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님께서 쓰신 휘호 '겸허'와 노무현의 유언 '원망하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은 한 맥락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비움이다. 무슨 뜻일까? 공동체적 정의가 실현되는 것과 개인적 성공과 영달은 거의 관계가 없다'는 사실, 어떻게 보면 현상학적 철칙에 가까운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김동렬님과 정달님의 지적 그대로다. 자신의 희생을 보상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결국 김지하와 난닝구들은 사단을 내는 것이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라는 명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개인은 '겸허'하게, 집단은 '정의'롭게...!!작성자고미생각작성시간13.02.07
답글결론은 뭘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 구별해줘야 한다. 하지만 서로를 배타적으로 떼어놓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하나의 동전이기 때문에 상호 영향을 주고 받게 되어 있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은 서로를 부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것이고, 사람은 양다리로 걷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가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진보다!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02.07
답글그러므로 질서란 지배층들도 어김없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며 노무현이 그토록 실현하고 싶어했던 진짜 '법치주의'였다. 그리고 이를 ‘명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보수’다. 대한민국에는 이런 보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이런 '질서'가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나라다. 힘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질서'이며, 피지배층은 여기에 순응하는 것이 '올바른 것' '착한 것'이라고 오도해왔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02.07
답글겸허는 겸허이고 정의는 정의다! 기득권이 공동체의 "질서"를 거스르면서 '왜곡과 교란, 반칙과 부패'를 덮는 시도로 '겸허'를 이용한다면 이는 결코 공동체의 앞날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왜일까? 왜곡과 교란은 '질서'를 망친다. 고로 '신뢰'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게된다. 이는 결국 공동체의 공멸을 초래한다.
질서란 기득권을 가진 지배세력들이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용하는 '규칙이나 룰'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을 뜻한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을 '질서'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02.07
답글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세븐 사인'에서 영혼의 가득한 방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데미 무어'의 모습과 공동체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운명'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고 끝내는 순응했던 노무현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마 그래서..! 노무현과 예수를 비교한 글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한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며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남의 탓을 하지 않는 것이 겸허의 자세라고는 하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깨달음이 선물하는 삶인 것이지 이것을 공동체 전체에 적용하려 하는 시도를 한다면 이것은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 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02.07
답글너무 거창한 얘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무 불공평한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이면 그 누가 세상을 바꾸려 들겠느냐고 한숨 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내 자신이 소중할진대.. 그런 생각이 왜 안들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일부러 꺼내놓은 것은 아프로만님의 말씀마따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맥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맥점에 대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정녕 세상을 바꿀 것이다. 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02.07
답글그리고 그것이 개인과 집단의 문제에서 별개로 작용하면서도 그 개인적인 희생이 공동체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큰 발자국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는가?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아니하며' '내가 사는 시간이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리고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역사를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다'며 희미하게 미소짓던 노무현의 모습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02.07
답글내가 민주화 투쟁 시절에 겪었던 고통과 희생을 보상받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정의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누가 투쟁을 하고 고통과 희생을 하겠다 나서겠는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절실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은 결코 한번도 어긋나 본 적이 없는 철칙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것을 위해 그대는 무엇을 내놓을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자신이 있는가? 자신이 모든 것을 던져서 희생한 대가는 자신이 아닌 후손들이 얻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작성자고미생각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1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