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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 인간이 있이 없는 자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있음과 없음이라는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아란 육체의 내부와 외부의 상호관계를 통해 형성되듯 말이다. 어쩌면 육체는 개체의 독립 혹은 구별단위일 뿐만 아니라 경계의 존재임을 증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계 위에 서있는 존재는 상호배타적(이거나 혹은 그렇게 일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관계에 놓인 두가지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두 개념이 포괄 혹은 혼재되는 정도의 차이 내지는 비율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기질과 성향, 성격의 차이로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시간 13.04.23
  • 답글 새삼 피콜로님의 말씀마따나 관이 형성되지 못한 사람은 그저 반복의 과정 만을 답습하는 기술자의 운명을 넘지 못한다.

    전승의 과정 만이 되풀이 되는 상황에서 집적이 새로운 도약의 동력이 되지 못하는 이상 (이것이 자연과학, 공학과 인문학의 핵심적인 차이일 터다.) 인문학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일런지도 모른다.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23
  • 답글 따라서 이성과 감성, 육체와 정신, 있음과 없음이 공존하는 존재가 인간이므로 제한과 속박의 경계이자 기준인 육체를 초월하고자 하는 생각을 품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상력의 산물이 신화로, 영웅전설로, 혹은 요즘 시대로 말하면 히어로 물로 변용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질수록 우리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 내지는 범위의 폭도 점점 크게, 넓게 변화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진보란 말의 또다른 의미는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초월의 질문을 그저 침묵 속에 가둬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작성자 고미생각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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