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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답한 것은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권위를 추종하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더라도 표피적인 수준에 머물 뿐이다. 그리고는 문자를 최대한 많이 읽어 들였다는데 만족하거나 허구의 울타리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구원으로 착각한다.

    한마디로 책을 최대한 많이 읽었다는 사실, 남들이 잘 읽지 않는 작품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으로 삼는다. 그 자체가 일종의 '과시용 악세사리'가 되는 것이다. 이게 뭔가? 허영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패션좌파들의 실체다. 안타까운 일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시간 13.04.03
  • 답글 [고미생각 비망록 2013년 3월 27일]

    문학의 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 문학은 결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결국 문학이란 강론이 아니라 대화이기 때문이다..!

    권위에 지나치게 의지해선 안된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절대로 업신여기지 말지어다. 남이 한 얘기는 내 삶의 경험과 지식 속에 이미 들어있는 법이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끄집어내 주는 실마리, 마중물의 역할을 할 뿐이다. 문학도 공부도 그렇게 접근해야 옳지 않을까?

    그래서 자신의 삶과 결합하지 못하는 문학, 분별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문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추적자? 골든타임? 26년? 히트하면 뭐하나?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03
  • 답글 [고미생각 비망록 2013년 3월 27일]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신의 가슴에 들어와서 당신의 삶에 반향을 일으킨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 내 것이 아니라 오롯이 당신의 것입니다.”로 기억한다. 이 말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어 볼 일이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 의도가 충분히 드러났으리라 생각한다. 기실 문학은 일방적인 관계, 수직적인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쌍방적 상호 소통의 관계 대등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사실은 문학의 힘인 것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03
  • 답글 [고미생각 비망록 2013년 3월 27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머릿속으로만 맴돌다 끝나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환상이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말과 글을 쓰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행실과 방향이 이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반쪽 짜리일 뿐이다. 분별의 기준을 제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다 내것이 아닌 법이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어떤 문장을 썼느냐가 아니라 독자가 그 문장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어떻게 결합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느냐다. 변화와 낳음을 만들어내는 관계! 이것이 문학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03
  • 답글 [고미생각 비망록 2013년 3월 27일]

    이런 말을 하면 굉장히 싸가지 없다고 찍히겠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허구의 상상에 기초한 울타리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구원으로 착각하는 한 구원은 결코 현실이 되지 못한다. 허구가 구원의 씨앗이 되는 힘은, 자신의 삶을 굳건히 세우는 것이다

    문학에 구원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문학의 글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그만큼의 자기 고민, 자기 삶에 대한 신뢰와 애착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진실로 자신의 삶이 변화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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