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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는 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종교 바깥의 관점으로 풀어보면 딱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뭘까? '자존심을 건드려서'다. 저 사람이 나보다 별반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딱히 반박도 무시도 못하겠다. 그게 짜증나는 거다.

    내가 떠받들만한 대상의 '자격'을 갖춰야 '숭배'할 이유가 생기고 열광하는 거다. 이게 바로 권위주의다. 권위주의는 정치와 종교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형성된다. 부연하자면 이것이 바로 김동렬님이 걸려든 함정이다. 안철수는 말할 것도 없고!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시간 13.04.18
  • 답글 책임을 외면하거나 방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그것이 야훼와 예수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이는 예수의 말을 통해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다시 말해 희생 제물을 바쳐서 그 희생양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이상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위를 거부한다는 것..그 악순환을 자신의 죽음으로 끊겠다는 선언이 바로 예수 십자가의 신학적 의미인 셈이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잠언 21:3)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18
  • 답글 예수가 왜 대단한 사람일까? 간단하다. 나와 똑같이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화내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예수가 말한 것이 예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예수가 '야훼의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왜일까? 구약에서 야훼는 '계약의 주체이자 객체'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야훼는 항상 약속하였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내 말에 어김이 생긴다면 나도 그 책임을 지겠다.' 그것이 구약에서 표현되는 야훼의 핵심적인 모습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18
  • 답글 '차이'에서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은 정치와 경제를 막론한 핵심적인 현상이자 원리이다. 세상의 이치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진리? 알고 보면 참 간단한 것이다. 그것을 엎어놓고 꼬아놓아서 복잡하게 보일 뿐이지..

    차이와 차별이라는 단어가 다르듯. 자존감과 자존심 또한 다른 단어다. 스스로 올바른 자존감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릇된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자존심'이다. 자존감은 판단에 도움이 되지만 자존심은 판단을 그르친다. 그래서 내가 그토록 '분별'을 강조하는 것이다. 분별을 그르치는 것들을 배격하려는 노력.. 그것이 관성을 극복하는 진보의 길인 것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18
  • 답글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 이치와 합리에 부합한다면 그 어떤 사람의 말이라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 물론 거기에 일관성과 방향성, 책임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말이다.

    결론은 뭘까? 권위에 의존하고, 권위를 맹신하는 이상 인간은 결코 진보하지 못한다. 나와 남을 동등하게 여기지 못한 채 함부로 위와 아래를 나누려 드는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든 종교든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 뿐이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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