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과 상하이 스캔들, 그 뒤엔 남성권력
장자연이란 이름이 신문을 다시 휩쓸고 있고 사람들 눈귀를 잡아끌고 있습니다. 권력지배자들은 쉬쉬하며 얼렁뚱땅 덮으려했고 워낙 정신없는 사회이기에 다른 사건들에 밀려 잠깐 수그러들었으나 그렇게 묻힐 수 없었지요. 앞날이 구만리 같은 한 여자가 자신의 원통함을 풀어달라며 목숨까지 끊었는데, 정작 아무도 혼쭐나지 않았으니까요. 장자연이란 이름은 다시 치솟을 수밖에 없었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 사회에 묻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상하이 영사들이 벌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화장발을 걷어내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엉망진창이고 허접한 곳인지 툭하면 까발렸던 외교부가 드디어 바지를 훌러덩 벗어던지면서 짓무른 속내를 확 털어놓네요. 어깨에 힘주는 이들이 얼마나 골칫거리인지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두 사건은 심심풀이 땅콩이나 울화를 부채질하는 데 멈추지 않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도록 이끕니다. 휘뚜루마뚜루 장자연을 짓밟던 이들을 삿대질하고 상하이 영사들에게 돌팔매질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지요. 비슷한 때에 불거진 두 사건은 겉보기엔 다른 거 같지만 그 안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몇 명에게 접대했냐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접대를 해야 하는지 그 판을 드러내고 새롭게 바꿔내어야 하지 않을까? @SBS
고의춤을 풀어버리고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남성권력이 구조화된 사회
한쪽은 희생자로 한쪽은 유혹자로 나타났지만 곰곰 따지면, 가부장사회가 여자들을 갈라놓는 성녀와 마녀라는 잣대와 두 사건의 두 여자는 거의 판박입니다. 이 사회는 여전히 남자들이 권력을 주물럭거리고 있으며 여자들은 끊임없이 남성권력이 깔아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장자연과 덩씨는 몸으로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속삭이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의 힘은 남자들에게 있어요!”
장자연을 빨아먹은 배불뚝이들과 덩씨에게 휘둘린 멍청이들을 욕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입니다. 그보다 어려운 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며, 그것이 ‘진정한 노여움’이겠지요. 열 뻗친다고 성만 낸다면, 얼마 시간이 지나 자신은 또 성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판이 그대로 있으니까요.
J출판사 O사장은 나하고 형님 동생 하는 사이다. 어제도 O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함께 종점 뒤편 X의 룸카페로 갔다. 고향 친구의 조카 F가 매니저로 있는 룸카페였다. F는 잘생긴 스물두 살 청년으로 얼마나 싹싹하고 눈치가 빠른지, 요즘 내가 이 룸카페에 자주 들르는 것은 파트너 X가 ‘텐프로’이기 때문이 아니라, F가 너무도 잘 받들어주어서였다. “중요한 손님이죠? 애들 잘 골라 넣을게요.” F가 내게 귀엣말을 하고 눈을 꿈뻑, 했다.『은교』169쪽
그렇다면 먼저 할 수 있는 건, 배불뚝이들과 멍청이들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일입니다. 너무 쉽사리 그들을 욕하지만 어쩌면 이미 많은 이들의 삶과 살 속에 그들의 욕망이 스며있습니다. 밤에 술 한잔하면 으레 질펀한 비벼댐을 하고 싶고, 내남없이 고의춤을 풀어버리고 정신줄 놓아버리기가 이 사회에 구조화되어있으니까요.
많은 남자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닮아버린다.『습지생태보고서』의 한 장면
“여자는 접대 때문에 배우게 됐지. 가장 중요한 업무가 접대니까, 여자를 끼고 놀지 않을 수가 없어. 하도 여자랑 많이 자서 몇이나 잤는지도 모르겠어. 세다가 포기했어. 나는 그래도 점잖은 편이야. 점잖을 것 같은 놈들, 공무원 변호사 의사 이런 놈들이 더해. 정말 얼마나 지독하게 노는지, 그걸 맞춰주려면 진짜 죽을 맛이었어. 처음 접대 나가서 했던 게, 우리 신입이 하는 거 한번 보자, 라고 말해서, 다들 보는 앞에서 여자가 날 빨아줬어. 원래는 그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분위기 띄우려고 오버한 탓도 있지. 여자가 내 바지를 내리고 거기에 술을 붓는 거야. 그래서 그냥 바지를 다 벗었지. 그리고 여자가 내 물건을 입에 넣기에 나도 힘 줘서 세웠지. 그리고 사정했고. 그게 데뷔 무대였지.”『절망의 구』298쪽
삶정치와 여성권력을 이뤄내어야 한다.
이런 일그러진 남자성문화에 메스껍고 역겨운 나머지 많은 여자들이 더 생각을 나누며 고민하기는커녕 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마뜩찮아 하거나 시큰둥해하며 고개 돌려버리기 일쑤입니다. 답답하고 뾰족한 수가 곧장 생겨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무뎌진 더듬이로 떨떠름해하거나 화풀이의 굴레에 갇혀버리죠.
나도 저들이 정말 짐승인가 사람인가 싶을 때가 많아. 룸살롱에서 다른 사람들 뻔히 있는 공간에서, 최소한 인간이 교미가 아니고서야 은밀한 공간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돈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버젓하게 남들 앞에서 그 어린 여자아이들 짧은 스커트 사이로 손을 넣어서 주물탱이가 되도록 만지작거리다가, 돈을 뿌리는 인간들을 보면…….『우리들의 행복한 시간』115쪽
하지만 자기 안에 삭혀두지 않고 그 분노들이 모이고 모인다면, 그렇게 ‘새로운 권력’이 생겨난다면, ‘짐승 같은 놈들’이 헐떡임의 불쏘시개로 또 다른 수많은 여자들을 쓰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있는 남자들이라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일그러진 사회성문화에 맞서야 하듯, 여자들도 성별화된 권력을 더 파고들어서 물어야 합니다. 오늘날 생각있는 여자들이라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왜 감투는 죄다 남자들만 쓰고 있느냐고 덤벼야 합니다. 부르르 떨면서 권력이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이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 나와 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김성환 장관이 고개 숙여 사과했으나 남성권력을 판갈이 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장관’이 사과할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두말할 나위 없이 그저 ♀으로 태어난 사람이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는 얘기로 마무리되어선 안 됩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남자들보다는 성별이 여자인 사람들이 권력을 움켜쥐는 일이 어쩌면 나름 뜻 깊은 일이자 커다란 사건이지요. 그러나 생각의 날개를 더 멀리 내뻗어야 합니다. 노무현이 이명박을 낳았듯, 성별이 여자일 뿐인 권력자는 섬뜩한 된서리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까요.
단순히 남자에서 여자로 권력이 넘어가는 게 아니라, 한곳에 힘을 몰아주고 떵떵거리는 정치체제를 벗어나 저마다 곳곳에서 어울려 살아가며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정치, 적 아니면 내편이라는 속 좁은 남성권력을 깨부수며 다름을 보듬으며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북돋우는 여성권력을 이뤄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만히 있으면, 여태 그래왔듯, 이러구러 얼버무리며 퉁 치거나 그 자리에 이름과 얼굴이 조금 다른 남자가 올라갈 테고, 머잖아 ‘거의 똑같은 일들’이 되풀이될 테니까요.
- 이 글은 웹진 이프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