청한 회의에서 조약이 논의되었다. 이때 초대받은 나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노르웨이·뉴질랜드·미국·벨기에·소련·아르헨티나·영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칠레·프랑스이다.
그밖에 환경 보존에 관한 여러 협정이 추가로 맺어졌다.
매년 "남극 조약 자문 회의"를 통해 남극 지역의 운영과 관리를 논의하고 있다. 남극 조약 가입 44개 나라 중 27개 나라가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자문 회원국이라고 하며, 처음 조약을 가입한 12개 나라 이외에 남극에서 과학 활동을 벌이고 있는 15개 나라를 포함한다. 이 추가 회원국은 네덜란드·대한민국·독일·불가리아·브라질·스웨덴·에스파냐·에콰도르·우루과이·이탈리아·인도·중화인민공화국·페루·폴란드·핀란드이다.
나머지 17개 비자문 회원국은 과테말라·그리스·덴마크·루마니아·베네수엘라·스위스·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우크라이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체코·캐나다·콜롬비아·쿠바·터키·파푸아 뉴기니·헝가리이다.
대한민국은 1986년 11월 28일 33번째로 조약에 가입했고, 1989년 10월 9일 자문 회원국이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87년 1월 21일 35번째로 조약에 가입했다. /위키백과
[1977년] 카터 39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
지미 카터는 1963년 민주당 상원의원, 1970년 조지아주 주지사가 되어 흑인등용과 행정기구개혁을 실시하였다. 1976년 11월 민주당 후보로서 대통령선거에 출마, 현직 대통령 G.R.포드를 누르고 제39대 대통령이 되었다. (1월 21일 대통령 취임식)
취임 후 특히 에너지파동과 경제문제의 타개를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이집트-이스라엘 양국을 조정하여 중동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중국과의 국교정상화와 소련과의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1979년 11월 이란인들이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을 급습하여 미국인 직원을 인질로 붙잡는 사건이 발생하여, 1980년 4월 미군의 인질구출작전 실패 및 국내 경제정책의 파탄 등으로 1980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R.W.레이건에게 패하였다. /naver
[1976년] 초음속 콩코드기 파리와 런던에서 첫 상업취항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개발한 초음속여객기 ‘콩코드(Concorde)’ 2대가 1976년 1월 21일 각각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처음으로 상업비행을 시작했다. 1대는 프랑스항공기로 파리를 출발 다카르를 경유해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고, 또 1대의 영국항공기는 런던을 출발 페르시아만으로 향했다.
콩코드의 속도는 마하 2.25로 전장길이 62.1m, 날개길이 35.5m, 정원은 128명이었다. 1962년 양국의 콩코드 공동개발협정 성립 이래 양국은 140억달러라는 거액의 비용을 투입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대당 가격이 약 190억달러가 됐고 더구나 초음속비행때문에 연비가 나빠 구입하려는 회사가 없었다. 콩코드는 1969년 3월 2일 첫 시험비행에, 10월 1일 초음속비행에 성공했다. 1970년 11월 4일에는 1백2번째 시험비행 만에 마하 2의 괴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조선
[1950년]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Orwell, George) 사망
오웰 [Orwell, George, 1903.6.25~1950.1.21]
본명 블레어(Eric Arthur Blair). 인도 출생.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얼마 안 되어 영국으로 돌아왔다. 1911년 수업료 감액의 조건으로 사립 기숙학교에 입학, 그 곳에서 상류계급과의 심한 차별감을 맛보았다. 장학금으로 이튼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진학을 포기하고, 미얀마 경찰관이 되었다가 식민지악(植民地惡)을 통감하고 사직, 1927년 유럽으로 돌아와서 불황 속의 파리 빈민가와 런던의 부랑자 생활을 실제로 체험하였다.
처녀작 르포르타주 《파리·런던의 바닥생활》(1933)에 이어서 식민지 백인 관리의 잔혹상을 묘사한 소설 《버마의 나날》(1934)로 인정을 받았다. 그 후에 사회주의로 전향하게 되었으며, 1937년 말경 에스파냐로 건너가 공화제측의 의용군에 투신하였고 바르셀로나 전선에서 부상당했다. 좌익 내부의 격심한 당파 싸움에 휘말렸다가 박해를 벗어나 귀국하였는데, 이 환멸의 기록이 《카탈루냐(카탈로니아) 찬가 Hamage to Catalonia》(1938)가 되었다.
← 1984년 British first edition cover
1944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 Animal Farm》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지병인 결핵으로 입원 중 걸작 《1984년 Nineteen Eighty Four》(1949)을 완성하였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공포의 미래소설이다.
그의 공적은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의식과 성실·선예(先銳)의 대립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리니즘의 본질을 간파하고 거기서 다시 현대 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제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킨 점에 있다. /naver
[1941년] 에스파냐의 테너 가수 도밍고(Domingo, Placido) 출생
1941. 1. 21 ~
좋은 체격과 수려한 외모, 풍부하고 힘있는 소리, 연극적 재능 등으로 20세기 후반의 가장 인기있는 테너 가수이다.
도밍고의 부모는 스페인의 경가극 형식인 사르수엘라의 유명한 연기자들이었다. 멕시코에서 성장했고 그곳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1961년 멕시코 시에서 오페라 데뷔를 했고 이후 댈러스와 텍사스 지방을 옮겨다니면서 그 지방 오페라단에서 노래불렀다. 1962~65년 텔아비브에 있는 히브리 국립 오페라단의 전속가수가 되었고, 1965년에는 뉴욕 시 오페라, 1968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다(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는 데뷔 공연에 이어 정식 가수가 됨). 1969년 밀라노 스칼라 가극장에서 데뷔했다. 다방면의 작품에 출연한 도밍고는 공연뿐 아니라 많은 음반을 취입했고, 몇 편의 오페라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팝송을 부르는 모험도 감행했다. 1983년 자서전 〈나의 40년 My First Forty Years〉이 출판되었다. /브리태니커
[1921년] 찰리 채플린 영화 ‘키드’ 개봉
키드 [The Kid] -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버려진 아이와 그를 기르는 한 남자의 삶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흑백 무성영화. 1921년에 찰리 채플린과 퍼스트내셔널(First National) 영화사가 공동으로 제작하였으며, 퍼스트내셔널 영화사가 배급을 맡았다. 채플린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장편 무성영화로서, 감독과 주연을 비롯하여 제작·각본·음악을 겸하였다. 상영시간은 60분이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떠돌이(찰리 채플린)는 우연히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기르게 된다. 5년이 지난 뒤, 아이(재키 쿠건 Jackie Coogan)는 떠돌이의 '유리창 사업'을 돕는다. 아이가 남의 집 유리창에 돌을 던져 깨뜨리면 떠돌이가 재빨리 달려가 유리를 갈아끼워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오페라 스타로 성공한 아이의 엄마는 아들을 찾기 위하여 자선사업을 하고 신문에 현상금을 건 광고를 내는 등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아이가 병이 나자 떠돌이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게 하는데, 의사가 아이를 보호시설에 보내기 위하여 경찰에 연락한다. 경찰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속에 떠돌이는 간신히 아이를 되찾아 여인숙에 머무는데, 여인숙 주인이 신문에서 현상금을 걸고 찾는 아이임을 눈치채고 떠돌이가 잠든 사이에 경찰서로 데려가 엄마와 만나게 한다.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떠돌이는 지쳐 쓰러지고, 그들 모자와 다시 합쳐지는 꿈을 꾸며 깨어난다.
이 작품은 채플린 자신의 유년시절을 담은 자전적인 영화이면서 20세기 초반 영국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슬픈 눈빛을 한 아이역으로 출연한 재키 쿠건은 이 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할리우드 최초의 유명 아역스타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는 1989년 12월 15일에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naver
[1903년] 브로드웨이 ‘오즈의 마법사’ 초연
← Original title page.
미국의 작가 봄(Baum, L. Frank, 1856~1919)은 1856년 뉴욕주 시터냉고(Chittenango)에서 태어났다. '오즈(Oz)'라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동화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우스다코타주 애버딘(Aberdeen)과 시카고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처음으로 쓴 《아빠 거위 Father Goose》(1899)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에는 《오즈의 마법사 Wonderful Wizard of Oz》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캔사스의 한 농장에 사는 어린 소녀 도로시가 태풍에 날려 오즈 나라에 갔다가 주석으로 만든 나무꾼, 허수아비, 겁 많은 사자 등과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 이야기이다. 1901년 시카고에서 뮤지컬로 제작되었고, 193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더욱 친숙해졌다. 오즈에 관한 책은 이외에 13편이 더 있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한 편이 더 나왔다. 그밖에 약 60권의 작품을 썼는데 대부분 어린이들을 위한 것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naver
[1968년]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침입
← 유일하게 생포된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왼쪽에서 두번째).
1968년 1월 21일 휴전선을 넘어 서울에 침투한 북한의 특수부대원 31명이 김일성의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서울에 잠입했다. 자하문을 통과하던 중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도주하자 우리측 군경은 비상경계에 들어가 북한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현장에서 비상근무중이던 종로경찰서 최규식 총경이 순직했다. 이날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는 귀순했다./조선
[1793년] 프랑스 루이16세 처형
←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루이 16세.
프랑스 루이16세가 1793년 1월 21일 파리의 혁명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할아버지 루이15세의 뒤를 이어 1774년 왕위에 오른 루이16세는 선량하고 성실했지만 의지가 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했으며 난국을 타개할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발발로 파리시민의 감시하에 놓인 루이16세는 국외탈출을 시도하다가 바렌에서 체포됐다. 그러나 1791년 헌법성립과 함께 입헌군주제 원수 지위가 보장되었으나 1792년 파리시민의 재차 봉기로 체포되어 탕플탑에 유폐되자 왕권이 정지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혁명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외세와 결탁했다는 혐의가 포착되어 국민공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처형으로 부르봉 왕가도 마지막을 고했다./조선
그 밖에
2003년 단위농협 예금가입자 비밀번호 새나가 현금카드 1000만장 교체
1998년 요한 바오로2세, 쿠바 방문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 출범
1992년 경상대 박물관 발굴팀, 경남 합천군 성산리 대형토분 6호에서 가야시대 유물 205점 발굴
1992년 후기대 입시 시험지 유출사고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발족
1984년 한국-사우디아라비아, 항공협정 체결
1980년 북한올림픽위원회 모스크바 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인 회담을 판문점에서 갖자고 일방적으로 통보
1980년 소련,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박사 고리키로 유배
1974년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 김경락 목사 등 11명 구속 발표
1974년 한국과 독일 비자면제협정 체결
1968년 시인,교육자 신동명 사망
1966년 월남전 4일간 구정휴전 발표
1965년 이란 수상 만수르 피격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1년 통일사회당 결성(대표 이동화)
1959년 평화시장에 대화재
1951년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유리코 사망
1949년 장개석 총통 사임
1940년 미국 프로 골프 선수 잭 니클라우스 출생
1939년 조선변호사협회 인권운동 전개
1930년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 런던서 해군군축회의 개막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
1919년 아일랜드 독립 선언
1916년 ‘학지광’ 발매 금지
1915년 시가지에 이정표 등장
1895년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 출생
1892년 해왕성을 발견한 영국의 천문학자 애덤스 사망
1831년 조선조 화가 오경석 출생
[1954년] 세계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호 진수식
← 1954년 1월 21일 노틸러스호의 진수식이 거행됐다.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노틸러스호가 1954년 1월 21일 진수식을 가졌다. 영어로 ‘앵무조개’란 뜻을 가진 노틸러스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社)가 건조한 것으로 길이 97m, 배수량 3180t으로 장시간 잠수할 수 있는 세계최초의 잠수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잠수함은 수중에서 축전지에 의존해 주행한 탓에, 8kn(노트)의 속력으로는 1시간, 3kn의 속력으로는 20∼40시간밖에 항속(航續)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잠수함은 전지의 충전을 위해서 수시로 부상해야하는 결정적인 약점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틸러스호는 가압수형(加壓水型)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증기로 터빈을 돌려 동력을 공급받아 움직이며, 1만 5000 마력으로 잠수상태에서 20kn 이상의 속력으로 항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력을 거의 변함없이 유지할 수도 있었다. 1958년 8월 W.R.앤더슨을 함장으로 하여 극점에 도달, 북극해의 잠항(潛航) 횡단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0년 항해임무를 마친 후, 1985년부터 코네티컷주 뉴런던에 있는 ‘미군함 노틸러스호 기념 및 잠수함박물관’에 전시됐다.
이 노틸러스호는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르느(Joules Verne)의 ‘해저 2만리’라는 소설에도 등장한다. 인간의 바다 오염에 분노를 느낀 네모 선장이 노틸러스라는 잠수함을 타고 배들을 파괴하는 줄거리로 된 과학 공상 소설이다. 소설 속의 나오는 잠수함 노틀러스호는 공상 속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인류 최초의 잠수함이면서도 원자력 잠수함의 기본 개념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1954년에 미국에서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의 이름도 바로 소설 속의 이 잠수함 이름을 그대로 따와 지은 것이다. /조선
[1924년] 레닌 사망
← 러시아 혁명지도자 레닌.본명은 Vladimir Ilich Ulyanov.
1870. 4. 22(구력 4. 10) 러시아 심비르스크 ~ 1924. 1. 21 모스크바 근처 고리키.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고 10월혁명을 주도한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 레닌이 1924년 1월 21일 고리키에서 뇌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1870년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난 레닌은 1887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계획에 연루돼 처형된 맏형 알렉산드르의 영향으로 혁명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1870년대 플레하노프에 의해 러시아에 도입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여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고 이후 1905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7년 국외로 망명했다. 1917년 2월혁명이 발발하자 귀국해 마침내 11월 7일 무장봉기로 과도정부를 전복하고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혁명정권을 수립했다. 1919년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다.
그는 러시아 10월혁명의 중심인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후진국 러시아에 적용함으로써 러시아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혁명이론가이자 사상가였다. 레닌은 10월혁명 이후 최근까지도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아 왔으나 동구권 몰락과 소련의 해체로 그의 동상이 철거되는 등 수모를 당해왔다. /조선
[1919년] 조선 제26대 왕 고종 승하
← 고종1919년 1월 21일 고종이 68세 나이로 사망했다. 갑작스런 죽음이었기 때문에 당시 독살설 등 많은 의문을 낳았으며, 결국 3·1운동을 촉발한 한 계기가 되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즉위 후 오랫동안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했다. 대원군이 물러난 후에는 왕비 명성황후의 외척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에 즉위해 황제권과 자위군대를 강화하는 광무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고, 이에 고종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해 조약 폐기를 호소했으나 실패했다. 일본은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브리태니커
[1905년] 프랑스의 의상 디자이너 디오르(Christian Dior) 출생
← 디오르(1957)1905년 1월 21일 태어남 / 1957년 10월 24일 죽음
"나는 여성의 몸이 지닌 곡선과 그 윤곽에 맞추어 잘록한 허리와 넓은 히프, 볼록한 가슴을 강조한 구성물로서의 내 옷을 만들고 싶었다. " - 크리스티앙 디오르
디오르는 프랑스의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이다. 노르망디 그랑빌에서 태어나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1930년대초 화랑을 경영하고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디자인 분야에 뛰어들었다. 1947년 매우 여성적인 긴 치마 '뉴룩'을 발표해 국제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물자 통제로 심이 들어간 어깨와 짧은 치마를 강조한 이전의 디자인과는 달리 뉴룩은 작은 어깨, 자연스런 허리선, 풍성한 치마가 특징이었다. 이어서 그는 H라인·A라인·Y라인 등 '알파벳 라인'을 비롯한 새로운 실루엣을 발표해 파리 및 세계의 패션계를 주도했다. 1947년 자신의 이름으로 국제적 패션 하우스를 세웠다. 향수·스카프·양말·액세서리 등 여러 분야를 접목시켜 패션의 종합화를 이루었다.
[1904년] 소설가·문학평론가 홍효민(洪曉民) 출생
1904. 1. 21 경기 연천~1975. 소설가·문학평론가.본명은 순준(淳俊), 필명은 안재좌(安在左)·정복영(鄭復榮)·효민학인(曉民學人).
1924년 도쿄[東京] 세이소쿠 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졸업했으며, 1927년 조중곤·김두용 등과 함께 〈제3전선〉을 펴냈다. 귀국 후 〈동아일보〉·〈매일신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프로 문학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았으나 동반자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8·15해방 직후 그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에 가담했으나 이 단체가 조선문학가동맹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직을 떠났다. 이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27년 〈개척〉 7월호에 〈문예시평〉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소설도 몇 편 발표했으나 그의 문학적 업적은 주로 평론에서 찾을 수 있다. 〈행동주의 문학의 검토〉(조선문단, 1935. 7)·〈행동주의 문학의 이론과 실제〉(신동아, 1935. 9)에서 행동주의 문학은 인간주의 사상을 기초로 창조에의 의욕과 그 참여에 있어 정신적 자유주의를 주요개념으로 한다고 하고, 〈문학의 사회적 성격〉(조선문학, 1936. 8)에서는 문학의 사회적 성격을 중시하고 능동성·진취성을 언급하면서 꼭 경향파 문학이 아니라도 모든 예술이 성격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8·15해방 후 순수문학을 비판하거나 사실주의 문학론을 펼친 바 있으며, 6·25전쟁 후에는 〈애국사상과 애국문학〉(현대문학, 1956. 2)·〈문학의 윤리문제〉(자유문학, 1960. 1) 등을 통해 애국주의 문학론을 주장했다. 역사소설에도 관심을 보여 〈인조반정〉·〈양귀비〉·〈태조대왕〉 등을 발표했다. 소설집으로 〈인조반정〉(1986), 평론집으로 〈문학과 자유〉(1939)·〈문학개론〉(1945)·〈행동지성과 민족문학〉(1980) 등이 있다.
[1901년] 소설가 최서해(崔曙海) 출생
1901. 1. 21 함북 성진 ~ 1932. 7. 9 서울.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빈궁소설을 주로 썼다. 본명은 학송(鶴松). 일명 서해(曙海)·설봉(雪峰)·풍년년(豊年年). 이명은 저곡(苧谷).
극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1911년 성진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가난으로 5학년 때 중퇴하고, 1917년 간도로 이주해 방랑하며 하층민의 생활을 했다. 1918년 3월 〈학지광〉에 시 〈우후정원(雨後庭園)의 월광(月光)〉·〈추교(秋郊)의 모색〉·〈반도청년에게〉를 발표하여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이어 시 〈춘교(春郊)에서〉·〈자신 自信〉 등을 발표했다. 1924년 1월 28일부터 2월 4일까지 〈동아일보〉에 〈토혈 吐血〉을 연재해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같은 해 10월 단편 〈고국〉이 〈조선문단〉의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1925년 2월 〈조선문단〉에 입사하여 이 잡지에 간도 체험을 생생하게 그린 〈십삼원 拾參圓〉(1925. 2)·〈탈출기〉(1925. 3)·〈살려는 사람들〉(1925. 4) 등을 발표했다.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해 1929년까지 활동했으며, 1926년 KAPF 맹원이자 시인인 조운의 누이 조분려와 재혼했다. 〈현대평론〉·〈중외일보〉 기자를 거쳐 〈매일신보〉 학예부장으로 일하다가 31세의 나이로 죽었다.
[2006년] 도난된 첼리니의 걸작품 '살리에라(Saliera)' 회수
르네상스 예술의 진수라는 평가를 듣는 살리에라는 이탈리아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가 지난 1540년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의뢰로 제작한 황금 조각품으로 현재 6천만달러(600억원) 상당의 평가를 받고 있다. 금과 에나멜 등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26㎝의 높이의 이 작품은 바다를 상징하는 남자가 작살을 들고 육지를 상징하는 여자와 마주 앉아 있는 것으로, 지구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소금통’이라는 현실적인 목적으로 쓰였다.
이 조각품은 지난 2003년 5월 (11일) 새벽에 창문을 깨고 칩입한 절도범들에 의해 도난된 뒤 오리무중 상태로 있었다. 이후 절도 용의자가 지난해 경찰에 대가를 요구하는 데 사용한 휴대폰을 구입하는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잡혔고, 경찰의 공개 수배 하루만에 용의자가 경찰에 자진 출두해 극적으로 회수됐다. [빈 로이터.AP=연합뉴스] 2006-01-22
[1987년] 북한 세계 35번째로 남극조약 가입
남극 조약은 1959년 12월 1일 맺어져 1961년 6월 23일부터 그 효력을 발휘했다. 1957년/1958년의 국제지구관측의 해를 맞아 남극에서 활동중인 12개 나라를 미국이 초청한 회의에서 조약이 논의되었다. 이때 초대받은 나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노르웨이·뉴질랜드·미국·벨기에·소련·아르헨티나·영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칠레·프랑스이다.
그밖에 환경 보존에 관한 여러 협정이 추가로 맺어졌다.
매년 "남극 조약 자문 회의"를 통해 남극 지역의 운영과 관리를 논의하고 있다. 남극 조약 가입 44개 나라 중 27개 나라가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자문 회원국이라고 하며, 처음 조약을 가입한 12개 나라 이외에 남극에서 과학 활동을 벌이고 있는 15개 나라를 포함한다. 이 추가 회원국은 네덜란드·대한민국·독일·불가리아·브라질·스웨덴·에스파냐·에콰도르·우루과이·이탈리아·인도·중화인민공화국·페루·폴란드·핀란드이다.
나머지 17개 비자문 회원국은 과테말라·그리스·덴마크·루마니아·베네수엘라·스위스·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우크라이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체코·캐나다·콜롬비아·쿠바·터키·파푸아 뉴기니·헝가리이다.
대한민국은 1986년 11월 28일 33번째로 조약에 가입했고, 1989년 10월 9일 자문 회원국이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87년 1월 21일 35번째로 조약에 가입했다. /위키백과
[1977년] 카터 39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
지미 카터는 1963년 민주당 상원의원, 1970년 조지아주 주지사가 되어 흑인등용과 행정기구개혁을 실시하였다. 1976년 11월 민주당 후보로서 대통령선거에 출마, 현직 대통령 G.R.포드를 누르고 제39대 대통령이 되었다. (1월 21일 대통령 취임식)취임 후 특히 에너지파동과 경제문제의 타개를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이집트-이스라엘 양국을 조정하여 중동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중국과의 국교정상화와 소련과의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1979년 11월 이란인들이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을 급습하여 미국인 직원을 인질로 붙잡는 사건이 발생하여, 1980년 4월 미군의 인질구출작전 실패 및 국내 경제정책의 파탄 등으로 1980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R.W.레이건에게 패하였다. /naver
[1976년] 초음속 콩코드기 파리와 런던에서 첫 상업취항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개발한 초음속여객기 ‘콩코드(Concorde)’ 2대가 1976년 1월 21일 각각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처음으로 상업비행을 시작했다. 1대는 프랑스항공기로 파리를 출발 다카르를 경유해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고, 또 1대의 영국항공기는 런던을 출발 페르시아만으로 향했다.
콩코드의 속도는 마하 2.25로 전장길이 62.1m, 날개길이 35.5m, 정원은 128명이었다. 1962년 양국의 콩코드 공동개발협정 성립 이래 양국은 140억달러라는 거액의 비용을 투입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대당 가격이 약 190억달러가 됐고 더구나 초음속비행때문에 연비가 나빠 구입하려는 회사가 없었다. 콩코드는 1969년 3월 2일 첫 시험비행에, 10월 1일 초음속비행에 성공했다. 1970년 11월 4일에는 1백2번째 시험비행 만에 마하 2의 괴속으로 53분간 순항하는 기록을 세웠다. /조선
[1950년]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Orwell, George) 사망
오웰 [Orwell, George, 1903.6.25~1950.1.21]본명 블레어(Eric Arthur Blair). 인도 출생.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얼마 안 되어 영국으로 돌아왔다. 1911년 수업료 감액의 조건으로 사립 기숙학교에 입학, 그 곳에서 상류계급과의 심한 차별감을 맛보았다. 장학금으로 이튼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진학을 포기하고, 미얀마 경찰관이 되었다가 식민지악(植民地惡)을 통감하고 사직, 1927년 유럽으로 돌아와서 불황 속의 파리 빈민가와 런던의 부랑자 생활을 실제로 체험하였다.
처녀작 르포르타주 《파리·런던의 바닥생활》(1933)에 이어서 식민지 백인 관리의 잔혹상을 묘사한 소설 《버마의 나날》(1934)로 인정을 받았다. 그 후에 사회주의로 전향하게 되었으며, 1937년 말경 에스파냐로 건너가 공화제측의 의용군에 투신하였고 바르셀로나 전선에서 부상당했다. 좌익 내부의 격심한 당파 싸움에 휘말렸다가 박해를 벗어나 귀국하였는데, 이 환멸의 기록이 《카탈루냐(카탈로니아) 찬가 Hamage to Catalonia》(1938)가 되었다.
← 1984년 British first edition cover1944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우화 《동물농장 Animal Farm》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지병인 결핵으로 입원 중 걸작 《1984년 Nineteen Eighty Four》(1949)을 완성하였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공포의 미래소설이다.
그의 공적은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의식과 성실·선예(先銳)의 대립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리니즘의 본질을 간파하고 거기서 다시 현대 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제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킨 점에 있다. /naver
[1941년] 에스파냐의 테너 가수 도밍고(Domingo, Placido) 출생
1941. 1. 21 ~ 좋은 체격과 수려한 외모, 풍부하고 힘있는 소리, 연극적 재능 등으로 20세기 후반의 가장 인기있는 테너 가수이다.
도밍고의 부모는 스페인의 경가극 형식인 사르수엘라의 유명한 연기자들이었다. 멕시코에서 성장했고 그곳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1961년 멕시코 시에서 오페라 데뷔를 했고 이후 댈러스와 텍사스 지방을 옮겨다니면서 그 지방 오페라단에서 노래불렀다. 1962~65년 텔아비브에 있는 히브리 국립 오페라단의 전속가수가 되었고, 1965년에는 뉴욕 시 오페라, 1968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다(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는 데뷔 공연에 이어 정식 가수가 됨). 1969년 밀라노 스칼라 가극장에서 데뷔했다. 다방면의 작품에 출연한 도밍고는 공연뿐 아니라 많은 음반을 취입했고, 몇 편의 오페라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팝송을 부르는 모험도 감행했다. 1983년 자서전 〈나의 40년 My First Forty Years〉이 출판되었다. /브리태니커
[1921년] 찰리 채플린 영화 ‘키드’ 개봉
키드 [The Kid] -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버려진 아이와 그를 기르는 한 남자의 삶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흑백 무성영화. 1921년에 찰리 채플린과 퍼스트내셔널(First National) 영화사가 공동으로 제작하였으며, 퍼스트내셔널 영화사가 배급을 맡았다. 채플린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장편 무성영화로서, 감독과 주연을 비롯하여 제작·각본·음악을 겸하였다. 상영시간은 60분이다.일정한 직업이 없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떠돌이(찰리 채플린)는 우연히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기르게 된다. 5년이 지난 뒤, 아이(재키 쿠건 Jackie Coogan)는 떠돌이의 '유리창 사업'을 돕는다. 아이가 남의 집 유리창에 돌을 던져 깨뜨리면 떠돌이가 재빨리 달려가 유리를 갈아끼워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오페라 스타로 성공한 아이의 엄마는 아들을 찾기 위하여 자선사업을 하고 신문에 현상금을 건 광고를 내는 등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아이가 병이 나자 떠돌이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게 하는데, 의사가 아이를 보호시설에 보내기 위하여 경찰에 연락한다. 경찰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속에 떠돌이는 간신히 아이를 되찾아 여인숙에 머무는데, 여인숙 주인이 신문에서 현상금을 걸고 찾는 아이임을 눈치채고 떠돌이가 잠든 사이에 경찰서로 데려가 엄마와 만나게 한다.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떠돌이는 지쳐 쓰러지고, 그들 모자와 다시 합쳐지는 꿈을 꾸며 깨어난다.
이 작품은 채플린 자신의 유년시절을 담은 자전적인 영화이면서 20세기 초반 영국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슬픈 눈빛을 한 아이역으로 출연한 재키 쿠건은 이 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할리우드 최초의 유명 아역스타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는 1989년 12월 15일에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naver
[1903년] 브로드웨이 ‘오즈의 마법사’ 초연
← Original title page.미국의 작가 봄(Baum, L. Frank, 1856~1919)은 1856년 뉴욕주 시터냉고(Chittenango)에서 태어났다. '오즈(Oz)'라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동화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우스다코타주 애버딘(Aberdeen)과 시카고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처음으로 쓴 《아빠 거위 Father Goose》(1899)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에는 《오즈의 마법사 Wonderful Wizard of Oz》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즈의 마법사》는 캔사스의 한 농장에 사는 어린 소녀 도로시가 태풍에 날려 오즈 나라에 갔다가 주석으로 만든 나무꾼, 허수아비, 겁 많은 사자 등과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 이야기이다. 1901년 시카고에서 뮤지컬로 제작되었고, 1939년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더욱 친숙해졌다. 오즈에 관한 책은 이외에 13편이 더 있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한 편이 더 나왔다. 그밖에 약 60권의 작품을 썼는데 대부분 어린이들을 위한 것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naver
[1968년]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침입
← 유일하게 생포된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왼쪽에서 두번째). 1968년 1월 21일 휴전선을 넘어 서울에 침투한 북한의 특수부대원 31명이 김일성의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서울에 잠입했다. 자하문을 통과하던 중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기관총을 난사하며 도주하자 우리측 군경은 비상경계에 들어가 북한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현장에서 비상근무중이던 종로경찰서 최규식 총경이 순직했다. 이날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는 귀순했다./조선
[1793년] 프랑스 루이16세 처형
←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루이 16세. 프랑스 루이16세가 1793년 1월 21일 파리의 혁명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할아버지 루이15세의 뒤를 이어 1774년 왕위에 오른 루이16세는 선량하고 성실했지만 의지가 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했으며 난국을 타개할 만한 능력이 부족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발발로 파리시민의 감시하에 놓인 루이16세는 국외탈출을 시도하다가 바렌에서 체포됐다. 그러나 1791년 헌법성립과 함께 입헌군주제 원수 지위가 보장되었으나 1792년 파리시민의 재차 봉기로 체포되어 탕플탑에 유폐되자 왕권이 정지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혁명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외세와 결탁했다는 혐의가 포착되어 국민공회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처형으로 부르봉 왕가도 마지막을 고했다./조선
그 밖에
2003년 단위농협 예금가입자 비밀번호 새나가 현금카드 1000만장 교체
1998년 요한 바오로2세, 쿠바 방문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 출범
1992년 경상대 박물관 발굴팀, 경남 합천군 성산리 대형토분 6호에서 가야시대 유물 205점 발굴
1992년 후기대 입시 시험지 유출사고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발족
1984년 한국-사우디아라비아, 항공협정 체결
1980년 북한올림픽위원회 모스크바 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인 회담을 판문점에서 갖자고 일방적으로 통보
1980년 소련,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박사 고리키로 유배
1974년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 김경락 목사 등 11명 구속 발표
1974년 한국과 독일 비자면제협정 체결
1968년 시인,교육자 신동명 사망
1966년 월남전 4일간 구정휴전 발표
1965년 이란 수상 만수르 피격
196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1년 통일사회당 결성(대표 이동화)
1959년 평화시장에 대화재
1951년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유리코 사망
1949년 장개석 총통 사임
1940년 미국 프로 골프 선수 잭 니클라우스 출생
1939년 조선변호사협회 인권운동 전개
1930년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 런던서 해군군축회의 개막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
1919년 아일랜드 독립 선언
1916년 ‘학지광’ 발매 금지
1915년 시가지에 이정표 등장
1895년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 출생
1892년 해왕성을 발견한 영국의 천문학자 애덤스 사망
1831년 조선조 화가 오경석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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