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 는 케치프레이즈가 있다,
진영논리에 의한 대응을 보면,
<우파기득권> ; "맞다, 옳은 말이다. 그러니까 천재의 뒷다리 잡지 마라, 자유(?)경제체제 아닌가? 천재의 연봉은 만배가 되어도 무방하다. 아니 만배인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 천재 자격과 신분을 내 자녀 후손까지 세습하고 싶다"
<좌파 진보(?)진영, 노조> ; " 틀렸다, 사람은 평등하다. 노동만이 신성한 가치이다. 천재? 인정 안한다. 나도 억대 연봉 받을 자격 있다. 내 자녀 후손까지 억대 노동자 자격과 신분이나마 세습하고 싶다. 최저임금 인상하고, 동일노동, 동일 임금, 도입하자."
< 내 생각> ; "과학이 가치창출의 기본이 된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기술(=천재)이 만명을 먹여 살린다. 천재에게 도움은 못 줄 망정 뒷다리 잡으면 안된다. 한 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그 한명이 만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뒷다리 잡는 사람은 별도 대책을 세우더라도 9999 명을 굶겨 죽일 수는 없다.
따라서, 최고연봉 제한하는 사회적 합의 필요하고,
북한정치든, 재벌경영이든, 귀족노조 노동자신분이든 특권과 반칙에 의한 세습은 인정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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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 대기업 CEO 의 연봉은 평사원 연봉의 30~40배 이었다.( 대한민국의 CEO 연봉도 평사원의 10 ~20 배 수준) 그러던 것이 1990년대에 오면서 미국 경영자 연봉은 평사원의 300 ~ 400 배로 껑충 뛰더니 2010년대는 그 격차가 더 벌어져 500 배 천배까지 확대되는 추세이다. (대한민국도 대략 500 배 정도)
국가간 격차를 살펴보아도, 미국 CEO 연봉은 일본의 20배, 독일의 2~5배 수준이다.
대주주와 경영진인 이사회가 답합하여 끊임없이 CEO 연봉잔치를 하는 것을 "비신성동맹" 이라 한다.
수년전 작고한 <경영학의 아버지> 라 불리는 드러커도 이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는데, 포브스 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 최고 경영자의 최고 연봉은 하급직 사원의 2~30 배 수준이 바람직하다, 이 격차가 심해지면 좌경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다" 라고 경고 한 바 있다.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과 서유럽이 공산화 되지 않은 것은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었고(전쟁도발론 도 있지만)
그 이론적 토대는 케인즈 의 이른바 <수정 자본주의>라 불리는 통화정책과 공공재정정책이었음은 익히 알고 있겠지만,
케인즈 이전에, "노동만이 가치창출" 이라는 마르크스에 대해 슘페터가 <innovation>, 한 차원 높은 혁신에 의한 <가치창출>을 제시함으로써 노동과 자본의 대립개념으로 설명한 마르크스 이론을 무력화내지 희석화 시킨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스트리아 학파인 슘페터로부터 오스트리아인 드러커가 그 사상과 학문을 사사받아 미국 경영학의 토대를 만들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fact 이다.
기업경영에 종사하는 지도층들이 선호하는 학위 1 호가 미국 일류대학의 MBA(경영학 석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 경영학의 시조, 경영학의 아버지가 " CEO 의 임금이 너무 높은 것이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는데 그 수많은 미국 MBA 수료한 지도층들은 무엇을 배우고 온 것일까?
야권정치인, 노동조합, 시민단체에서 최저임금제 인상을 요구한다. 100 만원 월급을 법으로 제정해서 120만원으로 올리자 고 하지만, 100만원 일자리도 찾지 못한 수백만 극빈자가 존재하고, 백만원 일자리라도 쫒겨 날 까 전전긍긍하는 강남 아파트 경비원들의 표정은 무시 한 채 "뭔가를 했다" 는 보여 주기 식 체면치레이다.
비유하자면, 세숫대야에 비누조각은 그대로 둔 채, 표면에 불어나는 비누거품만 걷어 내며 " 내 할 일 다 했다" 고 생색내는 모습이다. 70만원을 남기고 자살한 세 모녀가 최저임금제 의 최저 임금이 낮아서 생을 마감했던가? 아니지 않은가.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목소리라도 있지만, 일~이 백만 가구(오백만 ~천만)국민들이 최저임금이하의 일자리도 찾지 못하고 복지 사각지대에 내동댕이 쳐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그 어떤 정치적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 인터넷에 글을 올리지도 못한다. 그냥 조용하다. 고요한 정막이 감돈다. 티비, 신문, 인터넷...기본적인 의식주가 되는. 그러나 더 많은 보수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요란하다. 주택정책이 그 대표적인 사례. 내 집값만 오르면 삭월세 극빈층의 주거불안이나 , 주거비 때문에 결혼도 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고통? 나랑 상관 없다는 성장논리. 뿐..
재벌, 노조, 정부 아무도 양보란 없다.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는 요란하지만, 수십억 수억 연봉잔치하는 공기업, 재벌기업, 은행장, 전관예우법조계, 전직고위관료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침묵하는 이유? 간단하다. 백만원 이하로 죽어가는 국민은 내 알 바 아니지만, 나도 내 자식도 억대 연봉 받는 신분으로 상승하고 싶고, 나도 내 자녀의 앞날도 그 욕망의 정치에 편승하고 싶으니 수십억 연봉은 내 욕망의 대상, 내 자녀의 인생목표로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는 교육과열 역시, 최저임금제로 생색내고 최고임금에는 관대한 세태와 불가분한 그 한 징후일 뿐..
광고비에 코꿰인 언론, 연구비에 발목 잡힌 학계, 제 손목에 내 집값이라는 수갑을 채운 중간서민들, 세습노조,
대한민국의 (반칙과 특권으로 결정된)공기업, 대기업 CEO 연봉과 전관예우 최고연봉에 대해 <비신성동맹>을 맺고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