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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 사람이 더하다” “부자는 하나를 뺏어 백을 채우는 것들” 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른바 부자들에게 권력까지 주면 감당키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는 말은 일견 맞는 얘기로 보인다. 허나... 그게 전부일까?

    ‘가진 자에게 권력까지 주지 말자’는 주장이 하나마나한 주장이 될 수밖에 없는 포인트는 두가지다. 하나는 ‘자기멸시’가 심해질수록 힘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찬양 때문에 강한 자에게 무조건 몰아주는 흐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게 일베고 이게 보수화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시간 14.07.15
  • 답글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자가 권력을 쥐는 게 위험하다면 피지배층 무산 계급이 권력을 쥐는 건 안전할까? 정답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 멸시로 비뚤어진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기득권 지배층보다 훨씬 악랄한 인간으로 변신한다.

    따라서 본인이 겪은 경험칙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인정하는 유연함이 없다면 이념노선 지도가 어느 쪽이든 간에 당신은 진보가 아니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4.07.15
  • 답글 정치세력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일치 단결하는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기득권 진영에서 더욱 철저히 보여주고 있다. 정말 일치단결해서 세력으로 이를 억눌러야 할 범야권 진보연은 한마디로 모래알이다. 노무현은 진작에 이런 구도를 내다 보고 걱정했었다.

    피지배층의 편에 선다면서도 정작 그 피지배층은 보수 기득권의 주장에 열광하는 모순과 시대가 달라지고 있음에도 과거의 영화에 젖어 관성을 놓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해 여전히 진보연이라는 사람들은 손을 놓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4.07.15
  • 답글 이런 갈등과 문제가 현실에서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정의당의 어색한 동거다. 과거의 관성에 여전히 찌들어 있는 진신계와 제3의 길을 걷자는 참여계가 진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서로 달리 쓰고 있는 상황에서 ‘가진 자에 맞서자’는 주장은 얼마나 힘을 받을까?

    당장 진신계가 보기엔 참여계 또한 가진 자이고 부르주아로 분류되지 않던가? 이들은 타도하기 전에 잠깐 연대하고 버릴 대상인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4.07.15
  • 답글 영세 자영업자나 월급쟁이 대기업 사장이나 똑같은 사장일까? 도시 빈민들 노인들 비정규직 화이트 칼라, 서비스직종 종사자는 노동계급이 아니니 유산 계급으로 분리하면 그만인가?

    기준이 점점 상대화되고 모호해져가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기준과 판단, 주장은 더이상 설 곳이 없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4.07.15
  • 답글 피지배층이 일치 단결하여 지배층과 기득권에 저항하자는 논리는 그나마 유럽에서는 어느정도 통했겠지만 동북아에서는 그리 실효성있는 논리라고 보긴 어렵다. 군주정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상황에서는 ‘자기멸시’의 뿌리가 유럽보다 더 깊다. 이래서는 연대는 커녕 상호 멸시만이 심해진다.

    또 한가지 문제가 있다. 유럽의 계급, 계층 갈등은 이른바 상류계급과 하류계급의 대립에서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대립으로 변화되었다. 그런데 유산 계급 이른바 가진자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나보다 잘 살면 죄다 가진 자인가?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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